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권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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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석 씨 맞습니까?”
담담한 말투.
그러나 노련한 헌터들은 눈치챌 수 있었다.
‘떨리고 있어?’
물어오는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음을.
“절… 아십니까?”
팀장 이진석이 조심스레 말했다.
상대는 게이트에 들어온 것도 확인하지 못한 미확인 헌터.
거기 더해.
덜덜덜.
그에게서 은연중 뿜어져 나오는 기운만으로 최고의 헌터들이라 불리는 자신들의 온몸이 떨려오고 있었다.
“……….”
이진석의 말에도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스윽.
노련한 헌터들이다.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헌터들.
그들은 미확인 헌터를 천천히 둘러싸면서도 그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공대장님이 오시면….’
공대장이자 길드장인 그가 온다면 상황이 변할까?
‘아니야.’
오히려 더욱 위험한 상황.
‘내가 확인해야 돼.’
자칫 잘못했다간 공대장마저 위험할 수 있는 상황.
이진석은 침을 꼴깍 삼킨 채 다시 한 번 말했다.
“저를 아시는 겁니까? 실례지만 저는 헌터분이 누구신지 기억나질 않는군요.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진석의 말을 끊고 마침내 대답이 들려왔다.
“은혜…?”
날카롭게 섰던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졌다.
적어도 미확인 헌터가 자신들에게 적의를 가진 것은 아닌 듯한 말.
그럼에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은 헌터들이 말하는 은혜의 뜻이 다양하기 때문이었다.
“은혜라면…?”
“길 잃었던 저에게 길을 안내해주었습니다.”
“……?”
“혼자서 버틸 수 없을 것 같았을 때 제 편이 되어주셨습니다.”
천천히, 더욱 천천히.
“적의는 없습니다. 그저 도움을 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그제야 헌터들의 경계가 크게 누그러졌다.
다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제겐 기억이 없지만, 그렇게 말씀하신다니 알겠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곳에 들어오신 겁니까? 철저한 통제가 있어 외부인은 출입하지 못하셨을 텐데.”
게이트를 통제하는 게 누구던가.
다름 아닌 이성이었다.
이성의 통제를 뚫고 들어온다?
‘이 남자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가능과 불가능의 여부를 떠나 그 후를 생각한다면 누구도 결코 하지 않을 일이었다.
사내는 잠시 말이 없었다.
잠시 후.
“어떤 폭풍에 휘말렸습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이곳이었고, 기척이 나타나 다가와 보니 이진석 헌터가 계셨습니다.”
“허.”
헌터들은 긴장감마저 잊은 채 혀를 찼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도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다.
게이트에서 별의별 일들이 발생한다고 하지만, 우연찮게 폭풍에 휘말렸고, 그 폭풍이 마침 이성이 공략 중인 게이트에, 그것도 은혜 입은 이진석의 앞에 나타났다고?
‘믿을 걸 믿으라 해야지.’
거짓이라는 것쯤은 쉽게 간파할 수 있다.
그러나 헌터들은 그럼에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고.
‘적의가 없는 것만큼은….’
‘진짜야.’
이정기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은 확인했기에 더 나설 수도 없는 것이었다.
결국.
‘팀장.’
이진석을 향하는 눈.
모든 것은 팀장의 판단에 맡길 뿐이었다.
만일 이진석이 승산 없는 싸움에 공격을 명령하더라도.
꿀꺽.
팀원들은 해야 한다.
팀장의 선택이라면 그것이 팀, 그것을 넘어서 공격대에 큰 역할을 한다는 뜻일 테니까.
이성이다.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 자부하는 엘리트 헌터 집단.
“…….”
그럼에도 이진석이 쉬이 답을 꺼내지 못하고 있을 때.
“…….!”
사내의 커다란 눈이 더욱 크게 확장되었다.
“……?”
무언가에 크게 놀란 듯 말뚝처럼 박혀 있는 사내.
이진석의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공대장님! 부 공대장님!”
자신들의 길드장, 그리고 이 게이트에서 만큼은 공대장인 자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 * *
날카롭게 생긴 눈매와 얼굴.
큰 키.
그러나 그의 온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상냥함이었다.
또한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옆에 서 있는 여자, 그녀의 얼굴은 가히 경국지색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지만 압권은 분위기였다.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여왕과 같은 위압감.
그럼에도 느껴지는 상냥함은 둘의 큰 공통점이었다.
공통점은 또 있었다.
쿠우웅.
공간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의 기파가 심상치 않았다.
“공대장님 그게….”
그럼에도 상대가 녹록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진석은 먼저 나서 입을 열었다.
“저도 들었습니다. 이진석 씨께 은혜를 입으신 분이라고요?”
역시.
공대장은 이미 전부터 이쪽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것이 분명했다.
혹여나 생길 위급 상황에 미확인 헌터의 뒤를 노려 길드원들을 구할 생각으로.
그리고 그런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더 이상 이진석에게 선택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것이자.
“길드원들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조금 더 도움을 청해도 될까요?”
선택을 스스로 했다는 뜻이나 다름 없었다.
“……….”
“과한 요청이었다면 죄송합니다. 저희도 사정이 그리 좋지 않은지라.”
“공대장님….”
“게이트의 수준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높았기에 부상자가 많이 생겼습니다. 남은 인원은 이 정도가 전부고, 보스를 사냥하는 데도 실패했죠.”
기밀이라 할 수 있는 정보들을 나열하는 공대장.
“후퇴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대로 후퇴한다면 더 큰 부상자나 사망자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헌데 귀인께서 도움을 주신다면.”
싱긋.
“공략 또한 가능할 듯싶은데, 도움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무슨 생각인지 알 것 같았다.
‘이 남자를 보려는 거다.’
미확인 헌터.
공대장이자 길드장인 남자는 그를 바깥으로 보내는게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차라리 곁에 두고 던전을 공략해나가며 그를 지켜보겠다는 판단.
그 곁에 있어야 할 공대장과 부공대장은 지극한 위험 속에 몸을 내던지는 것이나 다름 없지만….
“이들은 부상자를 살피기 위해 돌려보내고, 저희끼리 공략을 하는게 어떻습니까?”
지극히 공대장다운 선택이었다.
“이진석 팀장은 공대원들을 데리고 부상자들과 합류하도록 하세요. 저희는 이 분과 함께 던전을 공략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꽈악.
공대장의 마음이 느껴지기에 이진석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괜찮겠습니까?”
끄덕.
미확인 헌터가 고개를 끄덕이자, 공대장 또한 이진석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부상자들을 최대한 빠르게 돌보고 합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뇨. 그곳에 있으세요. 저희도 공략이 어려울 것 같으면 무리하지 않고 돌아가겠습니다.”
더 이상 할말이 없어진 이진석.
그는 공대장과 미확인 헌터를 살펴보다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꽈악.
다시 한 번 주먹을 쥔 이진석.
‘너무나 무력하다.’
이성의 헌터가, 팀장이 되었으면 무얼하나.
랭커가, 도깨비란 이름으로 불리우면 무엇하나.
결국 중요한 순간에 자신은 공대장의 등 뒤에 숨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강해지겠다.’
그래서 언젠가 소중한 이를 지키겠다고.
이진석은 그렇게 생각하며 팀원들을 이끈 채 사라졌다.
“제 소개가 늦었네요.”
공대장은 팀원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그가 스스로를 소개하려던 순간.
“알고 있습니다. 모를 수가 없죠.”
입을 열지 않던 미확인 헌터가 입을 열었다.
“이성의….”
노련한 헌터가 아니라도 알 수 있는 또렷한 떨림.
“이강 헌터시라는 것 알고 있습니다.”
“하하, 부족한 이름을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미확인 헌터는 부공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유영아 헌터… 맞으시죠?”
끄덕.
고개를 끄덕이는 유영아.
이정기는….
꽈아악.
이진석이 그랬던 것보다 더욱 더 주먹을 으스러지게 지었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눈물을 보일 것만 같았다.
시간을 거슬러 이곳에 와 이진석을 만났고.
“저는….”
아버지, 어머니를 보았다.
“이정기라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시간을 되돌린 그 녀석이 밉지 않았다.
* * *
“제 식견이 짧아 이정기 헌터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네요. 이렇게 대단하신 분을 몰랐다니, 제가 더욱 정진해야겠습니다.”
이강은 호의가 가득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영아도 들어본 적 없지?”
끄덕.
말이 많은 이강과 달리 유영아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이정기를 경계하고, 애초에 이강을 제외하고는 크게 말을 섞지 않는 듯 했다.
“기회가 된다면 게이트 밖에서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습니다.”
“…….”
“그러려면 저희가 게이트를 확실히 공략해내야 하겠지만요. 하하.”
이강은 그 사람 좋음이 매 순간 느껴졌다.
사소한 것마저 신경 쓰고, 그 모든 것이 진심이었다.
아직 이정기가 의심스러울진대, 그는 이정기를 지금 이 순간 진심으로 동료처럼 생각하는 듯했다.
“이 앞부턴 위험합니다.”
그런 이강의 얼굴이 변할 때가 있었으니, 몬스터를 마주칠 때였다.
그때의 그는.
사아아.
특유의 그 상냥함은 씻은 듯 찾아볼 수 없었다.
매섭고 강인하며 날카로운, 생긴 그대로의 모습.
화악-!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은 가히 파괴 그 자체였다.
스릉.
날카로운 검을 꺼내든 그가 말했다.
“이 앞은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이정기 헌터는 후방에서 영아와 함께 지원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순간에도 스스로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 전략을 짜는 그.
말을 마친 그는 누구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파앗!
마치 번개처럼 나아가기 시작했다.
타앗!
지형지물을 밟으며 나아가는 그의 모습.
자연스레 그의 이명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할아버지의 볼텍스를 잇지 않고 그 스스로의 기술과 스킬들로 승부하는 그.
그의 이명은.
서걱!
섬광.
그의 상위 헌터의 눈으로 좇기도 힘들었고.
서걱-!
그의 일격은 그 어떤 몬스터라도 양단할 정도로 강력했다.
꽈악.
그렇기에 이정기는 더욱 마음이 아려왔다.
‘어떻게….’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지금 이강은 몬스터조차 배려하고 있는 것이었다.
꼭 쓰러트려야만 하는 적이기에 베는 것을 망설이지 않으나, 몬스터가 느낄 고통을 생각해 양단하는 그.
그 뒤로.
화아아악-!
유영아의 마력이 폭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꽈악.
이정기는 나서고 싶었지만 나서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아버지, 어머니.’
그들을 보고 싶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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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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