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권 16화
216
“또, 뭐가 남아있었다고?”
임휘순이 경악을 금치 못한 채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최인해의 권능은 이미 보았다.
헌터들의 힘을 증폭시켜 새로운 힘을 얻은 자신들에게 맞서게 할 정도로 대단한 능력.
그런데.
‘또.’
그런 대단한 능력을 지닌 걸 확인했는데도 또 무언가 남아있단 말인가?
푸슈슈슈슈!
최인해에게서 일어나는 힘의 파장이 사방 모든 것을 밀어내며 시야를 어지럽게 하고 있었다.
“결국.”
그 속에서 들려오는 최인해의 목소리.
-이렇게 되는군.
그 목소리가 머리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오싹!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고.
딱.
못이라도 박힌 듯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이 기분은 무엇인지 안다.
다시는 느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느낌.
‘피어.’
공포로 인한 부작용들이었다.
‘어떻게?’
의문이 드는 임휘순이 쳐다본 것은 자연스럽게도 동료들이었다.
자신과 똑같은 힘을 가지게 되었고 저들 스스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새로운 세계의 일원들.
최인해의 힘은 분명 그들에게까지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너무….’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닌가.
그렇게 겨우 고개를 돌린 임휘순의 얼굴에 잠시간 절망이 스쳤다.
“미친….”
마찬가지였다.
자신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동료들.
공포에 사로잡혀 눈이 멀어버린 것 같은 그들의 모습.
최인해의 능력은 자신뿐 아니라 공략 대원 전원에게 이어지는 듯했다.
-놀랐지?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나도 놀랐었거든.
“도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가디언의 힘을 얻으니까.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가 들리더라도.
최인해의 목소리는 마치 자신들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
‘겨우 그깟 힘을 얻고 다른 세계의 일원이 된 것처럼 행동해?’
우물 안 개구리도 그런 개구리가 없구나 하고 조롱하는 목소리.
-스승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거기다가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승리를 확신하고 있구나.’
자신들의 패배와 죽음을 완전히 확신하는 듯했다.
-동맹을 요청했으니 그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올림포스의 왕에게 이야기를 전하라고.
“……!”
-자신의 힘을….
퓨수우욱.
연기가 뿜어져 나오던 최인해의 주변이 고요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타박.
그 속에서 들리지 않아야 할 것 같은 구두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빌려주시겠다고 말이야.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최인해.
그것은 단 한마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다만 떠오르는 한 가지 단어는 명확했다.
“마… 녀.”
붉은색 드레스와 붉은 구두를 신은 채 서 있는 최인해.
그녀의 드러난 살갗 위로 수많은 기괴한 문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빨리 끝낼게.”
-무릎 꿇어라.
최인해의 목소리가 육성으로, 또 머릿속으로 동시에 울리고 있었다.
* * *
-무릎 꿇어라.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는 감히 항거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최인해의 말마따나 최인해는 가디언의 힘을 깨우며 새로운 세계로 한 발자국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최인해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은 가디언의 것만이 아니었다.
‘티탄.’
스승으로 받아들여 많은 것을 전수받았던 그녀의 스승.
티탄의 왕 ‘헤카테’.
그녀의 능력을 받아들이며 모르는 사이.
‘티탄의 가능성.’
최인해는 티탄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얻어낸 것이었다.
티탄이냐 가디언이냐 그것은 선택으로 결정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연스러운 균형처럼 어디로 기울어졌느냐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종류의 것.
하지만 최인해는 그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었다.
어떤 결정에 따라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능력.
하지만 그렇기에.
‘큭.’
대가는 확실했다.
오랫동안 힘의 변환을 해선 안 된다.
그러다간 스스로를 잃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이정기는 최인해에게서 둘 중 하나의 힘을 지우는 것을 권했지만.
‘내 힘을 빌려주겠다.’
이정기를 만나고 입을 다물었던 헤카테가 나서며 상황은 반전되었다.
평소에는 가디언으로 필요하거나 위급 상황에서는 헤카테의 도움으로 완전히 새로운 힘을 깨닫는 것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무릎 꿇어라.
최인해는 티탄의 왕의 일부분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크….”
티탄의 왕.
“크아아아아악!”
공략대원들이 받아들인 힘은 분명 넥타, 혼돈의 세대라 불리는 힘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전투하고 경험하며 스스로 한 발자국 나섰다.
진화에 가까운 변화, 최인해들이 그러했듯 상위의 존재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있었다.
‘기원.’
그들의 넥타가 어디서 기원됐느냐는 것.
당연하게도 가디언의 왕인 이정기는 아니었다.
즉.
‘티탄.’
그들의 기원은 티탄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힘을 내뿜을 때 생기는 변화 또한 티탄의 것처럼 괴물의 형태가 되는 것이었다.
최인해는, 아니 최인해가 빌린 헤카테의 힘은.
-무릎 꿇어라.
그런 티탄의 왕이었다.
주륵.
임휘순의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주르륵.
임철순의 입과 귀에서도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른 공략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무릎 꿇어라.
머릿속에 반복되는 목소리에 어떻게든 저항해보려 하지만.
주르륵!
저항하면 할수록 온몸이 망가져 가고 있었다.
머리를 옥죄어오는 절대적인 명령과 같은 말.
-무릎 꿇어라.
무릎을 꿇어라.
복종하라.
그리고.
-스러져라.
부서져 사라져버리라는 것.
“무릎….”
저항하려 하면 할수록 명령은 그들 스스로를 더욱 옥죄어오고 있었다.
“무릎 꿇어라….”
어느새 그들은 스스로의 입으로 명령을 반복하고 있었다.
털썩. 털썩. 털써억.
무엇에도 굴복하지 않고 욕망으로 끝까지 움직일 것 같던 그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니야…. 아니야!”
반항은 아직 멎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소리치며 가지고 있던 모든 힘을 폭발시킨다.
꾸드드득!
그들의 뼈가 뒤틀리고, 살갗이 움직이며 또 다른 모습으로 진화하려는 듯했다.
아예 인간을 버리려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인간의 나약함을 벗고 완전한 티탄으로 태어나려는 것.
꾸드드득!
그것이 그들이 생각한 이 상황은 타개책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공략대원들이 큰 힘을 얻은 것은 외부적인 요인이라 하지만 그 결과를 얻기까지의 노력만큼은 진실이었다.
수많은 전투와 경험, 공략만으로도 그들의 판단능력은 수많은 헌터 중에서도 최고 수준임은 분명할 것이었다.
하지만 단언컨대.
“결국, 최악의 선택을 하네.”
최인해의 말마따나 그들의 선택은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 최악의 선택일 것이다.
어쩌면 위기 속에서의 진화일수도, 새로운 발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한 가지 진실.
-무릎 꿇어라.
최인해가 지금 빌린 힘이 티탄의 왕의 것이라는 것이었다.
가디언보다 더욱, 티탄은 왕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다.
인간의 나약함을 버리고 티탄으로 재탄생된다고 하면.
털썩.
“무릎 꿇어라….”
그 명령에 대해 반항할 수 있는 일말의 여지마저 스스로 버리는 것이었다.
“무릎 꿇어라….”
“무릎 꿇어라.”
완전한 괴물로 변해 스스로 중얼거리고 있는 그들.
어느새 공략 대원 모두가 무릎 꿇은 채 똑같은 말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뚝.
실 끊어진 인형처럼 멈춰선 그들.
그들의 눈이 훽 돌아가 흰자만이 남은 순간이었다.
“스러… 져라.”
부숴져 사라지라는 명령.
그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그들의 몸이 또 한 번 변화하기 시작했다.
파스스.
천천히 가루가 되기 시작한 그들의 육체.
일반적인 헌터라면 모를까 그들이 가진 잠재력을 최고조로 끌어내고 마력의 한계까지 이용할 수 있는 그들.
그것을 넘어서 마력의 상위의 힘인 넥타를 다루고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한 그들에게.
파스스.
스스로의 육체를 가루로 만드라는 명령은 쉬워도 너무 쉬운 것이었다.
결코, 그럴 각오를 하지 못하고, 이유를 모를 뿐 그들은 단 몇 초만에 스스로의 육체를 가루로 만들 수 있었다.
일반인을 넘어 초인의 힘을 얻은 그들이었다.
거기서 욕심을 버러지 못해 더 큰 힘을 바랐던 그들이었다.
세계의 최고가 되고 싶어서, 인간을 뛰어넘고 싶어서 많은 것을 버려야 했던 그들이었다.
이 힘을 버려도 세계 어디에서나 스스로를 증명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들.
이미 그 끝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던 그들은.
파스스.
어느새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덧없고 희망 없는.
사아.
그런 끝이었다.
“후우….”
작은 숨이 터져 나왔다.
최인해의 몸이 그대로 고꾸라지려 할 때.
타앗.
안태민이 급히 그녀를 안아 들었다.
“잘…, 부탁해.”
조용히 작아지는 최인해의 목소리에 안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다.”
앞으로 최인해는 한동안 기약 없는 잠을 자야 할 것이다.
그녀가 빌린 힘은 그런 대가를 치러야 하는 힘이었으니까.
* * *
‘고생했다.’
방금 최인해의 기운이 급속도로 삭아지는 것을 느꼈다.
헤카테의 힘을 빌렸던 그녀가 전투를 끝마친 것이 분명했다.
자칫 죽은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변화였지만 이정기는 그녀가 죽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미세한 연결.
그리고 헤카테의 호언장담.
저 멀리.
‘고생했다.’
김윤태 또한 전투를 끝마쳤다.
그쪽은 사정이 더 안 좋은 것 같긴 했지만 김윤태의 만족스러운 마음이 전해지고 있었다.
짧다면 짧은 훈련만으로 얻어낸 결과로 정말 저들끼리 공략 대원들을 해치운 것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대단하군.”
이 남자.
“결국, 공략 대원이 대부분 실패했다는 건가?”
주형태.
아니 또 한 명.
“뭐 나머지는 아직 실패작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주형태의 옆에 서 있는 자가 있었다.
주형태가 숨겨둔 아들이라고 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아 보였고, 그 힘이 부족해 보였다.
저자는.
‘마지막 공략 대원.’
무어라 그랬지.
“알파.”
이름을 버리고 알파라는 이름을 사용한다고 들은 공략 대원이었다.
감정도 무엇도 찾아볼 수 없는 얼굴.
그렇기에 느껴지는 감정은 그리 좋지 않은 존재.
그리고 그때.
타앗!
이정기의 뒤에서 소음이 울려 퍼졌다.
“하아…. 하아…. 하아….”
거친 숨소리와 함께 나타난 자가 이정기의 옆에 섰다.
“다행히….”
이진석, 그가 말했다.
“늦지 않았습니다.”
씨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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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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