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235화 (235/284)

제10권 10화

235

“나는….”

마침내 열리는 주인배의 입.

드디어.

‘여지껏 이성을 뒤흔든 자의 정체.’

그것이 밝혀질 것이었다.

“아….”

끝까지 망설이는 그의 입이 마침내 정답을 말하는 순간이었다.

“아버지의 말을 따랐을 뿐이다.”

“……!”

* * *

쫘아압.

빨대를 타고 흘러 들어가는 용액.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꽂고 꽃무늬 셔츠를 풀어헤친 남자가 비치 체어에 누워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촤아! 촤아아!

파도 소리가 울리는 이곳은 필리핀의 한 섬이었다.

‘필리핀.’

과거 천혜의 자연을 보유해 관광명소로 세계 인구를 빨아들이던 곳.

그러나 현재 이곳은.

‘멸망의 땅.’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멸망의 땅이 되어버렸다.

온갖 섬으로 이루어진 국가.

게이트가 발생하고 헌터들이 탄생하던 시기, 필리핀은 그렇게 멸망했다.

수많은 섬으로 존재하는 까닭에 발생한 게이트를 놓치는 일이 다반사.

필리핀에서 각성한 헌터들은 필리핀의 수도와 권력자들을 보호하는 데 혈안이 되었으니.

“쯧.”

당연하게도 필리핀의 수많은 섬에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났다.

몬스터를 토해내고 마력을 뿜어내는 게이트 브레이크, 그것이 일어난 곳에 존재하는 것은 죽음뿐이었다.

올림포스를 봉인하고 여유를 되찾은 헌터들이 브레이크로 망가진 지역을 탈환하기에 나섰지만, 너무 오랫동안 방치되어 손을 댈 수 없는 곳들도 있었다.

그것이 바로 필리핀.

마력과 몬스터, 독기에 범벅이 되어 인간은 결코 살 수 없는 땅이 된 이곳에.

후륵.

남자는 여유로이 햇볕을 즐기고 있었다.

휘어져 올라갔던 남자의 눈이 가라앉는 순간.

스윽.

그림자 하나가 뒤에 나타났다.

“이성 저택의 건은 실패로 끝났다고 합니다.”

그림자의 보고에 남자의 얼굴에 이채가 서렸다.

“왕이 움직였는데?”

이성 저택의 건은 결코 실패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일이었다.

‘왕.’

그들의 힘을 목도하고 알고 있는 그로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

“그것이….”

보고하는 그림자가 황송하다는 듯 말꼬리를 흐렸다.

싸늘해진 분위기.

“죄송합니다.”

그림자는 사과를 하고서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건이 나타났답니다.”

“……!”

순식간에 커지는 남자의 동공.

동시에.

쿠콰콰콰콰!

사방 모든 것이 짓눌리는 거대한 힘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크으… 윽.”

자신의 수하마저 찢어 죽일 정도의 힘.

실제로 그림자의 몸 곳곳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회장님…. 부디….”

그림자의 애원이 이어지자.

팟!

그제야 내리찍던 힘이 모습을 감추었다.

남자는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그자가 움직였다면야 실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그 정도란 말이지.”

이건의 이름이 남자에게 주는 감정은 단 하나.

분노뿐이었다.

평생 자신의 뒤를 따라다니는 이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이름.

그건 낙인이자 화인.

“아이들은?”

남자는 가까스로 감정을 진정시키고 물었다.

“목숨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습니다.”

“쓸모없는 것들. 그 나이가 되어서도 도움은 안 되는구나.”

눈을 감은 남자.

‘왕이 움직였음에도 실패한 것은 이건이 나타날 것이라 예상치 못한 것 때문이다.’

그는 실패의 원인을 곱씹고 있었다.

‘또한, 이건의 힘이 그 정도까지인 줄 알지 못했던 까닭이다.’

그것이 주인배의 난이 실패한 이유일 것이다.

주인배를 믿기 보다는 자신이 만들어낸 상황을 믿었는데 생겨난 결과였으니까.

그리고….

씨익.

주형태의 난이 실패한 이유는 간단하다.

“아레스라.”

기껏 만들어진 육체를 제대로 조종하지도 못한 채 탐욕에 휩쓸렸던 것이 패착.

또한, 육체가 가진 힘을 제대로 끄집어낼 수 없었던 것 또한 문제이리라.

그렇다면.

“두 번의 실패면 충분하다.”

이제 실패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끝났다.

실패의 원인을 알았다면, 그다음은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보완하고 완성시키는 것.

“계속 주시하도록.”

“예. 회장님.”

그림자가 사라졌다.

홀로 남은 남자는 테이블에 올려진 음료를 쫘악 빨아 비운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를 만나야겠군.”

팟.

서 있던 남자의 신형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 * *

마침내 밝혀진 흑막.

주형태에게 아버지의 피를 건네주어 육체를 만들어냈으며 주인배에게 유능한 헌터들을 소개시켜 주어 이성 시큐리티에 티탄을 침투시킨 자.

그의 이름은.

“주용.”

주인배와 주형태의 아버지였다.

“…….”

커다란 헌터 사업을 이끌며 헌터 장비에 있어 세계에서 3위의 기업을 경영하던 그.

하지만 할머니와 이혼하며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 또한 그였다.

그라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이성을 노리는 이유가 명백하다.

이진석이 말을 이었다.

“두 분의 관계는… 생각보다 더 좋지 않습니다.”

이성의 사정에 있어서는 이정기보다 이진석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솔직히 이정기 또한 궁금하긴 했다.

할아버지와 이혼하고 재혼했던 할머니.

세간의 인식은.

‘주용이 가진 사업체를 빼앗기 위한 정략혼.’

이성이 더욱 탄탄히, 더 공고해지기 위해 할머니가 주용을 선택하고 이용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정기가 느끼기에.

‘아니야.’

할머니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세간의 인식은 할머니가 피도 눈물도 없는 철혈의 여제로 생각한다지만 이정기는 알고 있었다.

할머니가 가진 따스한 마음.

은혜를 알고 그에 따른 보은하는 마음.

할머니는.

‘결코, 사람을 그런 이유로 이용할 분이 아니야.’

그렇기에 이정기는 이 이야기에 궁금한 것이 많았다.

“회장님께서 결혼 생활을 청산하실 때 주용 회장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모든 것.

“그가 가진 사업체는 물론, 자식들마저 모두 빼앗겼습니다.”

“왜 그렇게 된 겁니까?”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하지만….”

안다.

“이유가 있으니 대가를 치른 것이겠지요.”

할머니가 이유 없는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유는 모르는 겁니까?”

“박윤태 실장 정도만이 알고 있을 겁니다. 회장님의 사생활 쪽은 그리 알려진 게 많지 않으니까요.”

그럴 것이다.

“어떤 남자였습니까?”

이정기의 질문에 이진석은 얼굴을 굳혔다.

“쉽지 않은 질문이네요.”

“…….”

“주용 회장의 평가는 좋은 편이었습니다. 다만 주영은 부 길드장을 낳고 나선 둘의 사이가 급격하게 망가졌다는 것까지 밖에는….”

“결국.”

이정기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이진석 공대장님도 자세히는 모르는 거네요.”

“죄송합니다.”

이정기가 잠시 눈을 감았다.

‘주용.’

이제 상대해야 할 자의 이름이었다.

다만….

‘그는 가족인가?’

그의 정체와 카테고리가 오묘했다.

그렇다고 자세한 이야기를 주인배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고, 다른 이들 또한 물어보기 껄끄러웠다.

왜인지.

“직접 물어봐야겠네요.”

할머니께 직접 물어보는 것이 정답이리라.

생각을 마친 이정기가 이진석을 향해 물었다.

“할머니는 지금 어디 계시죠?”

* * *

꽃무늬 셔츠를 풀어헤친 남자, 주용이 어두운 동굴을 걷고 있었다.

“음침한 곳이야.”

그렇게 말하는 것과 달리 표정은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사방에서 들끓는 기운, 그건 마력과도 다른 것.

또한, 넥타와도 다른 것이었다.

‘사기.’

죽음의 기운.

사방에서 퍼져나가는 죽음의 기운이 먼지처럼 덕지덕지 붙어 생명력을 빨아내고 있었다.

일반인이라면 이곳에 발을 딛는 순간 죽을 것이고, 어지간한 헌터들도 제대로 활동조차 못 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사기가 사방에 안개처럼 깔려 있었다.

스으윽.

그런 그의 곁으로 그림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에에에엑!

들려오는 귀곡성.

탓.

멈춰선 주용의 앞에 그림자들이 정체를 드러냈다.

시꺼먼 로브를 뒤집어쓴 일곱.

풍기는 기운의 강도가 결코 심상치 않았다.

제로 라인의 헌터?

아니 그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강하다 약하다, 를 논하기보다는.

‘위험해.’

이 자들은 그 존재 자체가 위험하다는 느낌을 풍기는 것들이었다.

씨익.

주용은 그런 그들을 앞에 두고 웃어 보였다.

“너희의 주인을 만나러 왔다.”

주용의 말과 함께.

-산자는 들어올 수 없다.

일곱의 로브가 거의 동시에 목소리를 내었다.

듣는 것만으로 머리가 찢어질 듯한 통증을 내는 그것들.

-산자는….

-돌아가라….

-산자는….

-들어갈 수 없다….

통보와 같은 말과 함께.

사아아.

주용의 생기가 모조리 빨려 나가는 듯했다.

생생하던 주용의 얼굴이 생기를 잃고 말라갔으며.

-산자는….

주름 하나 없던 얼굴에 주름이 가득해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돌아가라!

그러나.

“내가.”

주용은 꼿꼿이 서 답했다.

“산 자로 보이나?”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린 주용.

모든 생기를 잃고 시체나 다름없는 그의 모습이 서서히 원상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빼앗긴 생기를 되찾은 것은 아니었다.

필설로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

-…….

“언제까지 손님을 이렇게 세워둘 거지?”

어색한 침묵 속에서 마침내 움직임이 있었다.

스윽.

-들어가도 좋다.

길을 터주는 로브들.

주용은 웃음을 지은 채 그사이를 지나가며 로브의 어깨를 툭툭 쳤다.

“고생하는구나. 노예들.”

사아아.

로브에 닿은 손에서 빠져나가는 생기.

아까와 같이 금세 말라버린 손은 어느샌가 다시 본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터벅, 터벅.

움직이는 주용에게 더 짙은 사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지독하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짙은 사기가 생기를 빨아먹는다.

이곳에서부터는 그 어떤 헌터라도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로브를 입은 그 녀석들의 말대로.

‘산자는 밟을 수 없는 땅.’

오직 죽은 자만이 생존할 수 있는 대지.

아무리 강한 헌터라도 관계없다.

제로 라인이라도.

터벅.

이 앞을 지나가면 죽을 것이고.

티탄이라도.

저벅.

이 앞으로 나아가면 그 모든 생기를 빼앗긴 채.

텅!

이곳에 굴러다니는 해골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주용은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는 듯 나아갔다.

끼이이익-!

커다란 문이 열리는 소리.

“오랜만이야.”

주용은 문틈 사이로 반갑게 소리쳤다.

“하데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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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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