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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 낮과 밤의 신부-33화 (33/95)
  • [33화]

    보통 면회를 오는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챙겨오곤 했다. 태황궁의 의학도로 있으니 어련히 잘 있겠냐 만은 그게 부모의 마음이었다.

    간혹 가족과 면담 시간을 갖고 오는 학우들을 보면 낯빛이 다 밝았다. 그걸 보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또 마음 깊숙이에 접어둔 그리움이 올라왔다. 슬프고 아득한 그리움이 아니라 애틋하고 포근해서 생각만 해도 좋은, 그런 그리움이었다.

    그런데 지금 목격한 광경은 뜻밖이었다. 면회실엔 단 둘뿐이었다. 중년의 남성과 마주 앉아 있는 겸복. 아마도 부자지간인 듯했다.

    “더 할 말 없어요. 가세요.”

    겸복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남자가 매서운 눈초리로 명령하듯 말했다.

    “앉아.”

    “가시라고요.”

    “앉으란 말 안 들려!”

    남자가 쾅!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움찔한 겸복이 입술을 꽉 물었다. 애써 남자를 마주 보고 있었지만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가비는 그런 겸복에게서 공포심을 읽었다. 그건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처럼 겸복의 내면 깊숙이에 똬리를 튼 감정이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수없이 당한 폭력에 대한 공포는 약관이 된 지금도 겸복을 어린아이처럼 나약하게 만들었다.

    남의 일에 참견해서 뭐해.

    돌아서려던 가비가 멈칫했다. 생각과 달리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얼핏 본 겸복의 아버지는 평범치 않았다. 흡사 산적 같은 생김새에 뱀 같은 눈초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겸복을 바라보는 표정이나 눈빛에서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티끌만큼도 없었다.

    하긴. 그랬다면 이 시간에 찾아오지도 않았겠지.

    지금은 의학도들이 수업을 마치고 실습에 들어갈 시간이었다. 따라서 부모들도 이 시간대 만큼은 피해서 면회를 오곤 했다. 그걸 모른다는 건 평소 겸복과 그의 아버지가 자주 연락하는 사이가 아니라는 뜻이고, 그렇다는 건…….

    “몇 번을 말해요.”

    겸복이 답답한 듯 외쳤다.

    “저도 몰라요. 모른다고 했잖아요!”

    시간을 더 지체했다간 실습에 늦을 걸 알았는지 겸복이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

    “왜 나한테 와서 엄마랑 금복이 행방을 찾는 건데요!”

    “그럼 너한테서 찾지 누구한테서 찾아! 네가 빼돌린 거 맞잖아!”

    남자가 버럭 고함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겸복이 흠칫 놀라며 한걸음 물러났다. 남자가 인내심이 달했는지 이를 부득 갈며 겸복에게 다가갔다.

    “숨어 있다고 내가 못 찾을 것 같아? 사람 풀어서 뒤지기 전에 빨리 말해.”

    “사람 풀 돈은 있고요?”

    겸복이 뒤로 주춤하면서도 억지로 눈을 부릅떴다.

    “엄마랑 금복이 찾아서 뭐 하려고요! 입에 풀칠하려고 모아놓은 돈 죄다 들고 가서 또 도박판에서 날리려고요! 차라리 벼룩에 간을 내먹어요!”

    “뭐라고? 이 후레자식이! 아버지한테 말본새가 그게 뭐야!”

    짜악-

    눈 깜짝할 새에 따귀가 날아들었다.

    “다시 말해봐! 이 우라질 새끼야! 뭐가 어쩌고 어째?”

    남자가 겸복의 멱살을 움켜잡더니 방금 때린 뺨을 한 번 더 갈겼다.

    “네 엄마 어디다 숨겼냐고 이 새끼야!”

    또다시 허공으로 들어 올려진 손에, 겸복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짜악-

    뺨을 때리는 마찰음이 들렸지만 아프지 않았다. 겸복이 감았던 눈을 살짝 떠올렸다. 갈색 머리카락을 지닌 작은 머리통이 제 앞에 있었다.

    “아씨-”

    가비가 불이 날 것 같은 뺨을 감싸며 낮게 욕지거리를 뱉었다.

    “넌 뭐야!”

    남자가 가비를 향해 소리 질렀다.

    “그러는 아저씨는 뭔데요.”

    가비가 겸복의 멱살을 잡은 남자의 손을 떨구어냈다.

    “아저씨는 뭔데 여기에서 소란이냐고요.”

    “나 이놈 애비야. 비켜!”

    자신을 밀치려는 남자의 손을 가비가 쳐냈다.

    “어떤 애비가 자식을 이렇게 때려요?”

    그리곤 한발 다가서며 눈을 치켜떴다.

    “어떤 애비가 공부하는 자식을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냐고요!”

    부모라고 다 같은 부모가 아니었다. 때론 인두겁을 쓴 짐승 같은 부모도 있었고, 그런 사건은 저쪽 세계에서 뉴스로도 간혹 봐왔던 일이었다. 정도만 다르지 이곳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새삼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새끼를 쥐어패든, 앵벌이를 시키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어린 놈의 새끼가.”

    “이봐요, 아저씨!”

    가비가 한마디 하려는데 그 앞을 겸복이 가로 막고 섰다.

    “이만 돌아가세요. 경비대에서 사람 부르기 전에.”

    “뭐? 사람을 불러?”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

    “자식은 부모 소관이야. 네 놈이 맞을 짓을 해서 때렸다는데 누가 뭐라 그래!”

    남자가 다시 겸복의 멱살을 잡고 뒤흔들었다.

    “네 엄마 어딨어! 금복이 놈이랑 다 어딨냐고!”

    남자가 희번덕대는 눈으로 겸복을 위협했다. 이번엔 뺨으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가비가 중간에서 말렸지만 남자의 손이 연달아서 겸복의 얼굴과 머리를 때렸다. 겸복은 반항도 하지 못한 채 붙들려 맞기만 했다. 마치 그것이 학습이라도 된 것 마냥.

    가비가 남자를 겸복에게서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어쨌든 아버지라고 하니 함부로 손을 댈 수가 없었다. 허락이 있지 않고서야.

    “이 등신아! 계속 맞고 있을 거야!”

    가비가 소리쳤다.

    “어떡해! 때려 말아!”

    고함 같은 물음에, 참고 있던 겸복이 외쳤다.

    “…때려!”

    퍼억-!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비의 주먹이 남자의 인중을 가격했다.

    ‘어억!’ 남자가 외마디를 내지르며 뒤로 자빠졌다. 얼굴을 감싼 남자가 몸을 옹송그리며 앓는 소리를 했다. 지켜보고 있던 겸복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죽는 거 아냐?”

    “그 정도로 치진 않았어.”

    가비와 겸복이 서로를 마주 봤다. 둘 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가비에게 맞은 남자는 그 길로 도망치듯 달아났다. 이를 부득부득 갈긴 했지만 만만하게 봤던 가비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알았는지 더 행패를 부리진 못했다.

    가비가 얼얼한 뺨을 어루만지며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겸복이 따랐다. 쌍코피가 터져 양쪽 코를 다 틀어막은 모습이었다.

    “야! 면회는 왜 받아주냐!”

    잠자코 있던 가비가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생각할수록 열이 받았다.

    “그냥 안 만나 주면 될 거 아냐!”

    “…찾았을까 봐.”

    “뭐?”

    “엄마랑 금복이.”

    금복이는 하나뿐인 남동생이었다.

    “여기 들어오기 전에 야반도주했어. 아버지 피해서.”

    수도에서도 제일 구석진 마을에 몸을 숨겨 남의 집 허드렛일을 도와주며 푼돈을 벌고 있었다. 그런 엄마와 동생을 두고 피눈물을 흘리며 의학도가 돼 이곳에 들어왔다.

    자신이 의학도가 된 건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지 잊을만하면 한 번씩 찾아와서 엄마와 금복이의 행방을 물었다.

    그럴 때마다 겸복은 안심했다. 엄마와 금복이가 있는 곳을 찾지 못해 자신을 찾아온 것일 테니까.

    헌데 가지고 있던 돈이 다 떨어졌는지 오늘은 패악을 부렸다. 늘 있었던 일이지만 이곳에서까지 그럴 줄은 몰랐다. 그런 모습을 다른 사람도 아닌 가비에게 보인 게 부끄럽고 창피했다.

    “그런 넌 왜 화를 내냐?”

    겸복이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

    “제일 좋아해야 하는 게 너 아냐?”

    “뭐?”

    “심보 고약하게 쓰더니 잘 됐다, 속이 후련하다, 맞아도 싸다…. 그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

    가비가 헛웃음을 흘리며 겸복에게 다가갔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가비의 날 선 눈이 겸복을 노려봤다.

    “그래. 나도 모른 척하려고 했어. 네가 그렇게 처맞지만 않았어도 신경 안 썼다고. 난들 껴들어서 맞고 싶겠냐?”

    가비가 허리춤에 손을 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 네 아버지처럼 살기 싫어서 여기 들어온 거지?”

    그 말에 겸복의 눈이 흔들렸다.

    “그럼 그 쓸데없는 자존심부터 버려. 이럴 땐 고맙다, 미안하다가 먼저 아냐? 기껏 도와준 사람 기분 잡치게.”

    가비가 팩 돌아서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버렸다.

    겸복이 못 박힌 듯 서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학도당으로 돌아온 가비가 봇짐을 열어 서책을 챙겨 넣었다. 정강이도 시큰하고 뺨도 얼얼하고 기분이 영 별로였다. 어제부터 사나웠던 일진이 오늘까지 이어지는 모양이었다.

    “괜히 오지랖은 떨어서….”

    그래봤자 고맙다는 소리 한마디도 못 들을 거 왜 참견을 했나 싶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발이 먼저 움직였다. 거의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이었기에 날아오는 남자의 손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얻어맞았다.

    “아씨…, 아파.”

    아직도 후끈후끈 열이 오르는 걸 보니 발갛게 부어오른 게 틀림없었다. 오늘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다소 신경질이 포함된 이 무기력증의 원인은 분명 겸복의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음궁에 가기 싫다는 마음이 깔려 있었고 그 밑바닥엔 반소가 있었다.

    그래도 맡은 일은 해야만 했다. 반소의 말처럼 이곳은 서열과 계급이 존재하는 곳이었고, 그런 곳에서 자신은 한낱 의학도에 불과했으니 감히 천족의 명을 거스를 입장이 아니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해서 싫든 좋든 불편하든 어색하든, 끝까지 음궁에 나갈 참이었다. 반소가 먼저 됐다고 할 때까지.

    드륵-

    문이 열리고 오정이 들어왔다. 본척만척하는데, 오정이 앞에 다가와 조용히 앉았다.

    “겸복이 놈 아버지 봤다며?”

    가비는 대답 대신 봇짐을 묶었다.

    “봐서 알겠지만, 그놈 아버지 난봉꾼이야. 겸복이네 식구들, 도망치기 전까지 내내 시달렸고. 경비대에 신고해도 소용없어. 말 그대로 살인 나는 게 아니면 가정사로 치부되고 하니까.”

    “그래서?”

    가비가 뾰족한 시선으로 오정을 바라봤다.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뭐야?”

    오정이 우물쭈물 망설이다 답했다.

    “이제 와서 염치없지만…, 시험 잘 볼 수 있게 좀 도와주라.”

    “뭐?”

    “솔직히 네가 얄미웠던 건 사실이야. 우리보다 반년이나 늦게 들어와 놓고, 반년은 일찍 시작한 것처럼 잘하니까 그게 싫었어. 속 좁지만 그랬다.”

    오정이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근데 그런 거 다 떠나서 이번 시험 꼭 붙어야 하거든. 그래야 겸복이 아버지도 더는 겸복이 못 건드려.”

    가비가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오정을 바라봤다.

    “어의가 되면, 태황국 소속이야. 천자님의 그늘에서 천자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는 거라고. 아무리 부모라 해도 함부로 손댈 수 없어. 그럼 겸복이 아래로 그 어머니와 동생 금복이까지 보호받을 수 있고.”

    오정이 엉덩이를 끌며 다가와 가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내 여동생 순정이도 지금 도박 빚에 남의 집 식모살이하고 있어. 부탁이다. 은갑아. 우리도 시험 잘 볼 수 있게 같이 공부하자. 응? 이 은혜 잊지 않을게.”

    오정이 가져온 무언가를 내밀었다. 가비가 눈을 내려 그것을 바라봤다.

    “겸복이가 준 거야. 너 갖다 주라고.”

    오정이 가비의 손으로 그것을 건네주었다. 무명천으로 감아 만든 찜질 주머니였다.

    “그 자식 표현을 잘 못 해서 그렇지, 그렇게 나쁜 놈 아니야. 네가 저보다 잘난 게 무서워서 그래. 혹시라도, 만에 하나 혹시라도 자기가 들어갈 자리를 뺏기게 될까 봐. 나도 그래서 네가 아니꼬웠던 거고.”

    그런데 정원도 없다는 이번 시험에서 가비에게 척을 지는 건 어리석은 일이란 걸 알았다.

    “천자님께서 하사하신 물건을 네가 훔쳤다고 신고한 건…, 정말 오해였어. 우린 네가 진짜 훔친 줄 알았어.”

    설마 천자께서 공식적인 자리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물건을 하사했을 거란 건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니까 은갑아, 우리….”

    “나 음궁 가봐야 해.”

    가비가 더 듣지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방을 나섰다.

    터벅터벅터벅.

    빠른 걸음으로 의궁을 벗어나다가 멈칫, 걸음을 멈췄다.

    잔뜩 독이 올라 초조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던 겸복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독종도 못 되는 게 독종처럼 굴기는.”

    손에 쥐고 온 찜질 주머니를 뺨에 댔다.

    “아야야….”

    서늘하고 화한 냉기가 뺨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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