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권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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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밀려드는 자동차들.
결코, 가득 차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이건 저택의 주차장은 물론이거니와 드넓은 입구에 자동차가 가득했다.
쉽게 구할 수 없는 종류, 클래식 카, 슈퍼카.
여기 있는 자동차들의 값을 전부 매긴다면 그 또한 아마 수천억은 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입이 떡 벌어져 아무런 말도 안 나온다.
단언컨대.
“대한민국 헌터의 과반수 이상이 여기 모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농담과 같은 말이.
“뭐, 숫자는 그렇게 칠 수 없어도 움직일 수 있는 헌터의 수를 따지면 그 정도 되겠지.”
현실이었다.
누가 이런 것을 가능케 할 수 있을까.
협회라고 한들 이 많은 수의 헌터를 한 자리에 모으려면 애를 먹어야 할 것이었다.
“네가 정기구나.”
자신을 향해 아는체 하는 이들.
“네 아버지 친구다. 진즉 연락하지 못해 미안하다. 회장님께서 보호하시니, 지금은 내가 연락을 취하는게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이정기는 이건과 함께 그들을 맞았다.
해가 저 드높이 떠 있을 때 저택에 도착했건만.
“해가 졌네요.”
이미 해는 져 사라지고 난 후였다.
마침내 멈추지 않을 것만 같던 자동차의 행렬이 끝났다.
더 이상의 손님은 없는 걸까.
“아직이다.”
이건의 말에 이정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남은 손님이 있음을 자신도 안다.
우우웅.
무겁게 울리는 자동차의 엔진음.
족히 수십 대는 될 것 같은 자동차들이 일렬로 맞추어 오고 있었다.
자동차의 번호판에 그려져 있는 표식.
“협회.”
수많은 자동차의 행렬을 누가 관리하고 조율했을까.
만일 아무도 없었다면, 이건 저택으로 향하는 입구는 난장판이었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느껴지던 기척들.
그것이 협회에 속한 헌터들의 기척임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수많은 헌터들을 통제하고 올려보낸 것이었다.
또한.
우우웅.
그 뒤의 자동차에는 또 다른 표식이 그려져 있었다.
“네….”
이건이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할미가 온 모양이구나.”
* * *
“오랜만에 뵙습니다.”
깍듯한 인사.
구십 도로 꺾여진 허리의 주인공은.
“협회장이 됐다는 소리는 들었어.”
정훈이었다.
“예. 부족하지만 제가 맡게되었습니다.”
정훈과 함께 선 이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악에 받쳐 협회장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 자리가 꽤나 어색해 보이던 정훈이었는데, 이제는 제법 태가 났다.
“회장님과 함께 올라오겠다고 조금 늦었습니다.”
“아냐. 니들이 통제를 잘해줘서 별 소란이 없었다.”
“감히 여기서 소란을 피울 사람이 있겠습니까.”
정훈과 할아버지의 대화.
이정기는 또 한 번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정훈이 이건을 극도로 어려워하면서도 존경하고 있다는 느낌.
“지금이라도….”
그런 정훈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협회장 자리를 내어드리겠습니다.”
정훈의 말에 이건이 안색을 굳혔다.
“전 협회장님께선 헌터님이 돌아오신 후 헌터님께 협회장 자리를 위임하고 싶어하셨습니다. 아니, 예전에도 그러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랬지.”
이건이 말했다.
“하지만 그전에도 내가 거절한 것은 이유가 있는 것이야.”
이건의 서늘한 목소리에 정훈 또한 얼굴을 굳히며 바로 고개를 숙였다.
“결례를 범했습니다.”
“아니야. 그 자리가 힘들고 무겁겠지.”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이한테 넘기기는 믿기 힘들고 말이야.”
협회장이라는 위치.
“하지만 거기 내가 앉으면 어찌 될 것 같나?”
이건의 말에 정훈이 조심스레 말했다.
“아무도 거스를 수 없겠죠.”
지금의 협회는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중재자.
길드와 헌터 사이, 길드와 정부, 헌터와 일반인.
그런 것들의 중간에서 중재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라 말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후는 어찌 되겠나. 선례가 있잖은가.”
“이탈리아 말씀이십니까?
”“그래.”
“하지만.”
정훈은 말했다.
“저희를 모두 모은 이유가 있지 않으십니까.”
“…….”
정훈의 말에 이건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그 권력을 쥐시는게 낫습니다. 그게….”
“나는.”
이건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누군가가 구해주는 것을 바르다고 생각하지 않아. 스스로 살아남고자 애를 써야지.”
둘의 대화.
‘그래서였구나.’
이정기는 왜 오늘 이 많은 이들이 모인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얘기는 그쯤 해.”
익숙한 목소리에 이정기는 입가를 말아 올렸다.
“할머니.”
“다 모아두고 언제까지 여기서 이야기할 거야? 예나 지금이나 그 개 같은 성격은 똑 같구만.”
박윤태와 이성의 경호 헌터들과 함께 서 있는 최명희가 나타나 이건을 향해 말했다.
“여편네. 반가우면 반갑다고 해. 왜? 한판 붙게?”
“여기 헌터들 모아놓고 청소라도 할 생각이야? 닥치고 들어가.”
반가워하는 것인지 무엇인지 모를 인사.
그제야.
“그러지.”
이건이 미소를 지은 채 뒤돌아섰다.
저벅.
이건을 앞으로, 이정기, 정훈, 최명희가 함께 이건 저택으로 향해들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유를 몰랐지만, 이제는 이유를 안다.
그렇기에.
오소소.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돋아난다.
이 많은 헌터들을 모은 이건.
그에 반항 하나 없이 모인 헌터들.
협회와 할머니까지.
“예전에도 한 번, 이런 모임이 있었습니다.”
정훈은 나아가는 이정기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 그 날을 기점으로….”
언제인지 알 것 같다.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올림포스를 찾은 날.
그곳으로 향할 원정대를 구축하는 날.
그렇게 인류는 올림포스를 닫고 게이트를 해결함으로 안전을 보장받았다.
“오늘도….”
이정기는 정훈을 향해 말했다.
“그럴 겁니다.”
* * *
“저희가 준비했습니다.”
정훈의 목소리.
이건 저택의 커다란 강당.
아마도 이곳은 이건이 훈련을 위해 만들어둔 훈련장처럼 보였다.
그곳에 놓여진 수많은 의자, 그 위에….
고오오.
하나하나 무시할 수 없는 강자들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드드드.
협회측 헌터들은 아직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수많은 모니터들.
딸각.
그들이 일시에 전원을 켜자.
웅성웅성.
모니터마다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동양인, 서양인, 아랍인.
인종을 뛰어넘은 수많은 사람들.
“이 회의에 참여하고자 원한 이들입니다.”
이건 저택의 손님은 국내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준비 끝났습니다.”
정훈이 이건을 향해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탁.
강당에는 순식간에 침묵이 감돌았다.
정훈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감각을 지닌 이들이 아니었으니, 정훈의 목소리를 듣자 곧 이 만남의 목적이 밝혀진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다녀오마.”
이건이 이정기에게 말하며 발걸음을 내딛었다.
탓, 탓. 타악.
강당 안에 울려 퍼지는 발소리.
꿀꺽.
사람들이 침 삼키는 소리와 작게 숨을 고르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리고 있었다.
탁.
마침내 강단 위에 선 이건.
그가 조용한 눈빛으로 사방을 훑었다.
그의 눈빛이 닿는 곳에 고개를 숙이는 이들도, 고개를 피하는 이들도, 혹은 또렷이 이건을 쳐다보는 이들도 있었다.
그것들을 보며.
씨익.
이건은 웃었다.
“오늘.”
마이크 따위는 필요 없었다.
“내 부름에 부리나케 달려와 주느라 다들 수고했네. 뭐 안 왔으면 내가 갔을 테지만.”
농담과 같은 말.
“커억!”
“켁! 켁!”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는지 많은 헌터들이 목이 메는 소리를 했다.
“내가 왜 불렀는지 아는 녀석들도 있겠지. 하지만 모르는 녀석들도 있을 거야.”
이십여 년이 넘는 세월.
그간 아직 이어진 인연도 있다지만 끊어진 인연도 있는 법이었다.
이를테면 누군가 죽어 그 자리를 대신한 자들.
혹은.
“나를 처음 보는 녀석들도 있을 테고.”
아예 이건을 본 적조차 없는 이들도 자리에 있는 듯했다.
“그래도 생각 머리는 있으니 이 자리에 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디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이들을 모아놓고 이건은 마치 어린 학생들에게 설교하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짐작하는 것과 같다.”
갑작스레 무거워지는 분위기.
이건의 목소리가 증폭되는 것만 같았다.
“올림포스를 끝으로 게이트가 등장하지 않게 되었다. 인류는 위협에서 벗어나 안전과 평화를 되찾았지.”
모두가 알고 있는 진실.
그리고.
“거짓이다.”
그 진실이 틀렸음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할아버지.’
오늘 이건이 이들을 모은 이유는 이것이었다.
이들 중 비밀에 대해 알고 있는 자들도 있겠지만, 모르고 있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위협은 끝나지 않았다.”
세계가 되찾은 평화가 아직 일시적이라는 것을.
“더 큰 위협이 우리 코앞, 아니 몸통 깊숙한 곳에 숨어들어 있지. 아느냐? 혼돈의 세대라고, 아느냐?”
이건의 눈이 더욱 가라앉았다.
“티탄이라고.”
이건은 오늘 이곳에서.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선전 포고를 할 생각인 것이었다.
* * *
“내가 길게 설명은 안 할 거다. 자세한 건 이 모임이 끝나고 협회 측에 물어봐라. 내가 니들을 이 자리에 모은 것은 간단하다.”
씨익.
“편을 정해라. 그리고 전쟁을 대비해라.”
그때.
“편을 정하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티탄은 뭐고, 전쟁은 무어냐는 질문이 아니었다.
“녀석들이 바라는 건 새로운 세계, 그것은 질서의 개편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지.”
씨익.
이건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니들이 그렇게 원하는 헌터가 왕, 아니 귀족인 세상이 도래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웅성웅성.
그제야 사람들이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그러니 편을 정해 싸우라고, 그 질서가 좋으면 그편에 서면 그만이다. 참고로…, 나도 승리를 장담치 못한다.”
“……!”
“뒤지기 싫어도 반대쪽에 붙도록.”
이정기도 정신을 못 차릴 이야기였다.
“다만 반대편에 붙는 것들을 죄다 죽일 테니, 그렇게 알도록. 아 그리고.”
이건의 눈이 향하는 곳.
그곳에 이정기가 서 있었다.
끄덕.
신호를 주는 이건.
이정기는 따로 뭔가를 정하지 않았지만, 그 신호에 천천히 움직여 강단위로 올라섰다.
“다들 알겠지? 내 손자다.”
이건이 이정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리고 녀석만이….”
씨익.
“이 전쟁을 끝내고 진짜 평화를 찾아올 수 있는 마지막 카드다. 그러니 편을 정해 내 쪽에 설 거면 이 녀석을 지켜. 죽을힘을 다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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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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