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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 (34)화 (34/385)

34화. 출처가 있는 것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비들은 그들을 피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모두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제야 숨을 내쉰 화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아까 물통에 무슨 약을 탔었지?” 

지온이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네, 맞아요.”

매고고를 향해 돌아선 지온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더니 입을 열었다.

“그날 밤 꿈을 꾼 후에 향료를 배합하여 향수를 만들어두었습니다. 제 사매들이 최근 오송원에서 일하고 있어 두 사람에겐 먼저 벌레퇴치환약을 주었지요.

향수와 벌레퇴치환약, 두 가지는 상반된 효과를 냅니다. 향수는 나비를 부르고 환약을 벌레를 쫓지요. 환약의 효과는 모두 보셨을 것입니다. 환약의 냄새가 퍼지면 나비는 곧장 피해갑니다.”

그리고 지온이 한 곳을 가리켰다.

“이제 나비들이 어디에 앉아있는지 보시지요.”

조금 전까지 하늘을 덮을 듯했던 나비들이 지금은 모두 어딘가에 앉아있었다. 나비들은 조금씩 흩어져 높은 위치들이나 구석진 곳에 앉아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한 곳에 몰려있었다.

“영령당!”

누군가 대답하자, 지온의 담담한 음성이 울렸다.

“모두 아시겠지만, 저는 향수를 탄 물을 곳곳에 뿌렸습니다. 그런데 나비들이 왜 하필 영령당으로 몰려들었을까요?”

“그건…….”

누군가가 말끝을 흐리자 청옥이 조용히 말했다.

“이유는 저희가 영령당에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령당에는 벌레퇴치환약의 냄새가 없기 때문이지요.”

지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렇습니다. 청옥과 함옥이 지니고 다녔던 벌레퇴치환약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면 나비들은 물이 뿌려졌던 어느 곳에든 앉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나비들이 영령당에만 앉아있네요.”

청옥과 함옥, 두 사람은 몇 날 며칠간 오송원을 청소했다. 그러니 거의 모든 곳에 벌레퇴치환약의 냄새가 남았던 것이다. 아무리 향수에 이끌리듯 날아든 나비라도 벌레퇴치환약의 냄새 앞에선 예외 없이 도망치는 것이다.

“정말 거짓말을 하지 않았구나.”

두 사람을 보며 말한 지온이 다시금 말했다.

“정말 영령당엔 들어가지 않았어.”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정신을 차린 함옥이 소리쳤다.

“지주! 이것 보세요! 선대 태자 전하의 위패를 해한 일은 정말 우리가 한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나 화옥은 여전히 인정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비들이 영령당을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

담담한 미소를 지은 지온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청옥과 함옥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 봐.”

지온이 지금 무슨 말을 하기만 하면 그대로 따를 태세였던 청옥과 함옥은, 곧장 알겠다고 하고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영령당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전 향수 탄 물을 몸에 뿌렸던 두 사람은, 아직도 의복이 축축하게 젖은 상태였다. 그러나 이들이 영령당으로 들어가자마자 나비들이 훨훨 달아나 버렸다.

의심할 나위 없는 벌레퇴치환약의 효과가 모두에게 입증된 것이다.

화옥은 입술을 비틀었다. 뭐라고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화옥은 차마 할 말을 찾지를 못했다.

결국, 능양진인의 입이 열렸다.

“…청옥과 함옥이 선대 태자 전하의 위패 모독 사건과 무관하단 증거가 확실하니 그만 두 사람을 풀어주겠다.”

“감사합니다, 지주!”

청옥과 함옥이 크게 기뻐하며 얼른 대답하자 능양진인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매고고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 일은 모두 제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여 생긴 일입니다. 그러니 고고께선 대장공주님께 반드시 제대로 찾아내어 엄히 벌하겠다, 전해주십시오.”

그러나 과거의 추억을 떠올린 탓에 아직 격렬한 슬픔에 젖어있던 매고고는, 이미 이 사건엔 크게 관심이 없었기에 간단하게 대답했다.

“지주께서 알아서 하시지요.”

그리고 매고고는 곧장 몸을 돌려 지온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 소저, 나를 따라 대장공주님을 뵈러 가지 않겠는가?”

화옥은 질끈 입술을 악물었다.

‘저 벌거숭이 같은 건 운이 왜 저렇게 좋지? 더는 다른 일에 신경 안 쓰시는 대장공주님이 저 계집을 왜 보고 싶어 하시는 건데! 이러다 저 계집이 대장공주의 눈에라도 드는 날에는…….’

“스승님, 이건…….”

화옥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능양진인의 눈빛에 입을 다물었다.

냉기가 뚝뚝 흐르는 음성으로 능양진인이 말했다.

“오송원의 일은 언제나 네게 맡겨왔다. 한데, 지금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너도 책임을 져야 할 것이야. 잠시 후에 장 스무 대와 더불어, 청명절 당일까지 금족령을 내리겠다.”

“스승님!”

매우 놀란 화옥이 그녀를 불렀지만, 능양진인은 더는 화옥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매고고에게 인사를 한 능양진인은 휙, 하고 불진을 휘둘러 다른 이들을 데리고 떠났다.

* * *

지온은 매고고를 향해 깊은 인사를 올렸다.

매고고가 지온에게 물었다.

“지 소저, 이게 무슨 의미인가?”

지온이 솔직한 마음을 담아 대답했다.

“고고께 죄송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지온이 꿈 이야기를 하여 매고고를 끌어낸 것은, 능양진인이 대장공주께서 이 일에 나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윗사람을 이용하려는 불경한 의도로 움직인 것이기에, 지온은 매고고에게 미안했다.

매고고는 지온이 불손한 의도로 자신을 움직인 것을 알았지만, 질책은커녕 오히려 대장공주까지 뵙게 해주려고 했다. 지온은 매고고의 이러한 태도에 또한 감사했다.

지온의 말에 매고고의 입가가 슬그머니 벌어졌다.

“별일도 아닌 것을…….”

대장공주라는 이름을 눈앞의 지 소저가 이용한 일로, 사실 매고고는 기분이 좋지 않았었다. 그러나 선대 태자 전하께서 지 소저의 꿈에 나타나 부탁을 한 일이 사실이라면, 지 소저는 그만한 가치를 지니는 존재였다.

‘그러니 다른 자질구레한 것들은 신경을 덜 써도 되는 것이지.’

게다가 지온이 이렇게 진심으로 사과를 해오자 나빴던 매고고의 기분도 조금 가라앉았다.

“고고께는 작은 일이실 수 있으나 저희에겐 목숨이 걸린 일이었습니다.”

지온이 여전히 공손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사실 며칠 전 배합을 해두었던 향수였습니다. 본래 청명절 당일에 대장공주님께 올리려 했던 것인데 제 사매들에게 갑작스레 일이 생기는 바람에 급히 난택산방으로 말씀을 전해 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고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매고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마음은 내 다 알았으니 지금은 우선 대장공주님부터 뵈러 가세.”

“네, 고고.”

지온이 고개를 돌리자 청옥과 함옥이 머뭇거리며 자신을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먼저 돌아가 며칠 푹 쉬어요. 내가 능양사숙께 말씀드릴 테니 궁관에서 시킨 일은 신경 쓰지 말고요.”

“네…….”

* * *

대장공주는 오래도록 나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송원의 나비들은 매고고가 지온을 데리고 돌아왔지만, 여전히 흩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나비를 바라보던 대장공주의 귀로 매고고가 보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주마마, 지 소저가 왔습니다.”

낮게 웃음을 지은 대장공주가 말했다.

“담이 점점 커지는구먼. 만나지 않겠다더니 직접 데려왔는가?”

매고고가 진심으로 대답했다.

“공주마마께서 실은 보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노비는 알기 때문입니다.”

잠시 말이 없던 대장공주가 결국 낮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알겠네, 만나보지. 들라 하게.”

“네, 공주마마.”

이윽고 지온이 각루로 들었다.

대장공주를 본 지온은 마음속으로 작은 탄식을 흘렸다.

‘역시 시간은 많은 것을 변하게 하는구나. 여양대장공주께서 이런 모습이 되시다니.’

지온은 지난 삶에서 대장공주를 한 번 본 일이 있었다.

대략 팔 년 전쯤, 선대 태자의 수학을 위해 대장공주는 태자를 데리고 무애해각을 찾았었다. 당시 그녀는 상상조차 어려운 매우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도복을 걸치고 얼굴의 분마저 닦아낸 지금의 모습은 평범한 여도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신녀(臣女), 지온이 대장공주마마를 뵙습니다.”

지온이 머리를 낮게 숙여 예를 갖추자 여양대장공주가 시선을 낮추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씨 가문의 큰아가씨는 예상과는 다른 모습이로구나.’

용모가 생각보다 더욱 아름다웠고, 지온이 보여주는 행동거지나 자태 역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엄격한 예법을 기준으로 흠을 잡아도 몇 군데 잡을 만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다들 저런 아이를 두고 능운진인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아이를 길러냈다고 하는 것이야? 저 아이가 천둥벌거숭이면 조방궁에 천둥벌거숭이가 아닌 자가 있기나 하겠는가?’

내심 실소를 흘리며 고개를 흔든 대장공주가 입을 열었다.

“일어나게.”

“감사합니다, 공주마마.”

다시 몸을 돌린 대장공주는 다시 오송원의 나비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비를 향수로 불러들였다 하였는가?”

지온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작은 향수 하나로 이리 많은 나비를 불러오다니, 기술이 뛰어나구나.”

그리고 잠시 말이 없던 대장공주가 다시 물었다.

“네 도법과 무공이 그저 평범한 수준이라 들었는데, 맞는가?”

지온이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평범한 수준이라 말씀하시면, 공주마마께서 신하의 체면을 차려주신 것이겠지요. 하찮은 수준이라 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녀의 대답을 들은 대장공주가 입꼬리를 올렸다.

“자신을 잘 아는구나. 그렇다는 말은 자네의 스승이 도법과 무공은 가르치지 않고 자네에게 향수 배합하는 법을 가르쳤단 말인가?”

지온이 고개를 저었다.

“스승님께선 이것을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럼 무엇을 가르쳤는가?”

“책 읽는 법입니다.”

멈칫한 대장공주가 돌아서 그녀를 보았다.

“책 읽는 법?”

“그렇습니다.”

지온의 담담하게 대답했다.

“독서와 예를 아는 것이 근본이라 하셨습니다. 도법과 무공은, 스승님께선 제가 출가할 것이 아니니 조금만 알아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대장공주는 침묵하며 생각했다.

‘그 말도 틀리지 않구나.’

지 소저가 능운진인을 따라 주유(周遊)하게 된 것도 목숨을 붙들어 두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도법과 무공은 지 소저에게 그다지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 향수는 어떻게 배합을 할 수 있게 된 것인가? 그리고 벌레를 쫓는다는 환약은?”

“모두 서책 중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지온이 설명했다.

“향수의 제조법은 금명견문록에 적혀 있던 것입니다. 다만 원서에 나온 향수는 적은 수의 나비만 불러들일 수 있어, 제가 제조법의 일부를 바꾸어 만들었습니다. 벌레퇴치환약의 경우, 견린해방에 제조법이 나와 있던 것입니다. 두 서책 모두 집현원에서 소장하고 있을지 모르니, 마마께서 흥미가 있으시다면 빌려 보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한 마디로 지온은 사술 같은 것을 부린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평범한 이들보다 아는 지식이 좀 더 많은 것뿐이란 말이었다.

대장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만 가보시게.”

지온이 다시 인사를 올렸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떠나기 전,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잠시 멈춰선 지온이 입을 열었다.

“공주마마, 혹시 잠이 깊어 깨시기 어려우시다면 피우시는 향로를 잠시 멈추시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모든 약물은 너무 오래 사용하면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시 인사를 한 지온이 내려갔다.

시선을 고정한 채 말없이 있던 대장공주가 지온이 멀어지자 고개를 돌려 물었다.

“매(梅), 자네가 무슨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지?”

잠시 생각을 하던 매고고가 대답했다.

“소인이 달리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지난번 지 소저가 안부를 물으려고 왔을 때 소인이 향환을 몇 알 내린 적이 있습니다.”

대장공주가 생각에 잠긴 채로 말했다.

“향을 배합하는 것에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것이 확실하네. 나비를 부르는 향수와 벌레퇴치환약을 만들 정도라면, 향환을 보고 문제를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매고고가 쓰게 웃었다.

“향환도 오래 쓰면 당연히 좋지 못하지요. 그러나 마마께서는 그것이 없으면 잠을 주무시질 못하시니…….”

말을 잇던 매고고가 갑자기 말했다.

“아니면 공주마마, 지 소저에게 마마께 맞는 향을 제조해 달라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리 능력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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