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권 12화
212
황철용이 정박을 위해 해안가로 다가오고 있는 황금배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이제 곧 끝이다.”
그토록 고대하고 기다리던 순간이 온다.
이성의 진짜 주인이 주형태가 되는 것.
그것으로 개국공신이나 다름없는 공략대원들은 가히 셀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이득을 보게 될 터였다.
대한민국의 왕이나 다름없는 이성의 주인을 모시는 자들이니, 귀족 그것도 공작쯤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디 그것만일까.
‘힘…!’
그토록 바라던 힘을 얻었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이성을 먹고 한국을 먹으면 더 큰 힘을 주지.’
주형태의 뒤에 계신 그분.
그분께서 더 큰 힘을 약속했다.
할짝.
생각만으로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도 감히 자신을 상대할 수 없는 헌터들.
만일 자신이 숨겨놓은 힘을 모두 드러낸다면 과거의 시엘들조차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헌데 더 큰 힘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이제 곧 저 배에서 내리는 녀석들을 처리한다면 말이다.
“……?”
그러다 문득 이상함을 느낀 황철용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침입자가 있다는 것은 감지했기에 해변을 자신이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헌데.
“배?”
저런 황금배가 있다고?
그것도 현대식의 마력 구조로 이루어진 전함이 아닌 과거 중세에서나 볼 법한 저런 배가 어디서 나온 걸까.
‘아니, 아니지.’
이성의 주인을 노리는 자다.
거기다 주형태가 오랫동안 숨겨왔던 비처를 찾아내 습격할 정도의 인물이다.
그렇다면 말이 된다.
“뭐가 됐든…, 크흐흐.”
황철용이 쿵 철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전부 밥으로 삼아주마.”
하지만.
“…….”
그래도 무언가 이상하다.
“왜…?”
정박을 위해 해안가로 접근하고 있는 황금배의 속도가.
“속도를 왜 안 줄이는 거야!”
전혀 줄어들고 있지 않았다.
쒜에엑!
바다를 가르며 그대로 쾌속 전진해오는 황금색의 거대한 배.
“야아아!”
황철용이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급히 명령을 내리려고 했을 때는 이미.
쿠쿠쿠쿠!
황금배는 해안가 그 자체를 부수며 돌진해오고 있었다.
피하려 해도 그 속도는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결국 철퇴를 들어 방어 태세를 취한 황철용이었지만.
쾅!
황금배와 충돌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황철용, 그리고 그의 부대원들을 전부 깔아 짓뭉개버린 황금배가 마침내 전진을 멈추었다.
해변을 한참 지나 숲까지 들어가서야 멈춘 배 위에서.
타앗.
이정기와 헌터들이 뛰어내리고 있었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곧장 뒤따르겠습니다.”
서로가 해야 할 일을 이미 알고 있다.
콰앙!
지반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사라진 이정기.
그 뒤를 이어 일행들 또한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쉽게 끝나나 했는데….”
이진석이 안색을 굳히곤 급히 뒤 돌아 검을 휘둘렀다.
카앙!
가디언의 힘을 얻고 베지 못하는 것은 이제 거의 없다고 생각했던 이진석의 검이었다.
하지만 들려온 것은 선명한 충돌음이었다.
“이…, 이….”
이진석의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억눌린 신음 소리.
“이 개자식들이!”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황철용, 그가 몸집을 더욱 크게 부풀린 채 철퇴를 들고 일행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끄르르….”
“끄륵!”
거대한 배의 무게에 짓눌려 가루가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건만, 황철용의 부대원들마저 아직 살아 움직여 헌터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밥 시간이다-!”
황철용이 크게 소리치며 이진석을 향해 철퇴를 내리쳤다.
쾅!
* * *
이정기가 미리 언질을 주긴 했지만.
“이건 상상 이상인데…!”
이진석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양손으로 검을 받아들고 있었다.
검에 느껴지는 강맹한 충격은.
쾅! 쾅!
“크윽!”
가디언의 힘을 얻은 이진석에게도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것이 공략대…!’
황금배에 짓눌려 전투 불능이 되었다고 생각했건만 즉사는커녕 부상조차 크게 없어 보이는 모습.
거기다가.
고오오!
느껴지는 기운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어둡고 대단한 것이었다.
전투는 이진석 혼자만 치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카앙! 카앙!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쇳소리와.
서걱!
절삭음.
헌터들이 황철용의 부대원들과 전투를 시작한 것이었다.
“미안하지만….”
이진석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너희와 놀아줄 시간은 없어!”
재빨리 이정기의 뒤를 따라가야 한다.
아직 섬에는 주형태의 공략대원들이 남아있을 것이고 그들은 숨기는 무언가를 위해 이정기의 발을 묶을 것이다.
이정기가 위험할 것이라고는 생각이 들진 않지만, 혹여나 있을 일을 방지하기 위해 그를 도와야 하는 것이 자신들의 사명이었다.
마치 도깨비처럼 변한 이진석.
그가 연기처럼 사라진 순간.
서걱.
작은 절삭음과 함께.
서거거거거걱!
수많은 절삭음이 동시에 들렸다.
탁.
이진석이 검을 집어넣고 폭발한 기운을 갈무리했다.
상대를 쓰러트렸음을 직감하고 아직 완벽히 다루지 못한 기운을 제어하려던 것이었다.
그런 이진석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타앗.
급히 땅을 박찼지만 이미 늦었다.
뒤에서 느껴지는 선명한 기운과 진득한 살기는.
“버러지가!”
거대한 철퇴에 휘감겨 이진석의 뒤통수를 노려오고 있었다.
온몸이 잘려나갔을 것이라 확신했던 황철용의 상처가 어느새 재생되어 있었다.
경악할만한 재생력이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이진석이 잠시 동안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때.
쿵!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
치명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이진석이 너무나 멀쩡히 서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제가….”
팔뚝은 물론 얼굴까지 솟아오른 핏줄.
“맡겠습니다.”
그 이마에 변화가 생겨나고 있었다.
“이런 녀석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압니다!”
김윤태.
그가 김한산의 상징이었던 도끼를 든 채 황철용과 맞서고 있는 것이었다.
“한 명만 주십시오. 그럼 해변은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가디언의 힘을 깨달은 자신조차 해내지 못한 일이었다.
그럴진대 김윤태는 가디언의 힘조차 깨닫지 못했다.
당연히 불가능한 일, 힘을 합쳐 황철용과 부대원들을 물리쳐야 하는 게 상식적으로 맞는 일이었다.
쿠쿵!
지금, 이 순간에도 마치 진화하듯 몸집을 부풀리고 있는 황철용.
어느새 거인이 되어버린 황철용을 김윤태와 한 명에게만 맡기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임은 확실했다.
그러나.
“알겠… 습니다.”
이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의 김윤태는 성혈 중에서도 가장 최악이라 불리는 망나니였다.
헌터로서의 긍지와 힘이 있는 주안나와 달리 헌터의 힘은 주영은이 억지로 만들어 준 것이었으며 스스로 헌터임을 부정하는 듯 했다.
그렇다고 주병훈처럼 경영에 자질이 있다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그 무엇도 하지 않으며, 할 수 없고 이성의 자산을 까먹는 좀 벌레와 같은 자.
그것이 솔직한 김윤태에 대한 평가였다.
하지만 그런 김윤태는.
‘변했다.’
이정기를 만나 변했다.
주어진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상실감에 겁이 나 보이는 모습이 아니었다.
정말 스스로 깨닫고 변한 모습이었다.
‘성혈.’
모두가 부정했다지만 김윤태 역시 성혈인 것이었다.
그 핏속에 반짝이는 별빛을 이정기를 만나 되찾은 것이었다.
그렇게 변한 김윤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일본에서 들려오는 소식만으로도 김윤태는 스스로를 여러 번 증명했다.
그럼에도 황철용의 상대가 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믿는다.’
이정기가 했던 말이 있었다.
‘김윤태는 잘할 겁니다.’
가디언의 힘을 끌어내기 위한 훈련을 받고도 가디언의 힘을 깨닫지 못해 분해하던 김윤태를 보며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이었다.
김윤태를 믿는다.
그리고 김윤태를 믿은 이정기를 믿는다.
“제가 남죠.”
또 들려오는 목소리.
권신우였다.
“이 개자식들이 지금 뭐라는 거야!”
분노한 황철용의 목소리가 다시금 터져 나올 때.
“어려울 것 같으면 도망쳐도 됩니다.”
이진석이 자리를 벗어났다.
뒤따라 움직이는 다른 헌터들.
그 뒤를 노리는 황철용의 철퇴와 부대원들의 공격.
“네 상대는….”
목소리가 바뀌었다.
“나야.”
황철용처럼, 마치 짐승이 우는 소리였다.
* * *
쿵! 쿵! 쿵!
섬의 해안가에 지진이라도 난 듯한 굉음이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쿵! 쿵!
철퇴와 도끼가 서로 마주쳐 모든 것을 부숴버릴 듯한 충격파를 내고 있었다.
그 둘의 싸움은 가히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적이고.
쿵!
야만적인 것이었다.
도끼와 철퇴가 부딪치고, 다시 또 휘둘러 부딪친다.
쿵!
저게 전투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마치 두 마리의 황소가 서로의 힘을 겨루는 듯.
쿵! 쿵! 쿠쿠쿠쿠쿠쿠쿠쿠쿵!
부딪히고, 또 부딪친다.
“저게… 그 망나니라니.”
권신우가 저도 모르게 김윤태를 보며 말했다.
전투의 뒤에 서서 헌터들을 앞세우고 무엇도 하지 않던 것이 김윤태였다.
공대장이라는 직위와 이름으로 그저 명령만 내리던 겁쟁이.
그럴진대.
쿵!
지금 저것은.
“사나이잖아…?”
마초 그 자체의 모습.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혀오던 황철용의 힘에도 김윤태는 전혀 밀리고 있지 않았다.
커다란 황철용의 몸집?
“크으으으아아아!”
김윤태 또한 그 몸집이 커다래져 있었다.
인간의 모습, 그러나 인간과는 또 다른 모습.
김윤태의 이마 위로 두 개의 뿔이 솟구쳐 있었다.
쿵!
저 둘의 싸움은 쉬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상황.
권신우가 몸을 뒤로 젖히며 부대원의 주먹을 피했다.
“아무리 제대로 힘을 못 깨우쳤다지만….”
저런 것을 보니 피가 안 끓으려야 안 끓을 수 없었다.
“부대원들조차 상대 못 하면 말이 안 되지.”
섬광과 같은 움직임.
퍽! 퍼퍼퍼퍼퍽!
권신우가 일 초에 수십 발 주먹을 내질러 부대원의 몸을 짓이겼다.
다시금 재생하려던 적의 몸이.
퍼엉!
그대로 터져나갔다.
신세대의 헌터 권신우.
그가 깨달은 금빛의 마력의 힘은 가속이었다.
그 힘을 이용하기만 한다면.
“덤벼봐.”
재생력이 한계까지 치솟아있는 적들을 오히려 파괴하기 쉽다.
거기 더해 자신의 권술이라면….
퍼퍼퍼퍽!
저 부대원들은 결코 상성이 좋지 못한 상대를 만난 것이었다.
그때.
콰득!
권신우의 팔에 잘려나갈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왔다.
동시에 달려드는 부대원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부상을 입은 것이었다.
당장이라도 잘려나갈 것 같은 권신우의 팔에.
화악!
금빛 마력이 맴돌기 시작했다.
“재생력은 나도 너희 못지않아.”
그것이 권신우가 깨달은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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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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