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225화 (225/284)

제9권 25화

225

부우웅.

돈이 있다고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닌 고급 세단이 마치 요트처럼 미끄러지듯 도로 위를 나아가고 있었다.

이제는 뒷좌석이 익숙해진 듯 이정기는 편안한 모습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

함께 뒷좌석에 타고 있는 주강태는 어딘가 불안한 듯하면서도 설레는 얼굴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이미 주강태의 이야기는 제법 들었다.

‘저는….’

주형태가 그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만든 주강태.

당연하게도 주강태의 정체는 비밀 중의 비밀이었고 주형태는 그런 주강태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무슨 짓이든 아끼지 않았다.

어느 길드의 말단 길드원부터, 짐꾼까지.

주형태의 아들로 태어나 인정받았다고 하지만.

‘주강태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주형태의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쓰여지며 그 육체를 강화시키기 위한 일들에만 투입되었을 뿐.

주강태는 그 어느 것 하나 누린 적 없었다.

매일이 던전이라고 했던가.

개인적인 자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삶.

지금 녀석의 얼굴은.

피식.

마치 지구에 처음 왔던 자신과 같았다.

자동차를 타보는 것이 처음은 아니겠지만 이런 고급 세단을 타보는 것도.

부우웅.

완전히 비워진 도로 위를 달리는 것도 주강태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러나 주강태의 불안함은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처음, 그에게 진짜 처음은.

‘할머니. 그리고 성혈들.’

결코, 만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그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긴장할 것 없어.”

이정기가 고개를 돌려 주강태를 보며 말했다.

“회장님…, 최명희 회장님을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주강태가 답했다.

“아버지께 인정받는 것만을 생각했지. 그 외의 분들은…, 저와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

“많이 무서운 분이시라죠?”

녀석의 안에 담긴 거대한 힘, 아레스의 힘과 그 육체의 힘이 있음에도.

피식.

녀석은 그저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었다.

“아니야.”

“아니라고요? 하지만….”

“할머님께선….”

이정기가 말없이 창문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따뜻한 사람 중 한 명이야.”

“……!”

아직 주강태에 대한 생각 정리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녀석을 어찌해야 할지, 또 녀석을.

‘동생.’

자신과 같은 피를 이은 동생으로 생각해야 할지 아직도 애매했다.

다만 한 가지, 확신이 드는 생각은 있었다.

‘너는 느끼지 않게 해주마.’

자신이 처음 이성 저택에 들어서 느꼈던 감정.

모두와 함께 만나며 했던 기대감이 깨부숴지는 그 감정.

실망과 분노 그런 감정들.

주강태가 느낄 일은 없을 것이다.

“길드장님.”

운전하던 이진석이 천천히 자동차의 속도를 줄이며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어느새 저택의 입구로 들어서고 있는 자동차.

그 입구에 도로에선 쉬이 볼 수도 없는 고급 차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아마도.

“우리가 제일 늦은 모양이네.”

다들 도착한 모양이었다.

* * *

이성 저택의 응접실.

이정기는 이성 저택에서 지냈고, 그동안 많은 식사를 이곳에서 했었다.

하지만.

‘한 번뿐이었지.’

이곳에서 모든 성혈이 모여 식사를 했던 것은 단 한 번.

할머니가 자신을 가족으로 인정해주던 날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모든 성혈을 이성 저택에서 보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모두가 모인 것은 아니라고 하나.

“…….”

이성 저택에 대부분의 성혈이 모였다.

아니 숫자는 똑같다고 할 수 있었다.

병원에 누워 의식이 없는 주형태를 대신해 주강태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

성혈들의 모든 시선은 이정기, 그리고 주강태를 향해 있었다.

특히나.

와락.

주인배는 일그러진 얼굴로 주강태와 이정기를 번갈아 노려보고 있었다.

“할 말 있으십니까?”

이정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주인배를 향해 말했다.

그러자 동시에.

스윽.

모든 시선이 주인배에게로 향했다.

“……!”

일그러졌던 주인배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전에 있던 모임에서 분명 이정기는 완전한 이방인이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면….’

최명희의 선포와 같은 말에 납득하는 듯 행동을 보이면서도 그들의 시선은 적대심으로 가득 차 자신을 향해 있었다.

‘네가 이건의 손자라고?’

모임이 끝난 후에도 주안나 등을 포함한 성혈들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시비를 걸어왔었다.

하지만 지금.

고오오.

그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애매한 스탠스의 주병훈을 제외하고 주안나, 김윤태, 주영은 그 모두가 이정기와 합을 맞추듯 주인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 년, 이 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생긴 변화였다.

주인배와 이정기의 눈싸움이 끝나지 않을 듯 이어졌을 때.

드르륵.

이정기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르륵.

동시에 밀려나는 의자들과 서 있는 성혈들.

드르륵.

마지막으로 주인배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의 역할이 있다고 한들 모두가 헌터들.

우우웅.

그들이 존재감을 느끼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스윽.

응접실의 문이 열리며 들어온 그녀 때문이었다.

전보다 더 젊어진 듯 윤기가 흐르는 머리칼,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 나이를 알기 힘든 얼굴.

꼿꼿한 허리와 다부진 눈매와 입매.

“어머니.”

“할머니를 뵙습니다.”

“어머니 오셨어요?”

최명희, 그녀가 등장한 것이었다.

“앉거라.”

가장 상석에 선 최명희가 말과 함께 시선을 던졌다.

가장 먼저 이정기.

뒤이어.

움찔.

주강태.

그 마지막이.

“…….”

주인배였다.

겨우 짧은 시선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것에 담긴 뜻을 모를 이들이 아니었다.

꽈악.

어금니를 짓씹은 듯 주인배는 표정을 관리하지 못한 채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모이는 건 오랜만이구나.”

무거워졌던 분위기가 한 층 더 무게감을 가졌을 때.

“일단 들거라.”

식사가 시작되었다.

* * *

가족 식사라 부를 수 있는 식사 자리.

하지만 그 무게감은 각국의 정상들이 가지는 정상 회담과 다를 바 없는 무게감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한 명 한 명이 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그들이었다.

그런 이들의 선택이 이루어질 수도 있는 식사인 만큼 당연한 무게감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

오늘의 무게감은 전혀 다른 이유였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침묵의 식사.

마침내 식사가 끝나고서도 한참이 지날 때까지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인배야.”

결국, 정적을 깬 것은 최명희였다.

“예. 어머니.”

올 것이 왔음을 직감하지만 표정에 변화는 주지 않은 채 속마음을 숨긴 주인배가 답했다.

틱, 틱, 틱.

괘종시계의 바늘 소리가 선명히 들리던 그때.

“이성 물산과 이성 헌터 사업부….”

최명희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모두의 표정은 급물살을 탔다.

누군가는 경악하고 누군가는 담담함을 유지하고.

꽈악.

주인배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최명희의 입에서 나온 것들은 전부 주인배가 갖지 못하던 것들이었다.

이성의 부회장 지위에 올라있다고 하지만 주인배가 손에 쥔 것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것.

최명희가 손에 쥔 채 놓지 않던 것.

그리고.

‘역시.’

주인배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돌아가는 상황을 모를 정도로 바보가 아니었다.

더욱이.

‘형태.’

녀석의 꼴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이미 기울어진 싸움, 방법은 크게 없다고.

그러니 오늘의 모임에서 자신의 뜻을 확실히 이야기할 생각이었건만.

“네가 맡아 경영하거라.”

어머니는 그래도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

“어, 어머니.”

“싫으냐?”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오십이 넘은 나이, 그럼에도 주인배는 전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꿈꿔온 순간이고, 이날을 위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길드는 갖지 못하겠지만.’

꿀꺽.

이성의 회장은 바로 자신이 되는.

“지분은 내놓거라.”

“예?”

“네가 갖고 있는 지분들. 네가 분리시킨 지분들, 따로 빼돌린 지분들 말이다.”

“어, 어머니. 그게 무슨….”

“경영은 네가 하거라. 지분은 내가 가지고 다시 나눠주마.”

와락.

주인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참으려고, 드러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지금…, 저보고 바지나 하라는 겁니까?”

“바지? 제대로 경영을 하라는 게 어떻게 그렇게 들리는 거지?”

“어머니!”

“못 들었느냐? 지분은 알맞게 다시 나눠준다고 했다.”

꽈악.

“그 말이 그 말 아닙니까….”

지분을 빼앗긴 경영인.

성혈이 전문 경영인의 역할이나 하라고?

그건 진짜 주인이 아니다.

주인이 둔 머슴일 뿐이지.

자신은 머슴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귀족 중의 귀족, 아니 왕족으로 태어났고 언젠가 왕국의 주인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헌데.

“어머니!”

이것은 아니지 않은가.

“저 새파란 핏덩이에게 이성을 전부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주인배가 결국 폭발했다.

“경영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입니다! 헌터의 능력이야 출중할지 몰라도!”

“그러니!”

지금껏 듣지 못했던 최명희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너와 병훈이, 두 녀석이 이성을 경영하란 말을 못 들었느냐?”

고오오.

강제적으로 짓눌러지는 분위기에 쉬이 입을 열 수 없었다.

“내가 여지껏 생각을 잘못했다. 너희끼리 다투고 경쟁하며 성장하길 바랐지. 그러나!”

진노한 최명희의 기운은 저택 전체를 울리고 있었다.

“서로의 목숨을 노리고, 천륜마저 저버리며 투쟁하란 것은 아니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선을 넘은 것은 형태….”

주인배는 주형태가 선을 넘은 것이지 자신이 아니라 항변하려 했다.

“나를 바보로 아느냐?”

하지만 최명희의 반응은 더욱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애시당초 네가 이성 시큐리티에 헌터들을 모집하고 있음을 내가 모를 줄 알았느냐?”

“……그건.”

“너 또한 피로 싸우려 했다. 그러니 안된다는 것이다.”

주인배는 깨달을 수 있었다.

‘소용없겠구나.’

어떤 것도 소용없다.

그것이 최명희니까.

자신이 따로 빼돌린 지분들?

분리시켜버린 계열사들?

물론 그것들만을 갖겠다 하면 갖을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야 귀족에 불과하지 않은가.’

이성이라는 이름만 유지할 뿐, 이성에서 배제되어 버린다.

그것이 어떤 뜻인지 모를 주인배가 아니었다.

‘결국….’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다.

“그렇군요.”

마치 해탈이라도 한 듯 분노를 지워버린 주인배.

“그렇다면….”

그의 입가에 쓰디쓴 미소가 번졌다.

“저도 어쩔 수 없겠습니다.”

그 순간.

쿠쿠쿵!

이성 저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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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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