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229화 (229/284)

제10권 4화

229

저벅.

이정기의 발소리가 통로 안을 울리고 있었다.

쿠웅!

사방에서 들려오는 폭음.

‘붙었다.’

다른 이들이 티탄들과 맞붙은 것이 분명한 소음이었다.

얼마 전까지라면 이정기는 그들을 걱정했을 것이다.

그냥 티탄도 아닌 육체를 되찾은, 신체를 가진 티탄이라면 너무도 위험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정기는.

“할머니께….”

그런 걱정 따윈 없었다.

“너희들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줘.”

오히려 자랑스럽다.

변화한 성혈들, 자신과 함께 성장한 동료이자 친구들.

그들이 할머니의 앞에서, 할머니가 보는 앞에서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그렇게 생각했다.

저벅.

통로를 울리는 소음이 마지막으로 멎었다.

두두두두두.

다시금 움직이는 사방의 벽.

벽이 밀려나고 움직이며 구조가 변형되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크다.’

만들어진 공간이 저택보다 더 큰 크기라는 것이었다.

구조를 무시하고 공간을 무시하는 이것 또한 할머니의 능력이었다.

‘마력 던전.’

이성의 특수한 기술력으로 만들어져 성혈의 급격한 성장과 엘리트 헌터들을 양성하는 그 기관의 비밀이 무엇일까.

인공 던전을 만들 수 있는 능력.

그것은 이성의 기술력도 큰 지분을 차지하겠지만 이성의 마력 던전이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는 것은 바로 할머니의 능력 덕분이었다.

중력.

그리고 나아가.

‘공간을 다룬다.’

이성 저택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곳은.

사아아.

던전이나 다름없었다.

대신 일반 던전과 다른 것은 상대해야 할 잡졸들이 존재하는 것도 복잡한 미로를 뚫고 향해야 하는 길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저벅.

침묵이 찾아들었던 공간에 다시금 발소리가 들렸다.

이정기는 그저 서 있기만 했을 뿐이니 이 발소리는 이정기의 것이 아닌 다른 이의 것이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티탄.

“새로운 가디언의 왕이시여.”

다른 티탄들과 달리 정중한 목소리를 내는 그.

보랏빛 정장을 입은 채 여유로운 태도와 표정은 마치 스스로를 증명하는 것 같았다.

다른 티탄들과 다르다고, 무시할 수 없는 강자라고.

고오오.

고요하게 공간을 잠식하는 그의 기운이 선명하게 느껴지며 이정기를 옥죄어오고 있었다.

‘모모스.’

타르타로스의 일부에서 상대했던 영국의 시엘 엘리자.

그녀보다도 윗줄.

‘모로스.’

응접실에서 감히 자신들을 노렸던 안희영보다도 윗줄.

“이름은?”

이정기는 그런 그를 향해 물었다.

“오네이로이라 합니다.”

동시에.

[꿈입니다.]

오랜만에 메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정기는 아직도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치 설명할 것이 더 있지 않느냐는 태도.

그에.

씨익.

그는 웃어 보였다.

스르륵.

그의 보랏빛 정장이 녹색의 빛으로 변해가며, 그의 외형도 순식간에 변하고 있었다.

비슷하지만 또 다른 느낌.

“히프노스다.”

말투마저 변한 그가 말했다.

[잠입니다.]

메티스의 목소리가 끝났을 때.

스으윽.

이정기의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결코, 이겨내지 못할 것 같은 수마가 이정기를 덮친 것이었다.

* * *

히프노스, 그리고 오네이로이.

둘은 하나이자 둘인 존재였다.

티탄들 중에서도 아주 특별하고 희귀한 존재.

하나의 육체에.

‘두 개의 넥타.’

두 개의 넥타가 들어섰다.

그렇기에 사용할 수 있는 넥타의 총량은 다른 티탄보다 두 배이며, 여러 가지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가디언의 특혜처럼 두 가지 권능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어쩌면 넥타의 총량만으로는 왕급에 가까운 존재.

그것이 히프노스와 오네이로이였다.

그런 형제를 향해 가디언들이 내뱉는 수식언이 있었다.

‘최악.’

그 둘의 조합은 최악이나 다름없다고.

잠과 꿈.

그들을 방심한 채 마주치면.

“끝났군.”

“안타깝군요.”

쉬이 벗어날 수 없는 최악의 조합이라고.

히프노스의 권능에 의해 이겨내지 못하는 잠에 빠져버리면 오네이로이의 꿈의 권능이 상대를 덮친다.

깨어나지 못하는 잠 속에서 최악의 꿈을 꾼다.

이를테면.

“어떤 꿈을 꾸고 있는 거냐?”

“우리를 쓰러트렸다고 생각하는 꿈일 수도.”

일찌감치 자신들을 쓰러트린 채 다음 상대를 찾아 배회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허나.

“미로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겠지.”

“쥬노의 배신을 느끼게 했단 말이냐?”

결코, 다음 길을 찾지 못할 것이다.

쥬노가 만든 미로 속에서 쥬노의 배신을 당한 것처럼 오랫동안 공간을 배회할 수 있다.

꿈속의 시간은 현실과 다르다.

딸깍.

초침이 한 번 움직였지만.

딸깍.

꿈속에선 시침이 움직일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이대로 끝낼 거냐?”

히프노스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이대로는 아쉬울 수도.”

패배는 결코 생각조차 안 하는 목소리.

“이를테면….”

씨익.

오네이로이가 된 그의 얼굴에 짙은 미소가 퍼져나갔다.

“쥬노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깊어졌을 때 깨울 수도 있겠지.”

“그거 재밌겠군.”

상위의 티탄들에게서 내려온 명령은 간단했다.

‘죽여라.’

더 이상 이정기와 최명희의 가치가 없다, 아니 가치보다 위험이 크기에 그들을 최선을 다해 죽이라는 것.

하지만 언제 자신들이 상위 티탄의 말을 들었던가.

자신들이 따르고 믿는 것은 오직 하나.

‘왕.’

그들의 왕뿐이었다.

“가디언의 왕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가치가 있다.”

최명희의 죽음이야 알 바 아니지만 이정기는 달랐다.

가디언들에게 예언이 있듯, 티탄들에게도 예언이 있다.

이정기가 두 존재의 왕이 될 수 있는 특별한 존재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우리의 왕을 깨우고, 왕께 바칠 수 있는 기회야.”

이정기의 존재는 가치가 있다.

“혹은.”

씨익.

이번엔 히프노스가 웃었다.

“왕의 육체가 되어줄 수도 있겠지.”

“그 생각을 못 했군. 그것이 예언의 정답일 수도 있겠어. 가디언의 왕의 육체를 차지한 우리의 왕이라.”

이정기를 사로잡는다.

하지만 그러지 못해도 좋다.

씨익, 씨익.

히프노스와 오네이로이.

둘이 하나의 안면을 나눠 조종하듯 양쪽의 입꼬리가 높이가 다르게 올라갔다.

“어차피 꿈속에서 모든 정신이 파괴될 테니까.”

무엇이 되었건 오네이로이는 쉽게 이정기를 깨울 생각이 없었다.

꿈의 시간을 가속시켜 최소 십 년, 혹은 그 이상 후에 깨울 생각이었다.

듣기로 가디언의 새로운 왕은 겨우 이십여 년이 조금 넘는 세월을 산 존재에 불과했다고 했던가.

그런 존재가 살아온 세월만큼 긴 시간을 미로 속에 갇혀 분노한다면.

“꿈이란.”

그 결과야 뻔한 것 아니겠는가.

“잠이란.”

하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다른 두 개의 목소리.

“달콤하군.”

그 두 개가 하나로 포개어지며 통로에 울려 퍼졌다.

딸깍.

또 한 번 초침이 움직였을 때.

“……!”

그들이 얼굴을 굳힌 채 두 눈을 크게 떴다.

파짓, 파지짓!

이정기의 몸에서 푸른 전류가 튀기고 있었다.

“어떻게!”

당황하여 소리쳐본들 늦었다.

스르륵.

남아있는 잔상이 사라지며.

팟!

그들의 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파짓, 파지짓.

푸른 빛의 눈에 전류가 흐르듯 빛을 밝히고 있었다.

그 눈을 한 존재, 이정기가 말했다.

“이게 준비한 전부냐?”

* * *

‘권능의 영역은 상상하시는 것보다 넓습니다.’

아레스가 짧은 시간 가르쳐주었던 정보들.

그 정보들 속에 특별한 것들이 숨어 있었다.

‘피하십시오.’

아레스는 경고했다.

‘완성되지 않은 왕은 감당키 힘든 것들입니다.’

그 특별한 티탄들의 특별한 힘은 완벽한 파훼법을 찾기 힘들다고.

상성.

혹은 격을 뛰어넘는 힘으로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히프노스, 아네이로이.’

이정기는?

이들과 상성으로 상충시킬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완성.’

자신 또한 스스로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강해지며 느낀 것이 있다.

‘아직.’

그 위가 있다.

아직 완전히 할아버지조차 따라잡지 못했을 것이라고.

순식간에 당해버린 수마 속에 잠에 빠져들었다.

꿈속에서 이정기는 깨달을 수 있었다.

‘소용없는 짓거리구나.’

상성이 맞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애초에.

파짓.

그들과 상성이 맞지 않는 육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권능으로 인한 잠과 꿈.

[일어나세요.]

메티스가 자신을 향해 목소리를 내었다.

그것 하나로는 부족할 수 있겠지만.

-뭐 하고 있는 거냐?

또 한 명이 목소리를 내었다.

자신의 안에 갇혀 있는 또 다른 자신.

그렇기에.

파지지짓!

이정기는 수마 속에서 금세 깨어날 수 있었다.

“어떻게!”

얼마나 놀랐는지 소리만 지르는 히프노스와 아네이로이의 얼굴에.

쾅!

그대로 벼락이 내리치는 주먹을 꽂아 넣었다.

느릿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 뭉개지듯 짓눌리는 녀석의 얼굴.

뒤이어.

콰아앙!

녀석은 그대로 벽에 부딪혀 꼼짝조차 못 하고 있었다.

“잠에 빠져라!”

아직 정신이 있는 모양인지 히프노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다시 찾아오는 수마.

“죽어!”

예의를 차리던 오네이로이가 단잠에 빠지는 듯한 이정기를 결코 깨어날 수 없는 꿈에 가두려고 했지만.

파짓!

이정기는 양손에 전류를 가득 담은 채 다시 땅을 박찼다.

반쯤 감긴 눈에 다시금 전류가 피어오르는 순간.

쾅!

벽에 박힌 녀석들의 얼굴에 다시 한 번 주먹이 적중했다.

“컥!”

단말마의 비명.

더 이상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후우.”

자칫하면 위험했을 것이다.

확실히 아레스의 경고대로 티탄의 능력에는 무서운 것이 있었다.

메티스가 아니었다면, 자신의 안에 있는 그 녀석이 아니었다면.

‘아니.’

그것들이 아니더라도.

“난 깨어났을 거다.”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털썩.

그대로 무너져내리는 히프노스와 아네이로이.

이정기는 손을 털며 뒤를 돌았다.

드드드드드.

문이 열리고 있었다.

‘끝났나.’

다른 이들도 끝이 났을까.

하지만 이정기는 다시금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드드드드.

사방에서 열리는 문들.

그 짧은 순간 이정기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문이 열린 것은 할머니의 뜻이 아니다.

저벅, 저벅, 저벅.

사방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들.

“이렇게 많은 티탄은 또 처음 보는데.”

네 명의 티탄이 방안에 들어와 있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주 소 | 경기도 하남시 조정대로 35 하우스DL타워 F915-1(9층)

대표전화 | 070-8233-6450

팩 스 | 02-6442-7919

홈페이지 | www.osmedia.kr

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 위 책은 (주)타임비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이므로 발행자와 저자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로든 이 전자책과 내용을 이용하지 못합니다.

* 이 전자책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이며 무단 복제/전제하거나 배포할 경우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최강의 손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