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권 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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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할애비가 얼마나 강한지, 네가 누구의 손자인지 보여주마.”
쾅!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할아버지의 다른 주먹이 에레보스의 면상에 꽂혀있었다.
정확한 정타.
뒤이어.
쿠콰콰콰콰쾅!
지진이라도 난 듯 폭음이 울려 퍼져나갔다.
에레보스의 등 뒤로 난 일직선의 파괴 흔적.
그러나.
“넌….”
연기가 걷힌 자리에 에레보스는 그대로 서 있었다.
어둠을 앞세워 이건의 주먹을 막은 듯 보이는 그.
“혼….”
에레보스가 무어라 말하려던 찰나.
“그게 끝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어느새 입가에 미소를 번지고 있는 이건이 다시 한 번 팔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모든 공격을 흡수하고, 결코 넘어설 수 없는 격이라 생각했던 그것이.
쩌저적!
갈라지고 있었다.
“……!”
“웃거라.”
콰아아아앙!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될 폭발.
다시금 사방을 잠식한 연기 속에서.
파앗!
에레보스가 두 팔을 교차시킨 채 튕겨져 나가고 있었다.
뒤이어 반격을 준비하는 듯하는 움직임.
번쩍!
“네가 느껴야 할 고통이 한참이나 남아있지 않느냐?”
그러나 그 앞에는 어느새 나타난 이건이 다시금 오른 주먹을 뻗어내고 있었다.
“이 무슨….”
당황한 에레보스가 무어라 말하려던 찰나.
콰아앙!
또다시 폭발이 일어났다.
“커억!”
다른 이들은 볼 수 없었겠지만 이정기에는 어렴풋이나마 보였다.
제대로 뚫리지 않았던 에레보스가 입으로 피를 토해내며 그 눈동자가 흔들리는 광경을.
콰콰쾅!
튕겨 나간 에레보스가 땅거죽을 뒤집으며 엉망진창의 모습으로 겨우 자세를 잡고 있었다.
“…….”
순식간에 벌어진 일.
이정기는 두 눈을 크게 뜬 채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겨우 일 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었다.
지구에 돌아와 잃어버렸던 힘을 되찾고 그 이상의 힘을 얻어내었다.
이제는 조금이나마 닿지 않았을까 생각했건만.
꽈악.
전혀 아니었다.
더 멀리, 더 높은 곳으로 향해 버렸다.
“벌써 끝인 게야?”
자신의 눈으로도 좇기 힘든 속도.
제대로 데미지조차 입히지 못했던 자신의 공격과 달리 할아버지의 공격은 모두 에레보스에게 치명타로 적중했다.
자신보다 더 높은 격.
‘더 넓은 세계.’
그곳엔….
“할아버지….”
할아버지도 도달해 있었다.
“보았으냐?”
이건이 뒤를 돌아 이정기를 보며 말했다.
“이제 알겠느냐?”
끄덕.
“내가 얼마나 강한지.”
꽈아아악!
“네가 누구의 손자인지.”
참을 수 없는 감정이 이정기를 덮쳤다.
솨아아.
온몸에 흐르는 전율.
저 사람이 자신의 할아버지이고, 자신의 스승이며, 자신의 아버지이고 친구이다.
그런 할아버지를 수식하는 단어, 세상 모든 사람이 할아버지를 부를 때 내뱉는 단어.
“최강….”
“그래. 이 할애비가….”
이건이 무어라 말하려던 때.
“가아아암히-!”
헤아릴 수 없는 어둠이 사방 모든 것을 먹어 치워버렸다.
전부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던 에레보스의 전력.
온 몸이 물에 젖은 듯 무거우며, 사고의 판단이 느려진다.
시야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며 아까 느꼈던 끝없는 공포가 다시 이정기를 향해올 때.
“최강이다.”
빛이 보였다.
콰아아앙!
다시금 일어난 폭발.
세상을 덧씌웠던 어둠이 빛에 휘감긴 채 그대로 사라졌다.
“커억!”
곧이어 드러난 광경은 엉망이라는 말로도 형언이 불가능한 꼴의 에레보스, 그리고 그 위에 서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 * *
“커억!”
할아버지의 발밑에 깔려 있는 에레보스가 각혈하고 있었다.
이성 저택을 무너트리고 이정기와 최명희의 합공에도 장난치듯 상대했던 그 에레보스가 죽음을 앞둔 것처럼 떨고 있었다.
그 위에 서 있는 할아버지는.
“보았느냐! 보았겠지! 이게 할애비다! 이눔아!”
장난스레 한 손을 흔들며 이정기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지는 광경이었으며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피식.
“봤어요.”
이건이기도 했다.
“암. 그래야지.”
이정기와 짧은 대화를 마친 듯한 이건이 깔려 있는 에레보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방금까지 장난기 가득했던 두 눈은 사납게 내리 깔려져 에레보스를 보고 있었다.
“더 할게냐.”
가라앉은 목소리.
“크윽.”
에레보스는 분한 듯 신음하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어차피 여기서 널 죽일 수 없는 걸 안다.”
“…….”
“벌써 한 놈을 처리했더니만, 다시 살아나더군. 아마도 너희의 진정한 육체를 찾지 못해서겠지?”
이건의 목소리가 더욱 사납게 가라앉았다.
“제대로 된 몸뚱아리도 아닌 것 같은데, 더 할 테냐? 원한다면….”
쿵.
“여기서 가루로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그래 봐야 별 의미는 없겠지만.”
이건은 밟고 있던 에레보스의 밑으로 내려와 녀석과 시선을 맞추었다.
“그 건방도….”
모든 것을 갈아 마시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목소리.
“이번이 마지막일 거다!”
이건을 향한 저주와 같은 말.
이건은 그저 가만히 에레보스와 눈을 마주치며 웃어 보였다.
“그래야지.”
사나운 눈초리에 빛이 감돌았다.
“이 정도로 끝내기엔 아직 많이 부족하지 않느냐?”
“너는….”
무어라 더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에레보스는.
파스스스.
어둠에 갉아 먹히듯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가 완전히 모습을 숨기고 기척마저 숨긴 것은 채 몇 초가 되지 않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스윽.
곧게 선 이건.
“…….”
이정기뿐만이 아니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는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꿈이 아닐까.
혹은 적의 지독한 환상에 빠져 희망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터벅.
동시에 두렵기도 했다.
“이…건….”
세상을 구한 영웅.
그러나 동시에 폭군.
모두가 선망하며 존경했지만 동시에 두려워하고 기피하는 존재.
아직 전투의 여파를 다 걷어내지 못한 듯 사납게 내려 앉아있는 이건의 눈매는 제로 라인의 헌터라도 몸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것.
터벅.
이건이 움직이면.
스윽.
모두가 물러선다.
터벅.
그럼에도 이정기는 꼿꼿이 서 이건을 마주하고 있었다.
어느새 완전히 다가와 마주한 둘.
사나웠던 이건의 눈초리가 마법이라도 부린 듯 장난스럽게 변한 것은 한순간이었다.
“욘석아.”
꿈이 아니라고 생각했건만.
다시 모든 이들은 이 광경이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건이다.
그 이건이.
스윽.
“할애비 안 보고 싶었느냐?”
“보고 싶었어요.”
이정기의 머리에 손을 올린 채 쓰다듬고 있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또 한 가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지금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칭찬받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저 남자가….
꿀꺽.
이정기라고.
아무도 어쩌지 못하는 에레보스와 맞서 싸웠으며, 그를 한순간이나마 몰아붙인 자라고.
또한.
꿀꺽.
이성의 새로운 주인 될 자라고.
이것이 꿈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하, 미쳐버리겠네.”
최인해의 한 마디가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고생했다.”
이정기와 짧은 대화를 나눈 이건의 시선이 또 한 번 이동했다.
모두가 물러설 때 꼿꼿이 서 있던 이정기.
그리고 또 한명.
“미친 여편네도 함께 있었구만.”
“뭐라는 거냐. 개잡종아.”
최명희였다.
* * *
이건, 이정기 그리고 최명희.
전장이 되어버린 이성 저택의 잔해 위에 그렇게 세 명이 서 있었다.
에레보스가 격퇴당한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 중, 누군가는 눈치챌 수 있었다.
“도….”
죽은 이건이 살아 돌아올 리 없다는 말에 잊혔었던 격언과도 같은 말.
“도망…쳐!”
이건과 최명희가 함께 있는 자리에 결코 서 있지 말라.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렇게 이어진 격언은.
‘정신 차려도 못산다.’
그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암시하는 격언과 같은 말이었다.
고오오.
과연 이건과 최명희 둘에게서 마력이 들끓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이정기가 다급히 소리쳤지만.
저벅, 저벅.
둘은 이정기조차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서로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제기랄!”
에레보스의 싸움에서도 대피하지 않았던 이들이 대피하기 시작했다.
스윽.
그중 살아남은 경호 헌터들이 최명희를 향해 나아가려 했지만.
“뭐하는 짓들이야!”
피투성이의 박윤태가 그런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당장 물러서! 가까이 가지 마! 죽고 싶어!”
최명희의 오른팔이라는 박윤태의 호통에 감히 더 움직이지 못하는 헌터들.
휘잉.
이건의 오른 주먹에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우웅.
그에 대응하듯 최명희의 손에 맺히는 중력의 소용돌이.
“할아버지…! 할머니!”
이정기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다시 소리칠 때.
콰앙!
결국, 폭음이 터져 나왔다.
휘이이이이이이잉!
몰아치는 바람이 잔해를 뒤엎고 뒤돌아 움직이던 헌터들을 밀어붙였다.
하늘의 구름마저 걷힐 파괴력.
“여편네. 그 미친 성질은 어디 안 갔구만.”
서서히 걷히는 연기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개잡종. 네 놈의 성질이나 생각해라.”
주먹을 맞부딪히고 있는 둘.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다고 하지만 가문의 두 존장이나 다름없는 이들이 고등학생처럼 맞닿아있는 모습은 또 현실감을 상실케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
이정기는 뒤늦게나마 둘을 말리려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 강해질 셈이냐?”
이정기가 생각하던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주먹을 거두고 마주 선 둘.
먼저 입을 연 것은 최명희였다.
“말 그대로 괴물이 되었군.”
“원래는 괴물이 아니었나? 그러는….”
씨익.
웃고 있는 이건.
“여편네 힘자랑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어.”
“누가 네 놈 여편네라는 거냐? 재혼한 지가 언젠데.”
“그 주 씨놈 말하는 거야?”
무미건조한 표정의 최명희.
하지만 이정기는 볼 수 있었다.
슬쩍 올라가는 최명희의 입꼬리.
분명 웃고 있었다.
‘소문만큼은….’
소문대로라면 둘의 사이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만 같았는데 생각했던 것과 다를지도 모른다는….
쾅!
두 번째 폭발이 이어졌다.
“네 놈 하나 죽일 힘은 남아있다.”
“미친 게야? 흑구 하나 어쩌지 못한 여편네가!”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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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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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