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권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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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뻥 뚫린 크로노스의 눈에 초점이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파짓! 파지짓!
검붉은 전류가 온 몸에 흐르며 죽어가는 크로노스.
“…….”
오히려 그 모습에 이정기는 강한 찝찝함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두 왕의 힘을 얻은 이정기에게 크로노스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지금껏 크로노스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던 것도 그가 가진 시간의 권능 때문.
하지만 여러 경험 끝에 이정기는 시간의 권능을 따라잡았고 이번엔 확실히 끝을 낼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겐 아니었어.’
크로노스가 주용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중이라 해도 이 정도로 반항이 없을 수는 없었다.
‘마치 무언가를 위해 일부러 죽었다는 듯….’
찝찝함이 남은 것은 사실이지만.
파스슷!
소멸해가는 크로노스를 보며 멍하니 있을 수는 없었다.
시간대를 옮기는 시간의 권능.
이정기는 크로노스의 권능을 완벽히 복제할 수 없었고, 이정기가 본래 존재했던 원래의 시간대로 돌아가기 위해선.
꽈악!
크로노스의 권능을 이용해야만 했다.
뻥 뚫린 가슴의 구멍에 다시 한 번 손을 집어넣은 이정기.
질척이는 장기와 피의 느낌보다는 산뜻하고 묘한 느낌이 느껴지고 있었다.
무얼 해야 하는지는 전지의 능력으로 깨닫고 있었다.
‘벼락과… 시간을 연결한다.’
두 가지 권능을 연결하는 것.
즉, 크로노스와 이정기가 잠시동안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꺼져가는 크로노스의 눈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성공… 이야.”
어렵지 않게 연결된 둘.
이정기는 눈을 감은 채 크로노스의 모든 것을 샅샅이 훑었다.
크로노스가 죽기 전, 권능을 발동해야 한다는 시간제한이 있다.
“…….”
실패한다면 이 시간대에 갇힐 터, 이정기는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크로노스와 자신의 넥타를 연결했다고 하나,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두 존재가 하나로 이어지는 것.
어쩌면 기적에 해당하는 영역이었으니까.
하지만 두 왕의 힘을 가진 이정기였고, 또한 동시에….
‘나의 길.’
스스로의 길을 결정한 왕이었다.
이정기가 선택한 길은 파괴와 소멸의 패왕이 아니다.
‘정복왕.’
정복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쌓아 올린다.
그렇기에.
화아아악-!
할 수 있다.
크로노스의 눈에서만 비추던 황금빛이 크로노스와 이정기 둘 모두를 감싸며 터져 나오고 있었다.
“찾았다.”
그 속에서 이정기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크로노스의 넥타 속, 시간의 권능.
그것이 어떻게 발동하는지를 알게 되었으며.
‘크로노스.’
녀석의 권한을 빼앗아 손에 쥐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돌아간다.’
본래의 시간, 자신이 살아온 그 시간으로.
“시간 역행.”
돌아갈 시간이었다.
* * *
“칵! 퉤!”
이건이 거칠게 침을 뱉었다.
하지만 이건의 입에서 나온 것은 피가 아닌 뼛조각과 핏덩이였다.
“후.”
호흡을 가다듬고 있지만 심장이 진정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내장이 완전히 진탕됐다.’
이 정도의 부상을 입는 것이 도대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피식.
겨우 이 정도 부상만 입은 것이 신기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훼에엥.
문명의 중심지였던 곳에 휑한 바람만이 불고 있었다.
도시의 잔해조차 다 갈려 사라졌고.
“제기랄.”
인간의 모습은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모두가 죽었다.
끝까지 저항하던 헌터들은 처참히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이진석도 마찬가지.
“크으…. 더… 더….”
“움직이지 마라. 어차피 도움도 안 된다.”
가디언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아아.
이건의 눈이 가라앉은 채 상대를 보았다.
과거의 자신의 모습 그대로인 상대.
하지만 그 힘은 가히 하늘에 닿았다.
‘아니 하늘을 부수었다.’
자신이 감당 못 할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이 싸움에 가디언도, 인간도, 문명도, 티탄도 갈려 나갔다.
자신도.
“퉷!”
당장 죽지 않은 것이 이상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이건은 마신을 노려보고 말했다.
“무슨 생각이냐.”
저 녀석, 무언가 속셈이 있다.
지금까지 겨루며 자신이 있는 힘껏 녀석을 상대했다고 하지만 녀석과 자신에게 결코 넘어설 수 없는 격의 차이가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그건 녀석 또한 마찬가지일 터였다.
“왜 안 끝내는 거냐.”
이미 여러 번, 아니 수십 번은 더 자신을 끝장낼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마신이라 불리는 녀석은 그러지 않았다.
마치….
씨익.
“심심하잖나.”
유희를 즐기듯이.
“심심?”
이건이 사납게 도끼눈을 떴다.
“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파괴한 이유가 고작 그것이라고?”
“어차피 지워질 세상 아니냐.”
“……!”
“손자놈이 성공한다면 씻은 듯 사라질 세상이다.”
오소소.
이건의 등으로 소름이 돋아났다.
‘알고 있었어?’
아니, 대충은 눈치챘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이상했다.
정기 그놈이 시간을 되돌리려 하는 것을 안다면 녀석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신을 빠르게 처리하고 정기에게 향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걸 알고 있음에도 내버려두었고.
‘심심하잖나.’
그저 유희로 생각했다는 것은….
“너어…!”
이건이 무언가를 깨닫고 남아 있는 모든 기운을 끄집어냈다.
“이제 안 것이냐?”
안된다.
녀석을 지금 처리해야 한다.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지금 이곳에서 끝장을 봐야 한다.
마침내 녀석의 목적을 알았다.
그것이 가능하냐, 안 가능하냐 따위는 알지 못한다.
만일 여기서 실패한다면….
“정기야-!”
들리지 않을 테지만, 온 마력을 담아 소리쳤다.
“시간을 돌려선 안 돼에에에에-!”
이건이 그렇게 소리치며 볼텍스가 일렁이는 주먹을 마신의 얼굴에 가져다 대려던 때.
씨익.
녀석은 웃고 있었다.
“이미 늦었다.”
틱.
돌아가는 시곗바늘 소리와 함께 시간이 멈추었다.
마신의 얼굴에 주먹이 닿은 상태 그대로, 이건이 절규하던 그대로.
온 세상이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격을 획득한 이건과 마신의 의지만큼은 멈춘 시간 속에서도 깨어있었다.
이건의 눈에.
화아아악!
황금빛으로 물든 하늘이 보였다.
회색의 세상 속 빛나는 황금빛, 그리고….
‘안 돼!’
하나둘 생겨나는 거대한 시계들.
휘이이익!
시계들의 바늘이 미친 듯 돌아가고 있었다.
“역시 나야. 마지막에 ‘진실’을 깨달았다니 말이야.”
“넌….”
마신과 이건.
그 둘이 이제 곧 벌어질 일을 예상하며 말했다.
“내가 아니야.”
이건의 목소리에 녀석의 입가가 다시 한 번 올라갔다.
“당연한 소리를 하는구나.”
티티티티티티티티티티티티틱!
움직이는 시곗바늘들.
어느새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빛이 세상 전체를 집어삼켰다.
* * *
파앗!
정신을 차린 이정기.
“여긴….”
사방을 급히 둘러보며 상황을 살폈다.
가히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푸르른 숲.
“가이아의 던전!”
관리자가 있던 곳이었다.
[깨어나셨습니까!]
시간대의 뒤틀림 속에서 잠에 빠졌던 관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됐습니까…!”
이정기는 급히 물었다.
[본래의 시간대로 돌아온 듯싶습니다. 그게 아니고서야 제가 깨어날 수 없었을 겁니다. 다만!]
이정기는 그제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달았다.
자신이 본래의 시간대에서 마지막으로 있던 장소는 라돈의 심장을 취했던 우주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조금의 시간이 흐른 듯싶습니다.]
“할아버지!”
함께 있어야 할 이건이 보이지 않는다.
망설일 시간은 없다.
바로 이건의 기운을 떠올리며 움직이려던 그때.
“크읏.”
오히려 이정기의 앞에 이건이 나타났다.
“할아버지!”
이정기가 급히 이건에게로 달려갔다.
부상이라도 입은 듯 잔뜩 일그러진 얼굴과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그의 모습.
얼굴은 창백하고.
“쿨럭!”
핏덩이를 토하는 것이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이정기가 급히 이건의 몸에 손을 올렸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시간.’
시간의 잔재가 할아버지에게 들러붙어 있었다.
자신과 함께 시간대를 계속해서 거슬렀던 이건이었다.
자신은 크로노스보다도 더 위의 격이기에 잔재에 큰 영향을 받지 않지만.
“커헉!”
할아버지는 시간 여행의 후유증이 몰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
할아버지의 내부를 진탕시키고 있는 이 기운.
‘마신…?’
분명 마지막 시간대에서 본 악의에 빠진 할아버지, 마신의 기운이 분명했다.
시간대를 거슬렀기에 모든 것이 원위치로 돌아와야 했지만 분명히 할아버지의 내부엔 마신의 기운이 그대로 느껴지고 있었다.
“참으세요!”
이건은 그렇게 소리치고 기운을 끄집어냈다.
해야 할 일은 크로노스 때와 같았다.
‘할아버지와 나를 연결해야 해.’
그 후에 할아버지의 내부를 갉아먹고 있는 이 마신의 기운을….
파지짓!
벼락으로 태워버린다.
연결은 크로노스 때보다도 더 쉬웠다.
피를 이었고, 오랜 시간을 함께한 만큼 둘의 파장은 비슷했다.
그러나.
“큭!”
마신의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벼락을 이끌어 태우려 해도 마신의 기운은 살아있는 듯 움직이며 계속해서 저항하고 있었다.
‘서둘러야 해.’
이 상태가 지속되면 할아버지가 더욱 위독해질 수밖에 없다.
최대한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지짓!
벼락을 일깨우는 이정기.
‘이 힘은…!’
마신의 기운을 제거하기 위해 기운을 살피다 보니 알 수 있었다.
이 힘, 완전히 낯선 것이 아니다.
‘혼돈.’
할아버지가 만든 그 힘.
마력과 넥타를 적절히 섞어 만든 그 힘.
새로운 힘이자 상위의 힘.
“끄….”
할아버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짓눌린 신음.
“끄아아아아아악-!”
할아버지가 고통스럽게 몸을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처음 보는 모습에 당황할 틈도 없었다.
‘마신의 기운이….’
오히려 벼락을 타고 자신에게로 이어지려 하고 있었다.
“저, 정기야….”
“할아버지!”
그 여파로 잠시동안 정신이 돌아온 이건, 그가 이정기를 부릅뜬 눈으로 보며 소리쳤다.
“가!”
“……!”
“안 돼!”
퍼억!
이건이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이정기를 밀어냈다.
“녀석이다! 녀석의 노림수야!”
“그게 무슨…!”
이건이 핏발 선 눈으로 굽혔던 무릎을 피고 일어섰다.
“도망쳐라! 먼저 밖으로 나가! 그리고 이곳을 봉인해!”
“할아버지!”
“당장-!”
이건에게서 스멀스멀 뿜어져 나오는 기운.
“녀석이 나를 타고 넘어왔단 말이다!”
“……!”
“내가 어떻게든 해보마! 그러니 나가! 나가서 사람들을 구해!”
이정기는 바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말에서 알 수 있는 것.
‘마신.’
그가 완전히 동일한 인물인 할아버지를 타고 함께 시간대를 넘어왔다는 것.
그리고 지금 자신이 해야 할 것은.
“크윽!”
아직 마신에게 몸을 빼앗기지 않은 할아버지를 처리하는 것일 수 있으나, 그 또한 답이 아니다.
끄덕.
견뎌내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건이 이정기가 하는 생각이 정답임을 알려주었다.
여기서 만일 자신이 이건을 죽이면 마신을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제는 왕, 그 너머의 무언가가 된 녀석은 다른 그릇을 찾아 움직일 거다.
그것이 자신일 수도, 혹은 또 다른 누군가일 수도 있다.
할아버지는 녀석을 스스로의 몸에 봉인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꼭 돌아오겠습니다!”
바깥이 위험하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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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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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