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권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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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의 극이라 불리우는 할아버지의 볼텍스.
그러나 지금.
“크으으으윽!”
이 시간대의 할아버지가 쏘아내는 볼텍스는 그와는 완전히 성질이 다른 것이었다.
온몸이 찢겨나가는 고통, 동시에 마력도 넥타도 태워버린다.
파괴의 힘?
아니 이건 멸망의 힘이다.
“크헉!”
볼텍스를 막아낸 대가로 핏물을 토해낸 이정기.
“버텨내?”
젊은 시절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건은 그런 이정기를 보며 웃어 보였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정기가 주먹을 꽉 쥐었다.
파짓! 파지짓!
벼락에 깃든 권능의 힘이 온몸에 타고 흐른다.
이정기가 눈을 뜬 순간.
쾅!
이정기의 주먹이 이건의 뒤통수에 꽂혀 들어갔다.
‘감각이….’
분명 손에 닿는 감각은 있었다.
그러나 묵직하게 느껴졌어야 할 타격감이 아니었다.
“제법이구나.”
밀려나가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는 이건.
시간대가 다른 두 조손이 서로를 보며 경계하고 있었다.
“저 마신과 버티고 계시다니…!”
“승산이 있는 건가…?”
이정기를 보며 희망을 품는 이들.
“할아버지와는 목숨을 걸고 겨룰 것이라 생각해본 적 없는데, 이렇게 기회가 생기네요.”
“이미 나한테 한 번 죽은 주제에 흰소리를 하는구나.”
“왜 그렇게 되신 겁니까?”
이정기가 먼저 시도한 것은 대화였다.
시간대가 달라졌다고 하나 그의 본질은 이건, 자신의 할아버지다.
누구보다 세계의 안전을 생각하며 그 누구보다 자신을 생각하던 할아버지가.
‘세계의 멸망을, 나의 죽음을.’
정반대되는 행동을 했다.
“정기야.”
“예. 할아버지.”
“이게 옳은 길이다.”
“……?”
할아버지의 눈이 점차 검은 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지금의 너는 아직 모르겠지. 하지만 나는 안다.”
흰자마저 새까맣게 물든 할아버지.
그는 사람들이 그를 부르는 것처럼 마신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휘몰아치는 힘.
그건 할아버지가 전에 보여주었던 힘인 혼돈.
‘그 궁극…!’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이것이 옳은 길이다.”
“무엇이…!”
“알게 될 거다.”
어느새 이정기의 눈앞에 나타난 할아버지.
자신을 향해오는 주먹에 이정기는 벼락의 힘을 이용해 그의 등 뒤에 나타났다.
주먹을 내뻗으려는 찰나.
휘이익!
회오리치는 힘이 이정기의 균형을 망가트렸다.
‘볼텍스?’
주먹에서 뻗어 나온 것이 아니다.
그저 허공에서 갑작스레 생성된 와류가 이정기의 자세를 무너트린 것.
그 사이 이미 이건은 뒤 돌아 이정기의 얼굴을 부여잡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것 밖에 없다.”
“그게… 무슨….”
얼굴이 찢겨나갈 압력.
이정기는 벗어나기 위해 벼락의 힘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그때.
화륵!
이건의 몸에 불길이 치솟았다.
“아폴론….”
아폴론의 성화의 불길.
콰직!
뒤이어 날아온 창이 이건의 어깻죽지에 박혀 들었다.
아테나의 창.
뒤이은 수많은 공격들이 이건을 몰아붙이는 듯했으나.
파앗!
그의 몸에서 기어 나온 검은 힘이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 원상 복구했다.
“왕이시여.”
이정기를 향한 목소리.
“이곳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무리, 절대 무리다.
이 시간대의 할아버지가 가진 힘은 말 그대로 마신이자 멸망의 힘이다.
가디언들이 이 힘을 상대할 수 있었다면 이미 상대했을 터.
저들은.
‘죽음을 각오했구나.’
이 자리에서 저들의 목숨 전부를 건 것이 분명했다.
-주용, 크로노스라면 어디 있을지 알 것 같습니다.
이정기의 머릿속에 들려오는 아폴론의 목소리.
-하데스, 죽음의 대지로 향하십시오. 지금의 왕이시라면 그를 쫓을 수 있을 겁니다.
까득.
이정기가 어금니를 세게 물었다.
자신이 자리를 비우면 이들은 여기서 죽는다.
그리고 세상은 결국 멸망으로 치닫는다.
그러면 자신이 여기 남으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이 시간대의 할아버지와 자신의 승률.
‘오십 대 오십.’
만일 자신이 패배라도 한다면.
꽈악.
끝장이다.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정기야.”
또 다른 할아버지의 목소리.
자신과 함께 온 할아버지가 곁에 서며 말했다.
“가거라.”
“할아버지…!”
“저 녀석이 나라고 할 순 없으나 결국 내가 싸지른 똥이다.”
피식 웃으며 말하는 이건.
“내가 싼 건 내가 치우는 것.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더냐.”
할아버지가 함께라면….
“가거라. 뭘 고민해. 모르는 게냐?”
이건이 이정기의 등을 떠밀며 말했다.
“이 할애비는 최강이다.”
결국, 그 말에 이정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할아버지가 최강이라는 것.
하지만 그 상대 또한 할아버지라는 것.
이정기는 마음을 굳혔다.
“맡기겠습니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 그것을 해내 모든 것을 원상태로 돌려놓겠다고.
파짓!
전류가 휘몰아치는 것을 보며 이 시간대의 이건이 주먹을 내뻗었으나.
“네 상대는 나다.”
이건 또한 볼텍스로 맞섰다.
* * *
쉽게 볼 수 없는, 아니 아예 상상조차 못 할 광경이었다.
이건과 이건이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비록 한 명은 젊은 시절의 모습이며, 마신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고 또 다른 한 명은 강건하게 늙은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지만.
쿠웅!
그들은 분명한 하나의 존재, 최강이라 불리우는 이건이었다.
늙은 이건의 뒤로 서는 가디언들, 그리고 이진석과 살아남은 헌터들.
이건은 그들을 향해 말했다.
“앞으로 나서지 마라.”
솟구치는 기운.
“어차피 방해만 될 뿐이니, 뒤에서 알아서 조력이나 해. 그리고… 니들 상대는 따로 있는 모양이다.”
이건의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쾅!
별똥별처럼 하나둘 무언가 떨어져 마신의 뒤에 섰다.
“히페리온….”
히페리온을 비롯한 티탄들.
그들 또한 끝이 도래했음을 알고 이곳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당신이 어떤지는 모릅니다.”
아폴론이 말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전의 시간대라면 결코 들어볼 수 없는 질문.
하지만 이 시간대의 이건을 모르는 상태였기에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그에 대한 답은.
쿠콰콰콰콰!
이건이 힘을 개방하며 충족되었다.
“충분하지.”
마신, 그 또한 혼돈의 힘을 가졌다.
그와 이건의 차이라고 하면….
‘우라노스.’
마신은 우라노스의 넥타와 티탄의 왕이 될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
당연하게도 마신이 압도적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싸움은 그런 게 아니거든.”
이건이 입가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저 녀석과 내 차이? 저 녀석이 더 강하다?”
웃기는 소리.
“다른 힘에 기댄 녀석은 스스로 성장을 멈춘다. 저 거대한 힘을 가졌으니 제대로 수련조차 안 했겠지.”
완전은, 더 이상의 노력을 막는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가장 잘 안다.’
그러니 확신한다.
“너는 누구냐?”
마신, 그는 자신과 다른 이라고.
정말 녀석이 자신이었다면 우라노스의 넥타든, 티탄의 왕이든 건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 스스로 수련하고 고련하여 힘을 얻었을 것이다.
“나는 이건이다.”
콰아앙!
무어라 말할 것도 없이 둘은 서로 부딪혔다.
쿠콰콰콰콰콰!
폭풍처럼 몰아치는 기운 속에서.
“정말 나냐?”
이건이 마신을 향해 질문했다.
마신은 대답 없이 더욱더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넌 내가 아니야.”
확신할 수 있었다.
녀석은 자신이 아니다.
자신과 똑 닮은 무언가일 뿐이라고.
* * *
파앗.
하데스, 그는 가디언이다.
비록 하데스가 전 시간대에서도, 현 시간대에서도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았다고 하나 그는 결국 가디언이다.
그 말은 곧 하데스를 마주하지 않았어도 그의 기운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이정기는 하데스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이동했다.
“여긴….”
새까만 어둠.
마치 어느 동굴 안인 듯했다.
동굴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
오소소.
그것이 이정기의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게 하고 있었다.
티탄의 왕, 에레보스를 마주했을 때나 마신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형언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의 느낌.
‘죽음.’
생을 부정하고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부정적인 기운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이곳에….’
크로노스가 있다.
아폴론의 말에 따르자면 가디언들과 티탄은 소멸에 이르지 않는한 완전한 죽음은 없고 하데스의 영토에 몸을 숨기고 부활의 때를 기다린다.
‘낭비할 시간은 없어.’
이정기는 곧장 하데스의 기운을 추적했다.
하데스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은 동굴의 가장 안쪽.
파앗!
서둘러 나아가려던 그때 이정기의 눈앞에 바다라 불러도 손색없을 거대한 강이 나타났다.
“동굴 안에 이런 강이라고…?”
의문이 드는 것도 잠시,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이 정도 강 따위 쉽게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건만.
타앙!
강을 넘으려는 순간 이정기의 몸이 무언가에 튕겨지듯 멈춰섰다.
파지짓!
벼락의 권능으로 밀어내려 해도 쉽게 밀리지 않는 벽.
그어어.
그런 이정기의 발목을 노리며 강 속에서 수천 개의 팔들이 솟구쳐 나오고 있었다.
타앗!
잠시 물러선 이정기.
“권능인가.”
벽에서 느껴지는 권능의 기운, 하지만 그렇다면 벼락으로 깨부술 수 있어야 한다.
권능을 넘어선 권능.
그건.
‘법칙.’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법칙.
지금의 자신이라면 부수고자 하여 부술 수 있다.
다만 법칙이 깨지는 순간 그 여파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리라.
서둘러 크로노스를 잡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법칙이 깨져버린다면 오히려 크로노스를 놓칠 가능성도 있었다.
“대가가 필요하단 거군.”
강을 넘기 위한 대가.
스윽.
이정기의 앞에 그림자가 일렁이며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형체를 말할 수 없는 누더기를 뒤집어쓴 자.
“하데스의 권속인가?”
-그렇습니다. 가디언의 왕이여. 저의 이름은 카론… 스틱스의 안내자입니다.
“오래 대화할 생각은 없어. 강을 넘으려면 뭘 지불해야 하지?”
-간단합니다.
바람이 일며 카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음.
“…….”
-스틱스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은 자뿐, 그것은 왕의 격을 지닌 자들에게도 동등한 일입니다.
법칙으로서 보호받는 것.
이정기는 잠시 고민했다.
자신 또한 가디언으로 치부 받는 존재, 죽음에 이르러 이 강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옳은 일일까?
차라리 법칙을 부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고민이 길어질 순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꽈악.
할아버지와 가디언들은 목숨을 건 전투를 치르며 시간을 벌어주고 있을 테니까.
“대가를 지불하겠다.”
-그렇다면….
카론이 품 안에서 커다란 낫을 꺼낼 때.
-그만.
푸른 혼령이 강을 넘어 카론과 이정기 사이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대가는 내가 대신 지불하지.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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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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