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권 19화
219
눈에 보이듯 훤한 일이었다.
아레스의 넥타와 영혼을 취했을 주형태.
그 과정에 누군가의 개입이 없었을 리 없었다.
그리고.
‘속았겠지.’
그 힘만을 취할 수 있으리라고.
‘그런 게….’
가능할 리가.
하지만 거대한 힘에 열등감을 느끼고 바라고 있던 주형태였기에.
또….
‘믿을 수 있는 자.’
그 상대방이 믿을 수 있는 자였다면.
‘속았을 것이다.’
주형태는 그 말을 믿었을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인간이란 참 흥미로운 생물이지 않나?”
지워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아레스의 영혼이 육체를 차지했다.
주형태가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겠지만 이정기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지막 자비로 그가 볼 수 있게 볼텍스의 힘을 보여준 것이었다.
지금 주형태는.
“아직도 현실을 부정하며 소리치고 있으니 말이야.”
완전히 주도권을 빼앗긴 채 그저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켜라! 이럴 리가 없어!”
표정을 변하며 소리치던 주형태.
그의 입꼬리가 말아 올라갔다.
“이렇게 말이야.”
방금 전의 그것도 아레스가 조롱하듯 주형태의 의식을 잠시 꺼내준 것뿐이었다.
이제 주형태는 육체의 주도권을 빼앗을 수 없을 것이다.
‘아레스가 허락하기까지.’
애시당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만일.
‘욕심을 덜 냈다면.’
그가 완벽한 혈통에, 새로운 육체에 욕심을 내지 않고 그의 본래 몸에 아레스를 담았다면.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겠지.’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었다.
영혼과 육체는 그런 것이고, 오래된 것을 인정해주는 것이니까.
그러나 주형태는 가장 큰 실수를 했다.
새로운 몸에 처음부터 아레스를 담았다는 것.
그 말은 곧.
“흐하. 좋군. 좋아.”
저 육체가 아레스의 본래 육체나 다름없는 싱크로율을 재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올림포스에서의 가디언, 타르타로스의 티탄.
본래의 육체와 본래의 힘.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는 뜻.
그렇기에.
쿠쿠쿠쿠쿠쿠!
방금까지 겨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는 이야기.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는데? 인간은 재미있지 않나?”
아레스가 이정기를 향해 장난치듯 물었다.
“나 또한 그중 하나다.”
마침내 대답한 이정기.
그에 따라 아레스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곧.
“푸하하하하하!”
참을 수 없다는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손가락으로 이정기를 가리키며 말하는 아레스.
“네가 인간이라고?”
“사실이야.”
“인간이 올림포스의 왕이라고?”
아레스가 고개를 젓는다.
“그럴 리가. 너는 인간이 아니야.”“아니.”
“아니!”
이정기의 답이 나오기도 전 아레스가 이정기를 향해 소리치며 제 창을 뻗었다.
스르륵.
창이 마치 녹아내리듯 변하더니 곧 다른 형태로 굳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중세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검.
그러나 그 검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아까와 같은.
‘파멸.’
파멸의 힘.
아레스는 검 끝을 이정기에게 겨눈 채 말했다.
“보여주지. 네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레스의 검 끝이 일렁였다.
그렇게 느낀 순간.
툭.
이미 검 끝은 이정기의 가슴팍에 닿아있었다.
처음으로 반응하지 못할 속도였다.
* * *
캉!
알파의 양팔을 쳐낸 이진석이 급히 앞을 바라봤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전투에 집중하고 있다고 하나 소리가 들려오지 않은 것이 아니었기에 대강의 상황은 알고 있었다.
주형태가 제 육체를 버렸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 뒤에.
쾅!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변해버린 아레스가 움직인 후였다.
콰콰쾅!
폭발음과 충격음.
그 여파에 섬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무언가 보고 싶지만.
‘보이지 않아.’
그들의 전투는 마치 점처럼, 선처럼 보일 뿐 그 모습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섬광.
예광탄이 발사되어 그 족적을 남기듯 그들이 스쳐 지나간 경로만이 눈에 보일 뿐이다.
그러다 둘이 부딪히면.
쾅!
그곳에 폭발이 일고 있는 것일 뿐.
꿀꺽.
많이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지금이라면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위 세계.’
일반인은 헌터의 세계를 따라올 수 없다.
헌터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등급이 달라지는 헌터들을, 랭커의 헌터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
마치 사는 세상이 다르듯, 차원이 다르기에 볼 수 없듯 그런 것이었다.
‘나도…, 그 일원이 된 줄 알았는데.’
가디언의 힘을 깨닫고 가장 큰 변화를 느꼈던 자신.
자신 또한 상위의 세계로 편입되었다 생각했다.
가디언의 힘을 깨닫고 해보았던 이정기와의 대련에서 그것은 확신이 되었었다.
그러나.
‘아니었어.’
그저 이정기가 자신을 봐주고 있던 것뿐이었다.
저것이다.
쾅!
저것이 이정기의 전력이었다.
콰쾅!
자신을 볼 수조차 없는 세계.
그 세계 속에서도.
‘나를 배려하고 있다.’
충격의 여파가 주변으로 미치지 않도록 조절하고 있는 것이 이정기의 현재 상황이었다.
“아직까지도….”
자신은 아직까지도 짐이 되고 있는 것이었다.
잠시 찾아온 절망감.
하지만 그 절망은 길지 않았다.
캉!
자신을 향해 짓쳐들어오는 알파의 칼날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
더 나아간다.
그래서 언젠가 닿는다.
짐만은 되지 않겠다 그렇게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번뜩.
알파를 쓰러트리는 것이 먼저였다.
캉!
알파의 칼을 받아친 이진석이 뒤로 물러섰다.
흘린다고 흘려도 튕겨 나갈 수밖에 없는 괴물 같은 힘이었다.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은 진즉 버렸다.
알파는.
‘실험체야.’
어떤 존재인지 알 것 같았다.
지금 아레스가 차지하고 있는 육체를 만들기 위해 실험되었던 과정에서 탄생한 것.
즉.
‘최고, 최강.’
그 단어를 쫓으며 만들어진 작품인 것이었다.
오직 전투를 위해, 살육을 위해 만들어진 병기.
서걱!
그 병기가 넥타의 힘마저 갖추었으니 밀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과거라면 절망했을 수도 있다.’
이정도의 격차에, 타고난 힘에 절망하여 물러섰을 수도 있을 거다.
그러나.
피식.
이제는 웃음이 나온다.
그렇지 않겠는가.
쾅! 쿠콰콰쾅!
저런 싸움을 보다가.
캉! 카카카캉!
이런 것을 보면 그저 귀엽게 느껴질 뿐이었다.
할 수 있다.
해낼 수 있다.
자신에게도.
고오오!
아직 남아있는 것이 있지 않은가.
“권능.”
화르르르륵!
이진석의 온몸이 시뻘건 불꽃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쒜엑!
그런 이진석을 향해 찢어 들어오는 알파의 양팔.
지금껏 이진석에게 막대한 충격을 선사했던 그 팔이.
치이이익!
연기와 함께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것이었다.
이진석이 가디언의 힘을 깨닫고 얻게 된 첫 번째 권능.
“이프리트.”
불꽃이 이진석을 지키고.
화륵!
이진석의 검이 되어준다.
지금껏 받아치기만 했던 알파의 공격을 꿰뚫고.
치이이익!
이진석의 검이 알파의 어깻죽지에 꽂혔다.
표정 없는 병기와 같았던 알파였다.
와락.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녀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통한다.’
그래.
“나도 할 수 있어.”
저 세계에 닿기 위해, 지금은 너 먼저 상대할 것이다.
* * *
확실히 제대로 된 육체를 가지고 있는 가디언이라는 것은 무서운 존재였다.
헤파이스토스를 찾으러 갔던 올림포스의 파편이자 타르타로스의 일부 속에서 본래의 힘을 되찾은 모모스를 상대할 때도 느꼈다.
하지만 그때도 모모스는 완벽한 육체를 지니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아레스는.
구웅.
완벽하다 할 수 없어도 최고의 육체와 힘을 다루고 있는 것이었다.
묵직한 소음이 울려 퍼지자.
쿵!
가슴팍에서 둔중한 충격이 느껴졌다.
휘익!
공중에서 충격에 회전하며 중심을 잡은 이정기가 눈앞을 봤을 때.
와락.
녀석의 얼굴 또한 일그러져있었다.
충격을 받는 찰나, 오른 주먹으로 볼텍스를 사용해 녀석의 옆구리에 충격을 줬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 생각과 과정은 다른 이가 보기에 찰나의 순간이었기에.
쒜엑!
둘은 다시 서로를 사냥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쿠콰콰콰쾅!
또다시 쉼 없이 부딪히는 둘.
고오오.
이정기도 아껴두었던 힘을 조금씩 조금씩 꺼내 들고 있었다.
‘다르다.’
지금까지 벽이라고 생각했던 존재들.
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
그러나 아레스는 그와는 또 다르다고 말할 수 있었다.
너무나 높아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라기보다는.
쾅!
부딪혀 깨부술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다.
쾅! 쾅! 쾅!
계속해서 시도하면 언젠가 부숴버릴 수 있는 벽.
씨익.
즐겁다.
휘이이이익-!
미치도록 즐겁다.
온 힘을 다해도 부서지지 않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볼텍스를 쏟아내고, 또 쏟아내도.
쾅!
그것을 맞받아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즐겁다.
‘더, 더, 더, 더!’
더 할 수 있다.
녀석 또한 웃고 있었다.
슬며시 움직이는 녀석의 입.
‘더. 더. 더.’
녀석 또한 더 큰 것을 바라고 있었다.
잠시 멈춰선 둘이 서로를 바라보며 한쪽은 검 끝을, 한쪽은 주먹을 내뻗었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앙!
폭풍이 이는 듯한 충격이 터져 나왔다.
“더!”
더 할 수 있다.
벼락의 권능을 끄집어내야 한다.
하지만 더 커져버린 힘으로 제어하기 힘들어진 벼락의 힘을 사용한다면.
‘이진석.’
지근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그에게도 충격이 갈 것이다.
더 멀리서는 최인해나 안태민과 같은 이들에게도 충격이 갈 것이다.
‘더.’
섬이 가라앉을 수도 있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섬이 가라앉아도 아레스와 한참을 싸울 수 있다.
그렇다면.
‘더…!’
상관없지 않을까.
이 즐거움을 조금 더 느낄 수 있다면 지금은 무엇이라도.
덜컥.
벼락의 힘을 끄집어내려던 이정기가 멈춰섰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더 큰 자극을 위해 남들 따윈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건가?
그리고 그제 서야 아레스의 얼굴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즐거워 미치겠다는 표정.
“말했지 않아?”
녀석의 목소리를 오랜만에 듣는 것 같았다.
“네가 인간이라고?”
즐거웠던 감정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뭘 하고 싶은 거냐?”
아레스에게 다른 목적이 있음을.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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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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