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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손자-254화 (254/284)

제11권 4화

254

-결합이 완료되었습니다. 부활의 의식을 마무리합니다.

울려 퍼지는 메티스의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화아아-악!

세상 전부를 비출 듯한 빛이 이정기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부릅떴던 이건조차 눈을 감을 정도의 빛.

그리고 그러한 빛은.

파앗!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 사라지고 있었다.

모든 빛을 먹어치우고 있는 주인공은 이정기.

마치 스스로가 블랙홀이라도 된 듯 빛을 먹어치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콰콰콰!

발동한 결계의 마력까지도 먹어치우고 있었다.

‘버텨라.’

이정기에게 하는 소리이기도, 결계에게 하는 소리이기도 했다.

쿠쿠쿠쿠!

저택 전체가, 아니 티탄들과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 준비한 결계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한 번은 세상 모든 것을 비출 듯한 빛이 나더니.

우웅.

이제는 새까만 어둠만이 사방을 잠식하고 있었다.

“거 의식 한번 화려하군.”

이건의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

꿀렁.

어둠 속에서 무언가 꿀렁대기 시작했다.

검붉은 무언가.

그것을 기점으로 빛을 잃었던 세상이 다시금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무언가.

“…….”

이건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제 손자였다.

그의 변화가 눈에 보인다.

더욱 탄탄해진 육체.

검붉은 기가 도는 머리칼.

이제는 자신과도 비슷해 보이는 커다란 키.

“정기야.”

이건이 그를 보며 말했다.

“돌아온 걸 축하한다.”

감겼던 눈이 천천히 떠지고 있었다.

“돌아왔어요.”

선명한 빛을 머금으면서도, 흑요석처럼 아름다운 눈동자.

“할아버지.”

이정기의 부활이었다.

타앗.

허공으로 떠올랐던 이정기가 바닥을 밟고 섰다.

포옹.

잔잔한 수면에 돌을 던진 듯 파문이 이는 세상.

“잘 다녀왔느냐?”

이건이 인자한 웃음을 지닌 채 말했다.

천천히 끄덕여지는 고개.

그리고.

“쥬피터 할아버지를 만났어요.”

이정기가 입을 열었다.

* * *

녀석과 나는 합쳐졌다.

녀석이 왜 스스로를 나 자신이라 말했는지 알 수 있었다.

녀석이 가진 기억, 감정, 그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었다.

숨겨두었던 감정.

부정하던 모든 것들.

녀석은.

‘고맙다.’

그것을 홀로 감내하고 지키고 있었다.

부정하고 추악하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녀석과 하나가 되어 처음 느낀 것은.

‘아아.’

형언할 수 없는 충만감이었다.

몸 안에 가득 차는 무언가.

잃어버린 것을 찾아낸 듯한 느낌마저 들던 순간이었다.

퐁.

의식 속에 파동이 일었고.

-정기야.

그 속에서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또 장난질인 거야?”

이정기는 눈앞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웠던 또 다른 이.

그곳에 그가 서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까.

여지껏 이 악랄한 녀석이 자신에게 했던 짓이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하나 된 녀석은 더 이상 자신에게 허튼짓을 할 수도, 할 생각도 없다.

또한 눈앞의 저것은.

“정말…, 할아버지에요?”

진짜라고.

“결국은 이렇게 되었구나.”

쥬피터 그가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자신이 보았던 노쇠한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백발일지언정 그의 육체는 강건했고, 눈빛은 청명했다.

저것이 쥬피터의 전성기 때의 모습이라, 이정기는 확신했다.

“네가 가디언이 되기를 바랐다.”

쥬피터는 말했다.

“가디언으로 키우고, 가디언으로 완성되길 바라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

여지껏 보았던 환상이나, 녀석이 조롱하던 것이 아니다.

진짜.

“하지만 결국 내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구나.”

무슨 소리를 하는지 대강 안다.

그렇기에 쉬이 대답하지 못하던 이정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쥬피터 또한 자신의 할아버지다.

이건만큼,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가족이다.

때때로 쌀쌀맞고, 언제나 무뚝뚝했던 그였지만 그는 이따금 진실된 사랑을 보여주었고 자신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할아버지의 기대에 어긋난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스윽.

쥬피터가 고개를 저었다.

“네가 택한 길이다.”

이어져 나오는 목소리.

“내 혈육이 내가 원하는 길로만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허나 그것이 내 혈육을 위한 것이라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

“너의 길을 지지한다.”

“……!”

이정기를 향한 눈동자가 따스하기 그지없다.

“그 선택이 비록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될지라도, 나는 네 선택을 응원한다.”

“할아버지.”

“그것이 내가 배운 것이다.”

쥬피터가 배운 것.

“너와 지내온 시간, 네 할애비. 이건과 보내오며 느낀 것이다. 인간의 사랑이라, 가디언과는 다르더구나.”

“…….”

“그렇지만 나쁘지 않은 것임을 알았다.”

할아버지는 진짜다.

본능적으로 그것을 알았듯.

꽈악.

또한, 다른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네가 훌륭히 잘 해내리라 믿는다.”

이것이.

“정기야.”

마지막이라는 것을.

“잘 지내거라.”

“할아버지.”

이정기는 뒷말을 잇고 싶었지만.

쩌정!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었다.

깨져가는 세계.

마침내 진정한 이별의 시간이 도래한 것이었다.

‘할아버지였구나.’

언제나 자신이 길을 잃었을 때, 해야 할 일을 모를 때마다 조언을 주던 그 목소리.

메티스.

그것이 바로 쥬피터 할아버지였음을 이제야 알았건만, 이제 할아버지는 정말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정기는 쥐어짜 내서라도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저도….”

많이….

씨익.

이제는 흐릿해져 가는 할아버지의 입이 웃고 있었다.

또한 그 입이 살며시 움직이며 무언가를 전하고 있었다.

이정기는 뿌연 시야 속 두 눈을 부릅떴다.

마지막 순간, 무엇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제대로 된 이별을 하지 못했던 전과 달리 이번에는 제대로 이별하기 위해.

‘알고 있다.’

그것이 쥬피터의 마지막 말.

‘사랑해요.’

그것이 나의 마지막 말이었다.

* * *

“잘했다.”

정신을 차리자 쥬피터 할아버지와의 기억이 흐릿해질까 복기하며 이건 할아버지에게 말하고 들려온 대답이었다.

“녀석도 진정 널 손자로 생각한 모양이다.”

이건의 말에 이정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제야 깨달았고 말이야.”

“제가 손자라는 걸요?”

“아니. 자식을 사랑한다는 것 말이다.”

이건이 작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강이는 너와 달랐어. 언제나 나와 망할 여편네를 위해 제 한 몸을 희생했지. 우리가 그걸 원했으니까.”

회한이 담긴 눈.

“우리가 짊어진 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그 짐을 덜어주고자 녀석은 인생을 모두 걸었다.”

이건이 이정기를 보며 다시 웃었다.

“네가 우리를 위해 희생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야.”

“알아요.”

“그 방식이, 강이는 너무나 처절했을 뿐이지.”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눈.

“그런 것을 바라선 안 되었다. 자식이라면, 그저 잘못된 길로만 가지 않게끔 바로 잡아주었어야 하는 거야. 표지판을 세우고, 그곳으로 끌고 가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었던게지.”

“…….”

“잘했다.”

다시금 들려오는 할아버지의 칭찬에.

쫘악.

이정기는 양 손바닥을 펴 살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에요?”

자신의 몸에 벌어진 일을 대강은 짐작한다.

그러나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너는….”

이건이 무어라 말하려던 찰나.

“부활하신 겁니다.”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

타앗!

이정기가 본능적으로 손을 내뻗어 목소리의 주인을 낚아채려 했다.

“예정된 수순입니다. 인간이 신체를 제대로 얻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 한 번의 죽음 끝에 육체는 정순함을 되찾고 새로이 자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정기의 손끝은 목소리 주인의 목젖 바로 앞에 멈춰 있었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

상대가 자신에게 적의가 없음을, 상대가 자신의 적이 아님을 안 것이다.

탁.

숙여지는 고개와 꿇려지는 무릎.

“아테나, 왕을 배알합니다.”

“……!”

목소리의 주인을 보며 이정기가 두 눈을 치켜떴다.

“아테나라면…?”

모르지 않는다.

가디언.

아레스의 위치를 알려주었던 자이자, 랭킹석 속에서 이름을 들을 수 있었던 자.

“맞습니다. 쥬피터의 배려와 이건께서의 준비로 저 또한 부활할 수 있었습니다.”

차분한 목소리에 이정기가 이건을 바라봤다.

“가디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녀석이라 했다.”

이미 이건은 알고 있는 듯했다.

“아폴론과 같이 예언을 할 수 있는 가디언 중 하나이자, 다른 가디언을 찾기 위해 꼭 필요한 자라고.”

이건이 말했다.

“네 부활 때 메티스, 아니 쥬피터의 잔재가 소멸하는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는 일이었다. 그때를 이용해야만.”

“제가 부활할 수 있었죠.”

아테나, 찬란한 백발을 지닌 그녀가 말했다.

“저는 올림포스에서 나온 이후, 일부러 제 육체를 조각내어 세계 곳곳 랭킹석 속에 숨어 티탄의 눈을 피했습니다.”

아테나는 스스로를 숨기기 위해 랭킹석에 몸을 숨겼다.

“또한 그것과 동시에….”

아테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름다운 얼굴.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녀의 두 눈.

망설임 없고, 잔혹함마저 느껴지는 그 두 눈은 오랜 기간 전쟁을 준비한 전사의 눈이었다.

“가이아와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가이아라면…?”

“태초의 신, 그리고 지구의 수호자입니다. 모든 헌터의 힘을 흘러 타고 들어가 그녀와 연결되었으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저는 긴 시간 숨어 있던 것입니다.”

“…….”

“나의 왕이여.”

솨아아.

그녀에게서 빠져나오는 무언가가 이정기에게로 흘러들어왔다.

언제나 그랬듯, 가디언의 충성 맹세.

“메티스, 아니 쥬피터를 대신해 앞으로 제가 길 안내를 하겠나이다.”

이정기가 이건을 바라보았다.

끄덕.

그녀의 말이 맞는다고 말하는 이건.

이정기는 다시금 그녀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이건이 인정했고.

‘쥬피터 할아버지.’

그녀의 부활에 쥬피터의 마지막이 함께했다.

그런 존재라면 믿을 수 있다.

“먼저….”

몸을 일으킨 아테나가 이정기를 향해 말했다.

“육체를 확인하고, 조정하시기를. 그리고.”

뒤이어.

“모든 가디언을 소집해야 할 때입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주 소 | 경기도 하남시 조정대로 35 하우스DL타워 F915-1(9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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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 스 | 02-6442-7919

홈페이지 | www.osmedia.kr

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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