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237화 (237/284)
  • 제10권 12화

    237

    ‘그가 날 진심으로 사랑했으니까.’

    주용과 최명희의 파국에는 그것이 원인이라고 했다.

    “사랑….”

    잘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긴 했다.

    가족에게 느끼는 것을 사랑이라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그건 다른 것이었다.

    “사랑….”

    도대체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왜 서로의 관계를 파국으로 치닫게 만들었단 것일까?

    쉬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물었건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꾸나.’

    최명희는 이야기를 거기서 끝냈다.

    결국, 이것 또한.

    “시험은 그만두신다고 하더니…, 아니 시험이 아니라 숙제인가?”

    결과에 따른 상벌은 없는 것.

    깨닫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배우며 스스로 결론을 내라는 뜻 같았다.

    꽈악.

    그러나 이정기는 사랑이 무엇이냐는 유치한 숙제에 정신이 팔려있을 수 없었다.

    겉으로 티는 내고 있지 않지만 홀로 있으면 이내 생각에 잠긴다.

    “에레보스….”

    진실로 자신에게 격차를 느끼게 해준 존재이자 깨부술 수 없는 벽과 같은 존재.

    자신의 첫 패배.

    ‘티탄의 왕.’

    결국, 깨어난 티탄의 왕이 보여준 힘은 가히 경악을 금치 못할만한 것이었다.

    부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공격은 모든 것을 부순다.

    닿는다.

    하지만 찢을 수 없다.

    존재하지만 허상과도 같은 것.

    그건 말 그대로….

    ‘공포.’

    공포를 지우기까지는 힘들지만, 공포가 자신을 잠식하는 것은 빠르다.

    어느새 공포에 질린 자신을 발견하면 더욱 큰 공포가 자신을 덮쳐올 뿐이었다.

    에레보스를 떠올리면.

    파르르.

    손이 떨려온다.

    다시 그가 자신을 덮치지 않을까.

    ‘올림포스의 새로운 왕이 겨우 이따위 것이라니.’

    그의 눈빛, 표정, 움직임.

    하나하나가 전부 공포스럽게만 느껴졌다.

    “푸하!”

    이정기가 숨을 토해내듯 뱉었다.

    이정기의 눈에 핏발이 가득 돋아 있었다.

    “이겨낸다.”

    공포를 이겨낸다.

    종내엔.

    “에레보스를 쓰러트린다.”

    그것이 지금껏 자신이 살아온 방식이자, 이정기라는 존재였다.

    스윽.

    뒤늦게 눈치챈 기척에 급히 이정기가 고개를 돌렸다.

    “보기 좋구나.”

    만반의 전투 태세를 갖춘 이정기의 앞에 서 있는 것은….

    “할아버지!”

    이건이었다.

    이성 저택의 일 이후 분명 남아있겠다고 했던 할아버지가 또 자취를 감췄는데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뭘 그리 불러?”

    “또 사라지신 줄 알았어요.”

    “말했지 않느냐. 당분간은 머무를 거라고, 내가 어디 거짓말을 한 적이 있느냐?”

    굳어 있던 이정기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한 두 번이 아닌데요?”

    “예끼. 이눔아. 그건 훈련 때문에 한 거였고.”

    “훈련은 무슨….”

    스윽.

    이건의 손이 이정기의 머리 위에 올려졌다.

    180이 넘는 이정기의 키, 그걸 내려다보는 이건.

    이미 장성하여 많은 것을 이룬 이정기였지만.

    “욘석아. 장하다. 공포를 이겨냈구나.”

    아직도 이건에겐 그저 아이일 뿐이었다.

    “더 큰 공포, 아니 목표가 있으니까요.”

    씨익.

    마주 웃는 둘.

    그 목표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이건.’

    에레보스보다 강한 자, 아니 그 누구보다 강한 자.

    그 등을 보고 가는 이에게 에레보스는 그저 또 하나의 걸림돌일 뿐이다.

    * * *

    “할아버지….”

    언제나 냉정함을 잃지 않고 침착했던 이정기였다.

    하지만 그런 이정기가 냉정함을 잃은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웅성웅성.

    쉬지 않고 소란스럽게 떠드는 인파.

    그 인파의 물결이 해일과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외형 변환 스킬이라도 써야 하는 것 아니에요?”

    그들은 그저 이정기와 이건이 간신히 보이는 곳에 서 있을 뿐이었다.

    이건과 함께 이정기가 서 있는 곳은 도심 한복판.

    그 소식을 들은 이들이 하나둘 몰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이정기야.”

    “실물이 더 낫네.”

    이정기 또한 지구에서의 시간 속에 그 인지도를 높였다.

    원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수많은 닭 사이에 고고한 학은 언제나 눈에 띄는 법이었으니까.

    이성의 보호, 그리고 그간의 미스테리한 행적으로 이정기에 대한 관심은 하늘 높은 듯 모르고 치솟아있었는데.

    “사인이라도 해달라고 해볼까?”

    “사진이라도 찍고 싶은데.”

    그런 이정기가 난데없이 도심 한복판에 나타났으니, 세계적 아이돌이 나타난 것보다 더 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정기는 단순한 유명 헌터가 아닌 이성의 후계자 중 하나 성혈이었으니까.

    “아서라.”

    하지만 그들은 쉬이 이정기에게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죽으려고?”

    이정기와 함께 있는 이, 이건 때문이었다.

    “에이 설마…, 그래도….”

    과거의 이건을 아는 자.

    그리고 과거의 이건을 모르는 자의 차이는 극명한 것이었다.

    “영웅이잖아?”

    올림포스를 봉인하고 붕괴시켜 세계에 평안을 가져다준 최고의 영웅.

    그것은….

    “그 전에 뭐라고 불렸는지는 아냐?”

    과거를 모르는 자의 시점.

    “폭군이야. 연산군 알지? 그거보다 더했다니까. 협회 한 번 물갈이 됐던 건 들었어? 이건이 전부 몰살….”

    이건의 과거를 아는 자, 그들은 이건을 두려워하고 어려워했다.

    헌터란 존재가 인간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들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이건만큼은 그 카테고리에 넣지 않는 것이 정설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치운다.

    앞길을 방해해도 치운다.

    에키드나?

    이건은 이미 그것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가진 힘, 그가 가진 목적이 있기에 세계에 받아들여지는 것뿐.

    “야….”

    “그리고 이건의 손에 무너진 길드만 해도 육십….”

    “야…!”

    다급한 부름에 이건의 과거 행적을 나열하던 자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히끅!”

    참을 수 없는 딸꾹질이 나왔다.

    어느새 수많은 인파는 사라지고 남아있는 것은 자신과 대화를 나누던 둘 뿐.

    “히끅!”

    이건이 다가온 것을 알고 부리나케 도망친 것이었다.

    남자를 향해 이건이 더욱더 천천히 다가섰다.

    오줌이라도 지리지 않은 것이 다행인 상황.

    “오해가 있어서 정정해주려고 왔다.”

    “히끅! 예…? 히끅!”

    “난….”

    이건의 이가 새하얗게 드러났다.

    “죽을 짓을 한 놈만 죽인다.”

    “……!”

    “그래서.”

    이건의 장난스러운 미소.

    “너는 죽을 짓을 했을까?”

    남자는 과하게 술이라도 취한 듯 필름마저 끊긴 채 도망치고 있었다.

    “으이그. 사내새끼가 겁만 많아서.”

    고개를 돌린 이건.

    그를 바라보며 이정기가 웃고 있었다.

    * * *

    “왜 그러셨어요?”

    이정기가 호기심을 참지 못한 채 물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

    파리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들어선 카페.

    “흐, 흐흑.”

    카운터 뒤에서 겁에 질린 종업원의 울음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물론 종업원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은 아니었다.

    ‘아메리카노! 두 잔!’

    이건이 들어와서 주문을 한 것뿐.

    “모습이라도 숨기시지?”

    호로록.

    “내가 왜?”

    “사람들이 겁에 질리잖아요.”

    “내가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나?”

    이건이 마시던 아메리카노를 내려놓고 말했다.

    “죽일 놈들 죽였다. 동료를 속여 배신해 죽인 놈들, 헌터라는 힘 하나만 믿고 깝죽대며 민간인 납치하던 쓰레기들. 겁도 없이 나한테 덤벼드는 놈들.”

    이건이 말했다.

    “그래. 많이 죽였다. 그래서 왜? 어쨌든 나는….”

    씨익.

    “세상을 구했지 않느냐?”

    이정기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협회 쪽 일은 협회가 아주 작정하고 미친 짓을 벌여서였다. 지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민생을 구제한다는 것이었지. 어디 떠오르는 곳이 없더냐?”

    “이탈리아…?”

    “헌터가 왕으로 군림하는 세상이야. 그게 미친 세상이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 대한민국의 왕은 할아버지가 되었겠죠?”

    “대한민국뿐이냐? 세계의 왕이었겠지.”

    “근데 왜요?”

    “왕이 좋은 줄 알아? 제 잘난 척하는 꼴 보기 싫었을 뿐이야. 왕은 무슨.”

    알다가도 모를 것 같은 이야기.

    하지만 하나 알게 된 것은 있었다.

    ‘당당함.’

    이건의 당당함은 눈이 부시다는 것.

    올림포스에서는 둘밖에 존재하지 않기에 너무나 당연했던 그것이 지구에서는 환한 빛을 내고 있었다.

    “너도 그러지 그랬느냐.”

    “…….”

    “네 앞길 막는 놈 죽이고, 쓰레기 같은 놈들 처리하고. 그러지 그랬어.”

    질책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건의 입가에 걸려 있는 미소는 다른 의미를 지닌 듯했다.

    “할아버지가 원치 않으실 것 같아서요.”

    “그래?”

    “할머니도요.”

    씨익.

    이건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나도다.”

    “……?”

    “나도 그래서라고. 안 그랬으면 내가 대한민국 인구만큼은 죽였겠다.”

    호로록.

    아메리카노를 다 마신 이건.

    “당당히 어깨 펴고 살아라. 나는 널 그렇게 가르쳤다. 눈치 보지 마. 골치만 아플 뿐이야.”

    “명심할게요.”

    “그래서….”

    이건의 표정에 미소가 사라졌다.

    ‘이제야….’

    본론으로 들어가려는 것 같았다.

    “분하지?”

    무엇이냐는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예.”

    에레보스, 녀석에게 진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다. ‘격’은 쉬이 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격….”

    “개미 한 마리는 인간에게 큰 해를 입힐 수 없어. 치명적인 독이라도 있지 않는 한 말이야.”

    “…….”

    “그러니 인간이 되어야지.”

    이건은 말했다.

    “너는 자격이 충분해. 애시당초 너는 개미가 아니라….”

    인간과 개미의 비유.

    그리고 이정기는.

    “아직 다 크지 않은 아이일 뿐이니까.”

    그 둘처럼 종이 다르지 않았다.

    올림포스의 왕이 가진 힘.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내 안에 담긴 모든 힘을 끄집어낼 수 없어.’

    그걸 위해 수없이 노력했지만 성장은 있을 뿐 진화는 없었다.

    넥타의 레벨도 멈춰 있었다.

    육체의 한계도 느껴졌다.

    여기서 뭘 더해야 할까.

    “준비됐느냐?”

    “……!”

    씨익.

    “껍질을 벗어던질 준비 말이야.”

    준비….

    “아서라. 안 된 거 다 안다. 그랬으면 진작 넘었겠지.”

    “후.”

    한숨이 절로 나온다.

    “놀리시는 거에요?”

    “아니. 그 준비.”

    이건이 마침내 아메리카노를 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시켜주마. 그리고 커피 다 마셔. 그게 바로 어른의 맛이다.”

    한결같은 모습.

    지구에 와 할아버지의 과거를 알고 할아버지가 겪었어야 했던 일들을 상상해보았는데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할아버지는 그 모든 것을 딛고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도야.’

    할아버지 했던 말의 뜻.

    씨익.

    할아버지 또한 할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한 것이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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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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