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권 11화
211
“사츠키!”
그녀의 힘이었다.
열쇠, 넵튜누스의 창을 통해 쏟아지는 그 기운은 분명 사츠키.
아니 티탄, 오케아노스의 힘.
‘또 다른 한 명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헤르메스가 말한 그 주인공이 사츠키였던 것이었다.
티탄들에게 버림받아 그 힘을 빼앗기고 이정기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그녀, 이정기의 도움으로 힘을 되찾고 이정기에게 충성을 맹세한 티탄의 힘이 지금 열쇠와 김윤태를 통해 퍼져나가고 있었다.
쿠쿠쿠쿠쿠!
당장이라도 자신들을 덮쳐올 것 같던 거대한 파도가.
뚝.
마치 시간이라도 멈춘 것처럼 멈춰 섰다.
“……!”
그건 이정기가 바다를 가른 것만큼이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광경이었다.
황금배에 올라타 멈춰선 파도를 보는 것은 마치.
“신화….”
신화 속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파도가 멈춰 섰듯, 바다가 멈춰 섰다.
나아가던 황금배는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한 채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아직….”
김윤태가 지친 듯 호흡을 고르며 말했다.
“아직입니다.”
지금 김윤태는 사츠키의 단말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 일본에서 사츠키와 함께 던전을 공략했던 김윤태, 스스로에게 주어진 넥타를 갈고 닦던 그에게는 또 다른 변화가 있었다.
‘원한다면.’
과오를 인정하고 나아가려는 김윤태의 모습.
그것이 마치 사츠키는 과거의 스스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한, 김윤태는 자신이 새로 충성을 맹세한 왕의 혈족이었다.
그렇다면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내 힘을 나누어주마.’
사츠키, 아니 오케아노스.
그녀가 티탄들에게 버림받고 힘을 빼앗겼던 이유는 단순히 그녀가 인간이라는 타성에 젖어 티탄의 본분을 잊어서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가진 힘을 꼭 회수해야만 하기 때문.
‘오케아노스는….’
아폴론이 말한 적 있었다.
‘티탄의 후계 중 하나였습니다.’
오케아노스의 힘은 티탄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한다고.
티탄의 왕위를 이을 수 있는 후보 중 하나이며, 그녀가 가진 힘은 자그마치.
‘대양. 그 자체입니다.’
커다란 바다를 제 맘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분명 사츠키가 보여주었던 힘은 그랬다.
다만 힘을 되찾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육신과 그 힘 대다수를 잃어 온전한 힘을 뿜어내지는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랬던 오케아노스의 힘이.
“크읍!”
지금 김윤태와 그가 손에 쥐고 있는 열쇠를 통해 펼쳐지고 있었다.
이정기가 왕으로 각성하여 성장한 만큼 충성을 맹세한 오케아노스의 힘 또한 되찾을 수 있었고, 그녀 또한 스스로 잃은 힘을 되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사츠키는 김윤태에게 힘을 나누어주었던 것.
김윤태와 적당한 단말이 있다면.
“파도가…!”
사츠키가 잃어버렸던 힘의 일부를 김윤태가 쓸 수 있게 해주었던 것.
“파도가 움직입니다!”
멈춰 섰던 파도가 움직이며 하나로 모여들고 있었다.
마치 다시금 황금배를 덮쳐올 것 같은 위협적인 모습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까와 달리 파도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달랐다.
먹어치우려는 것이 아닌.
“어어…!”
도우려는 것처럼.
구우웅!
커다란 파도가 황금배를 들어 올렸다.
파도에 올라탄 황금배가 해야 할 일은.
쏴아아아-!
그저 가만히 파도가 이끄는 움직임에 몸을 내맡길 뿐이었다.
“살다 살다…, 이런 경험을 하게 될 줄이야.”
김윤태를 새삼스럽게 보는 시선들.
그 시선들은 이정기를 향해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그들은 스스로를 살피고 있었다.
이제야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인간을 넘어선 초인, 헌터.’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존재들.
‘가디언, 티탄.’
그들이.
“정말 신화였구나.”
자연을 움직이고 다스릴 수 있는 신적인 존재라는 것을.
* * *
파도에 올라타 나아가는 황금배는 쾌속 그 자체였다.
막을 것이 없었고, 멈출 줄을 몰랐다.
계속해서 덮쳐오던 파도와 대기도 감히 황금배에 접근할 수 없는 듯했다.
“진작 이렇게 하지.”
최인해가 불평스럽게 투덜거렸다.
김윤태에게 이런 힘이 있다면 당연히 처음 바다에 빠질뻔했을 때부터 사용했으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던 거야.”
이정기가 바다를 조종하고 있는 김윤태를 대신해 말했다.
“김윤태의 힘이 아닌 사츠키의 힘이니까.”
김윤태가 사츠키의 힘을 완전히 다루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단말일 뿐.
사츠키가 곁에 있거나, 허락해주어야만 그 능력을 잠시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 이곳은 일본도 지구도 아닌 게이트 속.
당연히 그 힘을 사용할 수도 없었거니와 가능하다고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뒤늦게 헤르메스가 포탈을 열어주어 그것이 가능해진 것일 뿐.
‘제대로 도움을 받았어.’
이제 거칠 것이 없이 나아가는 황금배 너머로 검은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저곳이 목적지인 것 같습니다.”
이진석의 말마따나 저곳이 목적지임이 분명해 보였다.
이정기는 눈을 감고 기감을 확장했다.
올림포스에서부터 이정기의 기감은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었는데, 넥타를 활용하고 왕으로 각성하며 넥타 레벨이 오른 지금은.
화악!
저 먼 곳까지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괴물 같은 기감을 갖게 되었다.
느껴지는 기운들.
“역시….”
생각했던 상황과 비슷하다.
그리고 또 하나.
“눈치챈 것 같네요.”
기운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하기야 바보가 아니고서야 바다가 요동치고, 커다란 황금배가 움직이고 있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다만 하나 이상한 것은.
‘뭔가….’
헌터들의 움직임이었다.
“뭔가 숨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빠르게 정리하고 움직이려는 듯한 움직임.
“보호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요.”
기감으로 헌터들이 가진 마력을 느끼는 것뿐이지, 그들의 목소리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형태 길드장 아니겠습니까?”
“…….”
그럴 것이다.
하지만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들도 전쟁을 준비하고 있던 만큼 이런 상황을 상정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직 이르다?’
자신들의 도착이 생각보다 이르다는 것 정도.
더 자세히 느끼고 싶었지만 대기가 요동치며 이정기의 기감을 흩트려놓고 있었다.
“아무래도 작전을 바꿔야겠습니다.”
이정기가 원래 세웠던 작전은 섬에 상륙한 후 보이는 것은 모조리 짓밟으며 확실히 나아가는 것이었다.
이들에게 맡길 수도 있지만 최대한 자신의 힘으로 강자들을 꺾어 누르는 것이 가장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공략대를 제외한 헌터들이 이곳에 있다면 동료들이 그들을 제압하는 것으로, 그러기 위해 그들에게 힘을 준 것이었다.
하지만.
“상륙 직후 저는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이정기가 계획을 바꾸었다.
“제가 향하는 길에 보이는 적은 쓰러트려 놓겠지만….”
이정기의 눈이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나머지 적들은 여러분이 상대해야 할 겁니다.”
운이 좋다면 최대한 많은 적을 이정기가 쓰러트려 주겠지만, 운이 나쁘다면.
“공략대를 포함해 백여 명 정도의 헌터가 있습니다.”
백의 헌터를 이들끼리만 쓰러트려야 하는 것이었다.
그저 그런 헌터가 아닌 공략대원들과 주형태가 이 비밀스러운 장소를 공개하고 불러들인 최고의 정예들이었다.
거기다.
“공략대원들은….”
공략대원들을 조사하며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원래도 최고의 헌터들임을 자부하던 그들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완전히 언터쳐블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혼돈의 세대.
그들 전부가 넥타의 힘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지금.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느껴지는 기감에 그들의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조금은 걱정스러운 이정기의 목소리에.
“무시하지마.”
안태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대단함이나 보자고 여기까지 따라온 게 아니야.”
전과 다를 바 없는 말투와 태도.
“너에게 도움이 되고자 여기에 온 거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분명한 진심이 느껴졌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기 위해 훈련을 했고.”
안태민의 목소리에 모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마. 그러니….”
스릉.
안태민이 그 커다란 태도를 꺼내 들어 준비를 시작했다.
“네가 해야 할 일을 해라.”
끄덕.
마침내 이정기도 고개를 끄덕였을 때.
쿠쿠쿠.
파도가 부서지며, 황금배가 도착을 알리고 있었다.
* * *
“이 해변 뒤로 아무도 지나갈 수 없다. 크흐흐.”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철퇴를 든 채 말했다.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산적과 같은 외모였지만 아무도 그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거인 같은 그 몸집이나 부풀어 터질 것 같은 근육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이름, 그의 정체가 아무도 그를 무시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성 공략대.’
이성에서도 단 한 개만이 존재하는 조직이자, 길드장 직속의 대원들.
“크하하하!”
공략대원 황철용이 바로 사내의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쌓아 올린 업적들 경험이 사내를 증명했다.
수많은 게이트의 시대를 지나, 던전을 공략하며 그가 쓰러트린 몬스터의 수가 일만을 넘는다고 알려진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었다.
또한, 그가 쓰러트린 몬스터들은 잡졸들로 치부되는 저등급 몬스터가 아닌 최상위 등급의 몬스터들.
그중에서는 재앙이라 불리던 몬스터들 또한 포함되어 있음이 그의 강함을 증명하고 있었다.
원한다면 어느 나라에든 길드를 세우고 엄청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그의 정체.
하지만 황철용은 이성을 떠나지 않았다.
“크크크큭.”
길드장 주형태가 자신에게 했던 말 때문이었다.
‘더 큰 힘을 원하나?’
남자로 태어나 힘을 제외하곤 욕심을 가져본 적이 없던 그.
‘힘을 주지.’
그런 그에게 주형태는 거래를 제안했고, 받아들였다.
이것이 그 결과였다.
불끈.
더욱더 부풀어 오르는 모든 근육들.
점점 커지는 몸집.
‘혼돈의 세대.’
마치 신이 된 것만 같은 느낌.
이것이 주형태가 약속한 힘이었다.
자신뿐만이 아니다.
“알아들었나?”
황철용의 목소리에.
“크르르르.”
짐승이 우는 것과 같은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황철용의 직속으로 주어진 헌터들.
그들 또한 황철용과 같은 괴물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만 이성을 잃지 않은 황철용과 달리.
“자. 짐승들아.”
다른 헌터들은 풀린 눈으로 침을 흘려대고 있었다.
“밥 시간이다.”
황철용이 해안에 정박하는 황금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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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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