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권 11화
261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관리자를 향해 말하는 거대한 사내.
그의 정체는 이정기였다.
“시험…? 그대는…?”
관리자도 서서히 이정기를 바로 볼 수 있었다.
티탄만큼이나 거대하다고 생각했던 이정기는 실제로는 인간과 비슷한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관리자가 그를 거대하다고 생각했던 까닭은 이정기에게서 느껴지는 아우라의 크기 때문.
“누구지?”
“……!”
관리자의 말에 이정기가 눈을 치켜떴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어떻게 형벌에서 벗어나게 한 거지?”
“무슨….”
“또 어떻게 그대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얼굴의 관리자.
당황한 것은 이정기였다.
‘거짓말이 아니야?’
관리자의 표정, 그리고 느껴지는 기운.
이정기는 거짓말을 간파할 수 있는데, 관리자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기억이 안 나는 겁니까?”
“애시당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군.”
관리자는 외려 적개심마저 표출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곳에 들어올 수 있던 거지?”
모든 것이 돌아가 버린 듯한 상황.
“대체….”
이정기는 이 당황스러운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관리자는 중요한 존재다.
헌터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칠흑의 구에 갇혀 건틀렛이 되어버린 할아버지를 되돌리기 위해서라도.
“저와 할아버지가 당신을 형벌에서 구제했습니다.”
이정기는 말했다.
“그리고 당신이 왕의 시험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어 시험을 치렀습니다.”
“왕의 시험…?”
관리자의 낯빛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화아악-!
그의 두 눈동자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전에도 본 적 있는 광경이었다.
“예언!”
아폴론이 보여주었던 광경.
이정기는 관리자가 지금 예언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고 그를 보호하듯 섰다.
그리고 잠시 후.
“말도 안 되는….”
관리자가 하얗게 질린 낯빛으로 이정기를 보며 말했다.
“라, 라돈의 시험을 합격한 겁니까?”
절대 부술 수 없는 괴물.
행성 그 자체와 같은 힘.
가이아라고도 할 수 있으며, 혼돈이라고 할 수 있는 그 힘.
라돈을….
“그렇습니다. 기억이 돌아오신 겁니까?”
이정기는 그 라돈의 심장을 취했다.
“맙소사.”
놀라움이 큰 듯 관리자는 몸마저 비틀거리며 말했다.
“기억이 돌아온 게 아닙니다.”
“기억이 돌아온 게 아니라고요?”
“그렇습니다.”
관리자는 딱딱 끊어지는 말투로 말했다.
“시간… 역행.”
“……!”
“그대는 과거로 돌아온 것입니다!”
* * *
올림포스, 티탄과 가디언.
그들은 각각의 권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인간들에게 신으로 추앙받으며 실제로 신과 같은 능력들을 가질 수 있었다.
넥타만으로도 그들은 강력한 힘을 자랑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힘은 바로 권능인 셈이었다.
그런 권능에도 특별함이 있었다.
‘왕의 권능.’
왕이라 불리는 자들의 권능.
그들의 권능은 상식을 개변하고 자연을 거스르며, 섭리를 뒤바꾼다.
그렇기에 왕이며, 그렇기에 그들은 지배자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하며 가장 강력한 힘이 있으니.
‘시간.’
시간을 다루는 권능이었다.
제약이 많은 대신 사용만 할 수 있다면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권능.
그 권능의 주인은.
“크로노스.”
티탄과 가디언.
그 둘 모두에게 왕이라 불렸던 사내의 것이었다.
“가장 강력한 존재 중 하나였던 그는 티탄과 올림포스 둘 모두의 연합에 의해 처리되었었습니다.”
“티탄과 가디언이 연합했다고요?”
“그만큼 위험한 힘이었으니까요.”
시간을 다룬다.
“역사를 개변시키는 힘입니다. 그의 의지에 따라 모든 것이 바뀌는 겁니다. 조건만 맞는다면 그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수도 없이 시간을 거스르는 것이지요.”
“그런 힘이 있다니….”
확실히 절대적이란 말이 어울리는 말이었다.
원할 때 과거로 돌아가 역사를 뒤바꿀 수 있다니.
“어떻게 쓰러트린 겁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그런 존재가 패배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었다.
“시간을 거스르는 힘에 제약이 없을 수 없죠. 혼돈이 충만할 때만 과거로 역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도 그는 강력했죠.”
관리자는 말했다.
“쥬피터.”
크로노스를 쓰러트리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존재가 쥬피터 할아버지라고.
“그가 크로노스를 쓰러트렸습니다. 방법은 모릅니다. 다만!”
확실한 한 가지.
“쥬피터에겐 크로노스의 권능을 무마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는 걸요.”
시간을 다스리는 크로노스, 그 힘을 무마할 수 있는 쥬피터.
“시간이 역행되었습니다. 예언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이는….”
말을 잇는 관리자.
“오래 전부터 계시되어 온 일 중 한 가지. 그대는 전무후무한 존재가 되었고, 두 가지의 왕이 되었습니다.”
“두 가지의 왕?”
관리자는 말없이 웃어 보였다.
“그대만이 모든 것을 제 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 겁니다.”
“후.”
이정기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대충 무슨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알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언급한 적 있었다.
‘시간이 문제라고?’
‘시간을 다스리는 티탄의 왕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더구나.’
‘녀석을 찾는 중이다.’
옛적에 패배하여 사라졌던 크로노스는 올림포스의 붕괴 속에 다시금 생명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이미 그 존재에 대해 눈치채고 있었다.
‘시간 역행을 멈춘다면 시험을 치르게 해주지.’
역행되기 전의 시간에서 관리자는 시간 역행이 있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관리자의 말대로였다.
‘예정되어 있었던 일.’
그리고 그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얼마나 과거로 돌아온 겁니까?”
“모릅니다. 이곳의 시간축은 비틀어져 있는바, 자세한 것은 성역에서 나가봐야 알게 될 겁니다.”
결국은 부딪혀야 한다는 이야기.
“할아버지는 왜 이 이렇게 되신 겁니까?”
“그건.”
관리자는 말했다.
“크로노스가 돌리는 시간 축에서 저항한 흔적입니다.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지만, 두 왕의 조부께선 그 일을 해내셨습니다.”
저항.
“시간은 역행되었지만 그 기억과 힘을 남기신 겁니다.”
“……!”
“조부님을 찾으십시오. 그럼 조부님께선 그대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줄 겁니다.”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든 것도 잠시.
사아.
이정기의 눈이 검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라돈을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머릿속에 들어차는 정보들.
다시금 원래의 눈빛을 되찾은 이정기는.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마치 무언가를 깨달은 것처럼 관리자를 향해 말했다.
“당신의 형벌, 끝내야겠습니다.”
“……!”
* * *
갑작스레 이정기의 머릿속에 들어찬 정보.
그건 관리자가 그토록 바라는 일.
[프로메테우스의 형벌]
관리자의 형벌에 관한 정보였다.
관리자의 온몸에 묶여 있는 쇠사슬.
그것에 대한 정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중 가장 이목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그 쇠사슬이 형벌의 주체겠죠.”
“그렇습니다. 이것이 제힘을 억제하고, 숲의 수호자들을 불러들입니다.”
관리자의 몸을 옥죄이고 있는 쇠사슬이었다.
“이것이 또한 주변의 마력과 넥타를 움직여 몬스터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사실상.
‘미친 물건이야.’
그 세 가지만으로도 가히 파괴와 절망의 물건.
이 또한 가이아의 넥타로 충만한 이 공간에서만 가능하다고 하지만 불가능이 가능에 가까운 것이라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쇠사슬의 능력 하나만으로 행성 하나를 파괴할 수 있을 법한 능력.
그것의 이름은.
[벼락]
쥬피터 할아버지의 권능과 동일한 이름.
“다만….”
이정기는 조심스레 말했다.
“육체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육체를 유지하지 못한다.
돌려 말하긴 했지만, 뜻은 간단한 것이었다.
‘죽는 것과 같다.’
그 이후의 형태가 어찌 되었든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지는바.
“정말입니까…?”
관리자가 흐릿한 동공으로 말했다.
“이미 쇠사슬과 관리자께선 한 몸이나 다름없습니다. 둘이 붙어 있는 한 형벌은 계속될 것이고, 둘을 떼어놓는다면 그 육체를 유지하지 못하게 될 겁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너무도 오랜 세월은 두 존재의 넥타를 뒤섞이게 만들어버렸다.
그가 형벌에서 벗어날 방법은 그뿐이다.
“고민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그가 느끼는 고통을 이해하기에 했던 이야기.
아무리 관리자라고 한들 결정을 내리는데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해서 했던 이야기였지만.
“부탁드립니다.”
관리자의 고민은 단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끝났다.
“제발… 부디 부탁드리겠습니다.”
허무한 동공이 간절함을 띠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진즉 하고 싶었던 일입니다. 이 형벌을 끝낼 수만 있다면… 부디… 제발!”
수천, 수만 년의 고통.
그것은 이미 관리자를 수만 번 진창에 떨어트린 것이었다.
갈려지고 마모되어버린 관리자.
이미 그는 수없이 죽음을 바라고 있던 것이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모두 해냈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관리자가 말했다.
“하고 싶은 것이 남아있습니다. 그것 또한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엇입니까?”
“두 왕은 제 은인입니다.”
예언을 통해 기억의 일부를 되찾은 관리자.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형벌 속 두 번의 휴식을 주었고.”
“…….”
“이제 제게 평안을 주려 하는 분입니다.”
관리자의 말에서 절절한 진심이 느껴졌다.
“또한 제가 끝마쳐야 할 일. 온전한 균형을 이루실 분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닙니다.”
“아닙니다.”
프로메테우스가 말했다.
“두 왕은 분명 해내실 겁니다. 그렇기에 두 왕께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가능하겠습니까?”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형벌을 끝나면 찾아올 죽음, 그렇기에 그는 이정기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다시 한 번 이정기의 눈이 검붉게 빛났다.
“그 뜻, 그 의지가 진심이라면.”
이정기는 천천히 칠흑색의 건틀렛이 있는 손이 아닌 다른 손을 관리자에게 뻗으며 말했다.
“이루어질 겁니다.”
촤르르.
이정기의 손이 쇠사슬에 닿자 일어나는 청명한 소음.
그와 함께.
[벼락, 쥬피터의 신기를 획득하셨습니다.]
머릿속에 정보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가디언의 온전한 왕의 힘을 모두 계승하였습니다.]
솨아아아!
세상을 전부 밝힐 듯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주 소 | 경기도 하남시 조정대로 35 하우스DL타워 F915-1(9층)
대표전화 | 070-8233-6450
팩 스 | 02-6442-7919
홈페이지 | www.osmedia.kr
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 위 책은 (주)타임비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이므로 발행자와 저자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로든 이 전자책과 내용을 이용하지 못합니다.
* 이 전자책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이며 무단 복제/전제하거나 배포할 경우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최강의 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