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권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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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의 저택 근방.
일렁이는 게이트가 아무도 저택에 다가서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이 바로.
고오오.
메인 전장이라 할 수 있었다.
바깥쪽의 방벽과 헌터들과 영웅들의 싸움 따위, 이 전장에 서 있는 이들에게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특히나 티탄들에게 있어 바깥의 싸움은 그저 유희일 뿐.
진짜는 바로 이곳.
“아폴론.”
“히페리온.”
이건 저택 근방이라 할 수 있었다.
새로운 시엘들.
씨익.
여섯의 남녀가 그곳에 서,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반대편에도 마찬가지.
“과거를 다 잊은 건가?”
아폴론을 위시한 가디언들.
그들이 이건 저택을 지키듯 서 있었다.
“타르타로스에 갇혔을 때를 기억하고 물러서라.”
아폴론의 말에 히페리온이 조소를 지었다.
“허장성세도 그 정도면 병이다. 아폴론, 모르겠나?”
우우웅.
히페리온의 양손에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번에 타르타로스에 갇혀야 할 건 바로 너희 가디언들이다. 아니….”
우웅!
완성된 빛의 검.
히페리온이 그것을 쥐며 자세를 잡고선 말했다.
“타르타로스가 없으니 완전히 소멸시켜주마.”
화륵!
그에 화답하듯 아폴론의 양손에 태양 빛으로 일렁거리는 커다란 활이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랗게 재어진 태양의 열기가 화살의 형태로 변해 손에 잡혔다.
“긴말 필요 있나.”
히페리온의 목소리에.
“마찬가지다.”
아폴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놓았다.
콰아아아아아앙!
운석이 직선으로 나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사방을 불사르고, 공기마저 태워 버린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 서 있던 히페리온은.
씨익.
미소 지은 채 유유히 아폴론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역시나, 확실하군.”
히페리온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밝은 빛을 띠며, 다른 시엘들 또한 같은 변화를 겪고 있었다.
쿠웅.
어느새 나타난 그들의 모습은 붉고 검은 갑주를 입은 신화적 존재의 형태였다.
“너희의 왕이 사라졌구나.”
“…….”
힘에서부터 느껴지는 변화.
그에 화답하듯.
“뭐가 됐든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화륵!
아폴론이, 아테나가, 아레스가, 그들의 신체를 강림시켰다.
“올림포스의….”
만반의 전투태세, 결계의 출력이 최대로 올라가는 것을 느끼며 아폴론이 태양검을 쥐었다.
“영광을 위하여.”
콰아아앙!
* * *
그야말로 신화 속 한 장면이었다.
두 개의 태양이 맞붙고, 전쟁의 신들이 뛰논다.
당연하게도 주변에 남아나는 것은 없었다.
산이 평평해지고, 그것도 모자라 패여나간다.
이건이 노력했던 결계는 과연 필수적인 것이었다.
만일 결계가 없었다면.
‘세상은 불바다가 됐을 거다.’
애시당초 올림포스가 그 꼴이 되었던 것도 전쟁 때문이었다.
신들의 전투로 폐허라는 말이 어울리게 변한 올림포스의 모습.
전장을 축소하고, 힘을 억제하며 파괴에 저항이 있는 이 결계가 아니었다면 지구 또한 올림포스와 똑같은 형국이 되었을 것이었다.
“하아…. 하아….”
티탄들이 지친 숨소리를 토해냈다.
“하아….”
가디언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을 맞부딪히는 전투에 넥타가 벌써 절반 이상 고갈되었다.
씨익.
하지만 히페리온들은 웃고 있었다.
“시간만 벌 셈이냐?”
아폴론을 향한 비웃음.
“그래 봐야 결과가 어찌 될지 알텐데?”
히페리온의 말에 아폴린이 입술을 짓씹었다.
히페리온의 말은 사실이다.
‘열세.’
전장은 자신들이 확실한 열세였다.
가디언들이 하나하나가 티탄보다 더 강하다고 하나, 그 수가 부족했다.
무엇보다 쥬노인 최명희와….
스윽.
뒤늦게 합류한 오케아노스, 헤카테 최인해는 아예 뒤로 빠져 전력을 온존하고 있었다.
‘히페리온.’
녀석의 말이 맞는다.
이대로라면 결과는 뻔하다.
‘넵튠.’
아쉽다.
쥬피터에 비할 바는 아니더라도 쥬노와 동급이라 평가받는 그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한발 늦어 티탄들의 왕이 그를 소멸시키고 흡수하기 전이었다면 전투의 양상은 또 달랐을 것이다.
‘아쉽다.’
또한, 하데스, 그가 움직였다면 전투의 양상이 달라졌을 텐데.
“큭.”
하지만 아쉬워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고 자신들은 해야 할 일을 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너희들의 왕은 오긴 하는 것이냐?”
히페리온의 말이 아폴론의 정곡을 찔렀다.
왕의 차이.
티탄의 왕은 이건의 결계가 그들을 묶어두어 이건 저택까지 들어오고 있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힘으로 결계를 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하면.
“후.”
안 그래도 물러설 곳 없는 전장의 상황은 최악으로 몰린다.
“왕께선… 오실 거다.”
아폴론의 말에 히페리온이 더욱 짙은 미소를 띠었다.
“그래. 네 말이 맞구나.”
히페리온이 한 발자국 물러서 무방비하게 가슴을 활짝 열고 양팔을 벌렸다.
“우리의 왕께서 오셨다.”
지지지직!
공간이 깨지는 소음이 났다.
스아아아아아.
사방에 자욱한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덜커덕.
잠시 동안 숨을 고르고 있던 가디언들의 온몸이 망가진 인형처럼 멈춰졌다.
이것이.
스윽.
왕이다.
존재만으로 만물을 무릎 꿇리며, 그들에게 속한 존재가 아니더라도 고개를 조아리게 만드는 압도적인 힘.
“왕을….”
“배알하나이다-!”
티탄들이 양 무릎을 꿇으며 마치 노예처럼 고개를 조아렸다.
쿵!
가벼운 발걸음이 마치 지진처럼 울려 퍼졌다.
“오랜만이군. 냄새나는 가디언들은.”
“버러지들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구나.”
닉스와 에레보스가 동시에 말하며 한쪽 팔을 앞으로 내뻗었다.
쿠웅!
다시 한 번 지진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크윽!”
아직 완전히 힘을 되찾지 못한 몇몇의 가디언들이 왕들이 내뿜는 압력을 이기지 못한 채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
겨우 버티고 있는 것은 아폴론과 아테나뿐.
“크읍!”
“큭!”
하지만 그들 또한 말 그대로 겨우 버티고 있는 것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그들의 입가로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건방지긴.”
다시 한 번 손에서 어둠이 뻗어 나갔다.
결국, 압력을 이기지 못한 아테나가 무릎을 꿇으려 할 때.
콰아앙!
그들 사이에서 폭음이 울렸다.
닉스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쥬노….”
아폴론의 앞에 서 있는 여인.
여지껏 힘을 온존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던 최명희가 나선 것이었다.
콰아앙!
다시 한 번의 폭음.
“티탄의 수치들이군.”
아테나의 앞에는 오케아노스, 그리고 최인해가 섰다.
이들이 힘을 온존하던 까닭, 그건 바로 티탄의 왕들을 상대하기 위함이었다.
우우웅!
최명희의 몸이 서서히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
그에 맞추듯 부숴진 땅 또한 함께 들어 올려지기 시작했다.
중력의 반전.
“남의 땅에 발을 디딘 주제에 건방지기 짝이 없구나.”
실로 광오하고 오만한 목소리.
최명희의 온몸에 일렁이는 파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너희들의 상대는 우리가 해주마. 그러니 잠자코….”
쿠우웅!
티탄의 전체를 짓누르는 거대한 압력.
히페리온을 비롯한 티탄들의 고개가 한순간 더 틀어박혔다.
왕들 또한 마찬가지.
닉스와 에레보스는 그들의 발이 한 치 땅을 파고 들어간 것을 보며 혀를 찼다.
“쯔읏.”
“제법 상대할 맛이 나겠구나.”
화아아아악!
새까만 어둠이 닉스와 에레보스를 감쌌다.
* * *
최명희는 이건과 이정기가 가이아의 던전으로 들어가 전, 이건을 따로 만났었다.
‘피차 이렇게 볼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리 이혼한 여편네라도 죽는 꼴은 보기 싫으니까.’
그렇게 찾아온 이건은 말해주었다.
‘넥타와 마력, 그 이상향에 대한 이야기다.’
다른 것은 몰라도.
‘들어보지.’
강해지는 것에는 그 누구보다 적극적인 최명희였다.
거기다.
‘너는 그걸 완성한 건가?’
‘거의.’
이건이 새로운 힘으로 강해졌다.
‘참고로 이 힘을 완성시키는데 일 년은 더 걸렸었지?’
속이 빤히 보이는 이건의 말.
하지만 최명희는 그걸 알면서도 속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큭.”
혼돈을 손에 넣었다.
“결국 그 힘을 깨운 건가?”
닉스가 구멍 뚫린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고오오.
눈앞의 인간, 최명희에게 당한 상처였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지 못했을 때라면 모를까 완전한 신체를 강림시킨 지금 자신이 상처 입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거기다.
와락.
인간에 의한 수모는 이미 한 번 겪었다.
또 한 번 이런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하지만.
씨익.
닉스는 웃어 보였다.
“그래도, 버러지의 마지막 발악치고는 나쁘지 않았단다. 아이야.”
서서히 회복되고 있는 닉스의 반대편.
뚝, 뚜욱.
온몸이 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최명희가 꺼져가는 눈빛으로 서 있었다.
혼돈을 얻는 것은 성공했다.
하지만 그 혼돈은 아직 완벽하지도….
‘젠장 할 개잡종.’
이건에 비할 바도 못 되었다.
힘의 총량이 다르다.
언제나 그랬다.
자신이 아무리 애써서 따라잡아도 녀석은 언제나 저 멀리 가 있었다.
평생 질투라는 감정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자신이었지만 그 녀석에게만큼은 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은 또 같은 결말이다.
녀석은 저 멀리 가 있고, 자신은 겨우 그 등 뒤를 바라보며 갈 뿐이다.
하지만.
피식.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일까, 그래도 그 개잡종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안다.’
개잡종, 아니 이건이 왜 그렇게 살았는지.
“안다고.”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이 바라는 미래를 위함이라고.
이건은 그토록 과격하고 폭력적이었던 것은 내가 생각하는 미래를 위해서였고, 나를 떠난 것은 그런 똥물이 자신에게 튀지 않기를 바람이었음을 안다.
또한, 이건의 대척점에 서 수많은 평범한 이들의 구심점이 되어주길 바란 것임을 안다.
하지만 결과는 그것이 아니었다.
‘내 실수다.’
이성은 썩었다.
결국, 자신에게 남아있는 인간의 마음이 이성을 썩게 만들었다.
미래를 위한다는 대의명분으로 이성은 무엇이든 하는 악의 집단과 같이 변해버렸다.
뒤를 이을 자식들이 뒤늦게라도 정신을 차려 꿈을 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두고 봤다.
아니.
‘강아.’
이강처럼 그렇게 잃고 싶지 않아 녀석들이 망가져 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자신의 뒤를 따르다 그 녀석처럼 무모하게 죽어갈까 걱정하기도 했다.
결국, 자신은 실패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네가 옆에 있지 그랬냐. 개잡종아.’
이건이 곁에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나도 약해졌군.”
세월이 지나다 보니 무뎌진 것이 사실이다.
최명희가 눈을 돌렸다.
“크윽!”
최인해와 오케아노스, 그녀들도 에레보스에 의해 넝마나 다름없는 꼴이 되어있었다.
결과는 뻔해 보였다.
이제 끝이다.
“마지막으로….”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최명희가 읊조렸다.
“한 번 더 보고 싶긴 하구나.”
이건.
그 망할 인간을.
그때.
파스스.
눈앞에 흐릿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 등은 자신이 너무도 보고 싶던 등이었다.
“이…건….”
그 남자의 등.
아니.
“늦어서 죄송합니다. 할머니.”
그 남자를 너무도 닮은 등.
“늦었구나. 정기야.”
최명희가 흐릿해져 가던 시야를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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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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