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19)화 (19/385)
  • 19화. 루 낭중의 능력 (2)

    겁을 먹은 것도 잠시, 앞에 모여 있던 이들은 더 참지 못하고 삼삼오오, 저들끼리 목소리를 낮춘 채 분분히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흉수라도 잡으러 간 건가?”

    “아니겠지, 간밤에 막 사건이 벌어졌으니 이제 하루밖에 더 됐나? 더구나 문이고 창이고 모두 닫혀있었고, 증인도, 물증도 없다지 않던가.”

    “그러게 말이야. 포청천도 그런 재주는 없겠지?”

    사건이 발생한 지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이었지만, 사건의 세부 내용은 이미 모두에게 퍼져있었다.

    하필이면 사건 전날 지씨 가문 형제들의 불화로 도성에 큰 구경거리가 생기지 않았던가! 그리고 하룻밤 사이, 기녀인 소령이 죽었다는 소식이 퍼지며 사람들이 사건에 대해 모두 알게 된 것이었다.

    해당 사건이 처음 자진으로 오인되었던 이유는 소령이 방 안에서 홀로 죽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방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

    그리고 소령의 사망 소식을 관아에 알렸더니, 예상 밖으로 태평사에서 사람이 나와 조사를 하였고, 시체 검시의 결과가 스스로 목을 맨 액흔(*扼痕: 목이 졸린 흔적)과 맞지 않아, 다른 이에게 목이 졸려 살해당한 것으로 결론이 지어졌던 것이다.

    그렇게 자살로 오인될 뻔한 사건은 기이한 살인사건으로 변모했다.

    ‘문과 창이 모두 닫혀있었고, 다른 이가 들어간 흔적도 없는데 대체 어떻게 살해됐다는 말이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사람들의 호기심이 더해갈 때쯤, 이윽고 일꾼이 끌려 나왔다.

    그런데 하나가 아니라 일꾼 무리가 끌려 나오는 것이 아닌가!

    대당에 모여 있던 구경꾼들은 굴비 엮듯 줄줄이 묶인 채 끌려 나오는 일꾼들을 경악에 찬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사람이 너무 많잖아!’

    끌려 나온 일꾼들이 모두 한쪽에 꿇어 앉혀지자, 아전이 금세 의자를 가져왔다. 의자로 차분히 걸어간 루안은 여유롭게 자리에 앉았다.

    ‘뭐야, 지금 여기서 바로 심리(審理)를 보는 건가!’

    구경꾼들의 가슴이 흥분으로 더욱 부풀었다.

    대희 역시 흥분하여 지장의 팔목을 덥석 잡았다.

    “어! 여기서 심리(審理)를 하려나 보다!”

    지장은 어이가 없었다.

    “방금까지 루 낭중을 싫어하지 않았어?”

    “그거랑은 다르지! 그의 인품은 싫지만, 확실히 능력은 있잖아.”

    “…….”

    끌려 나와 무릎을 꿇고 앉은 일꾼들은 하나같이 억울하다 외치고 있었고, 취태평의 장궤 역시 루안에게 연신 읍소하였다.

    “루 대인, 저들 중에 흉수가 있다면 저희 취태평은 절대 그를 두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저희도 생업을 이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발, 자리라도 옮겨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전이 건네는 찻잔을 받아든 루안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시간이 촉박하여 장소까지 바꾸긴 어려울 것 같네. 그러다 흉수가 도망이라도 치면 누가 책임을 질 수 있겠나?”

    “하지만…….”

    루안은 그에게 더는 관심을 주지 않고 끌려온 일꾼들을 바라보았다.

    “흉수는 너희들 안에 있다. 너희에게 기회를 한 번 주려고 한다. 먼저 의심스러운 사람에 관해 이야기해라. 그로 인해 진짜 흉수를 잡는다면 본관이 큰 상을 내리겠다. 그러나 다들 침묵한다면 범인을 감싸는 것으로 생각하고 처리하겠다!”

    루안의 말이 떨어지자 억울하다 소리치며 꿇어앉아 있던 일꾼들이 입을 꾹 닫고 서로 시선을 부딪쳤다.

    루안은 서두르지 않고 여유롭게 차를 마셨다.

    그렇게 루안이 첫 번째 찻잔을 비울 때까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자 그가 다시 곁눈질을 보냈다. 그러자 고 대인이 앞으로 나섰다.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을 보니, 흉수를 감싸는 것이로군. 여봐라!”

    아전들이 야차 같은 얼굴을 하고 달려오자 드디어 견디지 못한 한 사람이 소리쳤다.

    “대인, 대인! 제, 제가 말하겠습니다! 풍호가 간밤에 한밤중에 일어나서 무슨 일인지 한참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른 사내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무슨 소리냐, 주대지! 오히려 내가 며칠 전에 네가 소령이 있는 방문 앞에서 알짱거리는 것을 봤는데…….”

    두 일꾼을 시작으로 대당은 순식간에 발고의 장이 되었다.

    일꾼들은 너도나도 핏대를 세우며 서로 의심스러운 부분을 고발하기 시작했고 상황은 곧 주먹다짐이라도 할 듯 격렬해졌다.

    지장이 제 동창을 향해 눈을 흘기며 입을 열었다.

    “이게 네가 말하던 그 능력이냐?”

    매일 같이 얼굴을 맞대는 이들은 자연히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다.

    평소라면 뒤에서 욕이나 몇 마디하고 털어버리거나, 서로 티격태격하다 넘기지만, 누군가 그것을 굳이 헤집기 시작하면 상황은 금방 심각해진다.

    루안의 한마디에 대당 안은 금방 달아오른 가마솥처럼 팔팔 끓어올랐다.

    혹시나 곤장을 맞지 않을까 두려운 이들이 선수 치듯 입을 열었고, 모함을 당할까 두려운 이들 역시 연이어 발고를 해댔다.

    일꾼들은 초반엔 그나마 분노를 자제하며, 사건과 관련 있어 보이는 최근 일들을 주로 이야기하더니, 화가 치밀어 오르자 나중엔 온갖 시답잖은 일들까지 모두 들추며 고자질을 해댔다.

    “대인, 제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모용, 저 사람이 평소 그쪽을 자주 어슬렁거렸는데, 한 번은 옷까지 훔쳐왔었습니다. 꼭 붉은색의 여인네 속곳처럼 보였는데…….”

    “왕이, 이 사람이 지금 무슨 헛소릴 씨불이는 건가! 그건…… 그건 필요 없다고 버린 걸 내가 주워 온 거야, 우리 안사람 가져다주려고! 천이 좋으니 잘 빨아서 수선만 하면 더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닌가!”

    “허허, 누굴 속이려 드나? 애초에 가져가지도 않고 이불 아래 숨겨두지 않았나? 거기다 숨겨두고 시간 날 때마다 꺼내서 킁킁거리는 걸 내가 진짜 모를 줄 알았나, 이 사람아!”

    사내의 은밀한 취향이 폭로되자 모두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이들은 침묵했지만, 누군가는 부끄러운 행동이라 생각하여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가씨…….”

    좌불안석이 된 서아는 하고 싶은 말을 차마 하지는 못하고, 입만 달싹이며 속으로 초조해 했다.

    ‘이런 건 아가씨께서 들으시면 안 되는데.’

    그러나 지온은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학문에 정진하기 위해 듣지 못할 이야기가 있었던가? 모두 사람의 마음이고, 마음의 성질이 그러한 것을.’

    지온은 오히려 루안의 목적이 더 궁금했다.

    이어지는 잡다한 발고로 대당 안은 이미 크게 혼란스러웠다.

    처음엔 머뭇거리며 쭈뼛대던 일꾼들도, 이젠 제가 뒤로 밀릴세라 다른 이들을 진흙탕으로 끌어내렸다.

    “이상한 사람을 꼽으라면, 주창이지요. 사실 그곳에 있는 여인들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 어디 있답니까? 그런데 혼자 어찌나 유난을 떠는지 모릅니다. 간밤에 난리가 난 것을 구경하다 실수로 향로에 부딪혔는데, 그게 그렇게 싫다고 돌아와 향냄새가 벤 옷을 버리지 뭡니까? 그걸 마음에 품고 있다, 기녀도 죽여 버린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대체 무슨 소리인가? 군자다운 행동도 잘못이란 말인가?”

    발고하는 이야기가 많아질수록 내용이 점점 잡다해지자, 대당 앞 구경꾼들의 분위기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초반엔 루 낭중이 사건을 어찌 해결하는지 지켜볼 생각에 흥분했던 구경꾼들은, 쏟아지는 사내들의 은밀한 비사들을 듣는 재미에 흥이 났다가, 점점 산으로 가는 발고 내용에 심드렁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대희가 조용히 속삭였다.

    “너무 난장판 아니냐? 저렇게 사람들을 선동하면 다른 이들을 모함하라고 부추기는 것밖에 더 되겠어? 지금 하는 소리가 다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게 무슨 소용이겠냐?”

    지장은 그저 무거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는 이런 식으로 사건이 해결되리라 믿지도 않았다. 누가 사건을 이런 식으로 해결한단 말인가? 근거도, 증거도 없이 억측으로 쏟아내는 모함뿐인데, 이대로 간다면 사건에 억울한 판결밖에 더 떨어지겠는가?

    ‘다들 루 낭중이 그래도 능력은 있다고 하지 않았나? 저게 무슨 능력 있는 자라고.’

    지장이 실망하는 사이, 비 오듯 식은땀을 흘리던 장궤는 아전에게 가로막혀 루안에게 가까이는 가지 못하고 연신 하소연만 하고 있었다.

    “대인, 관대히 봐주십시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오늘 한 번만 관대하게 넘어가 주시면 저희 주인께서 분명 크게 사례를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본 루안은 느긋하기 그지없었다.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저 천천히 차를 마실 뿐이었다.

    ‘사실, 저게 지금 제대로 된 심리라고도 할 수 없지 않나?’

    제대로 된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차치하고라도, 이런 식으로 계속 끌고 가다가는 취태평에 있던 사람들끼리 서로 원한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되면 직원들과의 관계가 서로 좋게 끝나지 않을 것이 뻔한데, 앞으로 주루를 제대로 운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일부러 문제를 만들고 있는 거 아냐?’

    ‘돈을 덜 줬나?’

    ‘그래도, 취태평의 주인장도 뒷배가 든든하잖아?’

    ‘어디 하찮은 형부의 낭중 나부랭이가 함부로 나서서 일을 쳐?’

    ‘루안, 저 미친놈!’

    ‘저렇게 돈을 밝히는 놈이 또 있겠어?’

    보는 이들의 속내는 분분했다. 그러나 그 마음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루  낭중은 심지어 발고하는 이들을 향해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그러자 더욱 힘을 받은 일꾼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마음속 깊이 눌러둔 불만까지 싹싹 긁어 발고하기 시작했다. 이제 처음 잡혀 왔을 때의 공포와 경계심 따윈 이미 저 멀리 사라진 뒤였다.

    “모용, 저 사람은 자주 좀도둑질을 했습니다! 거기다 후원에 들러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것을 몰래 훔쳐봤습니다!”

    “풍호, 저놈은 간사하기가 이를 데가 없는 놈입니다! 뒷간에 가 앉았다 하면 일각은 기본입니다!”

    “왕이 놈은 장궤께서 우리 앞에서나 위세를 떨지, 귀한 분들 앞에선 할아버지께 재롱떠는 손자처럼 군다고 뒤에서 얼마나 욕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둘째 총관께서 기회만 보면 여인네들 손을 비벼댄다며 색을 밝힌다고도 했습니다!”

    “대우는 상이 오를 때 몰래 음식을 훔쳐 먹고, 그 안에 침도 뱉습니다!”

    “어쩌고, 저쩌고…….”

    “이러쿵, 저러쿵…….”

    “루 대인!”

    장궤의 목소리에는 이젠 절박함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일꾼들끼리 물어뜯는 것을 수습하는 것까지는 귀찮지만 그래도 해결 할 수 있었다. 정 안된다면 모두 자르고 다른 이들로 교체를 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지 않은가?

    일꾼들이 요리에 침까지 뱉다니! 이는 주루의 관리가 그만큼 엄하지 못하고 허술하단 뜻이었다.

    ‘이러다 더 심한 소리라도 나온다면…….’

    털썩, 무릎을 꿇은 장궤가 애걸복걸 매달렸다.

    “저희의 관리가 부실했습니다! 반드시 제대로 수습하여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겠으니 제발 이번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벌금은 그것이 얼마라도 저희가 모두 내겠습니다!”

    대당 앞에 앉은 구경꾼들은 마음이 복잡했다. 침을 뱉었다는 소리에 적잖은 사람들이 역한 표정을 지으며 젓가락을 내던졌지만, 또 장궤의 저런 모습을 보니 마음에 동정이 일었던 것이다.

    이리 큰 주루에서 제대로 된 일꾼을 뽑지 못한 것이 용서받지 못할 죽을죄는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이런 식으로 사람을 다스리는 루 낭중이야말로 과도한 측면이 있었다. 더구나, 이런 방법은 군자다운 행동도 아니었다.

    ‘이렇게 서로 헐뜯다니, 체통도 없지.’

    ‘적나라한 모함과 배반이라니, 인간의 악함을 그대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만하시오!”

    드디어 누군가 상을 치며 일어났다.

    모두가 돌아본 곳에는 젊은 공자가 서 있었다.

    비단옷에 옥관을 쓴 공자는 준수한 외모에 우아하면서도 고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척 보기에도 귀한 집 출신인 듯 보였다.

    “누구지?”

    “하이고, 저 사람도 누군지 몰라? 저 사람은…….”

    지장 역시 음성이 들리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려다가 그를 보곤 머금었던 차가 그만 목에 걸려 사레에 들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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