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권 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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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스스.
돌덩이가 가루가 되고 뒤이어 먼지가 되어 흩날렸다.
차라리 그냥 돌덩이라면 모를까.
‘미스릴.’
이성 저택의 건축 자재는 특급 아이템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미스릴이 그 주재료였기에, 지금 흩날리는 이 먼지는 전부 미스릴이 가루가 된 것이라고 판단해도 좋았다.
콰아앙!
또다시 일어나는 폭발.
“크윽.”
이정기는 짙은 신음을 내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연속된 싸움, 에레보스와의 결전에서 많은 힘을 소진했지만 지금 물러설 순 없었다.
콰앙!
자신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이 여파를 막아낼 순 없을 테니까.
‘그만….’
이정기는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콰아앙!
그러나 결코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지금 폭발을 일으키고 있는 두 사람.
“그동안 열심히 칼을 갈았을텐데 겨우 이것뿐이야?”
“지친 것뿐이다.”
“거짓말이 꽤나 늘었어.”
그들이 이건과 최명희였기 때문이었다.
에레보스를 격퇴시키고 급작스레 맞붙은 둘.
그 둘의 싸움에 사방이 말 그대로 갈려 나가고 있었다.
‘차라리….’
에레보스와의 싸움이 덜 파괴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체 할머니는 에레보스와 싸우며 이만큼이나 힘을 남겨두었단 것일까?
‘아니.’
이정기는 고개를 저으며 마력 장막을 더욱 강화시켰다.
‘할아버지가 봐주고 있어.’
애시당초 에레보스마저 격퇴시킨 할아버지.
할머니가 예상외의 힘을 내보이고 있다고 한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상대로 진심을 내고 있지 않았다.
할머니라고도 그것을 모를까.
이것은.
“하.”
한숨이 절로 나올 이유.
‘둘 나름의 인사인 거야?’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인사법인 것 같았다.
그렇기에.
“크윽.”
이정기는 이를 악물고 둘의 싸움을 유지시켜 주는데 최선을 다했다.
콰아앙!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콰아앙!
저 둘의 싸움이 단순한 인사만은 아니라는 것.
할머니의 표정과 얼굴에서 느껴지는 복잡한 감정.
똑같이 처음으로 알 수 없는 할아버지의 감정까지.
둘은 지금.
쾅!
서로의 감정을 맞부딪히고 있었다.
“…….”
무슨 감정일까.
반가움? 그리움? 아니면 증오? 혹은 애정일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두 개의 감정만큼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죽이고 싶지 않았어?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망할 여편네.”
할아버지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미안함.
“노망난 늙은이 주제에 혀가 길어.”
할머니에게서는 원망이 느껴졌다.
왜일까.
가라앉는 이정기의 눈.
‘아버지.’
그 이유가 이강과 관련 있음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파앗!
퍼져나가는 기파와 함께 더 이상의 폭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사아아.
내리 앉은 침묵.
“오늘은 여기까지 해. 앞으로도 날 죽일 기회는 충분히 많을 테니까.”
“그러지.”
둘의 싸움이 드디어 멈춘 순간이었다.
* * *
할머니는 싸움이 멎자 바로 자리를 떠났고, 이건은 남아 잔해 위에 앉아 있었다.
스윽.
이정기는 자리를 비키지 않은 채 그 옆에 가 앉았다.
“후. 온몸이 뻐근해 죽겠다.”
이건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이정기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미친 여편네, 더 강해졌어.”
“할아버지가 많이 봐주신 거 아니에요?”
이정기의 말에 이건이 무슨 어이없다는 소리를 하는 것이냐는 것처럼 이정기를 바라봤다.
“내가?”
“에레보스도 격퇴시키셨잖아요. 할머니랑 저는….”
“이눔아.”
이건이 피식 웃었다.
“역시 아직 부족하구나.”
“제가 틀렸어요?”
“그래. 틀렸다.”
이건이 그렇게 말하며 손을 쭉 내뻗었다.
드러난 팔, 그곳에 자잘한 상처가 수없이 나 있었다.
“상성이 안 맞아.”
“……?”
“애초부터 네 할미랑 나는 상성이 안 맞는다. 파장이라 해야 하나, 둘의 마력 파장이 잘 안 맞는단 소리지. 네 할미에게는….”
씨익.
이건은 마치 더할 나위 없는 비밀을 말하듯 말했다.
“이 할애비를 약화시키는 마력 파장을 낼 수 있는 기술이 있다.”
“예?”
이정기도 처음 듣는 소리였다.
“누군가 이 할애비를 쓰러트리는 날이 온다면 분명 그건 네 할미일 거야.”
이정기는 갑작스러운 소리에 무어라 말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스윽.
이건의 손이 이정기의 머리 위에 올려져 있었다.
“잘 지냈느냐.”
어려운 이야기, 알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닌 간단한 안부 인사.
“잘…, 지냈어요.”
이정기는 그제야 작게 웃으며 다시 답할 수 있었다.
“네 할미가 괴롭히지 않든? 이 할애비 피가 섞였으니 미워할 만도 한데.”
“할머니가 그럴 분이신가요. 조금 당황스러운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괜찮아요.”
“그래. 그럴 사람이지.”
이건이 무너진 잔해를 보고 있었다.
“지구는 어떻드냐.”
“…….”
이정기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뷔앙과의 전투 때 잠시 만났던 할아버지, 그때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
“네가 생각한 것과 다르지?”
이제야 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네.”
이정기가 답했다.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의 고향이었으니까요.”
꿈같은 날들.
올림포스와 비교도 안 될 편안함이 가득한 곳.
수많은 사람들과 인간끼리의 유대.
그런 것들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정작 느낀 것들은 다른 것.
“환멸이 나더냐?”
“…….”
“나도 그렇다.”
이건의 얼굴이 전에 없을 만큼 진지해 보였다.
“이 징그러운 세상이 환멸스러워 전부 부숴보자 생각했었고, 그러다 그저 은둔자처럼 지내보기도 했다.”
“…….”
“하지만 진흙 속에도 꽃은 있다.”
진흙 속의 꽃.
“이 진창 속에서도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은 꼭 있는 법이다. 나는 네가 그런 것을 느꼈으면 좋겠구나.”
하나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이성….”
하지만 이건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야. 됐다. 이런 것은 차차 이야기하자꾸나.”
자리에서 일어선 이건.
그가 환히 웃고 있었다.
“당분간은 떠나지 않을 셈이니까.”
* * *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이성, 그런 이성의 저택이 잔해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하는 참사를 당한 것은 통제하려 해도 통제될 수 없는 정보였다.
이성 저택이 무너졌다는 것은 테러나 다름없는 일이며, 그 테러의 수위가 결코 간단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말하고 있었다.
가장 강력한 철옹성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
그곳이 무너져내린 것이었다.
그에 따른 불안감이 더욱 퍼지기 전 수습을 위해 여러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까지다.’
할머니는 여기까지 자신이 해주겠다고 했다.
그 후는.
‘네가 하거라.’
이성의 새로운 주인이 될 자신의 역할이라고.
“…….”
아직 실감이 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꽈악.
알 수 없는 책임감만큼은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이성이라는 울타리.
그에 속해있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아버지.’
아버지가 지키고자 하고 갖고자 했던 이성에 대한 책임감.
그렇기에 자신 또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본 곳에 남자가 앉아 있었다.
초췌하고 어딘가 멍한 얼굴의 남자.
그가 바로.
“작은아버지.”
주인배였다.
이성 저택의 변고 속에서도 주인배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주병훈.’
그의 아들 주병훈이 그를 살려냈고.
‘주강태.’
이번에 처음 저택에 들어온 녀석이 그를 도왔다.
덕분에 주인배는 큰 부상 없이 살아남았다고 하지만.
“그래.”
정신이 망가진 듯했다.
그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한들 그는 진정 이성을 원하고 위하는 자였다.
헌데 그의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나 그의 잘못으로 모두가 죽을 뻔했고, 저택이 무너져내렸다.
그에 대한 죄책감.
그것뿐이라면 주인배의 정신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속았다.’
주인배는 홀로 이 모든 것을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에 속아 자신의 욕망을 자극받고, 누군가에 의해 그 욕망을 불태웠다.
그 누군가.
‘그가….’
주형태에게 주강태의 육체를 만드는 법, 만들 수 있게 도와준 것, 그의 욕망을 자극한 것 또한.
‘그 누군가다.’
주인배, 주형태.
이들이 이정기의 눈에 차지 않을지언정 결코 모자란 이들은 아니었다.
성혈로 태어나 타고난 것들.
성혈로 교육받은 것들.
실제로 주인배는 이성의 전체를 경영할 능력을 가졌으며, 주형태는 길드를 진두지휘했다.
그들의 수하들이 결코 그들을 단순히 성혈이라는 이유로 따른 것은 아니었고 할머니 또한 그런 이유로 많은 것을 맡긴 것은 아니었다.
부족하다고 한들 그것은 이정기의 시선.
충분한 능력과 사고를 할 줄 아는 이들이 삿된 것에 위험한 모험을 했다.
“도대체….”
이들에게 그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
“누가 그런 바람을 집어넣은 겁니까?”
이정기는 그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예상가는 사람은 있다.’
그건 할머니 또한 마찬가지인 듯했다.
주형태 때부터 느껴지던 위화감.
주인배의 일 이후 할머니는 어느 정도 확신을 하는 듯했다.
할머니에게 물어도 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해내고 싶었다.
“왜 그런 짓을 벌인 겁니까.”
이정기의 질문에 주인배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게 작은아버지밖에는 없습니다.”
“…….”
주형태는 이야기조차 나누지 못할 상태.
“이대로 무너질 겁니까?”
이런 소리를 주인배에게 하게 될 줄이야.
“모든 걸 포기할 겁니까?”
처음엔 가족이 될 줄 알았으나 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야! 이건 아니야!’
변고 때 그가 보여준 행동이 이정기의 마음을 바꾸었다.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세요. 무엇을 배운 겁니까. 이성을 위하는 마음이 겨우 이것뿐이었습니까?”
그제야 탁하던 주인배의 동공에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주병훈은 작은아버지를 두려워하고, 또 적대했죠. 일부러 그렇게 만드신 거겠죠. 스스로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음을 아셨으니까.”
“…….”
“주병훈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견제하도록 만드신 것이겠죠. 또 주병훈이 제게 정보를 주는 것 또한 용납하고 흘려주셨습니다.”
주인배는.
“주병훈이 제 편이 되어주길 바란 것 아닙니까?”
주병훈이 자신의 편에 서길 바랐다.
그렇기에 은근하게 자신에게 주병훈을 밀어 넣었으며, 주병훈이 자신의 목숨을 노렸던 일을 크게 질책했다고도 했다.
그러니.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바로잡을 기회. 성혈로서 남을 수 있는 기회. 당신의 아들이….”
이정기가 마지막 통보를 하듯 말했다.
“당신이 누리고 바라왔던 것에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그리고.
“나는….”
주인배의 입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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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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