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256화 (256/284)

제11권 6화

256

가디언들의 소집을 명령하고 지냈던 날들.

이정기는 자신의 안에 있던 티탄의 씨앗을 완전히 흡수한 후 몸 상태를 확인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넥타의 레벨이 하나만 성장해도 느꼈던 위화감과 변화에 힘들어했던 지난날.

지금 이정기가 겪은 변화는 그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것이었다.

‘샅샅이 훑어야 해.’

스스로의 몸이 어떤 상태인지 아는 것은 전사에게 있어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정확히 판단해야만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고, 어느 것을 할 수 없는지를 안다.

한계가 어디인지, 또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이정기는 이건 저택의 지하 훈련장에서 그것을 알아내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홀로 보내온 시간.

쿠쿠쿵.

저택의 흔들림에 오랜만에 방문자가 찾아왔다.

“할아버지.”

이건의 얼굴을 보며 이정기는 갈무리한 눈빛으로 말했다.

“끝났습니다.”

몸상태의 체크가 끝났다.

그리고 이정기는 그동안 단순히 자신의 몸 상태만을 체크한 것도 아니었다.

‘그 힘.’

할아버지가 말했던 그 힘.

그 힘에 닿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몸 상태는 어떻느냐.”

할아버지의 질문에 이정기는 살짝 미소를 짓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버렸느냐?”

또다시 이건이 물었다.

할아버지가 지금 가지고 있는 힘에 닿기 위해서는 가지고 있는 것을 덜어내는 것이 최고라 말했다.

마력에 비해 비대해져 버린 넥타를 버리고 마력과 넥타의 양을 균등하게 맞추어내는 것.

그것이 할아버지가 그 힘에 닿는 방법이라 말했다.

“아니요. 버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정기는 그것을 해내지 못했다.

“그렇구나.”

이건은 실패했다는 말에도 실망한 눈빛을 보내지 않았다.

“지난한 일이다. 네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야. 네가 나보다 가진 것이 훨씬 더 많기에 어려운 것이지.”

그렇게 말하던 이건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너….”

깜빡하면 속을 뻔했다는 얼굴.

“해냈구나.”

이정기의 기도가 미세하게 달라져 있음을 이건은 뒤늦게 깨달은 것이었다.

“이 할애비한테 농을 한 게야?”

이건의 말에 이정기가 고개를 저었다.

우웅.

작은 울림.

“그럴 리가요. 버리지 않았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할아버지.”

우우웅.

서서히 그 울림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버리는 것은 할아버지의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버릴 수 없는 것을 가져버렸습니다.”

티탄의 씨앗.

스스로 나의 감정들이라고 했던 녀석.

이정기는 그것을 버리지 못한 채 품어버렸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버리지 못한 것들.’

그것은 수도 없이 많이 있었다.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

할머니에 대한 존경과 가족애.

혈연들에 대한 애증.

‘이진석, 최인해, 안태민, 권신우….’

이제는 동료, 아니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

그들 또한 버리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버렸다.’

그것이 할아버지의 강함이었다.

수많은 전투와 세월 속에서 할아버지는 버려야만 했다.

동료를 잃는 슬픔, 자신을 배신한 동료에 대한 미움.

그런 것들을 버렸다.

그렇지 않고서야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버틸 수 없었을 테니까.

자식들을 잃었고, 동료들을 잃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위해 할머니 또한 버렸다.’

덜어내고 덜어내는 삶.

이건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세상 모든 것을 구하고자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을 전장으로 삼고, 그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마음은.

‘이미 버렸다.’

또 어느새 무언가를 버리고 덜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넥타와 마력.

버려진 두 개가 그 빈 곳을 찾아 뒤섞여 균형을 이루어내는 것이 그 원리인 듯했다.

하지만 이정기는 아무리 노력해도 버릴 수 없었다.

‘나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

가진 것 없이 하나씩 쌓아가야만 했다.

그렇게 들어선 것들은….

“저는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겠습니다.”

절대 놓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

가득 채운다.

이미 차버린 것들 위에 또 다른 것을 채워 넣는다.

그것으로….

빠직-!

이정기는 자신의 길을 찾았다.

“네가 가야 할 길을 찾았구나.”

이건이 미소지으며 이정기를 바라봤다.

“나는….”

빠직-!

검붉은 뇌전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 지하 훈련장 전체를 잠식하고 있었다.

“네가 자랑스럽다.”

검붉은 뇌전 속에서 이건은 너무나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이정기가 한 것은 스스로의 몸 상태를 체크하고, 다음의 영역에 발을 내디딘 것뿐이었다.

그렇기에 아직 그 힘을 제대로 활용해 본 경험조차 없었다.

“가디언들이 움직이고 있다.”

이정기가 훈련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가디언들은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제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하는구나.”

아예 자취를 감추거나, 올림포스와의 연결을 끊어버린 가디언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다만.

‘아테나, 아폴론.’

두 명의 예언자가 자신들과 함께 하는 이상 나머지 가디언들은 곧 찾을 수 있을 거다.

“티탄의 움직임은요?”

가디언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들이었다.

티탄들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껏 그들을 움직이지 못했던 이유는 지구의 강자들, 그리고 이건 때문.

녀석들은 혼란한 틈을 타 저들의 영향력을 굳히고 더 뻗어 나가며.

‘티탄들.’

지금 이정기가 그러하듯 잔존해있는 티탄들을 모아 전력을 보강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젠 티탄들이 모두 깨어난 것으로 모자라 왕마저 깨어나 버렸다.

언제 움직여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아직 시간은 있다.”

이건은 그렇게 말했다.

“깨어난 왕은 총 셋. 그중 하나는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 말씀이시군요.”

“그래. 그 녀석을 제외한 둘은 하나, 에레보스. 네가 보았던 녀석.”

이건은 말했다.

“또 하나는 내가 그 육체를 부숴놓은 녀석이다.”

그 둘의 공통점.

이건에 의해 부상을 입었다는 점.

“온전하지 못한 몸을 지니고 있던 녀석들이다. 티탄들과 달리 왕을 담을 그릇은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닌 데다, 찾는다고 해도 그 몸이 얼마나 버틸지 모른다.”

왕들에게는 그 강력한 힘에 따른 제약이 있다는 이야기.

“녀석들은 완벽한 육체를 갖추기 위해, 티탄의 잔존 육체를 모으고 있는 것을 물론,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고 있지 않지.”

“움직이기 위해선 완벽한 육체를 만드는 게 먼저란 소리군요.”

“맞다.”

이정기는 이건을 향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저희가 먼저 움직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적들의 가장 큰 전력이 완전하지 못한 지금이 전쟁에 있어 가장 승기 높은 시점이 아닐까.

“나머지 티탄들은 어차피 저희의 적이 못 됩니다.”

광오하다 할지언정 사실이었다.

새로운 영역에 발을 디딘 이건과 이정기.

그 둘을 일반의 티탄들은 결코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이건은 고개를 저었다.

“모습을 감추고 있는 녀석들이 너무 많아. 신으로 불리우던 녀석들이다.”

“…….”

“녀석들이 작정하고 움직인다면 그 피해가 너무 커져. 그렇기에….”

“대한민국으로, 결계가 있는 이곳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끄덕.

“그 전에 우리가 움직였다간 왕들을 찾기 전에 쑥대밭이 되어버리는 곳이 수도 없이 많이 생길 거다. 다만 녀석들도 쉬이 움직이지 못할 거다.”

이건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의 저희에겐… 가디언들도 합류했으니까요.”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자칫 잘못 움직였다간 녀석들만 당한다.”

결국 같은 상황이었다.

서로가 피해를 우려해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상황.

그러나 전쟁의 기폭제가 되는 시점은 분명….

‘왕들이 육체를 제대로 갖게 되는 순간.’

그때는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싸움이 될 터였다.

“그전까지.”

“그전까지.”

두 조손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우리의 전력을….”

“최대로 만들어놔야겠네요.”

둘의 눈이 향하고 있는 곳은.

우웅.

일렁이는 이건 저택의 지하 던전이었다.

관리자가 쫓아냈던 이후 접근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던전.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우웅.

던전의 입구는 당장이라도 손님을 받으려는 듯 일렁이고 있지만.

프프프프프프.

손만 가져다 대도 모든 것을 밀어내며 입장을 거부하고 있었다.

이건이 던전의 입구에 손을 올렸고.

스윽.

그에 발맞추어 이정기 또한 던전의 입구에 향해 손을 내뻗었다.

쿠쿠쿠쿠쿠쿠!

작게 밀어내던 힘이 이제는 폭풍처럼 이건과 이정기를 향해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그 힘을 참아내며 이건이 말했다.

“준비됐느냐?”

준비.

“됐습니다.”

이건과 이정기, 그 둘의 팔뚝에 혈관들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그 속에 피처럼 흐르는 마력과 넥타.

그것이 일순간.

파아아아앙!

손바닥을 향해 뻗어 나갈 때.

우우우우웅!

굳게 닫혀 밀어내기만 했던 던전의 문이 열렸다.

* * *

뚝, 뚜둑.

핏물이 초원을 적시고 있었다.

끄윽, 끅.

거대한 새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손에 잡혀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그가 걸어온 길은 더욱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스르륵.

핏물이 강이 되어있었고, 시체들이 둑이 되어있었다.

넓게 펼쳐진 숲은 파괴되어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 속에서 새를 쥔 채 걸어오고 있는 남자는.

씨익.

말 그대로 파괴를 위해 태어난 악마와 같은 모습이었다.

타앗.

새를 놓은 남자가 천천히 걸어가고 있을 때.

철벅, 철벅.

반대쪽에서도 비슷한 꼴의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 남자의 뒤로 이어진 것도 똑같은 피의 강과 시체의 산들이었다.

푸르르던 숲은 이제 죽음의 대지가 되었다.

그리고 죽음을 불러온 두 남자는 어느 한 곳에 멈춰서 같은 곳을 바라봤다.

철컹.

쇠사슬을 온몸에 동여맨 채 눈을 감고 있는 남자.

“어때.”

다른 남자가.

“이제.”

다른 남자가.

“얘기할 수 있겠나?”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이건과 이정기, 죽음을 불러온 두 조손이 관리자를 향해 말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주 소 | 경기도 하남시 조정대로 35 하우스DL타워 F915-1(9층)

대표전화 | 070-8233-6450

팩 스 | 02-6442-7919

홈페이지 | www.osmedia.kr

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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