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13)화 (13/385)
  • 13화. 착해빠진 호구

    “형님, 형수님, 그만 싸우세요.”

    어쩔 줄 모르고 있던 지익이 꾸물꾸물 그들을 말리려 다가가자 그런 그를 장씨 부인이 잡았다.

    “부인?”

    지익이 어리둥절해하며 자신을 보자 장씨 부인이 그를 흘겨보았다.

    “이런 상황에도 노야께선 싸움을 말릴 생각이 드십니까?”

    지익이 말했다.

    “말리지 않으면 어쩐단 말이오? 결국 떨어지는 것은 우리 가문의 체면이 아니오?!”

    화가 난 장씨 부인은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어찌 사람이 그리 착해 빠지셨습니까!”

    그녀가 방안을 가리켰다.

    “저 물건들을 둘째 형님의 사고에서 훔쳐 올 수 있을 정도면 아주버님은 대체 얼마나 많은 보물을 숨겨두고 계시겠습니까? 며칠 전, 형님께 노야의 영전을 위해 돈을 얼마나 내어줄 수 있는지 여쭤봤습니다. 그때 얼마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오백 냥이랍니다, 오백 냥! 그 돈도 억지로, 억지로, 짜내야 그 돈이 나온답니다! 노야, 저 물건들을 좀 보세요. 저 중에 오백 냥에 못 미치는 물건이 어디 있답니까!”

    그제야 그 생각이 든 것인지, 지익이 되물었다.

    “정말, 정말 그리 말하셨소?”

    장씨 부인은 화가 나 발까지 동동 굴렀다.

    “평소에 아주버님이 노야께 우는소리 하던 것을 생각해보세요!”

    가만히 그 생각을 떠올리던 지익의 눈이 점점 붉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틀린 말도 아닌 것이, 매번 돈 이야기만 꺼내면 둘째 형님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한탄을 하지 않으셨던가?

    ‘그런데 떡하니 밖에다가 기생까지 끼고 살다니?’

    거기다 저 물건들! 둘째 형수가 시집올 때 가져온 패물들이 어느 정도인지 집안에 모르는 이들이 없었다. 지금까지 남겨두고 모아두었을 리가 없는 양이 아니던가!

    ‘저리 많은 돈을 쟁여두고도, 내가 영전에 필요하다 할 땐 그리 인색하게 한 푼을 내어주지 않다니! 지난번에 내주었으면 이미 영전은 하고도 남았겠지!’

    지익은 그동안 자신의 인생은 참으로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적에 이리 답답한 기분을 느껴본 일이 있던가? 지금 관아에서 일을 가장 많이 하면서도 영전하지 못하는 관료는 자신뿐이지 않던가!

    ‘착하게 살았더니 호구를 잡힌 게 아닌가! 남이 날 업신여기는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가족까지 이리 날 대하다니!’

    장씨 부인이 한 마디를 보탰다.

    “노야, 오늘 이 일까지 참으면 노야는 정말 답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형제의 우의를 상하게 한다는 소리나 듣기 전에 저는 돌아가는 대로 언이와 선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겠습니다!”

    그녀의 말은 불난 집에 콸콸, 기름을 때려 붓는 꼴이었다.

    지익이 마음속에 품고 있던 수많은 불만이 한데 뭉쳐 거대한 폭탄이 되어, 지형을 향해 날아갔다.

    “형님! 형님께서는 이 물건들 다 어디서 난 것인지 제대로 설명해야 할 것이오!”

    지익의 고함이 다른 모든 이들을 압도했다.

    “…….”

    위씨 부인은 꼬집고 때리던 것을 멈췄고, 지씨 가문의 하인들 역시 흠칫 놀라 못 박히듯 그 자리에서 행동을 멈췄다. 심지어 취태평의 사람들 역시 행동을 멈추고 그를 볼 정도였다.

    근처에 있던 장씨 부인은 대포 터지는 듯한 소리에 매우 놀랐다.

    ‘아니, 노야가 저리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양반이었나?’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지익이 성큼성큼 걸어가 위씨 부인을 옆으로 밀쳐내곤 직접 제 형님의 멱살을 거머쥐었다.

    “형님, 지난번에 내게 뭐라고 했소? 달에 겨우 십몇 냥 여윳돈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소? 아버지께서 유산으로 남겨주신 것들도 모두 본가에 있는 친족들에게 나눠주고, 이 집안을 건사하려면 사비까지 털어다 넣는다고 내 영전에 쓸 돈을 못 내줘 미안하다더니, 내, 형님이 진짜 미안할 짓을 한 줄은 몰랐소! 나더러는 영전에 필요한 접대를 삼백 냥 가지고 하라더니, 본인은 달에 수천 냥을 기녀에게 갖다 바쳐요?”

    지익의 음성이 점점 커졌다. 눈빛은 곧이라도 지형을 잡아먹을 듯 번들거려 방에 있는 이들 모두 겁을 집어먹을 정도였다.

    “아, 아, 아우야, 아우…….”

    지형의 간이 콩알만 해졌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우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저 틀어박혀 책이나 읽고 무슨 말을 하든지 다 믿는 녀석이라 속이기가 무척 쉬웠던 것이다.

    그랬던 아우가 진심으로 화를 내니 너무 무서웠다. 겁을 집어먹은 것은 위씨 부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 부군을 꼭꼭 씹어 먹고 싶었는데, 서방님의 기세를 보고 나니 진짜 주먹이라도 휘둘러 사람이라도 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렸다.

    “서방님, 너무 흥분하지 마시지요. 가족이 아닙니까? 좋게, 좋게 이야기를 하시면…….”

    휙, 고개를 튼 지익이 핏발선 눈으로 위씨 부인을 바라보았다.

    “형수님, 시집오시고 제가 늘 공손하게 잘해드렸지요. 저희 가족 모두가 형수님께 잘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형수님은 저희에게 어떻게 하신 것입니까?”

    그리곤 그가 물건들을 가리켰다.

    “저것도, 저것도 그리고 저것까지…… 형수는 형수의 사고에 있던 것이라 하셨는데, 묻겠습니다. 형수의 사고에 저것들이 어떻게 들어간 것입니까? 혼수로 가져온 것이란 소릴랑 하지 마십시오, 위씨 집안에 그 정도 여유가 있었으면 몇 달에 한 번씩 집에 찾아와 돈을 요구했겠습니까!”

    위씨 부인의 입이 조개처럼 닫혔다.

    지형을 내팽개친 지익이 엄한 음성으로 말했다.

    “양심이란 것이 있으면 큰형님께서 임종 전에 했던 말을 떠올려보시오! 큰형님이 형제끼리 서로 도우라 했는데, 형님과 형수님은 이게 서로 돕는 거요?”

    장씨 부인은 이미 숭배하듯 제 부군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반려로 둔 사내가 이리 멋진 사내였나!’

    * * *

    지온은 자신이 별생각 없이 던진 말 몇 마디가 장씨 부인을 집안의 모사꾼으로 만들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게 착실하기만 하던 지익이 완전히 달라져 그리 큰 소동을 벌일 것이라곤 더더욱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 * *

    밤이 되자 사방이 고요해졌다.

    다른 지씨 집안사람들 모두 잠자리에 들려 할 때 지씨 가문의 저택은 도리어 소란스러워졌다. 시끌시끌한 소리가 희화원에까지 건너왔다.

    나가 소식을 알아본 서아가 흥분한 얼굴로 돌아왔다.

    “큰아가씨! 이노야 댁과 삼노야 댁에서 싸움이 났다고 합니다!”

    “그래, 그래.”

    며칠 기운이 빠져있던 지온이 힘없이 대답하자 서아가 말했다.

    “이노야께서 집안 재산을 기녀에게 가져다 쓰고 계셨나 봐요. 지금 삼노야께서 그 일로 장부를 보시겠다고 하시는 것 같은데……. 어머! 지금 대부인을 모시고 오는 건가?”

    이윽고 대부인 정씨가 다른 이들과 함께 찾아왔다.

    “지온아, 자고 있느냐?”

    지온이 서아에게 문을 열라 지시하곤 몸을 일으켜 예를 표했다.

    “어머님을 뵙습니다.”

    정씨가 손을 뻗어 지온을 일으키곤 말했다.

    “둘째 숙부와 작은 숙부가 지금 확인해야 할 게 있다하시네. 그중에 자네 아버지의 유산과 관련된 일이 있다고 하여 내 자네를 데리러 왔는데, 가서 들어 보겠는가?”

    지온은 가문의 재산에 관심이 없었다. 자신이 진짜 지씨 집안의 큰아가씨도 아니었기 때문에 집안의 재산까지 탐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의 혼인 상대는 어머님이시니 저보다는 어머님께서 가시는 것이 더 온당한 것 같습니다. 어머님께서 가보시지요.”

    정씨가 말했다.

    “내 여생은 이미 자네 아버지께서 준비를 해두시었어. 유산은 본래 자네 아버지의 유일한 혈육인 지온이 자네에게 남겨진 것이네. 그런 자네가 가지 않으면 나도 처리하기가 힘드네.”

    그 말에 지온의 마음에 뭔가 의심이 스쳤다.

    ‘여생을 위해 이미 준비를 해뒀다니? 이 여인은 대체 이 집안에서 어떤 존재지? 왜 자신을 마치 외부인처럼 이야기하는 거야?’

    “가세.”

    정씨가 다시 말했다.

    “내가 함께 가주겠네.”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니 지온은 어쩔 수 없이 정신을 차리고 기운을 냈다.

    “네, 알겠습니다.”

    * * *

    장씨 부인 곁에 있는 유모가 두 사람을 데리고 이사청(理事廳)으로 데려가며 대략적인 상황을 알려주었다.

    작은댁이 이렇게까지 일을 끌고 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지온이 중요한 점을 짚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유모는 두 사람에게 친절하고 정확하게 조금도 숨기지 않고 설명을 해주었다.

    모든 설명을 듣고 난 지온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차남가(家)가 제 목을 조른 것이나 다름없구나.’

    장씨 부인의 계획은 그저 지형이 밖에서 기녀와 놀아나며 큰돈을 쓰고 있다는 것을 위씨 부인에게 알려 난리가 나는 꼴이나 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아주버님이 제 정실부인의 사고(私庫)에 있는 것까지 훔쳐다 주었을 줄이야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그렇게 지형이 집안의 재산을 탐한 증거가 모두 앞에 명백하게 드러나 버리고 말았다.

    지익처럼 착실한 사람이 때로는 가장 완고한 사람이 되기도 하지 않던가?

    모든 것을 깨닫게 된 그는 더욱이 용서할 수 없다는 듯, 반드시 둘째 형님을 물어뜯어 그가 훔친 것을 전부 토해내게 할 작정이었다.

    지온은 그날 장씨 부인에게 몇 가지를 지적하여 방향을 제시했을 뿐이었다.

    ‘그게 이리 큰 상황이 되어 돌아오다니.’

    이미 대세는 정해졌다.

    장남가와 삼남가가 연합하여 차남가를 상대하는 방향으로 분위기가 흐르고 있기에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지온은 내심 탄식했다.

    ‘공들여 키운 꽃은 피질 않고, 무심코 꽂아 둔 가지는 숲을 이룬다더니.’

    제 원래의 삶 속에서 흘러가던 분위기가 얼마나 좋았던가? 그러나 결론은 잿더미가 된 무애해각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선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에도 이렇듯 가볍게 상황이 반전되어 돌아오다니.

    ‘하늘의 뜻이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구나.’

    * * *

    지온과 정씨가 이사청에 도착했을 때, 이사청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지형은 고개를 숙인 채 말 한마디 없었다.

    위씨 부인은 분노와 후회가 뒤섞인 얼굴로 그런 지형을 노려보다 다시 한 맺힌 표정으로 동서 부부를 바라보았다.

    지익은 무거운 얼굴로 그들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는데, 찻잔을 들고 있었지만 마시지는 않고 있었다.

    장씨 부인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반달눈을 하고는 부채를 살랑거렸다.

    이런 난리가 벌어졌으니, 위씨의 자녀들과 장씨의 자녀들 모두 잠을 자고 있지 않았다. 아이들은 유모가 옆방에서 보고 있었고 장성한 자녀들은 불안한 얼굴을 한 채 문가를 지키고 있었다.

    지온이 다가오는 것을 본 지서가 쳇 하는 소리와 함께 휙 하니 고개를 돌렸다. 예를 갖출 생각이 전혀 없다는 의미였다.

    지온은 마치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 그들이 정씨에게 인사를 올린 후 예를 갖췄다.

    “큰오라버니, 둘째 오라버니를 뵙습니다.”

    이어 대공자 지염(池琰)이 차갑게 알은척했고, 지씨 집안의 둘째 공자 지장(池璋)이 마주 인사를 해주었다.

    지염은 차남가의 장자였고 지장은 삼남가의 아들이었다. 하나는 열일곱, 하나는 열여섯으로 한 살 터울밖에 지지 않았다.

    지염은 위씨 부인을 닮은 둥근 얼굴을 가졌지만, 성격은 오만방자했다. 지장은 제 아비인 지익과 비슷했는데 둥그스름한 이마 가운데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풍류공자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어느 정도 알만한 것들은 알 나이들의 두 사람이었으니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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