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권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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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르륵!
양 손에 든 검이 불꽃을 토해내고 있었다.
검을 쥔 손부터 팔목, 어깨에서 머리까지 이어지는 그 불꽃은.
“인간 주제에 넥타의 힘이 느껴지는군.”
도깨비란 이름이 능히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화르륵!
불꽃의 크기를 더욱 키워나가는 이진석.
“인간의 저력을 보여주지.”
그 말과 함께.
“……!”
영웅이라 불리는 녀석의 눈앞에 나타나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붉은 화염과 검신이 궤적을 남기며.
카앙!
녀석의 검과 부딪혔다.
“버러지가…!”
생각보다 강력한 검격에 당황하여 물러나는 것도 잠시.
“어떻게…!”
영웅은 급히 고개와 몸을 돌렸다.
뒤에서부터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
“그렇게 인간을 무시하니까….”
화륵!
“너희가 안 되는 거다.”
하나의 붉은 검신이 녀석의 검을 틀어막았고, 그 사이 다른 검신이 녀석의 목을 갈랐다.
화르르륵!
피 분수가 뿜어져나오지는 않았다.
녀석의 몸에 붙은 불길이 녀석의 피마저 증발시켰으니까.
‘한 마리.’
벌써 한 마리의 티탄을 처리했다.
하지만 이것이 녀석이 방심했기에 가능한 요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파르르.
검끼리 맞부딪혔던 검격에서 느껴지는 힘이, 녀석의 육체를 베며 느꼈던 저항이 이진석의 양 팔을 떨리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할 수 있어…!”
제로라인의 헌터라도 사냥할 수 없는 티탄을 사냥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이 그토록 꿈꾸고 바라왔던 일.
‘나는 강해졌다.’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손에 넣었다.
“젤란이 쓰러졌나?”
“그 머저리, 병신같은 짓을 했어.”
사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티탄의 죽음을 느낀 녀석의 동료들이 다가오는 소리였다.
어느새 이진석은 둘러싸였다.
“확실히….”
“젤란이 당할만하군.”
그럼에도 결코 겁나지 않았다.
그들을 보며 불꽃을 더욱 키워나갔다.
‘감사합니다.’
이런 힘을 준, 자신이 원하는 힘을 준 이정기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콰앙!
이진석은 오늘 이곳에서 모든 것을 불사를 생각이었다.
* * *
도착한 헌터는 이진석뿐만이 아니었다.
“어디 감히-!”
커다란 덩치.
이마에 돋아난 두 개의 뿔.
부웅!
그가 커다란 도끼를 휘두르며 일어난 풍압이 달려드는 적들을 일거에 밀어냈다.
도끼의 이름은 백두.
“백두의 헌터들은 죽지 않는 것에 모든 것을 걸어라-!”
그렇게 소리치는 남자는 김윤태였다.
수인화, 그것이 김윤태의 능력이었고 수인화를 한 김윤태는 티탄과의 힘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강인했다.
쿵! 쿵! 쿵!
커다란 발걸음을 망설임 없이 내딛으며 다시 한 번.
부우우웅!
커다랗게 도끼를 휘둘렀다.
“돕겠습니다!”
“뭘 도와! 너희들의 상대가 아니야! 방어진이 뚫리지 않게 물러서라!”
그렇게 말하던 김윤태가 쿵 하며 하늘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쾅!
방금 소리치던 헌터가 있던 자리에 내리 떨어졌다.
꽈아앙!
다시 한 번 충격파가 번져나가며 흙먼지가 비산했다.
“물러서-!”
김윤태와 맞서 손바닥을 마주하고 있는 거인.
그 또한 새롭게 개편된 시엘의 하위 영웅이었다.
“미노타우르스의 힘을 이었군!”
영웅이 소리치며 말했다.
김윤태의 힘은 이정기에게서 깃든 것이 아니다.
그 처음은 원래 김윤태의 아비, 김한산에게 깃든 티탄의 힘을 이은 것.
“닥쳐!”
김윤태가 소리치며 영웅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뭐해! 물러서라고!”
“알겠습니다!”
김윤태의 목소리에 결국 헌터들이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헌터들의 눈은 김윤태를 향해 있었다.
백두 길드의 후계자로 태어나 안하무인, 망나니였던 김윤태.
백두의 길드원들은 그저 하수인 취급이나 하며 갑질의 온상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였다.
하지만 지금의 광경을 보라.
“크흡!”
길드원들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언제나 전장 맨 앞에 서서 용맹하게 싸우던 전 길드장 김한산의 모습과 같다.
이제는 그를 따라도 되겠다, 그와 함께 서 있는 이 전장이 자랑스럽다.
‘보고 계십니까.’
김한산 길드장님.
부디 당신의 아들이 새롭게 태어난 이 모습을 보십시오.
헌터들은 그제야 물러서 다음 방벽에 섰다.
영웅들이 김윤태를 몰아붙이며 김윤태의 몸에 자잘한 상처가 생겨났을 때.
“윤태야. 무리하지 마.”
낮고 가느다란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하지만.
“내 차례란다.”
그 뒤를 이은 것은.
쿠콰콰콰콰!
해일이었다.
“사츠키 씨!”
사츠키 다이오.
일본에서 헌터 생활을 하던 김윤태가 의탁했던 곳이자, 티탄의 힘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준 스승.
또한, 그 존재 자체로….
“오케아노스!”
티탄의 왕 후보에 올랐을 정도의 강자.
사츠키가 일으킨 해일에 적들이 쓸려나가기 시작했다.
“푸핫! 아직 완벽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해일에 떠밀려 나간 것은 티탄이 아닌 자들뿐.
영웅이라 불리는 그들은 해일을 견뎌내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직 완전히 힘을 되찾지 못한 오케아노스가 김윤태의 옆에 섰다.
해일을 보고 오케아노스의 등장을 안 영웅들이 더욱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씨익.
그 모습에 김윤태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늦었네.”
“입 다물어. 멍청이.”
“쳇.”
김윤태를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그 속엔 어느 정도의 애정이 섞여 있었다.
“그래도….”
나타난 그녀가 말했다.
“이젠 제법 봐줄만 하네.”
“너한테 그런 소리를 듣게 될 줄이야.”
“조용히 하고 뒤로 빠져서 힘을 회복해.”
그녀가 커다란 언월도를 들며 말했다.
“이제 우리 차례니까.”
주안나.
뒤늦게 등장한 그녀가 언월도를 하늘 높이 들며 온몸의 마력을 개방했다.
“미친.”
김윤태가 그렇게 반응할 정도로 주안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또한, 마력이 일정 수준 방출된 이후 뿜어져 나오는 그것은….
‘넥타.’
주안나가 들어 올린 언월도를 기이한 방향으로 꺾어 휘둘렀다.
카카카카카카카캉!
횡으로 방출된 기운에 영웅들이 기겁하며 방어하고 있었다.
한없이 튀어 오르는 불꽃.
그들의 발을 묶고, 영웅들의 행동을 제안한 순간.
“전쟁이다-! 아마조네스!”
주안나가 소리쳤다.
피잉.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
“……!”
영웅들이 주안나의 기운을 막으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태양이, 달이 사라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늘 가득 수놓은 것은….
푸푸푸푸푸푸푸푹!
마력을 한껏 실은 화살들.
“원군 도착이다. 새끼들아.”
주안나가 웃으며 화살 꼬챙이가 된 영웅들을 향해 말했다.
“아마조네스 삼백, 지금 전장에 합류했습니다.”
여왕이 된 주안나를 향한 부관의 보고.
아마조네스는 지금 그 누구보다 특별한 원군이라 할 수 있었다.
개개인이 티탄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티탄을 상대할 수 있다.’
올림포스에서부터 유서 깊은 그들은 아마조네의 여왕의 힘을 빌어 티탄을 상대할 전투력을 갖추었다.
그녀들의 합류로 밀리던 전장의 구도가 바뀌었다.
그리고.
“원군은 끝이 아니야.”
아직 원군은 더 남아있었다.
쏴아아.
차가운 한기가 모두의 몸을 감쌌을 때.
쩌저저저정!
한순간에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정령 여왕의 첫 출진이다.”
주안나가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르고, 붉고, 흙빛의 날개들이 넘실거리는 모습.
그 주인은 바로 윤하민.
“쑥스러워요.”
아마조네에서 훈련받은 그녀였다.
그런 그녀의 눈빛이 변하는 순간.
“진지하게 임하렴. 안나야.”
“알겠어요!”
진정한 정령여왕이 강림했다.
유영아.
그녀가 양손을 내뻗으며 수없이 많은 정령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정기야.’
* * *
“다들 알아서 밥값은 하는 모양이야.”
최인해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우리도 밥값을 해야겠지.”
좌익에는 이진석이, 중앙에는 김윤태를 비롯한 아마조네의 병력과 오케아노스가.
우익에는.
씨익.
최인해, 그리고.
서걱!
태도를 휘두르는 안태민.
파앗!
섬광처럼 달려들어 다른 이들을 피떡으로 만들고 있는 권신우가 있었다.
그들 또한 신기를 얻고, 만반의 준비를 마친 채 전장에 합류했다.
끝없는 수련 속에 강해진 안태민과 권신우.
안태민의 태도는 푸르스름한 기운을 가진 채 마치 달빛처럼 휘둘러졌다.
콰콰콰콰직!
하지만 그 결과는 잔혹하기 그지없었다.
태도의 궤적에 있던 자들이 무기째로 양단된 것.
하지만 역시나.
“영웅은 일격에 처치 못 하겠네.”
티탄들은 멀쩡히 서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여섯이야. 내가 두 명 맡지, 각자 두 명씩 맡으면 되겠는데?”
그렇게 말한 권신우의 발에서 금빛의 마력이 터져 나왔다.
넥타가 뒤섞인 마력은 마치 로켓처럼 권신우를 쏘아냈고.
쾅!
순식간에 영웅과 마주한 권신우에게서 황금빛 폭발이 일었다.
타타타타타타타탓!
어찌나 주먹이 빠른지, 주먹이 적을 타격하는 소리는 권신우가 주먹을 멈추고 나서야 들렸다.
“둘은 내가 묶는다.”
“그렇다면.”
안태민이 태도를 쥔 자세를 바꾸며 바닥에 꽂아 넣었다.
쿠쿠쿵.
지반 아래에서부터 울리는 울림.
안태민은 그대로.
콰지지지지직!
태도를 들어올려 준비해두었던 마력과 넥타를 폭발시켰다.
권신우가 속도로 승부한다면, 안태민은 파괴력에 모든 것을 걸었다.
검을 든 검사에 가깝지만, 그의 공격은 모두 원거리.
안태민의 공격에 얻어맞은 영웅들이 그 경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비틀거리고 있었다.
“틀렸어. 열 명이야.”
뒤에서부터 들려오는 최인해의 목소리.
그녀가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이 검은자로 물들기 시작했고, 머리 빛은 녹색의 빛깔로 빛나기 시작했다.
“너희는 하나씩, 내가 여덟을 상대한다.”
고오오오!
말투마저 바뀐 그녀의 기운이 하늘을 가르며 쏘아졌다.
그리고 그 순간.
콰콰쾅!
하늘에서부터 떨어져 오는 빛이 영웅들의 머리통에 부딪혔다.
“제법이구나. 아이들아.”
헤카테, 그녀에게 몸을 맡긴 최인해는 능히 홀로 여덟의 영웅을 상대할 수 있는 상태였다.
이정기가 자리를 비운 동안 안태민과 권신우, 최인해는 헤카테가 있는 곳을 찾아내 그녀의 봉인을 풀어주었다.
오랜 봉인 탓에 헤카테가 완전한 힘을 되찾진 못했지만.
쿠콰아아아아아아-!
3세대의 티탄 따위 그녀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순식간에 여덟의 티탄은 물론, 저 뒤편에서 서성이고 있는 영웅들마저 쓰러졌다.
“진짜… 미쳤어.”
권신우가 그 모습을 보고 어이없다고 웃을 때, 최인해의 몸은 조금 더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곳은 맡겨도 되겠지?”
그녀의 물음.
권신우와 안태민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물론.”
그에 최인해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의 전장은 적들이 자신들을 포위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전장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전장은 저 안쪽, 이건 저택 부근에서 치러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곳에 가야 한다.
‘준비됐나.’
사념을 통한 물음에 반대쪽에서도 답이 들려왔다.
‘이동하지.’
스윽.
그녀의 뒤로 푸르게 일렁이는 게이트가 형성됐다.
목소리를 들은 오케아노스 또한 게이트에 몸을 내던졌을 것이다.
“아무래도 무리겠지.”
최인해가 허공을 밟으며 게이트 속에 몸을 집어넣고 있었다.
“그러니….”
게이트 속으로 모습을 감추며 그녀가 말했다.
“늦지 말거라. 모든 이의 왕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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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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