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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손자-269화 (269/284)

제11권 19화

269

말도 안 되는 전투였다.

미래의, 왕들을 상대할 수 있던 이건이 아닌 아직 올림포스에조차 가지 않은 이건.

그의 전력은 결코 자신을 상대할 수 없어야만 했다.

그러나.

“크윽!”

이건은 그런 자신을 상대한 것으로 모자라 대등하게 싸우고 있었다.

아무리 이정기와의 싸움에서 많은 힘을 소모했다고 하나 불가능한 일.

하지만 이건이라는 작자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미래의 가능성.’

그것을 이끌어온 것.

이건은 그런 자다.

‘상대에 따라 강해지는 존재.’

상대하면 할수록 강해지고, 배우고 익히는 존재.

신음하는 주용.

그의 입가가.

“그렇기에 여기서 널 끝낼 수 있음에 감사한다.”

올라가 있었다.

서로 교차되어 서 있는 둘.

주용의 어깨에는 커다란 상처가 나 있었지만.

스륵.

시간을 다스리는 그에게 그 정도 상처는 눈 깜빡할 사이 회복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명심해.”

꼿꼿이 서 주용을 바라보고 있는 이건의 가슴팍에 시침과 같은 기다란 창이 꽂혀 있었다.

가슴팍에서 서서히 빛나는 황금빛.

“네가 정말 명희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면, 명희가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해보는 게 좋을 거다.”

“끝까지 잘난 척이군.”

주용이 멀쩡한 모습으로 서 이건을 향해 말했다.

“그녀에 대해서는 너보다 내가 더 잘 안다. 내가 만일 그녀에 대한 마음을 확실히 했다면 그녀가 그리워하는 자는 너가 아닌 내가 됐을 거다.”

“그런가.”

“타이밍이 안 맞았을 뿐이야.”

화아악!

이건의 가슴팍에서 솟구치는 빛.

“내가 하는 것은 내가 놓쳐버린 타이밍을 잡는 것뿐이다.”

빛무리 속에 이건의 모습이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제 곧, 네 존재는 나의 것이 된다.”

이건이 가진 힘이, 미래가 자신의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자신을 막을 것은 없다.

‘너도 마찬가지다.’

이 힘을 준 주인, 크로노스를 향한 말.

주용은 그 사이 숨겨두었던 최명희를 꺼내 그녀에게 손을 펼쳤다.

“이제 끝이야.”

오랜 시간 그토록 바라던 일.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것, 아니 원했던 유일한 것.’

그것을 가질 수 있는 시간.

주용은 눈을 감은 채 온몸을 시간에 내던졌다.

그리고 그때.

파앗!

주용의 뒤편에 벼락이 내리쳤다.

“……!”

급히 고개를 돌려 본 것은 이정기.

“네가 어떻게!”

시간에 침식당해 그대로 스러졌어야 할 존재가 그곳에 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이건은 시간에 먹혀들었고, 또 자신의 시간은 최명희마저 먹어치울 것이다.

녀석이 시간의 침식에 벗어났다고 하나 더 이상 녀석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를 완성한 순간.

‘너는 사라진다.’

이정기라는 존재는 사라져 없어져 버릴 것이니까.

벼락처럼 움직이려는 이정기.

하지만 이정기는 곧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너는….”

시간의 빛 속에서 부서지고 있는 이건, 그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씨익.

이정기를 바라본 이건이 웃어 보였다.

“가거라!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았다는 듯 소리치는 이건의 모습.

이정기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타앗!

벼락과 같은 속도로 주용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그를 막는다.

녀석을 막을 수만 있다면.

‘다 되돌릴 수 있어!’

새롭게 얻은 힘.

마력도 넥타도 아닌, 그 두 가지의 중심에 있는 힘.

볼텍스를 이루는 새로운 힘을 주먹에 두른 채.

쿠우우웅!

대기를 소멸시키며 이정기는 주먹을 내뻗었다.

공간을 찢어발기고, 시간을 쫓아 이정기가 주용에게 닿으려던 순간.

씨익.

그의 웃는 낯이 보였다.

그리고 천천히 움직이는 그의 입.

‘끝. 이. 다.’

환한 빛무리가….

화아아아아아악!

세상에 퍼져나갔다.

* * *

콰지지지직.

일직선 위의 모든 것이 분쇄되어 가루가 되었다.

커다란 지렁이가 지나간 듯 남은 땅의 흔적과, 갈라진 구름.

그 속에 이정기가 서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이정기.

쿠웅.

새파란 하늘 위에 거대한 시계가 움직이고 있었다.

딸각.

시침이 움직이는 순간.

쿠우우우웅!

세상이 부서질 듯 흔들렸다.

착각이 아니었다.

쿠우웅!

또 한 번의 진동과 함께 하늘이….

“무너지고 있어.”

비유나 은유 따위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하늘이 황금빛으로 조각나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시간…!”

주용이 사라지고 마침내 녀석이 원하는 시간대를 얻어 시간이 무너져내리는 것이었다.

“시간….”

이정기의 얼굴이 안타깝게 일그러졌다.

결국, 자신은 시간이라는 벽은 넘지 못했다.

티탄의 왕과 동등한, 아니 그 이상 가는 힘을 얻었다고 하지만 그 권능에 대한 활용에 있어서는 진짜 티탄의 왕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었다.

패배감.

그 감정이 고개를 들려 했을 때.

콰직.

이정기는 입술을 깨물었다.

패배감 따위 다시는 느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 많은 것을 걸고, 많은 것을 이루지 않았나.

무엇보다.

주르륵.

약속했다.

꽉 쥔 주먹에서 흘러내리는 핏물.

‘녀석에게 합당한 대가를 받아내기로, 고통스러운 죽음을 맛보여주기로.’

그렇기에 포기할 수 없다.

이정기가 생각한 것은.

“할아버지!”

이건이었다.

크로노스에게 존재를 빼앗겼을 이건.

그를 되돌린다면, 주용이 원하는 시간대는 완성되지 않고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지 않는다.

‘어떻게?’

방법은.

스윽.

있다.

급히 고개를 돌린 이정기.

이정기의 눈이 향하는 곳에 시간의 빛이 잔류하며 스러지고 있었다.

그 속에 아직 남아있는 잿더미, 그것이 이건이었다.

꽉 쥔 주먹, 그 위를 감싸고 있는 검은색 건틀렛, 그리고 관리자가 시간에 침식당하기 전에 했던 말이 기억났다.

‘이건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 그의 모든 것을 잔류시켰습니다.’

그것이 자신이 보았던 칠흑색 구였다.

또한, 관리자는 말했다.

‘이건, 그와 닿는 순간….’

파앗!

“할아버지는 깨어날 거라고.”

시간의 빛이 잔류하고 있는, 이건의 잿더미가 남아있는 그곳을 향해 이정기가 손을 내뻗었다.

쿠우웅!

그 사이에도 시간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콰지지직!

시간의 빛을 이겨내며 빛 사이에 손을 넣은 이정기가 잿더미와 닿는 순간이었다.

꿈틀.

이정기의 오른손에 감겨있던 칠흑색의 건틀렛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크으윽!”

오른손을 타고 흐르는 거대한 힘이 역류하며 거대한 고통을 선사했지만, 이 정도 고통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껏 자신이 버텨온 고통이 이보다 몇 배는 더하지 않은가.

아버지 어머니가 자신의 눈앞에서 스러지는 것을 보는 것이 몇 배는 더하지 않은가.

할머니, 할아버지….

‘또다시 혼자가 되는 것은 싫어.’

혼자가 되는 고통이 지금보다 수백, 수천 배는 고통스러운 것이다.

꽈악!

이런 고통 따위 언제든지 참을 수 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

예전도 지금도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할아버지는….

‘최강….’

언제나 자신의 버팀목이 되어주시지 않는가.

그 순간.

촤르르르르-!

이정기의 검은색 건틀렛이 풀리며 형체를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다시금 구의 형태가 되어버린 할아버지의 기운, 그것은 시간의 빛마저 흡수해나가기 시작했다.

환한 빛무리와 함께.

쿠우웅!

무너져내리던 하늘이 멈추었다.

하늘뿐만이 아니다.

세상 모든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이정기는 웃을 수 있었다.

“기다렸느냐?”

할아버지가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 * *

“할아버지!”

관리자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정기는 주용이 빼앗던 시간 속에 잔류한 이건의 잔해와 접촉했고, 그것이 본래의 시간대에 남겨두었던 할아버지의 힘과 반응했다.

그 결과 할아버지는 깨어났다.

“욘석, 늦었구나.”

“죄송해요.”

진작 이렇게 해야 했었는데.

“아니다.”

이건은 이정기를 향해 따뜻한 목소리를 내었다.

“모두 보았다.”

남겨둔 힘을 통해 이건은 잠자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정기를 통해 모든 것을 보고 느끼고 있었다.

이정기가 느꼈던 감정마저도.

“덕분에 나도 즐거웠구나. 오랜만에….”

이건의 얼굴 또한 이정기와 다르지 않았다.

“강이와 영아를 보았고, 과거의 네 할미를 보았으니 말이야.”

할아버지 또한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자신에게 가족이듯, 할아버지에게 또한 가족인 것이었다.

주용은 그런 우리에게 가족을 빼앗은 존재.

“혼내주러 가자.”

이건이 웃으며 말했다.

“네. 당하고만 있을 순 없죠.”

할아버지가 있다는 느낌, 그 느낌 하나만으로 마음이 달라졌다.

“방법은 있느냐?”

녀석은 이미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다.

그 반향으로 시간대가 무너져내리고 이정기는 녀석의 시간대를 쫓지 못한 채 이곳에 고립되었다.

이대로라면 자신은 물론 깨어난 할아버지도 이 시간대에 갇혀 녀석이 말한 대로 존재의 소멸을 기다려야만 할 입장이었다.

시간을 다스리는 권능이 없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또한, 시간을 다스린다 한들 수없이 많은 시간대 속에서 녀석이 있을 곳을 찾는다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있습니다.”

이정기는 당당하게 말했다.

“녀석은 할아버지의 시간을 빼앗아 그 존재를 빼앗았습니다. 원래라면 녀석은 목적을 달성하고 원하는 시간대를 완성했을 것입니다.”

원래라면….

“녀석의 계획이 비틀어졌다는 소리구나.”

“맞습니다.”

“그 이유는.”

씨익.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겠지.”

녀석은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시간이 역행하던 그 순간, 할아버지가 스스로의 능력으로 모든 힘을 남겨놓았을 것이라고는 녀석은 결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덕에 할아버지는 존재를 잃지 않았다.

즉.

‘미래를 빼앗기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이 자리에 나타난 순간.

“녀석은 결코 원하는 시간대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꼬여버렸을 터.

“그렇다고 해서 녀석을 쫓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시간, 그리고 녀석이 있는 시간대를 특정할 수 없다면 무엇도 할 수 없다.”

“녀석이 있는 시간대는 찾을 수 있습니다.”

눈앞에 할아버지.

그가 바로 녀석과 이어질 단말이다.

할아버지의 시간을 빼앗은 주용, 그러나 할아버지의 존재는 이 자리에 남아있었고.

틱, 틱.

이정기의 눈에는 할아버지의 가슴팍에 새겨진 황금빛의 시계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녀석을 쫓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미 몇 번이나 주용과, 시간의 힘과 맞붙은 이정기.

그는 이제 완전히 깨달을 수 있었다.

관리자가 말했던 것.

‘크로노스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쥬피터 뿐이었습니다.’

크로노스의 대적자가 왜 쥬피터였는지.

“가속, 그것으로 시간을 좇을 수 있습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주 소 | 경기도 하남시 조정대로 35 하우스DL타워 F915-1(9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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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 스 | 02-6442-7919

홈페이지 | www.osmedia.kr

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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