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18)화 (18/385)
  • 18화. 루 낭중의 능력 (1)

    막 날이 밝았을 때, 지씨 가문의 옆문이 열렸다.

    서아가 참지 못하고 하품을 하며 옆에 있는 여인에게 물었다.

    “아가씨, 저희 지금 어딜 가는 건가요?”

    지온이 너울을 정돈하며 말했다.

    “취태평.”

    순간 서아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가씨, 취태평에서 금방 살인사건이 벌어졌는데 지금 가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은데요? 더구나 이렇게 이른 아침에…….”

    “이른 아침이라 움직이는 거야.”

    대화가 오가는 사이 마차가 나왔다.

    지온이 이미 결심한 듯한 모습을 보이자 서아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하여 마차에 올랐다.

    * * *

    너무 이른 시간이라 취태평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두 사람은 취태평이 있는 거리에 있는 작은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아침 요깃거리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은 이미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어, 무척 바쁜 모습이었다.

    어렵사리 두 자리가 나자 서아는 지온을 자리에 앉히곤 말했다.

    “장사가 정말 잘 되네요.”

    서아의 말대로였다. 본래 이런 작은 가게에 오는 손님들 대다수는 오전에 일을 나가는 일꾼들이었는데, 이 가게는 지온이 둘러보니 서생들로 보이는 이들이 적잖이 자리를 자치하고 있었다.

    ‘이곳 음식이 맛이 좋은가?’

    지온은 만두 맛을 보았지만, 그저 평범했다.

    서생들은 시간에 쫓기질 않으니 조반을 들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고 있었는데, 마침 그들은 간밤에 있었던 일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돌아가신 지 노야께서 생전에 얼마나 사리 분별이 바른 분이셨는가? 그런데 후손들이라곤…… 거참! 그 집 둘째는 제 아우 영전에 필요한 돈이 없어 못 내준다 했다더군. 그런데 몰래 기녀를 애인으로 끼고 지내며, 그 기녀에게 거금을 쓰다가 딱 들키고 말았다는 거야. 자네들은 모르겠지만, 그 기녀가 입는 것이며, 쓰는 것이며, 하나같이 최고급품이라 달에 못 해도 천 냥은 썼을 것이라 하네. 그 돈이면 대체 서생들 몇이나 먹일 수 있느냔 말일세!”

    “그러게나 말이네! 지씨 가문도 겨우 이 대째인데 자손들이 벌써 이리 방탕한 생활을 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쇠락하게 될 것 같구먼!”

    “듣자니 그 집 삼노야가 어제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재산을 분리하여 나왔다던데, 너무 성급한 판단이 아닌가? 지 노야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몇 년이나 됐다고?”

    “제 형이 믿을 수 없는 사람이란 것을 알았는데 당장 재산을 나누지 않고 견딜 수 있겠는가? 나라도 나누겠네! 안 나눴다간, 그 집 이노야가 가산을 싹 다 털어먹고 문중에는 돈 한 푼 안 남게 될지도 모르네. 그렇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선조들께 죄송해야 할 일이 아닌가!”

    “내 말이 그 말일세! 영전을 위해 관료들과 관계를 트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영전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을, 기녀 치마폭에나 넘기는 형이 가주라니, 자네라면 마음이 안 급하겠는가?”

    “그러고 보니 죽은 대노야의 가산 역시 둘째의 손에 있었다던데, 지난 몇 년 사이 다 써버린 게 아닌지 모르겠네. 그래도 지씨 가문 인물 중엔 장남이 가장 출중했는데, 그리 일찍 가버린 것이 안타까우이!”

    “누가 아니라던가? 하필 또 아들을 남기지 못하고, 여아 하나만 달랑 남기지 않았나? 지난번 있었던 유씨 가문과의 혼약에 관한 일은 자네들도 다 들었겠지? 지금 생각하니 당시 돌았던 소문도 의심스럽네. 지씨 가문의 큰소저가 방자하고 교양이 없다던 그 소문 말일세. 그것도 보아하니 둘째가 제 조카의 혼약을 빼앗을 생각으로 냈던 소문이 아닌가 싶어?”

    “그 일은 유씨 가문에서 이미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가? 큰소저가 스승님에게 효를 다하기 위해 상을 치러야 하니 혼약을 무르자고 했다지 않던가? 그것만 보아도 그 소저가 정절과 효심이 깊은 여인이란 것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대화의 주제는 다시 취태평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돌아왔다.

    “형부의 태평사가 움직이다니, 기녀가 직접 목을 매달아 자진한 것이 아닌가?”

    “분명 아닐 것이네. 루안이 어떤 사람인가? 지난 두 해 동안 그의 손을 거친 사건 중 무엇 하나 쉬운 사건이 있었던가? 그는 늑대일세, 피비린내를 맡으면 물고 놓지를 않는 늑대! 취태평에서 아마 처리하기가 쉽지 않을 걸세.”

    “거, 목소리 좀 낮추게! 자네는 누가 들을까 걱정도 안 되는가!”

    “들으면 또 어떤가? 그래 봤자 오 품 관리에 불과하지! 아직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권세까진 없다고 보네.”

    “이 사람 말하는 것 좀 보게! 대학사(大學士)가 몇 품인가? 중서사인(中書舍人)이 몇 품이야? 자네는 그들도 걱정이 안 되는가?”

    지온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들의 관심사는 이상하기 짝이 없어서 지씨 가문의 험담이나 루안의 경력과 관련된 것들에만 관심이 있을 뿐, 누구도 사건 자체엔 관심이 없었다.

    그때 누군가 소리치는 음성이 들려왔다.

    “루 낭중께서 오셨다!”

    음식점에서 입방아를 찧어대던 많은 이들이 우당탕하는 소리를 내며 모두 일어나 맞은편에 있는 주루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에 지온은 당황했다.

    ‘알고 보니, 저들 전부가 나처럼 소식을 듣기 위해 몰려온 것이었다니! 내 행적이 도드라져 의심을 살까 걱정했더니만, 그럴 일은 없겠네.’

    흥미로운 일에 관심이 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사람까지 죽은 일이었지만, 형부(刑部)까지 이 사건에 나서며 상황이 무척이나 흥미롭게 흘러가자 많은 이들이 너도나도 취태평으로 달려왔다.

    평소 사람들이 가장 놀기 좋아하는 장소는 텅텅 비어 있었지만, 앞쪽 대당(大堂)엔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이가 빼곡히 앉아 있었다.

    삼노야의 큰아들, 지장 역시 서원 동기들에게 억지로 끌려 나와 있었다.

    집안에 큰 난리가 일어난 탓에 사실 지장은 나와 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서원이 쉬자 동기들이 모두 외출한 터라, 자신 때문에 모두의 분위기를 망치기 싫었던 지장은 함께 나오고야 말았다.

    그의 기분이 저조한 것을 본, 지장의 친우 대희(戴喜)가 차가 담긴 잔을 지장에게 건네며 말을 걸었다.

    “다른 이들이 너희 집안에 대해 떠들어 대는 게 싫은 건 알아. 그래도 어쩌면 이렇게 된 것이 좋은 일일 수도 있지 않겠냐? 네 둘째 백부가 집안 가산도 독점하고 질녀까지 괴롭히고 있었잖아. 그건 군자가 할 짓이 아니지. 이제 그 사람이 저지른 만행들이 드러나 사람들도 다 알아버렸으니, 너희 집안도 더는 그 사람의 만행을 참고 지낼 필요 없는 거 아니겠냐?”

    지장은 한숨을 푹 쉬었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여 대희가 좋은 마음으로 하는 위로를 받아주었다.

    자신은 과거의 틀에 사로잡힌 고리타분한 이가 아니었다. 친족의 허물은 덮어 주는 것이 예라지만 친족도 친족 나름이 아니겠는가?

    지장은 자신의 모친이 둘째 백모를 두고 계획을 짰다는 것을 알고 난 후론, 차남가와 이미 척을 졌다. 아직 두 집안이 한 지붕 아래 살고 있지만, 분가는 시간문제였으며 앞으로 겉치레로나마 왕래가 오갈지조차 미지수인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희가 건넨 위로는 못 들어줄 소리도 아니었던 것이다.

    대희가 기운차게 물었다.

    “루 낭중이 너희 집에 갔었다던데, 진짜 소문대로야?”

    “어떤 소문?”

    “음…….”

    대희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루 낭중과 관련된 소문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과거에 루 낭중이 무애해각에 있었을 때는 사람들이 그를 두고 무장세가 출신이 아닌 듯 보인다 했었다. 그보다는 끈질기게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 같아 보인다며 말이다.

    간단한 두 마디였지만, 이는 충분히 대단한 이야기였다.

    세인(世人)들은 문인(文人)을 중히 보고, 무인(武人)은 그보다 못하다 여기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무인들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 문인들이 루 낭중이 무장세가 출신이 아닌 듯 보인다며, 그를 자신들과 같은 동류라 인정했던 것이다. 이것만 보아도 루안의 품성이 어떠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더구나 그는 옥형 선생의 제자였다. 옥형 선생 아래에서 끈질기게 학문을 연구했다면 그의 수준이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그 후로 그는 관직에 올라 루 낭중이 되었다.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에 올랐으니 출중한 학식은 당연했다.

    그가 낭중이 된 후, 오래된 미해결 사건들도 여러 번 해결한 것을 보면 능력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태평사와 엮이는 세가마다 늘 한 뭉텅이씩 가산을 뜯기지 않았던가?’

    그 부분에선 뒷말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고로 군자애재(君子愛財)하나, 취지유도(取之有道)라 하였다.

    ‘군자 역시 재물을 사랑하나, 올바른 방법을 통하여 얻은 것만을 제 것으로 소유해야 함이 옳거늘!’

    생각을 마친 지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그들이 집에서 떠날 때 우리가 다수전(茶水錢)으로, 이 정도를 줬어.”

    다섯 손가락을 펴고 말하는 지장을 보고 곰곰이 생각하던 대희가 물었다.

    “오백 냥?”

    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수전이 어마어마하네.”

    대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안타깝군. 일대(一代)에 명성을 떨치셨던 옥형 선생께서 어쩌다 그런 사람을 관문제자(關文弟子)로 받으셔서…….”

    셀 수 없이 많은 학자가 되뇌었을 생각이 대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다른 이도 아니고, 바로 그 옥형 선생이시지 않은가!

    * * *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화제의 루 낭중이 취태평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어 대며 서로 열띤 이야기를 주고받던 대당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구석진 곳에 앉은 지온은 너울을 쓴 채 얇은 면사 너머로 그를 바라보았다.

    검은 옷을 입은 아전들을 이번에도 대동한 채, 호방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의 위세는 대단했다.

    그들이 들어서자 취태평을 관리하는 장궤(掌櫃)와 총관이 모두 달려 나와 그들을 맞았는데, 장궤와 총관들이 연신 허리를 굽히며 어찌나 공손한 모습으로 맞이하는지 꼭 태평사에서 파견된 이들을 보는 듯했다.

    도성에서 이리 큰 주루를 운영할 정도면, 취태평의 뒤에 있는 주인장도 배경이 만만찮은 사람이긴 할 터였다. 백성들 눈에야 형부사의 낭중이 높은 관리라지만, 진짜 권세가의 눈엔 별 것 아닌 직급이지 않은가?

    그러니 장궤가 저리 행동을 하는 것도, 그저 일을 귀찮게 만들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행동일 뿐이었다.

    ‘사나운 개가 시시비비를 가리나? 건드리면 누구라도 물어버리니, 그게 귀찮은 거지.’

    더구나 그 사나운 개가 저 위에 높은 분께서 기르는 개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지온은 조용히 차를 마셨다.

    ‘그리 똑똑한 사람이 저 자신을 사나운 개로 포장하고 있잖아. 대체 의도가 뭘까?’

    그냥 보기에 루안은 사나워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여전히 창백한 피부에, 어딘지 분홍빛이 도는 얼굴 때문에 다소 아픈 듯한 모습으로 여유 있고 평온하게 다른 이들과 대화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루안과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조금도 평온하지 않았다. 루안이 무슨 말을 하자 장궤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스쳤다. 장궤는 연신 두 손을 모아 읍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루안은 그런 장궤의 읍소에도 개의치 않고 슬쩍 곁눈질했고, 이에 고 대인이 금방 명령을 했다. 이내 덩치가 산처럼 큰 아전들이 일제히 큰 소리로 대답을 하곤, 절차에 따라 후원을 향해 달려갔다.

    아전들의 기세가 워낙 강하여 많은 이들이 겁을 먹었지만, 루안은 팔짱을 낀 채 조용히 서 있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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