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권 1화
251
싸늘한 표정의 이건.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여유로운 이정기의 얼굴은.
“…….”
서서히 일그러져갔다.
“알고 계셨습니까?”
아까와 전혀 다른 표정, 그리고 어조였다.
“나를 뭘로 생각하는게야? 그 정도도 모를 것 같더냐?”
이건의 말에 이정기는 다시금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간단한 대답이었다.
마치 그것으로 끝이라는 듯 움직이려는 이정기.
“어딜 가는 게야?”
이건이 손을 내뻗어 뽑아낸 마력으로 이정기의 몸을 옥죄이며 말했다.
스윽.
천천히 돌아가는 이정기의 고개.
이정기의 얼굴은 또다시 완벽히 일그러져 있었다.
“왜 붙잡으시는 겁니까?”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얼굴.
그리고 분노가 서려 있는 얼굴이었다.
멈춰선 이정기.
그 앞에 선 이건.
“알고 계시다 하지 않았습니까?”
이정기가 말했다.
“저를 인정하시지 않는 겁니까?”
분노로 가득찬 목소리.
“저 또한 녀석입니다. 저 또한 할아버지의 손자입니다. 헌데 왜 그런 눈으로 저를 보시는 겁니까?”
이정기의 몸에 스멀스멀 기운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참는덴 한계가 있어요. 할아버지.”
바로 그 때.
쾅!
이정기가 그대로 날아가 벽에 처박혀 미끄러져 내렸다.
“버릇이 없구나.”
이건의 주먹이 방금 전까지 이정기가 서 있던 곳에 멈춰 있었다.
“오늘 네 그 버르장머리를 고쳐주어야겠다.”
“망할 늙은이.”
벽에서 무너졌던 이정기가 부릅뜬 눈으로 이건을 보며 말했다.
“언제까지 내가 당하고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면 그거야말로 오산이야.”
“그래, 그 버르장머리.”
스윽.
이건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쒜엑!
이정기의 앞에 나타나 다시금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이제야 사춘기가 온 게야.”
쾅!
다시금 이정기가 벽에 부딪혀 무너지고 있었다.
* * *
“왜!”
이정기가 억울하다는 듯 소리치며 몸을 움직였다.
일렁이는 마력과 넥타가 이정기의 몸을 가속하며.
화륵!
동시에 청색의 네메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왜 이러는 거야!”
이건을 향한 부르짖음.
“내가 뭘 했는데! 그저 숨죽여 살았을 뿐이다! 그저 내 몸의 통제권을 빼앗겼을 뿐이라고-!”
절규에 가까운 외침.
그와 함께.
화르르륵!
청색의 네메아가 이건을 향해 날아들었다.
불타오르는 사자는 무엇도 고민 없이 집어삼키려는 듯했으나.
파앗!
이건의 볼텍스에 속절없이 해체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콰드드드드드득!
그 뒤로 폭풍의 볼텍스가 이건을 향해 또 한 번 날아들었다.
네메아를 미끼로 그 뒤에 쏘아낸 볼텍스가 진짜였다.
과연, 네메아를 막느라 한 번 무너졌던 자세 탓인지.
콰드드득!
이정기가 쏘아낸 볼텍스가 이건을 분쇄할 듯 맹렬히 달려들고 있었다.
양손을 교차시켜 볼텍스를 막아내고 있는 이건.
“다 안다고? 당신도 내가 가짜 같나?”
그 속으로 이정기의 분노가 파고들었다.
“나 또한 네 손자다. 수십 년간 속에 갇힌 채 빛을 보지 못했던 손자. 이런 내게 하는 대우가 겨우 이것이라고?”
그럼에도 이정기의 볼텍스를 서서히 밀어내는 이건.
콰쾅!
그때 또 한 번 폭발이 이건을 덮쳤다.
우르르릉! 쾅!
벼락.
이정기는 볼텍스로 멈추지 않은 채 이건을 향해 벼락마저 방출한 것이었다.
콰콰콰콰!
이건의 사방의 벽이 무너지듯 갈려나가고 있었다.
“당신이라면 날 반가워할 줄 알았는데? 나에 대해 알고 있다면 나야 말로 당신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아는 줄 알았는데?”
쾅!
아직도 끝이 아니었다.
이정기는 한 번 밀어붙인 이건을 끝장이라도 내려는 듯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쏟아내고 있었다.
밀어낼 것 같은 이건은 점차 더 벽 속으로 파고 들어가고 있었다.
더욱더 붉어지는 이정기의 눈.
그에 따라 이건이 막고 있는 것에 실리는 힘이 더해나갔다.
“당신이 날 인정하지 못한다면!”
이건이 말했던 것은 버리는 것이었다.
넥타를 덜어내고 마력과 균형을 맞춘다.
그리고 그것을 자연스레 뒤섞어 새로운 힘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당신도-!”
이정기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그런게 아니었다.
더한다.
더하고, 더하고 또 더한다.
그것으로.
“필요 없어-!”
한계를 넘는다.
이건과는 다른 길.
그리고 그 결과는.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앗!
이건의 방어를 뚫어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이정기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전투였다.
상대를 필요에 의해 제압하거나, 정확한 일격으로 깔끔하게 처리하려는 지금의 방식과 다르게.
쿠쿠쿠쿠쿠쿠쿠!
상대를 분쇄하고 죽이는 것에 모든 것을 내걸었다.
치이익!
상대가 느끼는 고통을 극대화시키고 그 속에서 틈을 찾는다.
고통에 당황한 상대는 방어의 자세가 무너져내리고.
콰드드드득!
쏟아낸 공격에 분쇄되어 결국 죽음에 이른다.
이정기와 이건, 지금껏 그들의 대련은 달랐다.
이건은 언제나 이정기에게 죽일 각오로 임하라고 했고, 이정기는 그 말을 전적으로 따르려고 했다.
하지만 언제나 대련 속엔 망설임이 있었다.
할아버지를 상처입히면 안 된다는 생각, 혹여 잘못된다면.
‘외톨이.’
자신이 외톨이가 될 것이라는 생각.
걱정, 그런 수많은 것들.
그렇기에 단 한 번도.
“너는 내게 진심을 내보인 적 없었지.”
이정기는 이건에게 진심을 다해 덤벼온 적이 없었다.
이정기 스스로 깨닫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상으로서 이건은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녀석의 말대로였다.
“너야말로, 내가 원하는 모습이구나.”
이건이 말했던 파괴적인 모습.
지금의 이정기가 가진 모습이었다.
“늙은이. 내 마음을 흔들려 해도 이미 늦었어.”
쿠쿵!
더욱더 이건을 짓누르는 힘.
이제는 정말 끝을 보려는 듯 쏟아낸 힘 뒤로.
콰콰쾅! 우르르릉!
볼텍스와 벼락이 다시 한 차례.
화르륵!
네메아가 또 한 차례.
쩌억!
네메아가 아가리를 벌리고.
치이이익!
독물을 쏟아내는 것이 또 한 차례였다.
“하아, 하. 하아아.”
이정기가 그 모든 것을 쏟아내고선 거친 숨을 토해냈다.
영혼이라도 빠져나간 듯 거친 탈력감이 온몸을 지배했다.
“하아.”
쏟아내고 쏟아부었다.
자신 모든 것을 더해 완전한 파괴를 이루었다고 생각했다.
툭, 투투툭.
결코,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방이 부숴져 파편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 속에.
“그러게. 날 인정했어야지.”
이건은 핏물 한점 보이지 않았다.
벼락에 구워졌을 것이고, 볼텍스에 분쇄되었을 것이다.
그것으로 모자라 독물에 녹아내렸고, 그것을 네메아가 태워버렸을 것이다.
그러니 시체 따위 남을 수 없다.
끝.
“젠장할.”
아무 데서도 느껴지지 않는 기운.
정말 끝….
“정말.”
“……!”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정기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네가 정기 그 자체라고 생각하느냐?”
그곳에 멀쩡한 모습의 이건이 서 있었다.
아니, 그 옷은 그을리고 녹아내렸고, 분쇄되었다.
하지만 그 속에 있는 이건은 그대로였다.
“그것이야말로 착각이다.”
“무슨…!”
콰악!
이정기의 목을 잡은 이건.
드드드드드득!
그대로 이정기를 밀어붙어 벽에 긁어댔다.
“너는 정기가 아니야.”
“읍!”
“독물일 뿐이다.”
이정기가 두 눈을 부릅뜨며 실낱같은 목소리를 내었다.
“그게 무슨…, 개소리….”
“진실을 알고 싶으냐?”
“……!”
“그렇다면 알려주마.”
이건은 이정기를 벽에 박아넣은 채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게이트 속에서는 결코 새로운 생명의 잉태가 되지 않는다는 상식.
그 상식이 깨진 것은 이강과 유영아 때문이었다.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년을 보내는 게이트.
그 속에서 새로운 사랑이 싹트고, 막을 수 없는 사랑이 수없이 존재했다고 했지만 새로운 생명의 잉태는 단연컨대 처음이었다.
그로 인해 가장 당황한 것은 이강과 유영아였다.
‘어떻게….’
지구도 아닌 게이트.
그들의 계획과도 전혀 다르게 생겨버린 아이.
문제는 이곳이 전장이었으며, 빠져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지옥.
그곳에서 아이를 출산해야 한다는 부담감.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자 했지만, 그것은 결국 어차피 아이에게 고통을 주는 일임을 알기에 그들은 파티원들의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이건.
‘걱정하지 말거라. 아이를 지켜주마.’
그가 있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유영아의 배가 불러오고, 파티원의 속도는 늦추어져 갔지만, 분위기만큼은 달랐다.
‘희망.’
새로운 생명이란 그런 것이었다.
만일 세상 전체가 망가져 종말에 이른다 해도 새로운 생명이 이끌어나갈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그들은 버텨왔다.
하지만 그때, 이건은 이상증세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누구보다 마력에 민감하고, 그 누구보다 강했기에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
‘특별하다.’
유영아의 배 속의 아이가 범상치 않음을 깨달은 것이었다.
지금껏 이건은 수많은 태아를 보았다.
그리고 사전 각성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날 때부터 각성한 이들 또한 보았다.
하지만 유영아와 이강의 아이는 무언가 달랐다.
거대한 씨앗.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어둠.
그 두 개가 동시에 자라고 있었다.
‘쌍둥이.’
혼자가 아니다.
둘.
그렇기에 고민했다.
거대한 두 개의 씨앗.
그중 하나가 악의 씨앗임을 알았기에.
인간이 태어나며 성격이 정해진다는 가설 따위 이건은 믿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수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생각보다 쉽게 이건의 불안은 사라졌다.
‘하나가 되었다.’
두 개의 씨앗이 자연스레 합쳐진 것.
애초에 쌍둥이가 아니었던 것인지 어느샌가 두 개의 씨앗은 하나가 되어 유영아의 배 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이정기가 태어났다.
다른 이라면 모를까, 이건은 알 수 있었다.
‘두 개의 기운.’
이정기에게 두 개의 기운이 있음을.
그리고 과거보다 더욱 위험해졌음을.
두 개로 나뉘었다면 하나만이 위험했을 터.
그러나 그 두 개가 하나로 합쳐진 순간….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이정기는 그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어느 하나를 없애는 것은 자신에게 무리였다.
그저, 교육을 통해 바른길로 이끌고자 그렇게 노력했다.
그리고.
“쥬피터를 만났지.”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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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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