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권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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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탄의 왕, 크로노스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쥬피터뿐이라고 관리자는 말했다.
그러나 쥬피터의 힘을 이어받은 이정기는 관리자의 말을 완벽히 납득할 수 없었다.
분명 왕의 힘으로 시간을 느낄 수 있고, 시간에 저항할 수 있었다.
또 두 왕의 자격으로 완성된 시간으로 크로노스에게 시간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자신은 결국 크로노스에 시간에 닿지 못했다.
‘어떻게?’
쥬피터가 도대체 어떻게 크로노스를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일까.
시간은 절대적인 권능처럼 느껴졌다.
느끼고, 저항할 수 있다고 해도 깨부술 수 없는 것.
그러나 깨달았다.
“할아버지.”
이건을 구하기 위해 시간에 저항하며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따라잡을 수 있어요.”
어떻게 쥬피터 할아버지가 크로노스를 상대했는지.
“가속으로 시간을 따라잡을 수 있어요.”
“가속?”
“예.”
벼락의 힘은 벼락을 다루는 것뿐만이 아닌 벼락을 먹음으로써 스스로를 가속할 수 있었다.
전투 때 이 힘은 마치 순간이동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거리를 단숨에 좁히고, 상대를 현혹한다.
‘공간이동 또한 마찬가지.’
기억하는 기운을 추적해 생각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능력인 공간 이동.
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전투 때 사용하는 순간이동과 다르게, 공간이동은 말 그대로 공간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장애물이 있다고 한들, 어딘가 구속되어 있거나 감금되어 있다고 해도 뛰어넘을 수 있는 능력.
그것은 단순히 육체의 속도를 빠르게 한다고 해서 가능한 영역이 아니었다.
그 이상.
‘초가속.’
더더욱 가속하는 것.
그로 인해.
“네 몸이…?”
넥타와 마력을 더더욱 가속한다.
이정기의 주변에 푸르게 빛나는 입자가 마치 반딧불처럼 빛났다.
“육체를 빠르게 하고, 그것을 넘어 마력과 넥타를 가속하는 겁니다.”
그러면 육체는 푸른 입자로 변해 마력과 넥타에 뒤섞인다.
그리고.
파앗!
눈을 뜨면 자신이 추적한 기운이 있는 곳에 벼락을 내리쳐 나타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면?
더욱더 가속할 수 있다면?
“그것이라면….”
다시금 이정기의 온몸이 푸른 입자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흩날리는 푸른 빛이 이건과 주변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가능하겠구나.”
이번에 가속해야 될 것은 육체와 넥타, 마력이 아니었다.
“존재의 가속이라니.”
존재 그 자체.
본질 그 자체를 가속한다.
그것은 곧….
‘시간.’
크로노스의 권능, 시간을 뜻하는 바였다.
결국, 쥬피터 할아버지가 유일하게 크로노스를 상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쥬피터 할아버지 또한 시간을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고마워.’
이정기는 잠든 관리자를 향해 감사 인사를 표했다.
애초부터 시간을 느낄 수 있고, 저항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왕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이 가이아 던전에서 추방당했던 때, 분명 하루에 불과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건만 한 달이 지났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처음으로 시간의 가속을 느꼈다.’
관리자는 쇠사슬, 벼락이 가진 힘으로 쥬피터 할아버지의 권능의 끝을 보여준 것이었다.
“준비되셨어요?”
푸른 입자로 변해가는 이정기의 질문에.
“물론이다.”
이건이 답했다.
우르르.
저 하늘 위, 시간이 무너져내리던 하늘에 먹구름이 끼었다.
쾅!
구름 속에서 벼락이 내리친 순간.
“가요. 할아버지.”
“가자꾸나.”
파아아앗!
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 * *
파앗!
내리치는 벼락.
“성공… 했나 보구나.”
이건이 주먹을 쥐며 말했다.
“할아버지….”
그 옆에 모습을 드러낸 이정기가 말을 이었다.
“여긴….”
이정기가 가속하여 쫓고자 했던 것은 크로노스.
이곳은 크로노스가 그토록 가고자 했던 시간대임이 분명했다.
“끔찍하군.”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쫓아온 시간대, 눈에 보이는 곳은 오직.
타닥, 타닥, 화르륵.
타오르고 있는 세상뿐.
시뻘건 세상이 용암처럼 들끓고 있었다.
‘이게 정말 그가 원하던 시간대라고?’
마치 세계에 종말이라도 내린 듯한 모습이었다.
“아닐 거다.”
이건이 말했다.
“아마 너와 나 때문이겠지.”
“……! 그렇겠군요.”
이정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주용을 방해했다.
그리고 녀석이 빼앗았다고 생각했던 이건의 존재를 되찾았다.
그 결과.
“섣부르게 움직인 녀석의 시간대가 이 꼴이 되었다….”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다고 했었다.
대륙 반대편의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그 반대편에서는 태풍이 될 수 있다고.
하물며 시간이다.
사소한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바뀐다.
녀석의 말마따나 자신의 존재 자체가 지워져 버릴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시간이었다.
정교하고 치밀한 작업이 요하는 그 과정에 자신이 만든 이레귤러는 그의 모든 것을 망가트리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움직이죠.”
그래도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빠지짓.
주용, 크로노스를 찾는 것.
그리고 그를 쓰러트리는 것.
푸른 입자로 변한 이정기가 크로노스의 기운을 찾아 공간이동을 하려 했으나.
“……!”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
“그게….”
다시 공간이동을 시도해봐도 결과는 같다.
“이동이 안 돼요.”
왕의 힘은 절대적이다.
그건 자신이 깨달았다.
‘주용이 저항한 건가?’
자신이 시간에 저항했듯, 녀석이 벼락의 능력에 저항한 것일까?
하지만 그랬다면 저항을 느꼈어야 한다.
이정기가 느낀 것은 저항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주용의 기운이 없어요.”
“뭐?”
“주용의 기척 그 자체가 없어요.”
당황을 숨길 수 없었다.
“존재가… 없어요.”
녀석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쓰러트려 시간을 되찾아야 한다.
하지만 녀석의 기운이 그 어느 곳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만약 못 찾는다면?
“…….”
원래의 시간대로 돌아갈 수 없다.
이정기의 벼락으로 다스릴 수 있는 시간은 현 시간대뿐.
나머지 시간대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크로노스의 능력이 유일했다.
“정기야.”
어떻게 해야 하지.
만약 이대로 끝이라면?
지금 불타고 있는 세상의 모습으로 고정된다면?
“정기야!”
“……!”
“정신 차려라.”
이건의 말에 이정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이 허술하게 보여도 티탄의 왕이다. 그리 쉽게 죽었을 리 없어.”
“…….”
“무언가 방해가 있는 게 분명하다.”
“후우.”
“생각하거라.”
이건의 눈이 이정기를 또렷히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네가 가장 잘 알 것이다. 정기야.”
이건의 눈이 전과 달랐다.
“이제 더 이상 너는 내 부족한 손자가 아니다.”
“할아버지.”
“이미 장성하여 더 이상 이 할애비의 도움조차 필요 없는 자가 되었단 말이다.”
따스한 목소리와 눈빛.
“네가 왕이다.”
“……!”
“네가 선택하거라. 무엇을 해야 할지 네가 생각하거라. 이 할애비는 따르마.”
이건의 말에 이정기는 또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에게 부족했던 것.
‘시간.’
성인이 되었다고 하지만 완벽히 성숙하지 못했던 자신.
지구에 적응하지 못했던 자신.
새로운 힘, 또다시 얻게 된 힘.
모든 것은 변해갔지만 자신은 변해가는 환경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뭐가 두 왕이냐.’
가진 힘은 티탄의 왕을 압도할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 머릿속은….
‘아직 올림포스의 꼬마에 불과했던 거야.’
그 성장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내 그늘에서 벗어나거라.”
할아버지.
그 존재의 후광이 너무나도 짙었다.
어린 시절부터 언제나 할아버지가 자신의 길을 가르쳐주었고, 길을 인도해주었다.
지구에 와서도 다를 바는 없었다.
할아버지가 닦아놓은 길 위를 걸어 나아갔을 뿐이었다.
‘지금껏…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했던 건가?’
아니, 사소한 것은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커다란 결정 그 자체는 할아버지가 세워둔 방향을 그대로 쫓아갔을 뿐이다.
“이곳은 나의 시간대가 아니다.”
이건이 말했다.
“내가 너를 위해 안배해둔 것은 더 이상 없다.”
할아버지가 닦아놓은 길의 끝.
그것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독립하거라.”
자립.
이제 더 이상 자신에게 길을 안내해 줄 사람은 없었다.
이제는 오롯이 자신이 결정하고 나아가야만 한다.
그늘에서 벗어나라는 말.
파앗.
할아버지라는 족쇄에 묶여있던 자신이 풀려난 순간이었다.
“후.”
다시금 숨을 내뱉는다.
눈을 감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렇게.
“시간대가 바뀌었다고 한들, 큰 줄기는 다르지 않을 거에요. 결국, 할아버지가 여기 있고 저 또한 여기 있어요.”
길을 찾는다.
“일단 이 시간대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부터 알아야겠어요.”
“그래.”
이건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하는 거다.”
파앗!
둘의 신형이 또다시 사라졌다.
* * *
주용의 기운을 좇아 공간이동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다음 이정기가 좇은 기운은 당연하게도.
‘할머니.’
주용이 그토록 집착하던 할머니였다.
녀석은 시간을 역행한 것부터 모든 것이 할머니를 갖기 위함이었고 그렇다면 이 시간대에서 주용을 찾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 역시 할머니를 찾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할머니 또한 느낄 수 없어.’
할머니의 기운 또한 느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자신이 찾아야 하는 상대는 분명했다.
파앗!
벼락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이정기와 이건.
그의 앞에 서 있는 것은.
“이진석 헌터.”
이진석이었다.
어느 시간대에서도 자신에게 믿음을 주었던 그.
지금의 시간대에 어떤 변화가 있다고 하나 그와 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
자신의 목소리에 반응하여 시선을 돌리는 남자.
“대체….”
그의 얼굴에 가득한 흉터, 드러난 상반신에 드러나 있는 수많은 흉터.
하지만 이정기의 눈길을 가장 끈 것은 그의 두 눈동자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공허로 가득하여 다 타버린 재와 같은 두 눈.
그러나 곧 그의 두 눈에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그의 행동은 쾌속했고 망설임이 없었다.
캉!
“무슨 짓입니까!”
이진석이 자신들을 발견하고 한 것은 곧장 검을 뽑아 이건을 향해 달려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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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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