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220화 (220/284)

제9권 20화

220

“뭘 하고 싶은 거냐.”

아레스가 새로운 몸을 얻고 자신을 쓰러트리거나 이곳을 벗어나려는 목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아레스에게 다른 목적이 있다.’

녀석은 벗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거기다….

‘여유가 있어.’

아직 그에게는 여유가 있음이 느껴졌다.

온 힘을 다하지도 않고 벗어나려는 의지도 없다.

또 도발하듯 무언가를 이끌려는 기색 또한 보였다.

피식.

웃고 있는 저 얼굴, 그 뒤로 무언가가 숨어있다.

“내가 원하는 것….”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저.”

지금껏 본 적 없던 환한 미소.

이정기가 살아오면서도 보지 못했던 환희에 찬 얼굴이었다.

“더 오래 싸우고 싶을 뿐이다.”

“뭐?”

“더 오래, 더 강렬히.”

더 짙어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녀석의 환희가 짙어졌다.

“내가 왜 가디언을 배신했는지 아나?”

이유.

듣긴 했다.

아레스, 녀석은….

‘전쟁광.’

미치도록 전쟁을 좋아했던 이라고.

쥬피터가 전쟁을 끝마쳤고, 티탄이 패배하자.

“티탄을 풀어주려 했다지.”

타르타로스를 파괴하고 티탄들을 해방시키려 했다는 죄목이었다.

“정답이야. 전쟁…, 그만큼 짜릿한 게 있나? 지금 너도 느끼고 있지 않나.”

“…….”

“즐겁지?”

이정기는 답을 하지 않았다.

“이 즐거움을 끝없이 느낄 수 있는 거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고. 나도 언젠가 죽을지 모르는 그 짜릿함. 그것이 끝난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아나?”

미쳤다.

녀석은 완전히 미쳐 있었다.

마약에 찌들어 금단 현상을 느끼고 있는 중독자처럼 손까지 떨어대며 녀석은 말하고 있었다.

“네가 인간이라고?”

“…….”

“아니!”

소리치는 아레스.

“나를 보고 말하더군. 나를 더러….”

씨익.

“괴물이라고.”

녀석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너 또한 나와 동류다. 즐겁지 않나? 너와 나의 치열한 전투가 즐겁지 않나?”

그때까지도 이정기는 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목적이라…, 전투, 내 이 감정이 해소될 수 있을 정도의 치열한 전투를 원한다. 그것만 이루어질 수 있다면….”

하아, 거칠게 튀어나오고 있는 녀석의 숨소리.

“나는 무엇이든 할 것이다.”

녀석이 진정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녀석은, 아레스는.

“네 안에 있는 것을 꺼내라.”

그 녀석을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 * *

쾅쾅쾅콰콰쾅!

아레스의 검격이 폭격처럼 이정기의 위로 떨어졌다.

실처럼 이어지는 검광과 충돌로 일어나는 폭발 속에서.

씨익!

녀석은 선명하게 웃고 있었다.

“더! 더!”

여유를 부리던 녀석이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당연하게.

“큭.”

그 파괴력 또한 폭증하고 있었다.

녀석은 진심으로 부르고 있었다.

“네 안에 있는 것을 꺼내라!”

이정기의 안에 있던 그 녀석.

‘이번에는 힘을 빌려주지.’

할머니와 겨루었을 때 또 한 번 보았던 녀석을 불러내고 있는 것이었다.

아레스가 원하는 대로 해준다?

‘안 돼.’

이정기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위험한 것을 알고 있었다.

할머니와 겨루었을 때 녀석의 도움을 받았고, 다행히 누구도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사실.

‘나는 나를 잃었다.’

지금과 비슷했다.

할머니와 부딪히며 즐겁다고 생각했다.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안에 있는 것이 터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슬프고 즐겁고, 기뻤다.

그 감정이 더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결과가 최명희의 피를 보고, 그 육편이 조각나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기에 이정기는 안간힘을 써 스스로를 통제해야만 했다.

‘아레스.’

녀석을 상대로 그렇게 된다고 한들 죄책감은 없을 것이다.

다만.

“크으으으윽!”

“끄집어내라!”

그때 이후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내면에 잠들어 있던 것이 깨어나며 참을 수 없는 충동들이 일어나던 것.

여지껏 잠자고 있던 것들이 깨어나자 그것들은 지금껏 받지 못한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지 계속해서 이정기를 자극하고 있었다.

‘또 녀석의 힘을 빌리면….’

그 감정들이 더 지속될 수도 있었다.

지금은 그 대상이 아레스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에는 또 어찌 될지 모르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두려우냐!”

내 안에 있는 것에게 나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우냐고 물었다!”

녀석은 스스로를 나라고 불렀지만, 나는 부정했다.

그런 추악한 것이 나일 리 없다고.

그런 것이 나를 지배한다면.

“크으윽!”

그만큼 끔찍한 일이 없을 것이라고.

그그그그그그극!

이정기의 양팔의 건틀렛과 아레스의 검이 부딪히며 굉음을 내고 있었다.

튀어나오는 불꽃.

그 속에서 선명한 녀석의 웃음이 보였다.

하지만 곧 그 웃음이 일그러졌다.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도 조금 더 노력해줄 수밖에 없겠군.”

캉!

튕겨 나온 양팔과 녀석의 검.

아레스는 다시 거리를 벌려 이정기를 바라봤다.

스르르르르.

황금의 검이 녹아내리며 그 모습을 변형했다.

“…….”

검이 변한 무구의 모습에 이정기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 게 가능할 리 없다.

하지만.

“이 육체를 완벽한 혈통이라고 하더군.”

녀석의 손에 빛나는 황금의 건틀렛은 이정기의 것과 너무 닮아 있었다.

“그 이유를 안다면 달라지겠지?”

또한, 녀석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이정기에게 너무 익숙하다.

‘아냐.’

그럴 리가 없다.

전에 마동철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김대정 협회장은 내구도 하나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이기에 볼텍스를 사용할 수 있었지.’

김대정이 볼텍스를 쓸 수 있다고.

이정기가 직접 보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세계에 도달한 이정기가 보았을 때 그것은 사실과 달랐다.

‘협회장이 쓰던 건 진짜 볼텍스가 아니야.’

열화 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속에 있는 ‘진짜’가 없었다.

볼텍스를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씨앗.

그게 없기에 김대정의 볼텍스는 단 한 번도 완벽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할머니의 것도 다르지 않았다.

그 위력과 원리 그 모든 것이 할아버지의 볼텍스와 동일했다.

그러나 할머니에게도.

‘그 씨앗이 없다.’

마력을 증폭시켜주고, 그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낼 수 있게 해주는 씨앗.

하지만 할머니는 할머니의 방식을 찾았고, 다른 방법으로 볼텍스를 사용할 수 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나?”

이것은 달랐다.

“이 힘. 네가 보여 주었던 것이다.”

휘이이이잉!

아레스의 양 주먹에서 휘몰아치고 있는 그 힘은 분명 볼텍스였다.

김대정의 것과도, 할머니의 것과도 다르다.

분명한.

‘이건.’

할아버지의 것.

“이 안에서 소리치고 있는 녀석이 그렇게 말하더군.”

씨익.

“이 육체가.”

휘몰아치는 볼텍스를 보며 이정기는 눈을 치켜떴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이강의 피를 타고 났다고 말이야.”

“닥쳐!”

순식간에 쏘아진 아레스의 권격.

동시에 이정기의 권격이 맞부딪혔다.

두 개의 볼텍스.

쿠쾅!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 * *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가장 첫 번째 기억은 타이탄을 짓밟고 있는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있던 것이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 얼굴조차 모른 채 이십여 년의 세월을 지내야만 했다.

‘강이는. 영아는.’

할아버지가 해주시던 이야기가 자신이 아는 부모님에 대한 모든 것이었다.

불평도, 불만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고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없었기에 그것이 어떤 일인지조차 인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응?’

어린 시절 몬스터를 사냥하며 이상한 것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블랙 오크 무리 속에서 어린 오크를 보았고, 그 오크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오크들이 목숨을 걸고 덤벼온 것이었다.

그때 이미 이정기는 블랙 오크는 쉬이 사냥할 수 있는 실력이었는 데다, 이미 공포를 맛본 녀석들이기에 그럴 수가 없었는데.

취이익!

녀석들은 미친 듯 자신에게 달려들며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고 있었다.

녀석들을 사냥하고 돌아오던 날.

할아버지에게 그 날 보았던 것을 물었다.

그리고 그런 이정기에게 이건은 말해주었다.

‘그것이.’

부모라고.

가족이라고.

그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할아버지의 말마따나 몬스터를 사냥감으로만 보던 이정기가 변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 날 이후 할아버지가 놀이터에 모아둔 몬스터들의 수가 조금씩 늘어났다.

지금껏 망가지면 버렸던 것과 달리 조금은 다르게 몬스터를 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나도.’

부모님이 그리워지기 시작한 것이.

‘강이와 영아도 그랬다. 너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네가 지금 이곳에 있는 거다.’

갖지 못한 것.

아니 결코 가질 수 없는 것들.

그래도 하나 가진 것이 있다면.

‘잊지 말거라. 네가 그들의 피를 타고 났음을, 네가 그들의 자식임을.’

아버지의 피와 어머니의 피가.

자신이 그들의 자식이라는 것이 유일한 증거이자 증명이었고, 받은 것이었다.

헌데.

헌데!

“감히-!”

아레스, 녀석이 가진 육체에 아버지의 피가 흐른다.

“감히 이따위 짓을!”

어떻게 한 것인지 알 수도, 알고 싶지도 않다.

그딴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용서할 수 없었다.

화륵!

피어오르는 백색의 화염이 이정기를 집어삼키고.

파앗!

그 속에서 백발을 휘날리는 이정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파짓, 파짓.

이정기의 온몸에 흐르는 전류, 그 전류가 양손에 모여들었다.

시뻘건 이정기의 눈이 더욱 짙은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파지지지짓!

맹렬히 모여드는 전류의 주먹을.

콰아아아앙!

그대로 아레스의 가슴께에 적중시켰다.

“커억-!”

처음으로 아레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자비를 바라지마.”

겨우 이 정도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감히 아버지를 건드린 죄는 이 정도로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콰쾅!

벼락의 힘을 잔뜩 실은 두 주먹이 쉴 새 없이 아레스를 난타했다.

충격을 주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부순다.

완전히 부수어 가루로 만들어낼 것이라는 뜻.

콰콰콰쾅!

그 속에서 아레스의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소리는.

“더! 더!”

더 큰 것을 바라는 듯한 괴기한 외침일 뿐이었다.

“이 개자식이!”

더욱 타오르는 전류와 눈빛.

이정기가 다음 주먹에 볼텍스의 힘마저 실은 채 내리치려던 순간이었다.

“아직이야! 이 정도로는 안 돼!”

녀석이 소리치며.

파아아아아아아앗!

마침내 모든 여유를 지웠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주 소 | 경기도 하남시 조정대로 35 하우스DL타워 F915-1(9층)

대표전화 | 070-8233-6450

팩 스 | 02-6442-7919

홈페이지 | www.osmedia.kr

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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