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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손자-282화 (282/284)

제12권 7화

282

어둠의 기둥이 솟구친 이건 저택에서 나타난 것은 이건이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모두가 알고 있던 것과 달랐다.

올림포스의 세월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

과거의 이건.

세계가 공포에 떨어야만 했고, 그러면서도 존경하며 경외했던 전성기 때의 이건.

저벅.

그가 이건 저택에서 모습을 드러내 걷고 있었다.

“스으읍….”

마치 이제야 첫 호흡을 하듯 숨을 들이 삼킨 이건.

그의 입가가 살짝 올라가며….

“후!”

숨을 토해낼 때였다.

쿠콰콰콰콰쾅!

땅거죽이 뒤집히고 기둥 속에 무너진 저택의 잔해가 하나도 남김없이 소멸해버렸다.

다행이라면.

‘결계가 유지되고 있어.’

만든 것은 마동철을 비롯한 장인들이라고 하지만, 이정기가 관리자의 권한으로 가이아의 공간과 연결시키며 결계의 권한은 이정기에게 왔다.

즉, 이정기가 바랄 때까지 혹은….

‘내가 죽을 때까지.’

결계는 지속된다는 뜻이었다.

“정기야.”

이건의 목소리에 가디언들은 물론이거니와 사방이 숨을 들이 삼키며 멈춰 섰다.

그건 형언할 수 없는 공포였다.

덜덜덜.

항거할 수 없는 존재.

그저 순수한….

‘파괴.’

아니 그보다 더한 것.

일렁이는 이건의 얼굴, 그 진실을 목도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지금의 이건은….

“마신…!”

마신 그 자체.

하지만 이정기는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크로노스의 시간대에서 보았던 마신, 그건 분명 순수한 파괴의 결정체였다.

시간 역행으로 인해 어긋나고 틀어져버려 이건의 무언가가 소실된 모습.

‘명분과 인의.’

오직 살육과 파괴만이 남아버린 모습.

할아버지는 분명 세상을 그렇게 보고 있었다.

너무도 나약해 손으로 쥐면 으스러질 세계, 그 속에 있는 인간들은 사악하기 그지없으며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열등한 존재들.

그런 할아버지가 지구를 위하고, 다른 인간들을 위했던 이유는 수많은 관계 속의 변화였다.

특히 가장 중요했던 것은 할머니.

하지만 그 시간대의 이건은 그 모든 것을 존재 속에서 잃어버렸고 어두운 것만 남아 마신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기야. 내 말이 들리 않느냐?”

또 다르다.

‘할아버지.’

자신이 알고 있는 할아버지가 저 속에서 저항하고 있는 것.

과거와 현재, 악와 선이 만나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저것은….

“카오스.”

태초의 혼돈.

그 자체라고.

“예. 할아버지.”

이정기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이건을 향해 한 발 내디디며 말했다.

“나를 막거라.”

“……!”

“만일 막지 못한다면….”

일렁.

이건이 뿜어내는 기운만으로 시공이 뒤틀린다.

“세계는 멸망할 것이다.”

파앗!

그렇게 말한 이건의 신형이 사라졌다.

이정기가 다시 본 이건의 모습은 커다랗게 다가오는 손바닥.

그리고.

콰아아앙!

자신을 땅에 처박는 모습이었다.

“막거라.”

* * *

이정기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을 내다 꽂는 이건에게서 느껴지는 혼란이.

하지만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진심.’

이건은 지금 진심이었다.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 그로 인해 세계가 파멸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또한, 그를 막아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이건 내부에서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콰아아앙!

이건의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이건이 새로이 일깨웠던 힘.

‘혼돈.’

그것은 마력과 넥타, 그 두 개의 기운이 아슬아슬한 균형 속에서 줄타기를 하며 만들어낸 위험한 힘이었다.

지금의 이건 또한 마찬가지였다.

세계의 파멸과 구원 속에서 줄타기를 하며 그 존재를 폭발시키고 있었다.

파짓!

이정기가 급히 벼락을 일깨우며 가속했다.

느려진 세상.

이건은 사라진 이정기를 찾기 위해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파짓.

이정기는 더욱 속도를 끌어올리며 이건의 등을 점했다.

그 순간.

파앗!

이건의 눈과 자신의 눈이 마주쳤다.

콰아아아앙!

두 개의 주먹이 맞부딪히며 세상이 터져나갈 것 같은 폭음을 일으켰다.

파지지지지짓!

검붉은 전류에 뒤덮인 자신의 주먹과.

휘이이이이잉!

검은 와류 속에 갇혀 있는 이건의 주먹.

“……!”

이건은 가속한 자신의 시간마저 따라잡은 것이었다.

‘물러설 수 없다.’

지금 이건의 주먹에 서린 힘은 가히 파괴적이었다.

자신이 이 힘을 상쇄시키지 못한 채 피한다면 그 여파는 이 지역 전부에 쏟아진다.

가디언도, 그 누구도 견딜 수 없는 힘.

“크으으윽!”

막아내야만 한다.

부딪히는 혼돈끼리 서로를 읽어갔다.

‘전지.’

두 왕이 되어 얻은 전지의 능력이 지금의 할아버지가 자신이 알던 이건이 아닌 카오스라는 새로운 존재임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

그 뒤에 숨겨진 더 깊은 정보 또한 알려주고 있었다.

왕의 자격을 온전히 깨닫고 나서야 알게 되었던 세상의 중요한 진리.

‘법칙.’

세상의 창조부터 뿌리 깊게 박혀 모든 것에 깃들어 있는 이 법칙이라는 것.

그건 스스로를 신이라 자부하는 가디언이나 티탄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결코 거스를 수 없는 진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법칙이….

“이제 알겠느냐?”

이건이 말한다.

“태어날 수 없었던 네가 어찌 태어났는지.”

“……!”

“왜 너와 내가 지금 이렇게 서 있어야 하는지.”

이건의 눈에 물들었던 검은 혼돈이 잠시 자취를 감추었다.

본래의 이건.

그였다.

“이것이 운명인 게다.”

“그런…!”

“어쩔 수 없다. 받아들이거라. 세상을 다스리는 법칙이 그렇다지 않느냐.”

너무나 따스하기 그지없는 목소리.

하지만 그렇기에.

와락.

이정기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왕이 되어 얻게 된 전지가 말해준다.

‘너는 태어날 수 없는 존재다.’

게이트 속에서 인간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 없다.

하지만 이강과 유영아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했다.

그리고 낳았다.

‘너는 본래 내 아들이 되었어야 했다. 새로운 올림포스의 후계자가.’

또한, 본디 자신은 쥬피터의 후계로 태어났어야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이 인간의 배를 빌려 태어났고, 불완전한 형태가 되었다.

‘어찌 그런 일이 가능한지는 알 수 없다.’

전지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쥬피터 또한 모를 일.

‘하지만 이유가 있을 터.’

그러나 그는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는 듯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주었다.

그것이.

“그래.”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세계의 법칙 속에서 언젠가 태어나야 할 존재가 태어났다.

세계의 멸망을 가져올 존재.

종을 뛰어넘는 재능과 이해를 뛰어넘은 재능을 가진 존재.

시간 또한 무의미하고, 그 어떤 힘도 범접할 수 없는 존재.

“알겠느냐? 네가 보았던 마신은….”

이건.

“너라는 존재가 없었을 때의 이건이다.”

“……!”

“결국 올림포스에서 모두를 잃고 미쳐버린 이건, 너라는 이가 태어나지 않고, 최명희마저 사라져버린 이건, 그런 이건이 깃든 것.”

멸망의 주체.

“그것이 마신이다.”

이건의 눈이 다시 검은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결국 태어나버린 멸망.

그렇기에 법칙은 그에 상응하는 존재를 만들어야만 했다.

그것이.

“너다.”

이건이 혼돈에 물들어가며 말했다.

“나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척점. 내 자랑스러운 손자. 그것이….”

이건의 미소.

“너다.”

콰아아아아아앙!

결국, 이정기와 이건의 힘은 서로를 견디지 못하고 폭발했다.

파짓!

그 속에서 다시 한 번 가속한 이정기가 이건을 향해 뛰어들었다.

“으아아아아아아-!”

분노가 치솟았다.

‘왜! 왜! 왜!’

그런 질문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왜 자신이 할아버지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건가.

또 할아버지는 무엇을 저리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는 건가.

할아버지는….

“포기….”

그런 사람이 아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운명이라며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다.

이정기의 온몸이 검붉은 전류에 휘감겼다.

파지지짓!

그의 머리칼에 벼락이 맴돌았고, 온 몸 또한 벼락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고오오.

이건 또한 마찬가지.

에레보스, 닉스, 티탄의 왕들.

하지만 그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어둠이 마치 갑주처럼 이건의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쩌어어어어어엉-!

혼돈의 갑주와 벼락이 맞부딪히며 생긴 여파가 모든 것을 뒤흔들고 있었다.

-답은 이미 주었다.

마지막으로 들려온 듯한 할아버지의 목소리.

이건은 그 눈에까지 벼락을 담은 채.

쩌저저저정!

다시 한 번 주먹을 휘갈겼다.

할아버지에게 배운,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술.

‘볼텍스!’

볼텍스로.

* * *

세상이 부서져 내라고 있었다.

어떠한 가감 없는 진실이었다.

파스슷.

대지가 부서졌고.

화아아.

공기가 타들어 갔다.

시공이 무너져 내린다.

가이아와 연결된 결계가 안에서 벌어지는 힘을 이기지 못한 채 부서지고 있는 것이었다.

“이대로라면….”

이대로 결계가 부서진다면.

꽈악.

“멸망이야.”

세계가 맞게 될 결말은 하나뿐이었다.

누군가의 죽음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

그저.

쩌어어어엉!

저 전투의 여파만으로 이 지구라는 행성은 가루가 될 터였다.

“아폴론….”

아테나가 주먹을 쥔 채 아폴론을 보았다.

하지만 아폴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가 낄 수 있는 싸움이 아니야.”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있고, 못 주는 것이 있다.

지금 오히려 저 싸움에 끼어들었다간 그들의 구세주에게 방해만 될 수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지금은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모든 운명과 미래를 이정기라는 한 존재에게 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테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알아.”

모두가 안다.

느끼고 있다.

결계는 결국 무너져내릴 것이라고.

“…….”

저 두 명의 힘은 동률이다.

이정기가 가진 힘도, 이건이 가진 힘도 동률이다.

어떠한 차이에 의해 승패가 결정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쉽게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아닐 터다.

결국 결계는 무너지고 세상은 멸망한다.

그건 어쩌면 피할 수 없는 결과일 것만 같았다.

“큭!”

가디언이면 무얼 하나.

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면 무얼 하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기대는 것뿐이었다.

우습게도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세상 전부가 자신과 같은 처지라는 것이었다.

티탄의 왕이 살아있다고 해도 멸망을 막고자 움직인다 해도 이정기에게는 티끌 하나의 도움도 못 될 터였다.

그런 싸움이다.

하지만 그때.

우웅.

저 싸움의 여파를 뚫고 움직이는 이가 있었다.

“안… 돼!”

목숨이 아깝지 않은 건가, 아니면 자신의 처지를 이해 못 하는 건가.

그도 아니면.

우우웅.

무언가 있는 건가.

“그대가 움직여 봐야 왕께 방해가 될 뿐이오!”

최명희.

그녀가 전투의 여파로 달아오른 전장 속에 몸을 집어넣고 있었다.

“웃기는 소리.”

옷가지가 타들어 가고 살갗이 화상으로 짓누른다.

“저 개잡종을 막을 수 있는 건….”

그녀는 통증을 무시해가며 나아가고 있었다.

“나뿐이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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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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