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권 22화
222
“드….”
아레스의 눈에 환희가 물들기 시작했다.
“드디어…!”
마치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찰나, 눈을 깜빡이는 시간 동안 일어나고 있는 이정기의 변화는 아레스가 그토록 기다려왔던 것이었다.
어떤 삶이었던가.
자신이 무엇을 그렇게 원해왔던가.
언제부터였던가.
‘갈증.’
자신에게는 해결하려 해야 해결할 수 없는 갈증 같은 것이 있었다.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은 어느새 통증으로 변했다.
‘전투.’
누군가와 목숨을 걸고 맞부딪히는 것.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하고, 패배자는 모든 것을 잃고, 승리자는 목숨을 부지하는 도박과 같은 것.
자신은 그것에 중독되어 있었다.
가디언의 삶은 놀랍도록 지루한 것이었다.
‘세상을 조율하는 일이다.’
차원의 안정을 꾀하고 균형을 짜 맞춘다.
그것이 자신들의 역할이라 배웠다.
처음엔 그저 하릴없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뿐.
아무것에도 흥미가 없었다.
그러나 인간들을 보았고, 그들이 하는 것을 보았을 때.
‘아아.’
아레스는 환희를 느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삶.
그런 삶에 피 튀기는 전투는 그야말로 환희와 다름없는 것이었다.
인간이 모든 것을 걸고 치열하게 맞부딪히는 것은 모두가 무시하는 그들에게 찾아볼 수 없는 강렬한 불꽃이었다.
어느새 아레스는 그것에 매료되어 있었다.
‘할 일을 찾거라.’
목적 없는 신은 그저 방관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목적이 생긴 신은.
씨익.
잔인하기 짝이 없게 변한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가리지 않을 최악의 존재.
그것이 바로 목적이 부여된 신이었다.
‘전투.’
그 불꽃을 또 보고 싶다.
인간들이 튀기는 그 생사의 불꽃은 무료하기 짝이 없는 아레스의 삶의 유일한 낙이었다.
아레스는 그들에게 개입하기 시작했다.
‘더, 더.’
멈추지 말거라.
‘더, 더.’
더 피 튀기는 전투를 보여주거라.
‘더, 더!’
죽고 죽여라.
그 불꽃을 끝없이 자신에게 보여주거라.
그렇게.
‘전쟁.’
어느새 인간이 살기 위해 벌였던 전투라는 결과는 이권을 위해 대규모로 벌이는 전쟁이 되어 있었다.
‘아아….’
처음으로 잠시 동안 갈증이 사라진 순간이었다.
끝없이 타오르는 불꽃에 아레스는 그야말로 환희에 물들어 있었다.
‘신이시여.’
그들은 전쟁 속에서 자신을 향해 기도했다.
‘전쟁의 신이시여.’
부디 자신들이 승리하기를, 누군가는 무사히 돌아갈 수 있기를, 또 누군가는 동료와 가족을 죽인 적군에게 응징을 가해주기를.
아레스는.
‘들어주마.’
그 기도들을 들어주었다.
물론.
‘너희 모두의 기도를 들어주마.’
아레스의 기도는 누군가에게 편향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쉽게 끝날 것 같은 전쟁이 아레스의 관여로 양상이 바뀌었다.
백 년, 이백 년.
끝나지 않는 굴레가 되어버렸다.
인간은 태어나 병사가 되기 위해 훈련하고, 병사가 되어 죽는다.
‘아아.’
균형이 깨어질 것 같으면 아레스가 관여해 균형을 맞추었다.
그렇게 자신의 갈증은 사라지는 듯 했다.
‘아레스!’
그러나 모든 것의 끝은 있는 법이었다.
낳은 이는 아니지만 아버지나 다름없는 존재, 자신들의 왕 쥬피터의 간섭 때문이었다.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이해할 수 없었다.
‘할 일을 찾으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자신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었다.
‘조율하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모든 것은 그가 원했던 대로였다.
헌데.
‘아레스!’
왜 이토록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인가.
불같이 화를 내는 쥬피터를 도무지 아레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타는 듯한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들의 전쟁은 최고의 마약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마지막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것이 문제였나.
‘더 큰 전쟁을….’
쥬피터 또한 즐기고 있던 것이었던가?
‘아레스!’
그 날 처음으로 아레스는 쥬피터의 벼락을 맞을 수 있었다.
분노한 그의 응징을 받던 날.
‘아아.’
아레스는 자신의 생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았다.
인간이 죽음에 이르렀을 때 튀는 불꽃처럼 자신에게도 그런 불꽃이 있었다.
벼락이 주는 고통과 공포 속에서.
“하아….”
아레스는 환희했다.
또 한 번, 또 한 번 그 기분을 느끼고 싶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쥬피터의 벼락만큼의 환희를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티탄과의 전쟁 또한 마찬가지.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던 것은 몇 번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 불꽃은 볼 수 없었다.
그렇기에.
“다시 한 번…!”
눈이 핏빛으로 물드는 이정기를 보며 아레스가 소리쳤다.
“다시 한 번 느끼게 해다오!”
그 맹렬한 불꽃을, 벼락의 섬광을.
콰앙!
순간 아레스의 머리통이 짓눌려 그대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 * *
“커헉!”
숨통이 멎을 것 같은 통증.
지금까지도 이정기가 수없이 공격했건만 이런 강렬함은 처음이었다.
이정기의 손에 머리통이 부여 잡힌 채, 그 손가락 사이로 이정기의 얼굴이 보였다.
이정기의 얼굴은 많이 익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씨익.
환희.
씨익.
그것을 보며 아레스 또한 웃었다.
콰앙!
다시 한 번 아레스의 몸이 힘없이 섬에 처박혔다.
다르다! 달라졌다!
마침내 녀석의 안에 있던 것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드디어!”
얼마나 고대하던 순간이던가.
꽈악!
다시 한 번 부여 잡혀 처박히는 순간.
쒜엑!
아레스가 그대로 검을 찔러넣었다.
순간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인지 이정기가 손을 놓고 잠시 뒤로 물러섰다.
고오오.
아레스가 기운을 일으키며 이정기를 본 채 웃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일방적인 폭력이 아니었다.
‘압도적인 폭력.’
자신이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속에서 느껴졌던 자신의 불꽃.
그것이 보고 싶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내 불꽃을 볼 수 없다.”
이정기의 안에 있는 것이 깨어났지만 아직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자신은 있는 힘을 다해 반항할 것이다.
그리고 깨닫게 해줄 것이다.
‘압도적인 폭력.’
녀석의 그 힘을.
“파멸.”
아레스의 검 끝에 검은 기운이 모여들었다.
이제 아레스도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
가지고 있던 모든 여유를 지우고, 조금의 힘도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부서지자.
나를 부수지 못한다면 네가 부서질 것이다.
구구구구구궁!
검은 원처럼 변해 아레스의 검 끝에 모여있는 기운은 말 그대로 파멸 그 자체였다.
닿는 모든 것을 부수고 지워낸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크윽!”
광기를 퍼트린다.
“보여주거라! 너의 불꽃을!”
그 파멸의 기운이 이정기를 향해 쏘아지던 순간이었다.
“아아.”
아레스는 다시 환희했다.
이정기의 양 손끝, 아까와 비교할 수 없는 푸른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또한, 그 전류는 파멸이 조금 더 나아가기 전.
파지지지짓!
이정기의 온몸을 먹어치운 채 덩치를 부풀렸다.
저것이다!
“그것이….”
아아아아.
“벼락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파멸을 먹어치운 벼락이 아레스의 몸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 * *
“컥. 커어억.”
땅바닥에 쓰러진 채 계속해 핏물을 토해내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온몸을 관통한 짜릿한 충격은 더 이상 움직일 힘조차 남겨두지 않았다.
그토록 다시 보고 싶었던 벼락의 힘이 분명했다.
흐릿한 시야 속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파짓. 파지짓.
부서져버린 섬의 일부.
그 위에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벼락의 힘이 남아있었다.
천천히 돌아가는 시야.
그곳에.
씨익.
옅은 미소를 지은 이정기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어때?”
목소리 또한 달라진 바 없다.
하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여유와 감정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네가 그토록 바라던 힘이잖아?”
조롱하듯 들려오는 목소리.
“마음에 들었나 모르겠네.”
“여….”
아레스가 그런 이정기를 보며 소리를 내었다.
“역시….”
“마음에 들었다는 소리겠네.”
이정기가 아레스의 앞에 서서 아레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천천히 들어 올려지는 이정기의 손에.
파짓.
벼락의 힘이 몰아치고 있었다.
바라 마지않던 힘, 또다시 느끼고 싶던 힘이었다.
그것이 자신을 꿰뚫을 때 느꼈던 것.
‘그것을 위해….’
타르타로스에서 티탄들을 풀어주고자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에게 내려진 형벌은 죽음이 아닌 봉인.
봉인된 세월 얼마나 원망하고 저주했던가.
그때 그 힘으로 자신을 꿰뚫어주기를 수없이 바라왔지 않았던가.
그 순간이다.
이 순간을 위해.
‘아깝지 않나?’
봉인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었다.
그러니.
“담담하게 받아들여.”
저 힘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끝이 날 이야기였다.
헌데, 헌데.
“……….”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쉼 없이 갈증에 허덕이며 그 갈증을 채울 불꽃을 위해서만 살아왔던 자신이었다.
‘아레스.’
헌데 왜 이때 쥬피터의 목소리가 들리냔 말이다.
‘그게 정말 네가 하고 싶은 것이냐?’
자신을 질책하면서도 걱정했던 목소리.
‘그게 정말 네가 원하는 것이냐?’
전쟁을 가속화시켰을 때 쥬피터가 했던 이야기였다.
‘생각해 보거라.’
그건 무엇이었을까.
기회?
자신의 갈증을 오랫동안 해소시키라던 신호?
그것이 아니라면.
‘그 불꽃이 정말 좋으냐?’
무언가 다른 뜻이 있던 것일까.
봉인된 세월, 수 없이 그를 원망하며, 수 없이 생각해왔다.
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건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일이었다.
나는.
‘묻고 싶었다.’
그를 다시 만나 묻고 싶었다.
정답이 무엇이냐고.
허나.
‘죽었다. 올림포스는 무너졌다.’
이미 그는 없었다.
아직 답을 찾지 못했는데.
“좋은 불꽃이야.”
들려오는 이정기의 말에….
“……!”
아레스의 머릿속에 번개가 내리치는 것 같았다.
동시에 자신의 머리통을 향해 떨어지고 있는 주먹을 보며.
“사….”
아레스가 조용히 속삭였다.
“살려줘.”
팟.
이정기의 주먹이 아레스의 머리통 바로 앞에 멈춰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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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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