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권 21화
271
카앙!
무조건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휘둘러진 검, 그 위에 타오르는 업화.
도깨비 이진석이 얼마나 강해진 것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눈.
살의와 증오, 분노로 가득 차 번들거리는 그 눈이었으며.
“이진석 헌터! 왜 이러는 겁니까!”
그의 살의가 이건, 자신의 할아버지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죽어어엇!”
이진석은 이정기의 말조차 들리지 않는다는 듯 더욱더 힘을 끌어내며 이건을 향해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카카카카캉!
불덩어리가 내리 떨어지는 듯 지옥 불과 같은 검격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그 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이진석의 얼굴은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을 태워버리려는 듯했다.
“말이 통하질 않는구나.”
할아버지의 말마따나 현재 이진석은 대화가 통할 상태가 아닐뿐더러, 자신조차 알아보질 못하고 있는 듯했다.
그의 별명처럼 말 그대로 도깨비.
그것도 복수와 살인에 미친 도깨비의 모습이었다.
“이진석 헌터, 미안하지만….”
이정기가 막아서던 움직임을 조금 바꾸어 땅을 밟았다.
쿵.
흔들리며 이진석의 자세가 무너진 순간.
쾅!
이정기의 주먹이 이진석의 가슴을 들이받았다.
“커억!”
비명과 함께 모든 자세가 무너진 이진석.
그는 그대로 무너져 정신을 잃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나도 모르겠구나.”
이진석의 할아버지를 향한 악의와 증오, 그건 쉬이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것.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터벅, 터벅.
자신들을 감싸고 있는 수십 수백의 기운들이었다.
어느새 포위하듯 둘러싸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그들.
그들의 눈 또한 이진석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증오와 분노, 살의로 가득 차 있었고, 그 모든 것은 다름 아닌 이건, 할아버지를 향해 있었다.
“저들도….”
“대화가 통할 것 같지는 않네요.”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그들.
“마신….!”
“마신?”
“마신을 죽여라앗!”
그들이 이건을 향해 목숨을 걸고 달려들고 있었다.
이정기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번에도 같았다.
쾅!
땅을 내리치는 이정기의 발.
파지짓!
그 발을 타고 전류가 퍼져나가 수백의 헌터를 감전시켰다.
그제서야….
“일단 깨어나길 기다려보자꾸나.”
주위에 적막이 찾아왔다.
* * *
이진석은 물론이거니와 자신들을 노려왔던 헌터들의 정기가 많이 쇠해있었다.
마력의 근원이 틀어지고, 육체가 무너져내리고 있는 것과 같은 실정.
이정기는 그들의 근원을 고쳐주었고, 잠자코 그들이 깨어나길 기다려주었다.
“끄으응.”
가장 먼저 깨어난 것은 그나마 정기가 덜 쇠해있던 이성의 헌터였다.
신음하며 눈을 뜬 그는.
“으, 으아아아악!”
곧장 이건을 보자 비명을 내지르며 다시금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만!”
또다시 반복될 상황을 생각하며 이정기가 힘을 실어 소리쳤다.
그제야 헌터의 붉게 물들던 눈이 조금씩 제 빛을 찾아가고 있었다.
“다, 당신은…?”
깨어난 헌터가 그제야 이건이 아닌 이정기를 보며 두 눈을 치켜떴다.
“어떻게…! 말도 안 되는…!”
죽은 이라도 본 것처럼 떨고 있는 헌터.
그의 뒤로 깨어난 헌터들이 하나둘 서 이정기를 보며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가장 크게 정기가 쇠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던 이진석이 깨어났다.
“뭣들 하는 거냐!”
과거와 다르다.
과거의 이진석은 불과 같이 정열적이라고 하나 유하고 따뜻하게 길드원들을 아끼는 자였다.
그러나 지금 그의 모습은 철저한 군율로 병사를 다스리는 장수와 같았다.
쿵!
지축을 울리는 굉음.
무릎 꿇은 이진석이 소리쳤다.
“길드장님을 뵙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끝나자.
쿠쿠쿠쿠쿠쿵!
헌터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소리쳤다.
“기, 길드장님을 뵙습니다!”
이제야 그들이 제대로 돌아온 듯싶었다.
“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정신을 차린 이진석을 향한 물음.
이진석이 숙였던 고개를 든 채 타오르는 눈으로 이정기를 바라보며 답했다.
“제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길드장님.”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문과 당황, 복잡한 감정들.
“도대체….”
그가 그 모든 것을 굳게 눌러 한 마디로 압축했다.
“어떻게 살아계신 겁니까?”
“네?”
“분명 제가 두 눈으로 봤습니다!”
이진석이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길드장님께서 간악한 마신의 손에 꿰뚫려 죽는 것을!”
“마신…?”
“도대체!”
이진석이 절규하듯 말했다.
“왜 저 마신과 함께 있는 겁니까!”
아까도 분명 그랬다.
이건을 발견한 헌터들이 외치던 것.
‘마신!’
‘마신을 죽여라!’
할아버지를 향해 마신이라 부르는 것을.
“이진석 헌터 진정하세요.”
할아버지를 보기만 해도 존경의 눈빛과 두려움을 함께 보였던 그들의 눈에는 할아버지를 향한 증오와 분노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할아버지가 마신이라는 겁니까?”
“설마 조종당하고 계신 겁니까?”
이진석이 이정기를 향해 물었다.
타오르는 눈빛, 이정기는 그것을 흘려내지 않은 채 온전히 받아주었다.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하는 그.
“그런 게…, 아니군요.”
그제야 이진석도 당황하기 시작한 듯했다.
“설명하자면 깁니다. 그 전에 제가 먼저 설명을 들어야겠습니다.”
주변을 훑는 이정기의 시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대한민국이 왜 이 모양이고….”
뒤늦게 알아차렸었다.
지금 이 자리, 자신이 서 있는 이 자리가 어디인지.
‘이성.’
이성 길드 하우스.
잔해밖에 남지 않은 대한민국 최고 길드의 땅이었다.
“일단 움직이시죠. 누군가 또 마신을 발견한다면 모두 죽여야 끝이 날 겁니다.”
* * *
올림포스의 붕괴.
거기까지의 역사는 똑같았다.
하지만.
‘그 이후가 달랐다.’
올림포스의 붕괴 후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정기뿐이었다.
지치고 거친 모습으로 나타난 이정기는 곧장 최명희를 찾아가 손자임을 인정받았고.
“후계 서열을 정리했습니다.”
이 시간대의 이정기는 힘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올림포스에서 나온 순간부터 완성되어 나왔다.
그렇기에 힘을 가진 이정기는 최명희의 손자임을 인정받음과 동시에 타락한 성혈들을 정리했다.
그렇게 곧장 이정기는.
“이성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그렇게 빨리요?”
“예. 그만큼 압도적이었고 모든 명분이 길드장님께 있었습니다.”
원래 이성의 주인이 될 후계자였던 이강의 아들.
거기다 헌터로서의 그의 힘은 말할 것도 없이 최강.
그렇게 이성의 주인이 된 이정기는.
“대한민국의 길드들을 통합하기 시작했습니다.”
“예?”
대한민국 길드의 대통합.
“수십 개의 대형 길드가 이성의 산하 길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 외의 길드들도 앞다투어 충성을 맹세했지요.”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이 시대는 왕조가 아니다.
이성이 거대한 하나의 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고 하나 그 모든 것을 집어삼켜 유일해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성은 암암리에 여타 길드의 이권에 개입할지언정 눈에 띄게 그들을 발아래 두지는 않았다.
만일 그러한 시도를 했다고 한들.
“협회와 정부, 길드들이 가만히 두고 봤다는 겁니까?”
이성을 견제하는 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비록 이성과 싸워 패배할지언정, 그들은 끝없이 이성과 싸웠을 것이다.
이성이 모든 것을 독점한다는 것은 전무후무한 대한민국의 제국이 생긴다는 뜻이었으니까.
힘의 집결을 반기는 이는 없다.
“예. 그렇습니다.”
“어떻게….”
“길드장님이 해내셨습니다.”
“제가…?”
이진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성의 주인이 되시던 날, 길드장님께서는 비밀 회동으로 각 세력의 지도자들을 소집하셨고 그들과 거래를 성사시켰습니다.”
거래.
그 거래를 통해 이성은….
‘제국이 되는 것을 허락받았다.’
도대체.
“어떤 거래였습니까.”
이진석이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멸망을 막는 것.”
“……!”
“세상을 덮칠 혼돈 속에서 대한민국을, 지구의 멸망을 막는다는 거래였습니다.”
“그런…!”
예언이었다.
올림포스에서 나온 혼돈이 세상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예언.
그것은 전의 시간대에도 있었고.
‘시엘들은 그것을 이용해 세계를 지배했고, 혼돈의 세대들을 관리하에 두었다.’
뷔앙, 생츄어리와의 전투도 그 일환.
하지만 이 시간대에서 그 예언을 이용한 것은 시엘들이 아닌 자신이었다.
“하나 된 대한민국은 곧장 세계로 뻗어 나가 세력을 규합했습니다.”
“허.”
“각 세력들은 물론이거니와, 시엘들 또한 길드장님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실로 전무후무한 일.
“단일의 세계 협회, 이성의 탄생이었습니다.”
그런….
“말도 안 됩니다.”
이정기가 지구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에 대해서는 제법 겪었다.
인간은.
“자신의 이득을 가장 중시하는 자들입니다. 도대체 어떡해야 그런 일이 가능한 겁니까?”
황제를 옹립해버렸다.
세계를 손아귀에 쥐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권력을 이 시간대의 자신에게 쥐여 주었다.
올림포스에서 나온 이제 막 스물을 넘은 청년에게 그러한 권력을 준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멸망….”
이진석이 말했다.
“멸망이 너무나 명확했고.”
멸망.
“그 두려움은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었으니까요.”
“대체 그 멸망이….”
이정기의 말을 끊은 것은 이건이었다.
“나로 구나.”
“…….”
“…….”
이정기도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었다.
상황을 보았고, 이진석과 헌터들의 분노를 보았다.
그리고 마신이라는 이름.
그럼에도 확인하고 싶었다.
결국, 이진석이 한 얘기는.
“맞습니다. 이건, 당신이 멸망 그 자체였습니다.”
자신이 할아버지를 죽이기 위해 세상을 통합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리고 그때.
일렁.
공간이 일렁이고 있었다.
화르륵!
불꽃으로 타오르는 공간.
그 속에서.
“이후의 설명은 저희가 드리겠습니다. 왕이시여.”
가디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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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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