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권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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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격.
과거 이성 공격대를 곤경에 빠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부상을 입혔던 녀석을 쓰러트리는데 일격이면 충분했다.
“일격…!”
이강과 유영아, 그들의 몸을 떨리게 할 정도의 힘을 지닌 몬스터를 처리하는데 겨우 한 번의 휘두름이면 족했다.
“……!”
이강과 유영아는 이정기가 심상치 않은 강자임을 알고 있었으나 이 정도라고는 생각조차 못 한 듯했다.
당연할 것이다.
이 시기, 저 정도 급의 보스 몬스터를 일격에 쓰러트릴 수 있는 헌터는….
‘단언컨대 없다.’
헌데 이정기는 그런 보스 몬스터를 일격에 쓰러트린 것이었다.
파스스.
흩어져 사라지는 보스 몬스터.
이정기는 천천히 녀석을 등진 채 이강과 유영아를 보았다.
경악하고 있는 그들은 이정기를 향해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둘의 표정엔 다른 것이 보이기도 했다.
‘혼란.’
혼란스러움에 동공을 떨고 있는 그들.
“그 힘은….”
그들이 진정 놀란 것은 이정기가 일격에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렸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 힘이 어떻게 발휘되었으며, 어떻게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정기 헌터.”
이강이 조심스레 이정기를 부르며 말했다.
“어떻게….”
그는 스스로의 혼란스러움을 가라앉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듯했다.
“아버지와 무슨 관계이십니까?”
말을 놓았던 그가 다시금 말을 높이고 있었다.
이정기가 사용했던 힘.
“어떻게 볼텍스를 사용할 수 있는 겁니까?”
이정기가 쓴 힘이 볼텍스였기 때문이었다.
꽈악.
이정기는 다시 주먹을 쥐었다.
‘볼텍스를 사용하지 않아도 됐다.’
보스 몬스터를 일격에 처리할 수 있는 수단 따위 수십, 수백 가지도 더 되었다.
그럼에도.
“대답해주실 수 없겠습니까?”
이정기는 볼텍스를 사용했다.
실수는 아니었다.
‘나는….’
속마음 깊숙이 계속해서 갈등해오던 것.
과거와 미래, 시간이라는 것에 대한 갈등 때문에 어렵게 생각했던 것.
그럼에도.
‘아버지, 어머니.’
꼭 한 번, 완전히 살아있는 모습일 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그렇기에 이정기는 일부러 볼텍스를 보여주었다.
이 선택으로 인해 미래가 바뀐다면 그마저도 감당하리라.
아무것도 갖지 못했던 생애.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일.
‘이젠 참을 수 없어.’
그전까진 큰 것을 위해 희생을 하며 살아왔었다.
꾹 누르고 감정을 죽이며 숨겼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졌다.
‘나.’
내가 중요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더욱 중요하다.
욕심이라 욕한다면 그마저도 받아들일 것이다.
‘할아버지는 무어라 할까.’
이 일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준다면 할아버지는 자신을 꾸짖을까?
‘할머니는….’
할머니는 이 일에 대해 어찌 생각할까.
그럼에도 이정기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꽈악.
주먹을 꽉 쥔 채.
“저는…!”
마침내 진실을 밝히려던 순간이었다.
“……!”
“……!”
“……!”
세 명의 시선이 동시에 움직였다.
저 멀리, 게이트의 출입구 쪽.
이성의 공격대원들이 후퇴하여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을 그곳.
쿠콰아아앙!
그곳에 빛기둥이 내리치고 있었다.
“이진석 헌터!”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이정기였다.
* * *
파아앙!
파공성.
움직이는 것만으로 공간을 찢고 돌풍을 일으키는 충격파가 퍼졌다.
이정기는 잠시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움직일 이유가 없다.
“믿으셔야 합니다.”
순식간에 이강과 유영아의 앞에 나타나 그렇게 말했다.
이미 게이트를 공략하며 며칠이나 움직였던 거리, 빠르게 달려간다 해도 시간이 걸릴뿐더러 이강과 유영아는 자신을 따라잡는 데 한창이나 걸릴 것이다.
“그런….”
대답을 제대로 듣지 못한 이강은 잠시 망설이는 듯했으나.
“그럴게요.”
오히려 유영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정기를 향해 긍정의 뜻을 보냈다.
이강 또한 그런 유영아를 따라 수락하자.
타앗.
이정기는 그들의 어깨에 각각 한 손씩 얹었다.
끔뻑.
눈을 감고 뜬 순간.
화아아아아아악!
어느새 그들은 빛기둥이 내리치고 있는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부상자들을 먼저 엄호해!”
이정기가 목소리를 듣자마자 한 것은 안도였다.
“이진석 팀장!”
이강 또한 그를 발견해 소리쳤다.
부상자들을 챙기며 심상치 않은 사태에서 벗어나고 하고 있는 이진석.
그는 아직 어린 헌터에 불과했지만 팀장급으로서의 면모를 확연히 보여주고 있었다.
“움직여!”
급히 움직이고 있는 이성의 헌터들.
화아아악!
그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는 빛기둥은 점차 그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었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꼭 얘기해줘야 한다!”
말을 높였던 이강이 다시금 이정기를 향해 말을 낮추며 부상자들을 향해 달려가려 하고 있었다.
유영아 또한 마찬가지.
이정기는.
“……!”
본능적으로 두 눈을 크게 뜬 채 두 사람을 안고 뒤로 물러섰다.
“무슨 짓을!”
이강과 유영아가 당황하기도 전.
“빠알… 리….”
팀원들을 통솔하던 이진석의 목소리가 마치 느리게 재생되듯 늘어지기 시작했다.
“으아…, 아아아….”
비명 소리마저 늘어지게 들리더니.
뚝.
그들의 움직임이 멈춰버렸다.
“……!”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직 변화는 끝이 아니었으니.
찌익, 찌이이익.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 그와 함께 모든 것이 되감게 되듯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이강이 이정기의 팔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더욱 굳어져버린 이정기의 얼굴.
이강은 당장이라도 길드원들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가려 했으나, 이정기는 그의 팔을 다시 잡은 채 놔주지 않았다.
“말해줘! 알고 있는 거지!”
이정기를 향한 이강의 부르짖음.
“뭘 숨기는 거야! 말해주지 않는다면!”
화악!
이강 또한 온 마력을 개방하며 말했다.
“이 팔이라도 놔! 구해야 해! 구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정기는 그의 팔을 놔줄 수 없었다.
주륵.
이정기의 입가에 흐르는 피.
입술을 어찌나 세게 물었는지 입술이 터지며 흘러나오는 피였다.
그것을 본 이강은 그제야 조금 이성을 찾을 수 있었다.
이정기가 자신만큼이나 분노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었다.
“네가 왜….”
“제게도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정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정기가 이강과 유영아의 팔을 놓았다.
그 대신 이정기가 그들의 앞으로 나아갔다.
싸늘하게 가라앉은 눈.
파, 파팟.
이정기의 주변으로 공기가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분노한 이정기의 감정에 맞추어 그의 기운이 제대로 흘러나오며 공기를 가열시키는 것이었다.
아까 전 보스 몬스터를 일격에 쓰러트린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힘.
“넌….”
그 힘에 이강과 유영아는 못 박힌 인형처럼 아무런 움직임조차 보일 수 없었다.
이정기가 빛기둥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있다.
‘시간.’
되감기되 듯 움직이는 헌터들.
파스스.
마침내 재가 되어 사라지는 그들.
“크로노스….”
시간을 되돌린다는 그 티탄.
녀석의 힘이 분명한 상황.
이정기는 양 주먹에 힘을 실어 빛기둥을 노려보았다.
분노의 감정을 담은 채 주먹을 내뻗으려는 순간.
파아아아아앗!
이정기의 등 뒤에 굉음이 울려 퍼졌다.
“…….”
이정기의 동공이 곧이어 초점을 잃은 채 흐려졌다.
양 주먹에 맴돌았던 기운이 사라졌고, 몸은 물먹은 듯 무거워졌다.
그런 상태로 이정기는 고개를 돌렸다.
화아아아악!
이진석과 이성 길드원들을 먹어치운 빛기둥.
그것이 똑같이….
“아… 안… 돼….”
이강과 유영아를 향해 내리치고 있었다.
“안 돼!”
느낄 수 없었다.
온 감각을 일깨워, 하나의 기척조차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럼에도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기척.
그 기척이 결국.
“아버지! 어머니!”
이강과 유영아를 집어삼킨 것이었다.
당장 그 빛기둥으로 들어가려는 이정기.
파스슷!
빛기둥과 닿자 이정기의 육체마저 흩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상관없다는 듯 이정기는 온 힘을 폭발시키며 그 속에 몸을 내던졌다.
“아버지! 어머니!”
다시 한 번 그들을 부르짖었다.
언제나 말하고 싶었던 말, 이제야 다시 제대로 소리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끄으으으윽!”
이정기의 손은 그들에게 닿지 못했다.
나아가던 손이 되감기되 듯, 다시 원래의 자리로.
이정기의 육체 또한 빛기둥의 끝부분에 걸쳐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강과 유영아 그들의 육체 또한 바스라지듯 사라지고 있었다.
그 속에서 입을 여는 이강.
“그랬…구나….”
그는 특유의 미소를 지은 채 이정기를 따뜻이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겨우 호칭일 뿐인 단어.
믿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순간 느껴졌던 진심이, 그들이 느꼈던 위화감이….
“우리의….”
겨우 호칭에 불과할 뿐인 그 단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어 준 것이었다.
“네가 정말….”
유영아 또한 이정기를 보며 눈빛을 흔들고 있었다.
“안 돼! 이제야 만났는데! 아버지… 어머니!”
이정기는 안간힘을 써 그들을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라돈을 삼켜 새로운 힘을 얻었다면 무얼하나.
“끄아아아아악!”
이 힘에는 저항하지 못한다는 듯 이정기는 밀려나고 있었다.
씨익.
이강의 미소.
주륵.
유영아의 눈물.
그리고.
파스슷.
그 둘은 그렇게 사라져 재가 되어 흩날렸다.
파앗!
떨어져 내리던 빛기둥이 모습을 감추었다.
“…….”
이정기 또한 그 자리에 타버린 재가 된 듯 멀뚱히 서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는 이정기.
그의 두 동공은 회색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네 녀석의 존재마저 지워버리려 했는데, 아깝군.”
그의 앞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올라갔던 시선이 내려앉았을 때.
“뭐, 상관없다. 어차피 이 일이 끝나면 네 그 미쳐버린 힘도 사라지겠지.”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남자가 이정기를 향해 조소를 머금고 있었다.
생각?
그딴 건 필요 없다.
콰악!
이정기는 녀석의 목을 쥔 채.
뚜둑.
그대로 꺾어버렸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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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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