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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 (72)화 (72/385)
  • 72화. 서로 각기 다른 생각을 품은 채

    유신지가 경계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데요, 어머니?”

    유 대부인이 대답했다.

    “내가 만나 보니 지온 소저가 참으로 괜찮은 사람이더구나. 그래서 그 아이를 위해 내가 매파가 되어볼까 한다. 네 칠외종숙 집안의 아이인데, 지온 소저와 나이가 비슷하여…….”

    “어머니!”

    유 대부인이 슬쩍 그를 빗겨보자, 유신지가 두 손을 들었다.

    “알겠어요, 어머니. 뭘 알고 싶으신 건데요?”

    “이제 안 그럴 것이냐?”

    유신지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만족스러운 얼굴이 된 유 대부인이 입을 열었다.

    “그럼 솔직하게 말을 해 보아라.”

    “…….”

    말이 없던 유신지가 입을 열었다.

    “소자와 함께 돌아온 이가 누군지 아시지요?”

    “당연하지.”

    유 대부인의 미간에 고랑이 파이며 그에게 경고하듯 말했다.

    “네가 친우를 사귀는 것에 어미가 간섭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루 낭중의 상황은 너무 복잡해. 과도하게 어울렸다간 너도 몸을 빼기 힘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야.”

    “저도 알고 있습니다. 사실 그는 저를 친우로 생각하지 않고요.”

    유신지가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청명절에 처음으로 지온 소저를 보았습니다. 그때 그녀와 루안과의 관계가 평범하지 않은 듯하여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래?”

    유 대부인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하다니, 좋은 생각이 아닐 것인데…….”

    “어머니 역시 이상하단 생각이 드시지요? 지온 소저가 도성에 돌아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루안과 알게 되었겠습니까? 만약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면, 전엔 왜 그리 혼사를 무르지 못하겠다 난리를 쳤던 것이겠습니까? 소자는 그저 그것을 확실하게 알고 싶었던 것인데…….”

    그렇게 한참 대화를 나누고 난 유 대부인이 유신지에게 말했다.

    “너도 피곤할 테니 그만 가서 쉬거라.”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쉰 유신지가 물러갔다.

    그의 뒷모습까지 모두 사라지자, 유 대부인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널 믿느니, 귀신을 믿지!”

    * * *

    지서가 돌아가자마자 위씨 부인이 득달같이 물었다.

    “어땠느냐? 둘째 공자와 이야기는 잘했느냐?”

    “괜찮았어요.”

    낮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자, 지서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위로 올라갔다.

    ‘역시 둘째 공자님은 나를 특별하게 대하신다니까.’

    오늘 둘째 공자님과 나갔을 때 공자님은 그 몹쓸 것과 말 한마디 안 하지 않았던가! 내내 자신과 대화를 했었다.

    지서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위씨 부인의 입가가 하늘로 용솟음쳤다.

    “그래야지! 앞으로 며칠은 더 영산에 머무를 것이니, 넌 둘째 공자와 더욱 가깝게 지내도록 하거라.”

    “알겠어요, 어머니!”

    * * *

    다른 한쪽에선 유 대부인이 묻고 있었다.

    “둘째에겐 별일 없었나?”

    늙은 유모가 대답했다.

    “쇤네가 사람을 붙여 따라가게 하였는데, 별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다만 지씨 가문의 둘째 소저가 둘째 공자님께 계속 말을 걸며 이야기를 하려 했지만, 공자님께선 그다지 반응해주지 않으셨다 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생각하니, 유 대부인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도 혼사 문제만큼은 둘째가 오히려 안심되다니, 생각지도 못했네.”

    늙은 유모 역시 미소를 지었다.

    “대공자님께선 꼭 미후왕(*美猴王: 손오공) 같은 분이시지요. 그러나 그래도 부인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야 있으시겠습니까? 오라 불렀더니 진짜 이리 오시다니, 부인의 예상이 딱 맞았습니다.”

    득의만만해진 유 대부인이 콧방귀를 뀌며 접선을 흔들었다.

    “아직도 아닌 척 연기를 하더구먼! 거기에 핑계까지 대는 것을 보니 진짜 마음이 흔들린 게야. 아닌 척을 하고 싶으면 하면 될 일……. 나머지는 이 어미가 도와주면 되겠지.”

    늙은 유모가 미소를 지었다.

    “부인께서 참으로 대공자님을 아끼십니다.”

    “그런 아이의 어미가 되고 말았지 않은가?”

    가만히 생각하니 또 미간이 구겨지는 유 대부인이었다.

    “알기 어려운 것은 지온 소저의 태도일세. 뜨뜻미지근한 것이, 우리 아이를 어찌 생각하는지를 모르겠어.”

    늙은 유모가 대답했다.

    “쇤네가 보기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지온 소저의 시녀가 부인께 잘하려는 모습이 눈에 훤하게 보였습니다. 분명 마음에 조금은 생각이 있으나, 다만 선을 지키려는 것이겠지요.”

    가만히 생각하던 유 대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렇긴 해.”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럼 나도 안심하고 둘을 붙여볼 수 있겠어.”

    * * *

    다음 날, 루안은 아침 일찍 현아에 갔다.

    유신지 역시 그 뒤를 따르려 했지만, 그의 어머니가 그를 붙잡았다.

    “네 일도 아닌데 무에 그리 바삐 가려고 하느냐? 기왕 왔으니 어미를 도와 손님이나 맡거라.”

    그렇게 유신지는 장원에 남게 되었다.

    지서는 기회가 올 때마다 놓치지 않고 둘째 공자의 마음을 얻어보려고 움직였고, 유 대부인은 유신지와 지온을 같이 붙여놓고 두 사람을 이어 볼 기회만 엿보았다.

    그렇게 젊은 남녀들은, 서로 각기 다른 생각을 품은 채 한데 어울려 나들이에 나서게 되었다.

    * * *

    루안이 현아에 도착하자, 그의 시종인 한등은 이미 루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자님, 말씀하셨던 사건 문서입니다. 제가 찾아 왔습니다.”

    루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서를 한 장씩 넘기며 살피기 시작했다.

    “모두 열네 사람이로군.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2년의 터울을 두고 일이 벌어졌고. 실종 정황은 모두 영산에 나들이를 왔다가 행적이 묘연해졌군…….”

    루안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실종되었는데, 왜 사건 조사를 하지 않은 것인가?”

    현위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대인께선 모르시겠지만, 영산에 나들이를 오는 관광객은 1년 사계절 내내 끊이지 않고 많습니다.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도 고향으로 돌아간 것일 수도 있는지라, 꼭 실종이라 보긴 어렵습니다. 그리고 명단에 있는 이들은 도성에서 올라온 사건들이라 저희 쪽에서 해결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건 문서를 다시 살펴보니, 그의 말이 맞았다.

    도성에서 매년 실종되는 사람 수를 생각해도 영산에서 발생한 실종자 수만큼은 될 터였다. 자신이 실종자들의 특징을 종합하지 않았다면, 그 모두를 하나하나 조사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인제 와서 이것을 추궁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

    그러니 우선은 일어난 살인사건부터 확실하게 알아보는 것이 좋을 터였다.

    “고찬은 어디에 있나?”

    “고선생께서는 아침 일찍 조사하러 나가셨습니다.”

    “가지.”

    “네.”

    * * *

    유신지는 언제나 시회가 성가신 일이라 생각했다.

    그와 왕래가 있는 이들 모두 실학(實學)에 재능이 넘치는 기재들이었으니,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해대는 시회가 견디기 쉬울 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유모지가 의견을 냈다.

    “그럼 다 같이 유성벽(留聲壁)에나 갈까?”

    유성벽(留聲壁).

    기러기는 울음소릴 남기고, 사람은 글을 남긴다는 의미를 지닌 곳이었다.

    티 하나 없이 판판한 석벽인 유성벽(留聲壁)은 글을 써넣기에 무척 좋은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산에 나들이를 오는 문인들치고 유성벽 한 번 들리지 않는 이들이 없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며 유성벽엔 적잖은 시사들이 남겨지게 되며, 전대의 대유학자부터 당대의 기재들의 것까지 이곳에 넘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자.”

    유신지는 이러든 저러든 상관이 없었다.

    그렇게 젊은 청춘의 남녀들은 하하호호 웃으며 유성벽으로 향했다.

    지서는 당연하게 유모지에게 달라붙었지만, 어제의 일이 훌륭한 교훈이 된 유모지는 끈질기게 유민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런 유모지를 보는 유신지는 그저 웃음이 나왔다.

    “둘째가 인기가 저토록 많은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럼요. 제가 도성에 돌아올 적에 이미 둘째 공자님이 얼마나 품위 있는 분이신지 들었는걸요. 도성에서 가장 유명한 귀공자라 했습니다.”

    “정말입니까?”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라 그가 호기심을 보였다.

    “그럼 저는요?”

    유신지를 흘긋 바라본 지온이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대공자님 역시 기재 중의 기재이자, 외모며 그 분위기가 범인의 그것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유신지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길 기다리던 그녀가 얼른 덧붙였다.

    “……다만 나이가 많은데도 정혼도, 혼인도 하지 않아 뭔가 문제가 있을 거라 들었습니다.”

    유신지의 미소가 딱딱하게 굳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서야 그가 어색하게 긁적긁적 제 코를 긁었다.

    “제가 그리 늙은 것입니까? 그렇게까지는 아니지 않습니까?”

    지온이 웃음을 지었다.

    “대공자께선 당연히 늙지 않으셨지요! 그러게 누가 그리 어린 나이에 벌써 청운의 길에 오르시랍니까? 열아홉에 탐화가 되신 분께서 젊은 날의 풍류를 즐기실 생각조차 하지 않으시니, 다들 공자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유신지가 대답했다.

    “젊은 날의 풍류가 뭐란 말입니까? 홍등가에서 만취하는 것이 그런 것인가요? 그게 뭐가 그리 재미가 있단 말입니까?”

    “이것 보세요, 바로 문제가 드러났지요?”

    지온이 빙긋 웃었다.

    “대부분의 사내가 재미있다 느끼는 것을 재미없다고 생각하시니, 그저 보기에도 정상적인 분 같지는 않지요.”

    “…….”

    ‘논리가 치밀해서 반격할 수가 없잖아!’

    유신지는 그저 제 의견을 더 강하게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루 형 역시 정상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보다 한 살이나 더 많은데…….”

    지온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대공자님, 그거 못 느끼셨나요?”

    “무엇을 말입니까?”

    “공자님께서 무슨 일이든 루 대인을 끌어오시잖아요. 루 대인을 무척 신경 쓰고 계시는 것 같은데, 설마…….”

    유 대부인이 남색에 대해 했던 말이 떠오른 유신지는 당장 부인하고 나섰다.

    “전 루 형에게 이상한 감정은 한 터럭도 없습니다! 아주 정상입니다! 사내를 좋아하지 않아요!”

    지온이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그저 루 대인께 질투 같은 마음을 느끼시는 것이냐 여쭈려 했던 것인데, 어찌 생각이 그쪽으로 가신 것인지요? 설마 마음으로 계속 루 대인을 생각하고 계셨던 것입니까?”

    “…….”

    유신지는 자신이 함정에 걸려도 된통 걸려들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유성벽에 적힌 글을 보며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동안, 시간은 무척 빠르게 지나갔다.

    “큰오라버니! 큰오라버니!”

    대화가 이어지던 중 돌연 앞에서 유민의 당황한 음성이 들려와 유신지가 급히 달려갔다.

    “무슨 일이냐?”

    “둘째 오라버니가 사라졌어.”

    초조한 마음에 유민은 눈시울마저 붉어져 있었다.

    유신지가 흠칫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정자에서 쉬는 것 같았는데, 지금 보니 지서와 유민만 있고 유모지가 보이질 않았다.

    “어찌 된 일이냐?”

    “제, 제가…….”

    지서가 더듬더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제가 손수건을 아래에 흘렸어요. 그래서 둘째 공자님께서 저 대신 주워주러 가셨는데 돌아오질 않고 계세요. 조금 전에도 제가 불렀는데 아무런 대답도 없어요.”

    아래는 협곡이긴 했지만 그리 가파르지 않아 내려가는 작은 길도 나 있었다.

    유신지의 냉정한 음성이 들려왔다.

    “조급하게 굴 것 없이, 먼저 사람들을 보내 찾아보자.”

    그리고 사방을 둘러보던 유신지가 한 중년 부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중년 부부의 얼굴에 망설이는 듯한 표정이 떠오르자 유신지가 고함을 질렀다.

    “아직도 그러고 있다니! 어서 내려가서 사람을 찾으시오!”

    그의 말에 두 사람이 당장 명에 따랐다.

    “네, 대공자님.”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유민이 입을 열었다.

    “저 사람들 우리 집안사람이었어?”

    유신지는 대답조차 하기 싫었다.

    자신들을 놀라며 보내놓고 다른 한쪽으로는 사람을 붙여 감시하다니…….

    ‘대체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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