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권 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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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눈앞에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포탈.
“가라. 왕의 시험으로 향하는 길일지니.”
관리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저것이 이정기와 이건이 원하던 곳으로 향하는 포탈임을 깨달았다.
당장이라도 떠날 것 같은 둘에게.
“다만.”
관리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시험을 미루려던 것은 이유가 있었다.”
“이유?”
“지금의 그대들로도 왕의 시험은 험난할 것이다.”
“……!”
성장한 이정기, 관리자는 그 힘으로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형벌에서 벗어났음에도 저리 말하는 것이었다.
“올림포스에서의 시험은 고될지언정 불가능하지 않지.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목표이지 새롭게 왕으로 즉위하는 것이 아니니.”
알 듯 말 듯한 이야기였다.
계승, 그리고 스스로 즉위하는 것.
말마따나 그 두 가지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부모의 권력을 계승받는 것은 물론 험난한 과정이 있다 할지라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수 있다.
허나 스스로의 힘으로 즉위한다는 것은….
‘국가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
관리자, 프로메테우스는 두 가지의 차이를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구, 아니 가이아에서 왕의 시험은 지금껏 치러진 적 없다.”
전무한 일.
“네가 처음이며, 너는….”
관리자가 알 수 없는 눈빛을 하곤 말했다.
“가이아의 시험을 받아야 할 것이다.”
가이아의 시험.
와닿진 않는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순서를 바꾸고자 한 것이다. 시간의 역행을 멈추고, 네가 더욱 성장하였다면 시험의 난도가 더욱 내려갈 수 있었을 테니까.”
하루라지만 형벌에서 구제해준 탓일까?
관리자는 진심으로 이정기를 위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이정기는 답했다.
“결국 해야 하는 일입니다. 순서가 중요할 수 있겠지만, 둘 모두 힘겨운 일일 겁니다.”
“…….”
“시간의 역행을 막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오히려 시험을 통과하면 그것이 더 쉬워질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망설임은 없다.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겁니다. 결국 관리자께서 문을 열지 않았습니까? 길이 열렸으니 가야겠지요.”
“정답이다.”
이정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건이 답했다.
“가겠습니다.”
이정기와 이건이 망설임 없이 걸어 나가.
우웅.
아가리를 벌린 포탈을 건너갔다.
홀로 남은 관리자, 그가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만일 성공한다면….”
불가능에 가까운 시험을 통과한다면….
“미래는 결정지어진 것이나 다름없겠구나.”
그것 때문이었다.
자신도 결코 불가능하리라 생각하는 시험으로의 길을 열어준 것은.
번뜩.
이정기의 말마따나 흐름에 몸을 맡긴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인가.”
수천, 수만 년을 기다려온, 수천 수만의 형벌을 견디며 버텨온 자신의 소원.
그것이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 * *
긴장이 되지 않는다면 거짓이리라.
새로운 힘, 아니 원하던 새로운 격을 갖게 되었지만 관리자의 말에서 느껴지던 진심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으니까.
관리자의 알 수 없는 표정.
그 속에서 감춰진 것은 두려움이었다.
‘관리자가 두려움을 느낀다니.’
그가 형벌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자신이라도 그와 같은 형벌을 셀 수 없는 세월에 반복해 길들여졌다면 그럴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관리자가 내보인 시험에 대한 두려움은 그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꿀꺽.
긴장 속에서 천천히 눈을 떠보았다.
주변에서부터 느껴지는 압력.
눈을 뜬 이정기는.
‘커억!’
곧장 목을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다.
‘숨이…!’
숨이 쉬어지질 않는다.
사방에 보이는 것은 온통 칠흑색뿐.
‘설마 관리자가 속인 건가?’
시험으로 통하는 길이라며 열어준 곳이 시험이 아닌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었던가.
수십 가지 생각이 들 때.
스윽.
이정기의 눈앞에 또 다른 형체가 나타났다.
-넥타다.
이건.
할아버지의 목소리.
“……!”
자세한 설명 없이도 할아버지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넥타의 성질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
지금 자신이 숨이 막혀오는 것은 이곳에 공기가 존재치 않기 때문이었다.
이정기는 먼저 마력으로 자신의 몸을 둘러싸고 그 안에 넥타를 퍼트렸다.
‘넥타 변환.’
새로운 힘을 얻으며 더욱 넥타에 대해 알게 된 이정기.
그에게 넥타의 성질을 변환하는 것은 마력을 쏟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푸하!”
들어차는 공기에 이정기는 숨을 토해냈다.
하지만 서로가 마력의 막에 둘러싸여 있기에 대화는 의념을 통해 할 수밖에 없는 노릇.
그러나 이정기가 가장 먼저 본 것은 눈앞에 이건의 아닌 자신들이 서 있는 곳이었다.
새까만 칠흑.
그 속에서 빛나는 수십 개의 점들이 보였다.
그곳에.
“……!”
푸르게 빛나는 별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른 별들보다 유독 빛나며 아름다운 구.
그 속에 푸르른 바다도, 광활한 대지도.
-지구다.
수없는 생명도 동시에 느껴졌다.
-왕의 시험이라 통한 곳으로 와보니 우주라.
이건의 당황한 목소리.
-나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구나.
이건의 말에도 이정기는 지구의 모습에 매료되어 한동안 아무런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이정기가 입을 연 것은 그의 눈에 다른 것이 보인 순간이었다.
저도 모르게 검붉게 물들어버린 이정기의 눈에는 푸르른 지구가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할아버지!
그 지구를 둘러싸 똬리를 틀고 있는 커다란 뱀.
아니.
-저게 안 보이세요?
-뭘 말하는 게야?
용.
아니 문헌과 이야기로만 들었던 존재.
-드래곤…!
드래곤이 지구를 감싸며 나른한 눈을 하고 있었다.
-드래곤이라고?
-할아버지가 본 적 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이정기가 긴장을 놓지 않은 채 말했다.
-봤었지.
이건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듯 움직이며 말했다.
-물론 드래곤이라 부르기엔 부족한 것이었다. 그치만…, 단언컨대 내가 상대한 몬스터 중 가장 까다롭고 강력한 것이었지. 정말 드래곤이 있는 게야?
-네.
아직도 보지 못하고 있는 이건.
-검은 비늘의 커다란 드래곤이 지구를 감싸고 있어요.
-지구를 감싸고 있다고…?
설명하면서도 자신도 믿기지 않았다.
-대체 시험이 뭘 하라는 게야?
자신 또한 묻고 싶다.
‘저런 걸 상대하라고?’
아니 애시당초 저런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그때 또 한 번 이정기의 눈이 검붉은 빛을 띠기 시작했다.
더욱 선명히 보이는 무언가.
-찾았어요.
이정기가 마른 침을 삼키며 말했다.
-제가 뭘 해야 하는지.
커다란 드래곤.
그 속에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는 무언가.
시험이란 것은 저것을 취하는 것이라는 직감이 든 순간이었다.
쿠쿠쿠쿠쿠.
모든 것이 떨리며.
“………!”
녀석이 자신을 응시했다.
* * *
이제 공포는 제법 느꼈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공포를 느끼지 않을 만큼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또 한 번.
우뚝.
이정기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온몸이 빳빳하게 굳는 느낌, 사고가 마비되는 느낌, 숨이 막혀오고 스스로가 누구인지 깨닫지 못하는 공포.
-정….
오히려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기에 더욱 처절하게 느껴지는 공포.
-정기야!
이정기는 이건의 외침이 있기도 전 이미 몸을 틀어 벗어났다.
푸하아아악-!
방금 전 이정기가 서 있던 곳이 뭉개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것도 존재치 않는 우주이기에 볼 수 있는 것이 없어도.
파스슷.
자신이 펼쳐놓은 마력장의 일부가 분쇄되는 느낌을 분명히 받았다.
만일 자신이 저곳에 서 있었다면.
꿀꺽.
온전치 못했다는 확신도 들었다.
-정말 뭐가 있는 게로구나.
이건이 더욱 더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그가 보지 못한다는 것.
-나는 끝까지 보지 못할 게다.
이 시험이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말의 뜻은 간단했다.
-내가 그리 많은 부분은 도울 수 없겠구나.
왕의 시험이라는 것.
그것은 왕이 될 자에게만 부여되는 것.
시험 장소에 동행하는 것은 허락될지언정, 시험을 함께 치르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쿠쿠쿠쿠.
나른히 잠자던 드래곤이 몸을 꿈틀이고 있었다.
이정기가 시험의 존재를 깨달았듯, 드래곤 또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닫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현실인가.’
그런 상상마저도 들었다.
지금껏 자신이 있던 지구의 바깥에 저런 존재가 존재했다는 것을 여지껏 몰랐다니.
하지만 그 이유마저도 알 수 있었다.
-너무나 거대하고 커다랗기에….
그렇기에.
-모르는 것이다.
공기 속에서 인간이 살아가듯, 저 드래곤의 존재감은 공기처럼 모두를 감싸 안고 있었을 것이다.
이정기는 천천히 유영하듯 우주 속을 거닐었다.
-물러서 계세요.
보이지 않는다면 싸울 수 없다.
-자존심이 상하는구나.
이건은 그리 말하면서도.
-도울 수 있는 것은 도울 테니, 네 하고 싶은 대로 해 보거라.
끝까지 이정기를 향한 손길을 놓지 않았다.
홀로 선 이정기.
어느새 이정기는 까마득한 거리에 있는 녀석의 눈과 마주쳤다.
숨이 턱 막히는 공포와 존재감이 이정기를 엄습했지만, 이정기의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미 여러 번 느꼈던 공포.
그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했던 노력.
그것이 창피하고 수치스럽기만 했었던 자신이었다.
하지만.
씨익.
이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처음이네요.
진실로 처음이다.
-할아버지보다 강한 존재를 만난 건요.
-또 내 자존심을 후벼 파는구나.
이건의 목소리가 들릴 때.
우웅.
이정기의 온몸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관리자의 형벌을 막을 때도 보이지 않았던 힘이었다.
그저 아주 약간, 이미 얻은 힘의 도움을 조금 받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힘을 아껴둘 겨를이 없었다.
‘내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부족해.’
쌓는다.
더욱 많은 것을 쌓는다.
그것이 내가 택한 길.
그리고 자신이 쌓아온 것은….
빠직! 빠지직!
벼락이 되어 적의 몸통을 꿰뚫을 것이다.
검붉은 전류 속.
스윽.
이정기가 감았던 눈을 떴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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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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