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권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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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티스.
이정기에게 가이드가 되어주었던 존재일 것이다.
‘안전장치를 해두었다.’
이건이 그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이나.
‘오랜만이야. 메티스.’
가디언들이 그 정체에 대해 알고 있던 까닭은 간단했다.
메티스의 정체는 전령.
전령이라 함은 누군가의 말을 전하는 자를 말했다.
그렇다면 메티스가 전하는 말의 주인은 누구일까.
‘왕.’
가디언들의 왕.
‘쥬피터.’
쥬피터의 말을 전하는 전령인 셈이었다.
가디언들이 이정기를 왕으로 인정하는 것은 이정기가 왕의 넥타를, 벼락을 쥐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느껴지는 메티스의 기운이 그를 왕으로 인정하게끔 한 것이었다.
또한, 쥬피터의 말을 전하는 전령이라는 것은.
‘쥬피터의 일부.’
메티스가 쥬피터 그 자체의 일부라는 셈.
즉.
“네 차례다. 메티스.”
쥬피터의 일부, 그것이 이정기에게 남아.
“아니 쥬피터.”
필요할 때 이정기의 안전장치가 되어주도록 한 것.
화아악-!
이정기의 늘어졌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빛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우웅.
이정기의 가슴팍 위로 나타난 일렁이는 신체.
여성인 것도, 남성인 것도 같은 특이한 실루엣.
-왕의 육체의 사망을 확인했습니다.
녀석이 메티스다.
-정해진 명령에 따라 부활 및 복구를 진행합니다.
인간이 아닌 기계와 같은 목소리.
고저 없는 목소리가 울림에 따라.
파르르.
죽어있던 이정기의 신체 또한 떨리고 있었다.
꿀꺽.
아무리 강대한 적을 앞에 두고도 긴장하지 않는 이건.
그런 이건이 긴장하고 있었다.
필요한 일이었기에, 또한 쥬피터를 믿었기에 진행한 일.
그럼에도 일이 잘못되었을 때의 대가는 이정기의 목숨이었기에 그토록 긴장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뚝.
이건의 그런 떨림도 멈추었다.
“걱정 말거라. 정기야.”
대가가 목숨일지라도.
“네가 잘못되면 내가 너를 구해주마.”
이건은 결코 이정기를 죽음으로 내몰 생각이 없었다.
만일 일이 잘못된다면.
“내가 대신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야.”
스스로의 목숨이라도 바쳐 이정기를 구해낼 것이다.
그렇게.
화아아악-!
부활의 의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 의식이 끝나면 이정기는 새로 태어난다.
부정한 모든 것을 지우고, 완벽해진 하나로.
그리고.
“완성이 가까웠구나.”
이정기는 완성될 것이다.
* * *
쭈그려 앉아 있는 남자.
안쓰럽게 두 팔로 두 다리를 감싸 안고 고개를 무릎 안에 파묻고 있었다.
피식.
그 모습에 웃음이 난 것도 사실이었다.
단 한 번도 자신은 저런 꼴로 있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자신과 같은 모습으로 저렇게 풀이 죽어있는 녀석의 모습에 잠시 웃음이 난 것도 사실이었다.
다만.
“…….”
곧이어 느껴지는 씁쓸한 것이 입을 쓰게 만들었다.
‘진실을 알려주마.’
자신 또한 모두 들었다.
녀석은 진짜 자신이 아닌 찌꺼기에 불과하다고.
그리고 녀석은.
‘진심으로 스스로를 나라고 생각했다고.’
녀석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일지 안다.
‘나’에게서 파생된 녀석이라면, 무엇을 생각할지 아니까.
녀석은 스스로가 찌꺼기라는 사실에 저러는 것이 아닐 것이다.
‘할아버지.’
녀석이 할아버지의 손자가 아니라는 사실.
할아버지가 손자로 생각했다고 하나 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지금 녀석을 저렇게 만든 것일 거다.
스윽.
무릎에 고개를 처박고 있던 녀석이 고개를 들었다.
“좋겠네.”
지금껏 부정하고 추악하게만 느껴지던 녀석이었다.
“너는 진짜여서.”
하지만 지금은 안쓰럽고.
“내가 너한테 했던 말들이 전부 헛소리였던 모양이야.”
또 아이 같다.
“비웃어도 좋아.”
또한, 서글프다.
추악하고 부정하기에 녀석을 부정했다.
그럴 리 없다 밀어냈고, 또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지금.
“그게 내 모습이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뭐?”
“그러고 풀이 죽어 있는 게 내 모습이냐고.”
“……뭐라는 거야.”
“네가 나라면 그러지 않을 거다.”
이정기가 말했다.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아낼 거다.”
“개소리.”
녀석이 씹어뱉듯 말했다.
“내 모든 것이 가짜였다. 네게 자신하며 내비치었던 내 모습은 그저 환상에 불과했고, 찌꺼기에 불과했을 뿐이야. 느껴지지 않아?”
쩌저적!
내면세계의 곳곳에 금이 가고 있었다.
“나를 밀어내고 없애버리려, 두 할아버지가 노력하고 있는 것이?”
“…….”
“나는 사라지고 네가 남는다. 그게 진실이고, 그래야 하는 것이야.”
아득바득 자신에게 말하던 녀석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너다.’
또한.
‘나는 네가 숨겨둔 감정이다.’
확신과 자신에 차 자신을 조롱하던 그 모습들.
“좋겠군. 진짜여서 말이야.”
녀석이 다시 무릎에 얼굴을 처박으려 할 때였다.
“너는 나다.”
뚝.
처박으려던 고개가 멈춰 섰다.
“네가 말했잖아. 네가 나의 추악함이라고. 네가 내가 숨겨둔 감정들이라고.”
스윽.
“처음엔 부정했다. 너 같은 게 나일 리 없다고, 네 추악한 모습이 나의 일부일 리 없다고.”
눈동자와 눈동자가 마주쳤다.
너무 닮아 있는 눈동자.
“찌꺼기? 그 말이 사실일 수 있겠지.”
이정기는 차분히 말했다.
“하지만 그 찌꺼기가 결국 나에게서 나온 거라면….”
확신에 찬 목소리.
“너는 나다.”
“동정하는 거냐?”
“동정?”
이정기가 고개를 저었다.
“너는 너를 증명했어.”
“…….”
“할아버지를 상대로 그렇게 몰아붙인 건 내가 아닌 너였다.”
“괴물이 되어서 말이냐?”
이정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가 그랬었지.”
강함은.
“그 어떤 모습이든, 어떤 것이든 관계없다.”
“강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녀석의 눈동자가 빛을 내기 시작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너를 받아들일게.”
“……!”
“동정 따위가 아니야. 가능성을 보았을 뿐이야.”
이정기는.
“강해지고 싶어.”
강해지고 싶었다.
“너와 함께 하는 게 내가 더 강해질 수 있는 길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버리라고 했지만.”
씨익.
“버리는 것은 할아버지의 방식일 뿐이야.”
지금껏 모든 것이 그랬다.
할아버지를 따라잡기 위해 할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걸었다.
할아버지를 따라잡기 위해 할아버지가 하라는 것을 해왔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전과는 달라지고 싶었다.
녀석이 그 증명이었다.
버려야 해야 했을진데, 녀석은 가득 채워 할아버지를 몰아붙였다.
결국은 패배했다고 하나.
“네가 나의 방식이 될 거야.”
녀석은 지금껏 이정기가 하지 못했던 것을 했다.
“할아버지가 원하는 게 아닐 텐데?”
녀석의 말에 이정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는 녀석이 사라지길 바란다.
추악하고 더러운 것, 지독한 감정들.
그것이 자신과 합쳐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 이유를 이해한다.
‘내가 물들지 않기를 원해서.’
그건.
“네가 주가 아니야. 그건 너도 인정하겠지?”
“…….”
“내가 진짜고, 내가 주다.”
“결국 나를 놀리는 거였냐?”
“하지만 네가 나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마.”
이정기는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야.”
어른.
그것이 무엇일까.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에게 받은 교육들.
강해지고자 하는 열망.
그 은연중 이정기는 언제나 바라고 있었다.
‘어른.’
할아버지와 같은 어른이 되면 할아버지를 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것이 내가 생각한 어른이다.”
“스스로의 길을 개척한다….”
“그리고 그 책임을 내가 져야겠지.”
“누군가의 기대와 소망을 이루는 것보다….”
“아니, 내 방식대로 이룰 뿐이다.”
마주친 눈동자.
두 쌍의 눈동자는 아까보다 더욱 닮아 있었다.
“받아들일 테냐.”
드디어.
스윽.
쭈그려 앉아 있던 녀석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받아들이마.”
둘의 웃음이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 * *
-부정의 씨앗을 제거 중….
메티스는 계속해서 부활의 의식을 진행 중이었다.
부활.
그건 아직 어떤 헌터도 닿지 못한 영역.
아니, 신이나 가능하다는 영역의 일이었다.
‘가디언.’
신으로 추앙받는 그들이라 할지라도 누구나 할 수 없는 일.
그러나 육체의 부활만이라면.
‘이미 수도 없이 해냈지.’
가디언이나 티탄들에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거다.
이미 그들은 올림포스를 버리고 지구에 와 새로운 육체를 되찾아 부활했으니까.
그렇기에 이건은 그리 두렵지 않았다.
다만 혹여 있을 만일의 일을 대비하는 것뿐이다.
우웅.
의식이 진행됨에 따라 이건이 가방에서 꺼내어 내려놓은 랭킹석의 파편이 빛을 내고 있었다.
저것들은 순도 높은 넥타.
부활에 필요한 재료이자, 이건이 생각한 것을 이루기 위한 준비물이었다.
-부정의 씨앗을 제거 중….
파스슷.
의식이 계속되고 랭킹석에 빛이 발할 때마다 랭킹석이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파슷, 파스슷.
하나둘 사라지는 랭킹석에 따라.
화아악!
이정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더욱 강렬해지고 있었다.
알고 있다.
이제 곧 의식이 끝이 난다는 것을.
그러나.
-부정을 씨앗을 제거하는 데 실패하였습니다.
이변이 벌어졌다.
“뭣!”
이건이 메티스를 부릅뜬 눈으로 바라보았다.
-씨앗이 결합을 시도합니다.
“뭐 하는 것이야! 멈춰!”
-의지의 방향에 따라 결합을 돕습니다.
“그런….”
이건의 눈이 사정없이 떨렸다.
생각지 못했던 돌발상황.
아니, 생각은 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랐던 일이었다.
그리고.
“그게….”
이건이 다시금 안정을 되찾았다.
“네 뜻이더냐?”
분명 메티스는 말했다.
의지의 방향에 따라 결합을 돕는다고.
“너는 알고 있었구나.”
이건이 메티스를 보며, 아니 메티스의 본신 쥬피터를 보며 말했다.
녀석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 분명했다.
“그래….”
그리고 자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바라는 것은 부정의 씨앗을 제거한 채 이정기가 부활하는 것이었다.
그것으로.
‘완전해진다.’
이정기는 완전해졌을 것이다.
강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신에 대한 이야기.
그 영혼이 가진 성질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헛된 욕망이었구나.”
그것이 스스로의 잘못임을 깨달았다.
부정의 씨앗을 제거한다는 것은, 부정한 감정을 거세한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건은 은연중 그것이 자신이 바라는 완전한 손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수많은 것을 짊어져야 하는 운명.
그렇기에 부정을 지운 채 선만 남아 모든 것을 이끌기를.
“나는 네게….”
이건은 인정했다.
“희생을 강요했구나.”
자신이 바란 것은 진정 손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그렇기에 속으로 씹어 삼켰던 깊숙한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나 또한….”
이건이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말했다.
“네 선택을 존중한다.”
그것이 인간일 테니까.
“나도 약해졌구만.”
피식.
작게 웃는 이건의 앞에.
-결합이 완료되었습니다. 부활의 의식을 마무리합니다.
메티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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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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