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권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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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추방당하셨습니다.]
그런 메티스의 목소리를 들은 것도 잠시, 숨이 컥 막히며 영혼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추방에 저항합니다.]
또다시 들려오는 메티스의 목소리.
그와 함께.
쑤욱.
몸 안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추방에 저항합니다.]
재차 소리가 들려옴에 따라 이정기는 조금 시야를 되찾을 수 있었다.
서서히 돌아오는 감각들.
-끄, 끄아아아악!
이제는 멎은 줄 알았던 그 비명 소리가 다시 들려왔을 때.
파앗!
잃어버렸던 시야마저 되찾을 수 있었다.
쇠사슬을 잃고 맨몸뚱이가 되었던 관리자, 프로메테우스.
그의 육체는.
파악! 팍! 파악!
그대로 짓이겨지고 있었다.
던전을 지키는 수호자들은 마치 관리자인 프로메테우스를 찢고, 짓이기고, 부수는 것이 그들이 가진 온 사명이라는 듯.
-끄아아아악!
온 힘을 다해 관리자를 공격하고 있었다.
하나 의아했던 것은 관리자가 전혀 저항하지 않은 채 그저 그들의 공격을 받아내고 있기만 한다는 것이었다.
관리자는 분명 이정기와 이건이 놀랄 정도로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수호자라 불리는 저 몬스터들이 더욱 강화되었다고 하지만 저렇게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을 처지는 아니었다.
‘왜?’
그런 의문이 든 것도 잠시.
스스스.
짓이기고 부서졌던 관리자의 몸은 그 특유의 재생능력을 이용해 다시금 회복하고 있었다.
‘……!’
그때 관리자의 눈이 이정기를 향했다.
잠시 무언가의 감정이 스치긴 했지만, 곧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공허.’
익숙함이었다.
고통을 받고, 그에 재생하여 또다시 고통을 받는다.
잠시 지켜본 것만으로도 끔찍한 장면.
하지만….
‘이번이 처음이 아니야.’
그의 고통은 결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던 때.
[추방에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다시금 들려오는 메티스의 목소리.
“허억!”
이정기는 그제야 목소리마저 되찾을 수 있었다.
“괜찮으냐!”
다급하게 들려오는 이건의 목소리.
이정기의 눈앞에 들어찬 것은 일그러진 얼굴의 이건.
그리고.
“무슨 일입니까!”
이진석의 얼굴이었다.
* * *
던전 추방.
지금껏 전례 없던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건조차 단 한 번도 겪지 못한 사건과 같은 일.
그리고 그 결과는.
“한 달이 지났다고요?”
또한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분명 던전에 들어가 일주일의 시간을 보냈던 기억은 있다.
그러나 한 달의 시간이라니?
쓰러져 자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이정기가 튕겨져 나온 시점, 그 시점이 바로 이정기가 던전에 들어간 지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또한.
“그래. 저걸 부숴버릴까 하던 참이었다.”
갇힌 것은 이정기뿐.
이건은 일주일의 시간이 지났던 시점, 바깥으로 튕겨져 나와 먼저 사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돌아오지 않는 이정기 탓에 다시 던전으로 들어가려던 이건.
허나 던전은 그런 이건을 밀어내며 입구를 닫아버렸다.
그렇기에 화를 참지 못하고 다 부수려던 이건이 날뛰려던 찰나, 이정기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게야.”
이건의 물음에.
“…….”
이정기는 쉬이 답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스스로도 몰랐을뿐더러.
“제 기억은 관리자가 공격받았을 때 끝나있어요.”
그것이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짐작 가는 것은 있었다.
[추방에 저항합니다.]
들려왔던 메티스의 목소리.
“할아버지는 무슨 소리 못 들으셨어요?”
“무슨 소리를 들었다는 게야. 그놈 비명 소리가 내가 들은 마지막이다.”
자신에게만 벌어진 일.
“후.”
이정기는 잠시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몸은? 괜찮은 게야?”
바깥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이진석이 데리고 온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는 듯했다.
둘만을 위해 자리를 비켜준 것.
꽈악.
이정기는 이건의 말에 스스로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한 달.
기억이 없는 삼 주.
지금의 이정기에겐 한 달은 먹고 자지 않아도 될 정도의 능력이 있다지만, 삼 주의 시간을 아무것도 못 한 채 방치된다면 기운이 쇠락하기 마련이었다.
허나.
“너무 멀쩡해요.”
자신의 몸 상태는 멀쩡하기 그지없었다.
오히려.
“힘이 넘쳐요.”
온몸에 넘쳐흐르는 힘.
“기억을 잃기 전보다 더.”
기운이 강성해진 것이 느껴졌다.
“그놈이 뭔 짓을 한 게야.”
이건이 얼굴을 찌푸리며 이정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화악!
이건의 몸에서부터 흘러나와 이정기를 훑는 기운.
다른 이었다면 공격과 같은 행위에 반격을 가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손길은 그저 할아버지가 손주를 걱정하는 마음뿐이었다.
“정말 그렇구나.”
마침내 이건 또한 이정기의 몸 상태를 점검하곤 말했다.
“넥타의 기운이 증폭되었어. 마력 또한 마찬가지고. 왜지?”
하지만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답답하기만 한 상황.
무엇을 더 생각해도 쉽게 답은 나오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때 떠오른 것은.
“상황이 이상했어요.”
추방에 저항하며 생긴 틈을 타 보았던 광경이었다.
“어쩌면…, 저희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을지 몰라요.”
“무얼?”
“관리자가 수호자들을 지키기 위해 불러들였다고요.”
이정기의 말에 이건이 흥미를 보였다.
“추방에 저항할 때 생긴 틈에 관리자에게 무슨 짓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보았어요. 물어뜯기고 잡아먹히고, 그리고 재생했죠.”
“말만 들어도 끔찍하구나.”
“거기다.”
기억난다.
‘그 눈빛.’
그건….
“수도 없이 반복되어 온 것 같았어요.”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일 때 느끼는 공허함이었다.
“형벌….”
이건이 말했다.
“그게 형벌이었구나. 도망쳐 자유로워진 것이 아니었어. 애시당초 그곳에 있던 것이 형벌인 것이야.”
배신의 대가.
주지 말았어야 할 것을 준 대가.
그 대가로 프로메테우스는 끝없는 형벌에 처해졌다.
“네 말대로라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겠다.”
모든 것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이아의 던전은 그를 가둬놓은 철창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또다시 가정하는 이건.
“우리가 애초에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 관리자가 헌터의 힘을 준 것은 맞지만, 그 힘을 회수할 수 있는 권한이 없을 수도 있겠구나.”
이정기는 결코 이건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경험.
그리고.
‘본능.’
이건의 말은 힘이 있었으니까.
“답은 저 안에 있겠구나.”
닫혀진 던전의 입구.
그리고 떠올릴 수 있는 관리자의 말.
“시간의 역행이….”
“멈출 때 주겠다.”
그것은 그리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시간.
이건과 이정기가 직면한 문제이자, 해결법을 찾았던 문제.
“크로노스.”
시간의 힘을 가진 티탄을 찾아야 할 일이었다.
* * *
이정기와 이건이 자리를 비운 한 달.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저택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사의 진척은 꽤 빨랐고, 이성의 승계 작업도 진척이 많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사방에서 길드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게이트의 시대 때나 즐비하게 벌어졌던 길드전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길드의 흡수입니다.’
길드전을 통한 길드의 흡수.
그리고 각 정부와 협회는 그런 길드전들을 승인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뜻은 간단한 것이었다.
“전쟁이….”
이미.
“시작되었구나.”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
이건은 가이아 던전에 들어가기 전 세계 전체에 선전포고를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티탄의 존재에 대해 밝히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 밝혔다.
또한.
‘원한다면 그 쪽 편에 서라.’
티탄들의 목적과 새로운 세상에 질서에 편입될 수 있다며 사람들을 현혹시키기까지 했다.
그러니 일말의 가능성을 지닌 이들.
‘티탄에 편에 설 이들.’
그들을 미리 제거하고 흡수하는데 헌터들이 움직인 것이었다.
또한 그 반대로, 티탄의 편에 설 이들도 덩치를 불리기 위해 움직이는 것.
전쟁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할아버지는 여기까지 생각했구나.’
이건의 선전포고의 결과였다.
전쟁의 시작과 그 양상이 민간인들에게 번지지 않은 채 헌터들끼리의 싸움으로, 또 길드전이라는 방식을 통해 일어나도록 한 것.
또한.
‘혹여 뒤통수를 칠 수 있을 일말의 가능성을 지닌 이들.’
그들이 서로를 감시하고, 또 서로를 견제하도록 만든 것.
누가 뭐라 해도 가장 위협적인 적은 대놓고 드러나 있는 강력한 적이 아닌 정체를 숨긴 채 아군 진영에 숨어있는 적들이었으니까.
할아버지는 그날의 회동 한 번으로 지금의 상황을 만들고 지켜본 것이었다.
또한.
‘이성에 대한 길드전 신청이나, 한국에서의 길드전은 거의 없습니다.’
한국은 조용하다.
이 또한 할아버지가 노린 것임이 분명했다.
스스로의 존재를 밝히고, 이성을 참전시키고, 전장을 대한민국으로 국한시켰다.
그렇기에 세계 모든 이들에게.
‘한국은 지금 성역이나 다름없어.’
한국은 결코 건드려선 안 될 땅이 된 것이었다.
만약 성역으로 지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한국 땅에서 서로가 피 흘리고 전쟁한다면 그것은 이미 스스로 티탄의 편에 섰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자 똘똘 뭉치고 있는 한국의 적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오로지 힘, 무력, 파괴로 두려움을 준다고 알려진 할아버지는 사실 심계 또한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진척이 있습니다.’
이건이 바라던 ‘녀석’을 찾는 일에 진척이 있다는 것.
곧 그 위치를 명확히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제 위치에서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이건이 말했다.
“세상의 존망을 앞에 두고 장난질을 할 만큼 멍청한 이들은 없을뿐더러, 이 할애비의 말을 가벼이 여길 이도 없다.”
과거 이미 한 번 세계를 구한 존재의 목소리.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인간이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목소리와 힘.
모든 것은 할아버지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니.”
이건이 이정기를 보며 말했다.
“못다 한 일을 마저 하자꾸나.”
다시금 이정기의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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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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