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21)화 (21/385)
  • 21화. 돈 적게 줬다고 그런 게 맞네!

    “그걸 마음에 품고 있다, 기녀도 죽여 버린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서아는 제가 모시는 아가씨가 서기와 동시에 그 말을 읊조리는 것을 들었다.

    “아가씨?”

    서아는 매우 놀라서 지온을 불렀다.

    지온이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자신은 계속 이야기를 들어야 하니 조용히 하라며 입가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서기가 다 읽고 나자 루안이 빙긋 웃으며 유 공자를 바라보았다.

    유모지는 어쩐지 멍한 기분이었다.

    그도 바보는 아니라 루안이 저리 행동하는 것만 보아도, 자신이 무언가를 놓쳐 이미 궁지로 몰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더 입을 열었다간 제 한 몸 바쳐 루 낭중을 띄워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았다.

    하지만 너무 궁금하지 않은가?

    ‘속은 쓰리지만 어쩔 수 없군.’

    결국, 그가 물었다.

    “그 말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그것으로 어찌 저자가 흉수라 단정할 수 있는 것입니까?”

    대당 앞에 모인 구경꾼들 그리 생각하며 궁금하던 차에, 자신들의 속내를 대변하듯 유 공자가 물으니 모두의 시선이 루안에게 꽂혔다.

    ‘어서 말해!’

    군중의 생각을 읽은 듯, 루안이 입을 열었다.

    “유 공자도 들었겠지만, 소령은 문과 창문이 모두 닫힌 방 안에서 목을 매달아 죽었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구경하러 오게 한 원인이 아니던가?

    루안의 말이 이어졌다.

    “세상에 진정한 밀실 살인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 그저 눈속임인 것이지. 우리가 방을 수색했을 때 확실히 드나들 만한 곳이 없었네. 그렇다면 흉수는 대문으로 들어와 사람을 죽이고 다시 나갔을 수밖에 없지.”

    “문과 창이 모두 잠겨 있었는데 그가 어디로 나올 수 있단 말입니까? 설마하니 그가 축골공(*縮骨功: 뼈를 움직여 체구를 작게 만드는 무공)이라도 한단 말입니까?”

    누군가 소리쳤다.

    그러자 루안이 웃으며 내뿜던 살기를 순식간에 풀었다.

    “본관 역시 축골공을 들어본 일이 있다. 그러나, 제 몸을 종이처럼 얇게 만들어 문틈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면, 그것은 더는 무공이 아니라 요사한 술법이라 봐야겠지.”

    루안이 이리 웃음을 보이자 구경꾼들의 간이 커졌다.

    누군가가 또 소리쳤다.

    “무슨 비밀이 있는 건지 애간장 그만 녹이고 어서 말해주시오!”

    “간단하다. 그는 당당하게 방에서 나왔다.”

    루안의 말에 모두가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그게 무슨 소리야? 문은 잠겨 있었다는 거 아니었나?’

    “잠겼지. 하지만 그 뒤에 다시 열렸다.”

    루안의 눈빛을 받은 유모지가 아! 하는 소리와 함께 주창이란 일꾼을 가리키며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보아하니 유 공자는 이미 깨달을 모양이로군.”

    이렇게 말한 루안이 다시 찻잔을 들곤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그제야 숨이 돌아온 유모지가 말했다.

    “저자는 방 안에 계속 숨어있던 것입니까? 그리고 시신이 발견되고 혼잡한 틈을 타서 사람들 사이에 섞여 빠져나온 것이고요?”

    루안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모지가 다시 미간을 좁혔다.

    “그런데 대인께선 어떻게 저자가 흉수라 단정하실 수 있는 것입니까? 그날 밤 자리에 없어 행적을 입증할 수 없는 이들은 모두 의심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루안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유 공자, 조금 전 들은 진술에 이상한 부분이 없는지 잘 한번 생각을 해보시게.”

    그 소리에 모두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간밤에 난리가 난 것을 구경하다 실수로 향로에 부딪혔고, 돌아와 그 옷을 버렸다…….”

    바닥에 있는 청회색 저고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 유모지가 중얼거렸다.

    “향로, 향…….”

    “이미 생각이 닿은 것인가? 역시 유 공자의 사고가 기민하군.”

    루안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모두 알고 있겠지만, 소령은 평소 사치를 하던 여자였지. 입는 옷들이나 장식품들 모두 평범한 물건들이 아니었네. 그러니 그녀가 사용하던 향 역시 평범한 것이었겠는가? 소령이 쓰던 향은 염노교(念奴嬌)라는 이름의 향일세. 그중 몇 가지 원료는 안식(*安息: 페르시아)과 구자(*龜玆: 과거 실크로드에 있던 고대 도시국가)와 같은 서역에 있는 나라에서 온 것이라 아주 희귀한 것들이지.”

    “하지만 저자는 향로에 부딪혀 향이 묻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구경꾼 중 하나가 크게 묻자 루안이 듣고는 다시 웃으며 유모지를 보았다.

    “공자, 저 질문에 자네가 대답할 수 있겠는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유모지가 질문한 구경꾼에게 대답했다.

    “손님을 대접할 땐 향을 피우겠지만, 소령은 한밤중에 죽었으니 향을 더 넣어 태우지 않았을 것이오. 그녀의 시신이 발견되었을 땐 향로 역시 이미 오래전에 꺼진 뒤였겠지.

    즉, 한밤중에 방에 있었던 사람만이 아직 뜨거운 향로에 옷을 그을릴 수 있었단 소리요. 그 방에서 하룻밤을 보낸 사람의 옷에만 향이 강하게 배었을 테니, 저자는 그 때문에 의심을 받을까 걱정이 되었겠지. 그래서 저고리도 버린 것일 테고.”

    루안이 고개를 주억이며 물었다.

    “유 공자, 아직도 의심스러운 것이 있는가?”

    유모지가 고개를 저었다. 그 광경을 보던 이들이 탄성을 내지르며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렇게 된 것이로구먼!”

    그제야 사건을 완전히 이해한 대희가 말했다.

    “루 낭중이 확실히 능력은 있어.”

    지장은 황당해 보이기만 하던 루안의 행동에 진짜 깊은 뜻이 있었을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런 행동을 좋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장은 고개를 모로 튼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걸 본 대희가 굳이 좀스럽게 놀리기 시작했다.

    “어이, 아직도 루 낭중이 신뢰할 수 없는 사람 같아?”

    놀림을 당하자 지장이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그럴듯하게 들리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 같지 않아? 향료가 다 탔을 거라지만, 남아있었을 수도 있잖아? 태우다 말고 중간에 불을 끄는 경우가 없는 것도 아니고.”

    지장이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붙들린 일꾼이 역시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억울합니다! 소인이 향로에 부딪혔을 땐 아직 향로에 미처 다 타지 못한 향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옷이 그을린 것입니다! 그리고, 옷도 다 저렇게 되었는데, 향이 강하게 배었는지 아닌지, 다들 어떻게 아신단 말입니까!”

    “그것은…….”

    그 말에 유모지의 말문이 막혔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버린 지 하루나 된 옷이 아닌가? 취태평에 난리가 벌어지지 않았다면 이미 외부로 나갔을 것이란 소리였다. 옷은 다른 잡다한 쓰레기들과 함께 뭉쳐있었던 지라 이미 향이랄 것도 없이 냄새가 모두 섞여버렸다. 이젠 향이 강한지 아닌지도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웃음을 비춘 루안이 가볍게 몸을 틀어 그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대, 대인…….”

    일꾼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지만, 그는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소인은 맞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때려서 자백을 받아낼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보는 눈들이 이리 많으니 루안이 함부로 형을 집행했다간 공분을 사게 될 터였다.

    루안이 말했다.

    “대중의 힘을 등에 업어 본관을 위협하다니, 역시 담이 작지 않구나.”

    “아닙니다!”

    일꾼이 심한 모욕을 당했다는 얼굴로 말했다.

    “대인의 증거가 설득력이 없는 것일 뿐입니다! 대인은 당시 향로에 잔불이 남지 않았을 것이라 어찌 그리 확신하시며, 옷에 향내가 짙었을 것이라 어찌 그리 확신하신단 말입니까?”

    루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루안이 말꼬리를 늘이자 구경꾼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라니? 다른 증거라도 있단 말인가?’

    “왜 본관이 그리 향료에 집중했는지 아느냐?”

    루안이 여전히 미소를 띤 채 그를 보며 말했다.

    “본관은 어려서부터 후각이 남달랐다. 네가 옷은 버렸을지 몰라도, 머리칼과 다른 곳엔 여전히 향이 무겁게 남아있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일꾼이 소리를 질렀다.

    “모두 씻어냈단 말입니다!”

    그 말에 대당 앞에 모인 구경꾼들이 웅성거렸다.

    “아, 씻었다고?”

    “저게 자백을 한 것이지, 원!”

    순간 당황한 일꾼이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제, 제 말은……! 마침 어제 목욕을 했단 말입니다!”

    하필이면 그때, 옆에 있던 일꾼이 고함을 쳤다.

    “주창, 그럼 자네가 어제 목욕을 한 게 이 때문이었던 건가! 내가 그래서 벌건 대낮에 무슨 목욕이냐고 묻지 않았는가? 이 사람, 뜨신 물 나오는 것도 기다리지 않더니만!”

    이미 봄이 왔다고는 하지만 날은 아직 쌀쌀했다.

    취태평은 뜨거운 물도 주지 않을 만큼 일꾼을 가혹하게 대하는 곳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런 싸늘한 날씨엔 누구라도 뜨거운 물로 노곤하게 몸을 풀려고 하지, 냉수에 몸을 비벼대고 싶을 리가 있겠는가?

    더 이상의 질문을 이어가는 것이 불필요한 상황이었다.

    미소를 거둔 루안이 차갑게 말했다.

    “끌고 가라!”

    “네!”

    크게 대답을 한 아전들이 한 줄로 묶여 있던 다른 일꾼들을 풀어주고, 범인만 다시 묶어 끌고 나갔다.

    “아, 참.”

    떠나기 전, 루안이 천천히 소매에 손을 넣어 은표 한 장을 꺼냈다.

    “다수전을 준 것은 고맙지만, 본관이 받기가 어렵군. 저들도 놀랐을 테니 일꾼들에게 나눠주게!”

    그가 가볍게 은표를 흔들더니 탁자에 올려두었다.

    딱 떨어지는 오십 냥이었으니 일꾼들에게 나누어주면 모두 두세 냥은 가져갈 수 있었다. 일꾼들에게 두세 냥이면 못해도 두 달 치 봉급에 가까운 돈이었다.

    그러나 형부의 낭중에게 다수전으로 주기에는 약소한 금액이라, 루안은 적다고 까탈을 부린 것이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루안, 저 인간 저거! 결국,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든 게 돈 적게 줬다고 그런 게 맞네!’

    대희가 지장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작게 속삭였다.

    “너희 집에서 오백 냥 준 게 다행이었네…….”

    한참 화를 꾹 눌러 참았던 장궤가 간신히 몇 마디를 뱉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인…….”

    * * *

    올 때 빠르고 맹렬하게 왔던 검은 옷의 아전들은, 떠날 때 역시 빠르고 신속하게 떠났다.

    남은 구경꾼들은 서로 의견이 분분했다.

    “문제가 거기에 있었구먼, 난 생각하지도 못했어!”

    “다들 그건 느꼈는가? 저 루 낭중의 기억력이 비상하지. 그리 혼잡한 상황에 몇 번째 사람이, 몇 번째로 했던 말인 것까지 기억하고 있지 않던가?”

    “과목불망(*過目不忘: 눈에 스쳐 지나가면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한 번 본 것을 잊어버리지 않음)인 게로구먼!”

    “아니지, 과이불망(*過耳不忘: 들은 것을 잊지 않음)이라 해야 옳지!”

    “저런 학식에 능력에, 참으로 안타깝구먼.”

    무엇이 안타까운지는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었다.

    한편, 원래의 자리에 덩그러니 버려졌던 유 공자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불합리한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어 나섰지만, 상대의 논리와 근거 앞에 오히려 자신의 어리석음과 쓸데없는 오지랖만 드러내고 말았던 것이다.

    그나마 자리에 유모지의 친우가 많아 다행히 사태는 금방 원만하게 수습되었다. 유모지의 친우들은 유모지를 데려와 위로차 술을 마셨다.

    대희가 지장에게 물었다.

    “가서 인사도 안 해?”

    지장이 고개를 저었다.

    “신분이 워낙 높으셔야지.”

    대희가 웃으며 말했다.

    “조금 전까진 유 공자가 정의로운 사람이라더니, 이제 와 혼약을 물린 일로 앙심이라도 품는 거냐?”

    “말할 것도 못 된다.”

    이야기하던 지장의 눈 끝에 주루를 나가는 여인의 신형이 보이자 그가 멈칫했다.

    “왜 그래?”

    지장이 의심스러운 듯 한참을 고민하다 대답했다.

    “조금 전에 나간 사람이 꼭…… 아니다, 잘못 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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