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권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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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 부족한 것은 시간이다.”
“시간이요?”
이정기가 당황한 이유는 한가지였다.
“그건 너무 당연한….”
성장에 있어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확실히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자신이 원하는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티탄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왕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거기다 할아버지의 선전포고.
“시간이 없다고 말하려고?”
“예.”
“내가 그걸 모를 줄 아느냐?”
이건은 말했다.
“들어봐라. 네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단순히 성장을 위해 훈련하고 수련할 시간을 말하는 게 아니야.”
“그렇다면?”
“네 육체.”
이정기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 넣는 데 성공한 이건.
“신체에 대한 이야기다.”
“신체요?”
“넥타와 신체, 그 둘은 하나이자 떨어지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알고 있습니다.”
“헌데.”
이정기에게 부족한 것.
“네게는 그 두 가지가 완전한 결합을 하기까지 시간이 부족했다.”
이건이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팟!
순식간에 피어오른 풍압.
“……!”
누군가의 눈에는 그저 이건이 능력을 발휘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정기에겐 다른 것이 보였다.
이건의 마력, 아니 넥타가 활성화되는 시간이 가히 급속도로 빨랐다는 것.
동시에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알 수조차 없을 정도의 미세한 양만이 움직였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간단했다.
‘넥타의 활용, 그리고 효율.’
그것이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
“완벽한 신체와 결합한 넥타는 그 수발이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자유롭고 빠르다. 하지만 지금 너는 어떻지?”
이건이 이정기의 손을 붙잡아 손바닥을 펼치게 만들었다.
너 또한 해보라는 뜻.
팟!
이정기가 이번엔 화염을 일으켰다.
그 또한 모르는 이가 보기에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할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의지를 일으키고, 마력이 움직여 넥타를 자극한다. 넥타는 그 자극에 따라 움직여 신체에 깃들고 외부로 그 힘을 발휘한다.”
할아버지가 보여준 것이 한 단계에 불과한 것이었다면 자신은 세 단계, 네 단계를 걸쳐 힘이 발휘되는 것이었다.
“네 신체와 넥타가 완전히 결합되어 있지 않기에 생기는 문제점이다.”
그렇기에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 시간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겁니까?”
결국, 시간이 부족한 것.
더 시간을 끌 수 없는 것.
씨익.
이건이 웃어 보였다.
“내 그걸 위해 장인들을 이곳에 데려오지 않았느냐.”
* * *
이건이 장인들을 데려와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이 이정기에게 필요한 시간 때문이라고.
이건은 그렇게 말했다.
또한.
“내 선전포고가 무얼 의미하는진 알고 있겠지?”
“전장의 축소, 그리고 일망타진입니다.”
“그래.”
이건이 모두를 모아놓고 선전포고를 한 이유는 전장을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로 축소시키며 적들의 전력을 한데 모아 일망타진할 생각이었다.
“의구심은?”
하지만 이건의 말마따나 그 계획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민간인들의 목숨입니다.”
그제야 이정기는 궁금했던 것을 물을 수 있었다.
“전장이 대한민국으로 정해진다면 당연히 그에 따른 피해가 막심할 겁니다. 일반인들을 외국으로 대피시켜 놓는다 해도….”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전투의 여파로 무너질 겁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땅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 것이 자명했다.
민간인들이 살아남아도 그들은 고향을 잃는다.
이러나저러나 대한민국이 모든 피해를 감수해야 하기에 이해가 가질 않았다.
“차라리 재기 불능의 위험 지역을 전장으로 잡았어도 되는 것 아닌가요?”
이정기의 말에.
씨익.
이건은 다시 웃어 보이며 이정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컸구나. 다른 사람들의 목숨과 터전까지도 신경 쓰고 말이야.”
“…….”
“하지만 그래 봐야 의미 없다.”
이건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어차피 적들이 바라는 건 너뿐이다. 지금까지는 내가 녀석들의 정신을 딴 데로 돌려놨지만 녀석들의 왕이 깨어난 지금 그런 희생 따윈 감수하고 너를 노려올 거다.”
적들의 유일한 목적은 바로 자신.
‘나를 잡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싸움.
이건은 남아있다지만 가디언들은 왕을 잃고 힘을 잃을 것이고 티탄을 막을 수 있는 전력은 현저히 약화된다.
하지만 이건의 눈초리에는 무언가 더 있어보였다.
그러나 이건은 그 이유 대신 전장을 대한민국으로 만든 것에 이야기를 했다.
“네 터전이 한국이다. 나 때문이지. 그리고 이곳에 네게 소중한 것들이 생겼어.”
“소중한 것들….”
그것이 무얼 뜻하는지 안다.
“약점….”
소중한 것은 약점이다.
“제가 괜한 짓을 한 걸까요?”
그걸 알기에 처음부터 누군가를 가슴에 담는 일은 하지 않는게 좋았을까.
어차피 외롭게 살았던 인생이었다.
할아버지 하나, 그렇게만 있어도 되는 삶이었다.
“에잉.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그랬다간 네가 살기 힘들지.”
“살기 힘들다고요?”
“인간은 관계를 쌓아야 해. 그래야 사는 것이다. 하여튼 네가 다른 곳보다 한국을 중시하는 이상 이곳이 전장이 되는 것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야.”
이건이 말했다.
“재기 불능한 지역을 전장으로 삼았다 한들, 적들은 어차피 대한민국을 노려온다. 네가 없는 이 땅, 우리가 없는 이 땅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결과는 같다.
전멸.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건은 질문했다.
“…….”
답을 생각하는 이정기.
답은 생각보다 빨리 나올 수 있었다.
“모든 전력을 대한민국에 집중하고 확실히 지켜낸다. 적들이 노리는 게 이곳뿐이라면, 이곳을 지키면…, 승리한다?”
“반만 정답이다.”
절반의 정답.
“이곳을 적들이 빠져나갈 수 없는 함정으로 만들면 된다. 전력은 도움이 크게 못 돼.”
“그걸 할 수 있다는 겁니까?”
“내가 누구냐. 네 할애비. 이건이다.”
씨익.
“그리고 또.”
이건은 말했다.
“소중한 것은 약점이 되기도 하지만….”
그가 움직이며 말을 이었다.
“더 강해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 * *
“죄송합니다.”
이정기의 사과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다른 이들이었다.
“뭐가?”
“뭘 죄송하다는 겁니까?”
최인해, 이진석, 그 외에도 함께 해 온 이들.
“또 자리를 비우게 돼서요.”
이정기가 이들을 모은 이유는 또 한 번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자리를 비워야 하는 자신.
그리고.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뭐든 말씀하세요.”
이정기의 부탁이라는 말에 눈을 빛내는 이들.
이정기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소중한 이들.’
할아버지는 대한민국에 이정기가 소중히 생각하는 것이 있어 적들이 노려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정기는 그에 대한 부정을 하지 않았다.
어느새 자신도 그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강해지세요.”
또 한 번, 여러 번 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해지는 겁니다. 아폴론도 도울 겁니다. 다른 이들도 도울 겁니다.”
이정기는 진심을 다해 말했다.
“그러니….”
작게 웃는 이정기.
“죽지 마세요.”
에레보스.
그 녀석을 생각하면 그런 것이 떠올랐다.
이제 자신은 공포를 떨쳐냈지만 다른 이들이 죽는 광경.
그것은 결코 보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뭐야. 겨우 그런 거였어?”
최인해가 다가와 말했다.
“걱정하지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해지고 싶은 건 우리도 마찬가지니까.”
마주 웃는 이들.
“그러니 너나 강해져서 죽지 마.”
“그래. 그래야지.”
그들은 잠시 동안 함께 웃다가.
“……!”
눈을 치켜뜨며 곧장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
“뭘 그리 놀라는 게야?”
평소 당당하기 그지없던 최인해도 떨며 고개를 숙이는 존재.
“친구 할애비한테 인사가 그게 뭐냐?”
“죄, 죄송합니다.”
“편하게 있거라.”
꿀꺽.
이건.
그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의 말에 서서히 고개를 드는 이들.
“너는….”
이건은 이진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얘기는 많이 들었다. 네가 옆에서 정기를 많이 도왔다고.”
“아, 아닙니다. 오히려 도움만 받았습니다.”
“내 정보가 거짓이라는 게냐?”
“그런…!”
“농이다.”
이건이 이진석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치며 말했다.
“예전에도 고맙다. 아들 녀석이 네 얘기를 해준 적이 있다. 이진석이라는 청년이 있는데, 그 실력이 출중한 데다 성품도 좋아 마음에 든다고.”
“기, 길드장님께서….”
이건의 손짓에 감격한 듯 떨던 이진석의 얼굴은 어느새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기억해주셨군요.”
“그래. 그러니 손자 말대로 해라.”
이건은 다시 말했다.
“죽을 만큼 노력해라. 그래서 안 되면 죽어라. 전장에서 죽거나, 노력하다 죽거나 죽는 건 똑같다. 그렇다면 진짜 죽을 것 같으면 그렇게 죽는게 낫다.”
이건의 말에 일행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게 아니면, 네 동료들이 죽는 걸 볼 거다. 찢겨 죽고,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죽고, 네 손을 부여잡다 죽을 거다.”
“……….”
상상과 다른 말에 하얗게 질린 얼굴들.
하지만 그들은 헌터였다.
“지겹도록 많이 봤습니다.”
이진석.
“더 이상 보지 않을 겁니다. 걱정않으셔도 됩니다. 헌터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수련 중 죽겠습니다. 그게 아니면 제 동료가 죽는 걸 보게 될 테니까요.”
“알아들은 모양이군.”
과격한 이야기가 끝나고.
“그럼, 이만 가보지. 그리고 너희들은….”
이건이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언제든 저택에 놀러와도 좋다.”
“……!”
이건의 말에 다시금 눈을 동그랗게 뜬 그들을 뒤로 한 채 이건과 이정기가 사라졌다.
“감사합니다.”
사라진 이건을 향해 고개를 숙인 이진석.
이건과 그래도 접점을 가지고 있는 이진석이야 그렇다 쳐도.
“감사합니다.”
다른 이들 또한 고개를 숙이며 이건의 뒤에 인사를 했다.
이건.
그가 갖는 의미.
그의 저택이 갖는 의미.
그리고.
‘강해져라.’
그의 한마디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올림포스.’
그때와 같이 세계의 존망을 건 싸움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 * *
“여기가 무엇이냐 물었었지.”
이건 저택의 지하, 일렁이는 던전의 입구를 보며 이건이 말했다.
“여긴….”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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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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