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241화 (241/284)
  • 제10권 16화

    241

    이건이 강단에서 내려갔다.

    “…….”

    그 후에도 길게 이어진 침묵.

    당연한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이건의 선언에 동요가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이 더욱 신기한 일이었다.

    ‘녀석이 마지막 카드다. 지켜내라.’

    할아버지는 오늘 이 말이 하고 싶은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헌터, 아니 세계의 헌터들을 모아 선언한 것.

    어수선한 분위기.

    터벅.

    이번에 또 한 명이 강단에 올라섰다.

    “자세한 설명은 협회 측에서 하겠습니다.”

    정훈.

    그가 긴장을 풀기 위해 넥타를 손으로 잡으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올림포스가 봉인된 후….”

    그다음부터는 아는 이야기였다.

    올림포스가 봉인될 때, 그 틈을 타 빠져나온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

    그들이….

    “시엘입니다.”

    시엘의 몸을 빼앗았다는 것까지.

    그 후로도 복잡하고도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세계에 암약하고 있는 진실에 대한 것들.

    당연히 놀라는 반응들이 대다수였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부와 권력, 그리고 생과 사에서 싸우던 이들인 만큼 이미 어느 정도 진실에 눈을 뜬 자도 있을 것이었다.

    ‘또한, 이미 그들과 접촉한 자들도.’

    수많은 헌터들.

    이들이 일개 헌터들도 아닌 세계의 기득권임을 알기에 그런 눈초리도 당연한 것이었다.

    티탄들은 단순히 세계를 파멸시키고 새로운 세계를 재건시키고 싶어 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 후.

    ‘노예.’

    그 세계에서 살아갈 노예와 그 노예를 움직이는 자들까지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것이 아니고서야 그들이 시엘의 몸을 빼앗아 세계의 권력자로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어느 선까지.’

    그들의 입김이 닿아 있을까.

    ‘어느 누가.’

    그들의 앞잡이일까.

    “할아버지는….”

    이정기가 저 멀리 벽에 기대어 눈을 움직이는 이건을 보았다.

    “그것까지 보실 생각이구나.”

    지금껏 모습을 감추었던 할아버지.

    이정기는 할아버지가 단순히 티탄들을 틀어막고 사냥하며, 그들의 왕을 추적하는 것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지만은 않았다.

    적어도 이 세계에서 이건을 가장 잘 아는 두 명 중 하나일 테니, 이건에게 다른 목적이 있음은 짐작하고 있었다.

    이건은 그 수도 없는 전투 속에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며 준비해 온 것이었다.

    꽈악.

    그런 할아버지를 보자니 스스로가 창피했다.

    힘을 되찾는 것에 급급했고, 할머니에게 인정받는 것에 급급했다.

    다가오는 적들을 쓰러트릴 생각밖에는 하지 못했고 치기를 못 이기고 이성에 욕심을 품었다.

    그 과정 속에서 벌어진 성혈들과의 싸움, 티탄의 개입이 있었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도 부족하구나.’

    할아버지가 그려온 그림에 불과하다면 어린아이 장난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아니다.

    그때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네가 할 일이 맞았다.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이야기해주는 이건의 목소리.

    -그러니 스스로를 부정하지도, 모자르다고 생각하지도 말거라.

    멀리 보이는 따스한 웃음을 보며.

    “물론입니다.”

    이정기는 답했다.

    자신이 부족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을 책망하는 것은 아니었다.

    ‘인정하고, 나아간다.’

    그것이 자신이 취해야 할 올바른 자세.

    -이제 다 컸구나.

    그런 웃음을 지을 때.

    “우리 이성은.”

    묵직한 목소리가 또 한 번 강당을 울렸다.

    최명희, 그녀가 코트를 어깨에 걸친 채 자리에서 일어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전적으로 협력할 것을 약속하지. 저 미친 늙은이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은 내키지 않지만.”

    공식적인 석상에서 언제나 스스로의 페이스를 잃은 적 없던 할머니 또한 미소 짓고 있었다.

    “이제 저 늙은이만의 일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발표는 추후 할 예정이지만, 이렇게 대단한 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발표를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일이겠지.”

    최명희의 시선.

    그것이 이정기를 향해왔다.

    “나는 이성 회장직에서 물러날 생각이네.”

    웅성웅성.

    지금껏 무성하기만 했던 소문.

    그 끝이 지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차기 회장은, 이정기. 이건이 말한 인류의 마지막 카드가 맞게 될 걸세.”

    최명희의 말에.

    “여우 같은 여편네.”

    이건의 조용한 목소리가 이정기의 귓가에만 들려왔다.

    * * *

    “오늘 뭘 한 건지 알겠느냐?”

    어느새 손님들은 죄다 돌아간 후였다.

    장인들을 제외한 이들은 이건의 축객령에 식사조차 하지 못한 채 저택을 벗어나야만 했다.

    이건과 이정기.

    그리고.

    “…….”

    최명희만이 응접실에서 준비된 식사를 치르고 있었다.

    “선전포고…, 아닙니까?”

    “그래. 맞다.”

    이정기의 말에 이건이 말했다.

    “에레보스가 움직였다. 더 이상 녀석들도 시간을 끌 이유가 사라졌지. 그리고.”

    스테이크에 포크를 꽂아 넣은 이건의 눈이 빛났다.

    “다른 왕들도 깨어났다.”

    “그런….”

    “혼자 막기에는 역부족이더구나. 이러나저러나 괜히 신을 자칭하는 것들이 아니야.”

    이건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여유로운 태도를 가진 채 말했다.

    “시간을 더 끌어봐야 녀석들은 야금야금 제 세력을 더욱 갖추고,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을 집어 삼켜갈 것이다.”

    이미….

    “보았지 않느냐.”

    티탄들의 움직임은 그러고 있었다.

    시엘 회의를 장악하고, 그들의 세력을 흡수했다.

    그것도 모자라.

    “이성에까지 손을 뻗은 녀석들이야.”

    대한민국, 이성에 손을 뻗어 이성을 흡수코자 했다.

    어디 그뿐일까.

    김대정, 협회장인 그에게도 티탄의 손길이 뻗어 있었었다.

    그 외에도.

    “몇 군데 더 있지.”

    최명희의 말마따나 티탄의 입김과 손길이 닿은 곳은 몇 군데 더 있다고 판명났다.

    대한민국에서만 이 정도다.

    세계적으로는?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곳도 있을 거다.”

    이미 사안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판단하는 것이 옳았다.

    “늦기 전에 경고한 것이군요.”

    할아버지는 그렇기에 늦기 전 경고한 것이다.

    ‘편을 골라라.’

    그리고.

    ‘의심하라.’

    적들의 이상이 인류의 전멸이 아닌 이상 누군가는 그들의 편에 설 수 있을 테니,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고 감시하라.

    그리하여 스스로를 지키라는 이야기.

    할아버지의 모든 행동은 하나로 귀결되었다.

    ‘구하기 위한 것.’

    자신이 귀찮고 징그러운 존재라 한때 생각했던 인간들을 할아버지는 진심전력을 다해 구해 내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또….”

    이건이 말을 하려던 찰나.

    “전장을 축소시키는 거지.”

    최명희가 식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네 할애비, 저 개잡종은 전장을 축소시키려는 거다.”

    “전장의 축소 말씀이십니까?”

    “티탄의 손길이 세계에 뻗어 있다. 그리고 우리의 몸은 한정되어 있지. 헌터가 똘똘 뭉쳐 대항한다고 하나, 알지 않느냐.”

    최명희가 말했다.

    “티탄은 뭉친다고 쓰러트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진정한 강자.

    최소 시엘급의 헌터.

    혹은 그 이상의 가디언 급이나 자신들이 되어야 상대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개잡종은 네가 인류의 마지막 보루라 말했다.”

    최명희가 설명을 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너나 개잡종은 당분간 한국을 떠날 생각이 없지.”

    “그 말은….”

    이정기도 알아들었다.

    “적들이, 혹은 적들의 편에 선 자들이 노리는 것이 저와 할아버지라는 말이네요.”

    “그리고 그들은 전부 한국에 있지.”

    대한민국.

    “전장이 되는 거네요.”

    그곳이 인류의 존망, 아니 세계의 존망을 걸고 싸울 전장이 되는 것이었다.

    세계를 무대로 싸운다면….

    ‘불리해.’

    무조건적으로 불리한 싸움.

    그렇기에 적들을 불러모아 처리하겠다는 말.

    “피해가 막심할 겁니다.”

    커다란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그것도 수도 없이, 꽤 오랜 시간.

    그 피해는 고스란히 모든 이에게 전달된다.

    전장의 축소는 필수적인 요소였고 구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생각해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 불필요한 희생이 강요된다.

    할아버지는 모든 인간을 구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나?

    “그러니까….”

    이건이 말했다.

    “장인들을 불러모았지.”

    탁.

    이건 또한 식기를 내려놓았다.

    “앞으로 장인들과 물자들이 더 도착할 거다.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해주마.”

    무언가, 또 다른 계획이 있는 것이었다.

    * * *

    ‘최선을 다하거라. 이제 너는 이성의 주인이기도 하니.’

    돌아가기 전 할머니가 해준 말을 떠올렸다.

    이성의 주인.

    아직 실감도, 기쁨도 느껴지지 않는 말이었다.

    그저 무언가를 해냈다는 것.

    그 한 가지뿐.

    “뭔 놈의 생각이 그렇게 많아?”

    이제 둘만 남은 이건이 이정기를 향해 말했다.

    “넌 아직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 없어.”

    이건의 확고한 목소리에 이정기는 답했다.

    “그럼 제가 뭘 하면 될까요.”

    “몰라서 묻는 게야?”

    두 조손은 서로를 보며 씨익 웃었다.

    이정기도, 이건도 답을 알고 있었다.

    “강해져야죠.”

    “강해져야지.”

    선명한 대답.

    “더 이상 지고 싶지 않습니다. 제게 패배를 안겨주는 존재는 할아버지 하나로 충분해요.”

    “암 그래야지.”

    “알려주세요. 더 강해질 수 있는 방법.”

    시작점.

    할아버지와 자신의 시작점은 크게 차이가 났다.

    이건에게 유리한 것이 아니었다.

    ‘쥬피터 할아버지.’

    자신은 애시당초 쥬피터에게 넥타와 신체를 받아 새로 태어났다.

    그에 반해 이건은 어떻던가.

    스스로 넥타를 만들었고, 신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강해지신 거예요?”

    이건은 지금 자신보다 더욱 강하다.

    도대체 뭘 해야 저렇게 강해질 수 있을까.

    수련?

    ‘한 시도 빼먹은 적이 없었어.’

    매일 매일, 하루도 빼먹지 않고 수련했다.

    ‘실전.’

    격차는 있을 테지만, 이정기 또한 싸움을 쉬어본 적은 없었다.

    ‘넥타의 활용? 장비?’

    아무리 답을 내려보려 해도 쉽지 않았다.

    도대체 그 어떤 것이 답이 되어줄 수 있을까.

    이정기는 그 답을 이건에게서 찾고 있었다.

    “네게 부족한 것은….”

    이건은 그런 이정기를 향해 말했다.

    “시간이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주 소 | 경기도 하남시 조정대로 35 하우스DL타워 F915-1(9층)

    대표전화 | 070-8233-6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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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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