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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손자-214화 (214/284)

제9권 14화

214

무얼 해볼 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앞가슴에 커다란 상처가 난 채 무릎 꿇려진 안태민.

“제길.”

목에 검이 드리워진 채 분노로 눈을 부릅뜨고 있는 최인해.

“죽여버릴 거야.”

마지막으로.

“하나 정돈 죽여도 괜찮잖아? 건방지게 화살을 쏘아댄 벌은 받아야지.”

“크윽…!”

가슴이 꿰뚫려 신음하며 눈빛을 잃어가는 강민혁이 쓰러지고 있었다.

상황은 최악이라 할 수 있었다.

대비하고 준비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얕봤어.’

공략 대원이란 존재를, 그들이 가진 힘을 얕보았다.

아니 알지 못하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이진석이 그랬듯.

‘이들 또한 다른 세계의 사람들.’

한 단계 더 높은 세상의 사람들을 어찌 감히 판단하고 평가 내릴 수 있겠는가.

그렇게 셋은 순식간에 포로와 같은 형국이 되었다.

더욱 최악인 상황은 이들이 자신들을 사로잡은 목적이었다.

“일말의 당황 정도는 끌어낼 수 있겠지. 아무리 인간 같지 않은 녀석이라지만, 그래도 너희는 이렇게 챙겨서 여기까지 데려왔잖아?”

공략 대원들이 그들을 사로잡은 목적이 이정기를 향한 협박을 하기 위함이었다.

아주 간단한 수였고, 고전적인 방식이었다.

하지만.

씨익.

“언제나 그렇듯 가장 큰 효과가 있는 법이니까.”

이들이 자주 애용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아무리 냉혈한이라고 한들,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마라고 한들.

‘그들도 인간이다.’

그들에게 감정이 있어 동정하는 마음이라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인간의 아주 본질적인 감정.

“외로움을 안 타는 인간은 없으니까.”

세상에 홀로 살 수 있는 인간은 존재치 않는다.

직장 생활을 하는 평범한 일반인도, 아직 주민등록증조차 나오지 않은 학생들도, 머리가 희끗해 죽음을 바라보는 노인들도.

‘누구나 외로움을 탄다.’

이정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외로움이 없는 인간만큼 무서운 이는 없지만 분명 이정기는 외로움을 탄다.

그렇지 않고서야 쓸데없이 주변 인물을 늘릴 필요도.

‘이성에 대한 집착.’

이성과 성혈에 대해 집착하며 저에게 칼을 들이밀었던 주안나나 김윤태를 용서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방식은 고전적이지만 무조건 통한다.

한순간의 방심, 그것만 유도하더라도 이들을 사로잡을 이유는 충분한 것이었다.

“정기를 아예 모르는구나?”

최인해가 비릿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눈 하나 깜짝 안 할걸?”

“동료에 대한 평가가 박하군.”

“박하다고?”

최인해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아니. 뭐가 중요한지 아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이제는 그 웃음이 섬뜩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배우고 자란 녀석이니까.”

“……!”

“녀석의 할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시엘과 함께 스스로를 최고라 생각하는 공략 대원들.

그 자부심이 하늘 높은 곳 어딘가에 있는 자들이었지만.

와락!

최인해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얼굴을 일그러트릴 수밖에 없었다.

“이건.”

이건.

과거에도 지금에도, 모습을 감추고 있든 아니든 언제나 모두를 따라다니는 그 이름.

“자살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 하지만….”

씨익.

“너희는 최악을 골랐어.”

최인해의 미소가 짙어질 때.

“닥쳐라. 언제까지 그자가 최고라 생각하지?”

조금은 여유를 되찾은 듯 임철순이 말했다.

“과거의 유령일 뿐이다. 지금도 모습을 감춘 게 제 힘을 잃어서 그랬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 그리고….”

최인해가 지었던 웃음이 그에게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길드장이 이성을 차지하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윗 세계로 가게 된다.”

“……?”

“그때라면 이건도 우리의 손톱에 갈가리 찢겨 땅을 나뒹굴 거다.”

“그거 좀 위험한 발언인데?”

“넌….”

임철순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최인해를 보며 말했다.

쓸데없이 자신들을 도발하는 게 자신들을 협박하고 설득시켜 풀어주도록 유도하는 듯했다.

하지만 표정과 목소리, 행동이 주는 느낌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마치.

“뭘…?”

시간을 끄는 것과 같다.

“뭘 하고 있는 거냐!”

준비되었던 무언가.

씨익.

최인해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를 때.

“속박!”

최인해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 * *

그그그그그.

듣기 거북한 소리와 함께 땅에서 튀어나온 줄기가 공략 대원들을 옭아맸다.

“무슨!”

어지간한 마법과 아이템으로는 공략 대원들의 발을 단 일 초도 묶을 수 없지만.

그극!

땅에서부터 솟구친 줄기는 무언가 달랐다.

까가가가각!

임철순과 임휘순 형제의 손톱도.

콰앙!

마력으로 이루어낸 폭발도 줄기를 막을 수 없었다.

어느새.

“그러게. 시간을 주지 말지.”

형세는 역전되어 있었다.

사로잡혀 있던 최인해, 그녀가 비릿한 눈웃음을 지은 채 묶여 있는 공략 대원들을 보고 있었다.

“이런 것으로!”

임철순이 소리치며 힘을 폭발시키기 시작했다.

최인해들을 사로잡은 이후 안정화되었던 힘에 의해 인간의 모습을 되찾았던 그들.

하지만 지금 힘을 폭발시킴과 동시에.

-그르르…!

그들은 다시금 짐승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모습만 변하는 것이 아니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마력의 양이 숨을 막히게 하고 주변의 공기를 뒤바꾸고 있었다.

캉!

줄기를 때리는 손톱에서 나는 소리가 아까와 다르다.

캉!

또다시 튀는 불꽃.

그리고.

서걱!

결코, 베어지지 않을 것 같던 줄기가 베어지는 순간이었다.

속박당해 움직이지 못할 것 같던 그들이 다시금 섰다.

“그래. 그 정도 앙탈은 해주어야지.”

숨겨둔 비장의 한 수가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생각한 임철순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그래?”

최인해의 반응은 아직도 여유 그 자체였다.

“너희도 마찬가지야.”

“……?”

“그 정도 앙탈은 해줘야지.”

“……!”

마찬가지.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그그그그!

바닥에서 뚫고 나온 줄기가 이번에는 최인해와 강민혁, 안태민을 감싸 안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거냐!”

당황한 임철순이 급히 손톱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손톱의 궤적에 따라 푸른 불꽃이 남았고, 손톱과 충돌한 줄기에 깊은 상처가 났다.

카캉!

다시 한 번 휘둘러진 손톱.

그럼에도 줄기는 단단히 최인해들을 감싼 듯 그 속살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그래 보아야 쥐구멍 안이다!”

분노한 그들이 다시금 힘을 폭발시키려 했을 때.

“누가 도망친대?”

최인해들을 단단히 감쌌던 줄기가 풀어지기 시작했다.

들려오는 목소리.

그것에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뭔….”

그 줄기 안에서 느껴지는 힘.

오도도.

소름이 끼치는 그 힘을 신경 써야만 했다.

방금 전과 전혀 다른 기운과 거친 힘이 그 안에서 퍼져 나오고 있었다.

저것이 완전히 벗겨지는 순간.

오싹!

어떤 큰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새로운 힘을 얻고 결코 겪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힘을 주었던 ‘그’에게서나 느껴봤던 감정.

“내가…!”

두려움.

“그럴 리 없어!”

임철순이 고함을 내지르며 손을 내질렀다.

아까보다 두 배나 자란 손톱이 더 날카로운 빛을 띠며 세상 그 무엇이라도 갈라버리려 했으나.

탁.

지금껏 들었던 것과 전혀 다른 소리가 났다.

“말했잖아. 그 정도 앙탈은 해 줘야 한다고.”

최인해.

그녀가 나무줄기에 둘러싸인 여전사의 모습으로 임철순의 손톱을 붙잡고 있었다.

타앗!

홀로 움직이는 것을 내버려 두었던 공략 대원들 또한 급히 움직였다.

지금! 지금 막아야 한다고.

그러나.

캉!

두 곳에서 또 같은 소리가 났다.

줄기에 둘러싸인 채 자연을 수호하는 전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최인해 뿐만이 아니었다.

안태민과 강민혁, 그 둘 또한 완전히 새로운 힘을 지닌 채 전투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가디언의 힘을 깨달은 이진석, 그가 갖게 된 권능은 일대일 결투에 특화되어 있는 것이었다.

최인해 또한 가디언의 힘을 깨달았고 그녀 또한 권능을 갖게 되었다.

그녀가 갖게 된 권능은 이진석과 달리 다수와의 전투에 특화되어 있는 것이었다.

‘버퍼.’

서포트 계열 헌터들의 특징인 버프 능력.

헌터를 강화시키고, 헌터가 끌어낼 수 있는 잠재력의 한계를 높여주는 것이 바로 그 능력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헌터들의 버프 능력과는 그 궤가 다른 것이 바로 최인해의 능력이었다.

‘자연의 힘.’

그녀가 가진 능력은 자연의 힘을 대가로 한다.

주변 자연이 오랫동안 품고 있던 마력과 힘을 빌려 헌터에게 부여할 수 있다.

지구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겠지만.

‘게이트, 던전에서는.’

자연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에서 그녀가 낼 수 있는 힘은 가히 두 배 그 이상.

그리고 무서운 점은 그녀가 자연의 힘으로 증폭시킨 능력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손실 없는 공유.

자연은 대가 없이 최인해에게 힘을 빌려주었다.

지금 최인해 스스로도 한 명의 전사와 같은 힘을 가지게 되었다면 안태민과 강민혁의 육체 또한 마찬가지였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이 있다면.

구우웅.

자연의 힘을 받은 이들끼리 지근거리에 있다면 그 힘을 공유하며 더욱 증폭시킨다는 것이었다.

“……!”

그것이 이진석이 최인해와 안태민, 강민혁만을 남긴 채 나아갈 수 있던 이유였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정도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최인해 스스로 당황하며 주먹을 쥐었다.

캉!

임철순의 손톱이 그대로 부숴져 터져나갔다.

“크윽!”

전에 사용해보았을 때보다 더 큰 힘.

감당이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힘이 스스로의 육체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아…!”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네 힘은 다수 특화의 전투능력이긴 하지만….’

권능을 깨달은 자신에게 이정기가 해주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확실한 건 올림포스전에서 큰 위력을 발휘할 거야.’

그때는 이해하기 힘들었던 이야기.

그러나.

씨익.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최인해의 권능의 본질은 자연이 가지고 있는 마력과 힘을 스스로와 동료들에게 주입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마력이 부족한 지구와 달리 게이트나 던전에서는 그 위력이 폭증한다.

그러나.

“안태민 어때?”

그보다 더 큰 마력과 힘을 가지고 있는 장소라면?

‘올림포스.’

게이트나 던전 따위와 비교할 수 없는 순수한 힘으로 가득 찬 공간이라면?

“당황…, 스러울 정도군.”

그 힘의 폭증이 어느 수준인지 실감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마치 그것을 실험하려는 듯 안태민의 태도가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

놀라 급히 몸을 틀려던 임휘순의 몸이.

서걱!

반으로 갈라지는 듯한 환상이 보였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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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 스 | 02-6442-7919

홈페이지 | www.osmedia.kr

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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