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268화 (268/284)

제11권 18화

268

“감히-!”

이정기가 감추었던 분노를 다시 일깨우며 주용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정기야.”

들려오는 목소리.

파앗!

이정기는 더 이상 손을 내뻗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찰나의 망설임은 왕급의 싸움에서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우웅.

초침처럼 생긴 황금빛 창이 이정기의 어깻죽지를 꿰뚫었다.

“크윽!”

찔린 상처부터 어깨 전체가 썩어들어가는 느낌.

‘독?’

그것이 독인가 생각이 들긴 했지만, 독이라면 결코 자신에게 위해를 입힐 수 없었다.

최고이자 최악, 최강의 독인 티시포네의 주인인 자신이었기에 어떤 독이든 흡수하고 해독할 수 있다.

‘이건 독이 아니야.’

이 힘은….

“노화다. 가디언이라 한들, 노화가 없는 것은 아니지. 생명은 시간 앞에 평등하다.”

웃고 있는 녀석.

이정기는 다시금 주용과 거리를 벌렸다.

파르르.

이정기의 어깨가, 두 동공이 흔들렸다.

“무슨 짓을 한 거냐…!”

녀석의 얼굴을 보며 이정기는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

녀석이 하고 있는 얼굴은 다름 아닌 유영아의 것이었으니까.

헌터들 중 모습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헌터들도 많았고, 가디언급의 능력자라면 마력과 넥타를 이용해 외형을 바꾸는 것쯤은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얄팍한 술수를 모를 이정기가 아니었다.

지금 주용은 단순히 모습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너…!”

저건 진짜 어머니다.

물론 입을 열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주용이지만, 그 존재가 유영아임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어떻게….’

저런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이정기가 그것을 고민하는 와중에도.

“크윽.”

상처의 악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었다.

시간이라는 힘 앞에 어떤 저항도 무의미한 상황.

저벅.

녀석은 어머니의 얼굴로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

이정기는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녀석이 가진 비밀.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를 노렸던 이유.’

시간을 빼앗는 것.

그것은.

“존재… 를 빼앗는 것.”

인간이든 무엇이든 어떤 생명이든 공통점이 있다.

녀석의 말마따나 시간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

존재를 이루는 것은 결국….

“정답이다. 시간이 그 존재를 증명한다.”

주용은 웃고 있었다.

“나는 그 시간을 빼앗아 존재를 빼앗을 수 있지.”

씨익.

웃고 있는 녀석의 얼굴에 황금의 빛이 서렸다.

뒤이어 나타난 것은.

“개자식이…!”

이번엔 아버지의 얼굴, 이강의 얼굴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또한, 그 존재들을, 존재와 연관이 깊은 시간들을 빼앗음으로써 내가 바라는 존재의 시간 축 전체에 관여할 수 있다.”

가설이 맞았다.

시간 축은 수십, 수백, 가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존재한다.

그 시간들의 역사와 결과가 모두 다른 것이었다.

즉.

‘녀석이 하나의 시간대를 바꾼다고 미래가 변하는 것이 아니다.’

녀석이 바라는 시간대로 가려면 그가 바꾸고 싶은 존재의 주변인들의 시간까지 모두 빼앗아야 한다는 것.

그렇기에 녀석은 가장 만만한 상대로 자신의 부모님을 노렸고.

“이 시간대에서 이미 나의 자식들의 시간을 빼앗았다. 그리고 이성의 간부들의 시간대를 빼앗을 참이지.”

“크윽!”

“마지막으로.”

아득.

녀석의 입에서 이빨이 갈리는 소리가 났다.

“이건의 시간을 빼앗을 거다. 그리고 마지막….”

녀석의 시선이 향한 것은 최명희.

그녀의 시간을 빼앗는 것은 마지막으로, 녀석은 목적을 달성할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주용이 원하는 시간대.

‘할머니와 녀석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시간대.’

그곳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했다.

끔찍하기 그지없는 일.

그리고 만일 녀석이 원하는 시간대에 도달하게 된다면.

“너는 없을 것이다. 애시당초….”

씨익.

“그녀와 이건이 이어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

고정되어버린 시간이 중심이 되어 이정기는 존재조차 하지 않는 인물이 될 것이다.

화아아악!

녀석이 아까 이정기를 찔렀던 창보다 더욱 커다란 창을 꺼내 천장을 향해 들어 올렸다.

쏟아지는 빛무리가 이성의 간부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크으윽!”

이정기는 그것을 막고 싶어 했으나, 몸을 침범한 시간이 그것을 가만두지 않았다.

“널 이 자리에서 죽일 수 없는 것이 한이다. 이미 완성되어버린 시간이기에 내가 건들 수가 없구나.”

녀석은 승리를 장담하는 듯 그렇게 말하고선.

꽈악.

서 있는 최명희의 어깨를 붙잡았다.

얼음처럼 굳어져 있는 최명희.

녀석은 이미 할머니의 시간을 동결시킨 것이었다.

“그대로 썩어들어가 모든 것을 지켜보며 네 존재가 지워지는 것을 기다리거라.”

녀석이 남긴 말.

그와 함께.

화아아아악!

녀석의 신형이 할머니와 함께 사라졌다.

홀로 남은 이정기.

“으아아아아악!”

온몸을 잠식해 들어가는 시간이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고 있었다.

* * *

완성된 시간.

그렇기에 이정기는 크로노스의 권능, 시간에 대한 면역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것은 시간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뿐.

촤르르르르.

자신의 몸을 침범한 시곗바늘이 끊임없이 도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녀석의 말처럼 된다.

온 몸의 시간이 가속되고 있었다.

세포는 노화하고, 넥타와 마력은 흩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이 움직임조차 마비시키고 있었다.

‘안 돼….’

벗어나야 한다.

녀석이 어디로 향했을지는 뻔하다.

“할아… 버지….”

이건.

그를 노리고 있을 터.

원래라면 아무리 왕이라 한들, 할아버지는 제법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

이 시간대에서 할아버지가 최강이라 할지라도 훗날의 할아버지에 비빌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할아버지는 녀석에게 시간을 빼앗기고, 존재를 잃는다.

그렇게 되면.

‘나는 사라진다.’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

아버지는 태어나지조차 않은 존재가 될 수도 있었다.

세상은?

지구는 멀쩡할까?

오히려 녀석이 원하는 시간대 속에서 지구는 너무도 멀쩡한 모습으로 존재할지 몰랐다.

그러나.

“그딴 거… 알 게 뭐야….”

그것은 자신이 바라는 미래가 아니다.

우습게 말해 지구를 구한다고 했었던 것.

그 이유는 지구가 자신의 고향이라서 거나, 세계를 지켜야 한다는 정의감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소중한 이들이 살아있는 땅이기에, 할아버지와 부모님이 태어나 자란 곳이기에, 할머니가 원하는 것이기에.

그러니 녀석이 원하는 시간대에서 지구가 안전하다고 할지언정 그따위 것은 자신과 전혀 상관없었다.

‘내가 바라는 건….’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시간.

“크아아아아악-!”

이정기가 마치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몸을 일으켰다.

촤르르르.

왼손에 감겨있던 쇠사슬이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풀려진 쇠사슬은.

쩌정!

기이한 울림과 함께 꼿꼿이 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벼… 락.”

쥬피터 할아버지의 신기, 벼락.

그것이 시간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하아, 하아….”

시간을 빨아들이며 벼락이 더욱 밝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홀로 허공에 떠 있는 그것.

이정기는 벼락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파짓. 파지짓.

마치 주인이 잡아주길 기다렸다는 듯 반기는 벼락.

이정기가 그것에 손을 댄 순간.

쩌저저저저정!

그것은 뇌전이 되었다.

“하아!”

몸 안을 침범했던 시간이 벼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죽을 것만 같이 느껴지던 고통이 자취를 감추었고, 벼락은 서서히 그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파스슷.

시간을 흡수한 대가로 스러져가는 쇠사슬.

어느새 남아있는 것은 너무나 짧아져버린 쇠사슬뿐이었다.

촤르르.

녀석은 드디어 제 사명을 다했다는 듯, 다시금 이정기의 왼손에 감겨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 빛이 꺼졌을 때.

“고마워.”

벼락은 새로운 형태로,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건틀렛.

빛나는 뇌전을 담은 건틀렛.

이정기가 다음에 할 행동은 너무나도 뻔한 것이었다.

파앗!

녀석을 잡는다.

* * *

짧게 자른 흑발.

그 생김새는 미남자라는 말이 그를 위해 태어난 듯 찬란했다.

“하아. 하아.”

하지만 남자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온 몸에 상처를 내보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은.

씨익.

그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듯했다.

“정말이지….”

그와 대척점에 서 있는 자, 주용이 본래의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증오스럽다 못해 징그럽구나.”

“네 놈 소개 하는 거냐?”

“아직 겨우 한낱 인간에 불과할진대….”

꽈악.

주용이 시침을 쥐며 말했다.

“이만치나 버티다니.”

“네 움직임이 굼뜬 걸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굼뜨다고?

주용은 하마터면 헛웃음을 토해낼 뻔했다.

자신이 다룰 수 있는 것은 시간이다.

시간을 가속하면, 마치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움직일 수 있고 피할 수 없는 공격을 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쒜에엑!

시침은 녀석에게 아슬아슬하게 닿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껏 녀석에게 적중한 것은.

“후.”

단 한 번의 공격 뿐.

녀석의 갑옷에 닿았던 첫 공격을 제외하곤 이건에게 그 어떤 공격도 닿지 못하고 있었다.

저것이다.

저것이 녀석을 무신으로 만들어준 능력이다.

‘본능.’

아니 그것을 넘어선 어떠한 감각.

“초감각….”

녀석이 자신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이유.

미래를 예상하고, 그 미래의 공격을 피해낼 수 있는 것.

그것으로 녀석은 계속해서 자신의 공격을 피해내고 있는 것이었다.

시간.

까득.

이 순간에도 녀석은 자신이라는 강자를 상대하며 성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끝이다.”

주용이 더욱 강력하게 시침을 쥐었다.

이정기와의 전투가 아니었다면 이미 녀석은 자신에게 시간을 빼앗겼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화아악.

공간에 이미 자신의 시간이 내리깔리고 있었다.

조금 더 있으면 시간의 영역이 완성될 것이고, 녀석의 시간을 빼앗을 수 있을 것이다.

“명희 때문이냐?”

“……!”

“네 놈이 그래서 안 된다는 거다.”

“네 놈!”

“갖고 싶은 여자가 있으면 그렇게 억지로 취해서 될 것 같으냐? 어느 순간 네 놈은 명희를 구속하려 들더구나.”

“닥쳐라!”

“그 여자는.”

씨익.

“그렇게 가질 수 있는 여자가 아니야.”

이건이 주먹을 쥐며 말했다.

“세상을 위해, 미래를 위해 제 모든 걸 버린 여자다. 그 선택을 존중해주지 못한다면 그 여자의 마음은 결코 얻을 수 없을 거다.”

“개소리!”

주용이 결국 화를 참지 못한 채 소리쳤다.

“그 끝이 결국 스스로의 파멸일지라도 말이냐! 제 인생을 포기하는 미래가 무슨 의미가 있다고!”

분노로 생겨난 찰나의 틈.

파앗!

이건의 신형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런 여자니까.”

푸욱!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주 소 | 경기도 하남시 조정대로 35 하우스DL타워 F915-1(9층)

대표전화 | 070-8233-6450

팩 스 | 02-6442-7919

홈페이지 | www.osmedia.kr

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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