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권 9화
209
철커덕.
경쾌하다면 경쾌하고, 섬뜩하다면 섬뜩한 소음이 공간 가득 울려 퍼졌다.
“정보는 확인했습니까?”
이정기가 여유롭게 움직이며 말했다.
주안나가 주병훈에게 정보를 듣고 전달해주었다.
주안나는.
‘거짓말할 사람은 아니야.’
주병훈에 대해 어느 정도 믿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럴 리가.’
이정기는 전혀 아니었다.
주안나는 이번 원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아무리 못났다고 한들 아버지를 상대해야 할 일에 주안나를 데리고 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또한, 아직 아마조네의 정리가 완벽하지 않은 지금 주안나는 배제했다.
이정기가 질문한 대상은 강민혁이었다.
“구십 퍼센트 이상 확실합니다.”
단단한 대답이 강민혁에게서 들려왔다.
‘함정.’
주병훈이 함정으로 꿰어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강민혁은 나름대로 확인을 한 듯했다.
“주병훈에게 있어 큰 거래입니다. 거짓으로 거래할 만큼 멍청한 인물은 아닙니다.”
이정기가 움직임을 멈추고 강민혁을 바라봤다.
마치 그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강민혁도 그런 이정기의 표정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 쪽에서도 언급이 있었습니다.”
이진석이었다.
이진석이 말하는 이성은 이성 그룹이나 길드가 아니다.
‘할머니.’
할머니 쪽에서도 정보를 확인하여 알려준 것이었다.
그렇다면 강민혁의 말대로 정보가 확실할 가능성은 더더욱 커진다.
“그렇다면 강민혁 공대장의 말이 맞겠네요. 그리고….”
이정기 또한 주병훈이 거짓 정보를 줬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확인했습니까?”
그렇기에 강민혁에게 꼭 확인하라는 것이 있었다.
주병훈의 밑에서 오랫동안 있었던 주병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자, 당연히 의심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네. 확인했습니다.”
장비를 착용하던 강민혁이 멈춰서 얘기했다.
“정보의 출처는… 주인배 부회장인 듯합니다.”
“역시.”
주병훈의 능력은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주형태가 작정하고 준비하는 마지막 계획을 알아낼 만한 능력까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정도라면 겨우 이성의 호텔 하나가 아니라 더 큰 것을 쥐고 있었을 것이다.
‘주인배.’
주병훈의 아버지, 그가 주병훈에게 흘린 것이다.
“주인배 부회장으로서는 아무것도 잃을 게 없는 일입니다. 둘 중 누가 승리해도 상관없죠.”
“누가 승리하건 양측 다 타격이 있을 테니까요.”
“맞습니다. 거기다 운이 좋게 둘 다 공멸한다면….”
주인배에게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였다.
“일단 그곳에 주병훈이 있다는 건 확실하다는 말이네요. 다만… 함정일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고요.”
주병훈이 준 정보는 확실할 거다.
다만.
‘숨기고 있는 것.’
말하지 않은 것.
그것이 함정일 것이다.
예를 들어.
“전력이 얼마나 그곳에 있는지.”
사라진 이성의 헌터들과, 자신들이 파악하지 못한 외국의 헌터들 혹은 국내의 헌터들.
“지형과 함정들.”
주병훈이 몸을 숨기고 전쟁을 준비하는 곳인 만큼 그곳에 발각되었을 때의 준비 또한 철저했을 것이다.
마지막.
“가장 중요한 것이죠.”
이진석이 말했다.
“어떻게 길드장님을 상대할 것인가.”
이미 이정기의 전력은 여러 번 노출되었다.
인간을 벗어나 초인의 경지에 다다른 헌터라는 존재.
이정기는 그런 헌터의 영역마저 벗어나 있음을 최상위 헌터들은 모르지 않았다.
시엘?
지금의 이정기는 시엘마저도 능가한다.
단언컨대 단일 전력으로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실력자이자 헌터의 삶을 산 이들은 모를 수 없는 변수.
‘단 한 명이 전장을 뒤바꾼다.’
강력한 헌터 하나가 가지는 가치였다.
이정기를 상대할 수 없다면 전쟁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
수적 우위? 강력한 헌터들의 공세? 함정? 지형?
그 무엇도 크게 의미 없다.
“예상하는 것은….”
“숨겨두었던 아들이라는 존재겠네요.”
“그렇습니다.”
대강의 파악은 끝났다.
이제.
철커덕.
움직일 시간이었다.
“그렇게 준비했다면 전면 대결이 차라리 저희한테 유리할 수 있을 겁니다.”
이정기가 모여 있는 헌터들을 보며 말했다.
“피해는 클지언정, 적의 변수를 제거하고 확실한 승리를 거머쥐는 방법이겠죠.”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습니다.”
사실 아직도 잘 공감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삶과 죽음, 아니 그들이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존재라는 것조차 아직은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렇기 때문이었다.
‘이해해보고 싶다.’
변화가 일어난 지금, 그 변화를 한ᄁᅠᆺ 만끽하고 싶었다.
그 과정에 생기는 위험이 있을지라도 자신은 그것마저 즐겨보고 싶었다.
“죽는 이는 최소한으로 할 겁니다.”
“…….”
“우리는.”
소수.
이정기와 함께 훈련을 했던 인원들만이 모여 있었다.
“승리할 겁니다.”
철커덕.
이정기가 마지막으로 투구를 쓰며 말했다.
-임시품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신기를 대신하여 전에 마동철에게 주었던 네메아 사자의 가죽과 히드라의 가죽을 엮어 만든 새로운 갑주.
“빨리 끝냅시다.”
이정기가 옆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세요.”
그곳에 대기하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헤르메스.
도움을 요청하고 도착한 그가 천천히 지팡이를 내뻗으며 말했다.
“오픈.”
포탈이 열렸다.
“여기는….”
헤르메스가 포탈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얼굴을 굳혔다.
* * *
주병훈이 숨어 있는 곳은 특별한 던전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게이트.’
주병훈은 마치 헤파이스토스의 은거지를 찾아내었던 것과 같이 특별한 게이트에 숨어 있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이트는 멸종되다시피 했으며, 이제 세상에 남은 것은 오직 던전 뿐이었다.
게이트를 다룰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닌 자들뿐.
그렇다면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했다.
‘역시.’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주병훈의 변화, 그리고 그가 싸울 수 있는 이유.
그 모든 것은.
“이곳저곳 안 끼는 곳이 없네.”
티탄.
녀석들이 연관되어 있다.
“여기는….”
헤르메스의 반응은 그런 것이었다.
또다시 티탄의 기운을 느낀 것.
그렇기에 얼굴을 저리 굳히고 당황하며 화를 내는 것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
‘티탄의 목표는 우습게도 세계 정복.’
세계를 정화시켜 저들의 고향 땅과 같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 방법의 일환으로 티탄들은 세계의 권력자나 강한 헌터들의 몸을 빼앗지 않았던가.
그런 이들인 만큼 당연히 이성을 건드는 것은.
“예상은 했던 일 아닙니까.”
이정기는 포탈을 바라보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티탄이 깊숙이 연관되어 있기에 언제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닙니다.”
하지만 뒤이어 들려온 대답은 이정기의 예상과 다른 것이었다.
두근, 두근.
헤르메스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진다.
티탄의 기운을 감지한 헤르메스의 별 다를 것 없는 반응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르다.’
헤르메스의 반응이 전과 달랐다.
불안함, 분노, 그리고.
“왜 내 눈치를 살피는 겁니까?”
이정기의 반응을 계속해서 살폈다.
“…….”
“솔직히 말해주세요.”
시간을 끌 수 없다.
포탈은 열렸고, 저들은 눈치챘을 것이다.
“알아야 하는게 있다면 당장 알아야 합니다.”
혹여 위험하다면, 자신만이 아닌 다른 이들까지 위험하다면 알아야 한다.
“빨리!”
이정기는 헤르메스를 향해 소리를 높였다.
“티탄….”
“말 줄이지 말고 빨리!”
지금도 포탈은 일렁이고 있다.
이정기를 보며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팀.
“티탄의 영역임은 맞습니다.”
헤르메스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곳에 티탄들만 있던 것은 아닙니다.”
“티탄만 있던 게 아니다?”
“그게….”
그제야 이정기는 헤르메스가 왜 이토록 고민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변절자가 이곳에 봉인되어 있었습니다.”
변절자.
이정기는 단숨에 그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전에 얻었던 조각 때문에 헤르메스를 만나 물었던 것.
‘아레스가 누굽니까.’
아레스의 조각을 찾았고 그 행방을 추적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했던 말이었다.
그때 헤르메스는 어렵사리 이정기에게 답을 주었다.
‘아레스, 그는….’
아레스.
‘올림포스의 변절자입니다.’
전쟁에 미쳐, 전쟁만을 좇던 자.
그 과격함이 도가 지나쳐 어쩔 수 없이 봉인했어야만 했던 자.
“아레스의 봉인지입니다.”
“……….”
이정기는 포탈을 다시 쳐다보았다.
무언가 감이 잡힐 것만 같은 느낌.
“일단 출발하겠습니다.”
시간을 더 끌 수는 없었다.
저들이 자신들을 눈치채고 준비를 시작하기 전 포탈에 들어가 기척을 숨겨야 한다.
“알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준비하겠습니다.”
헤르메스의 말을 뒤로 한 채.
저벅.
이정기가 발을 내디뎠다.
그 뒤를 따라 움직이는 이들.
‘이곳에 무엇이 있건.’
또 무슨 일이 있건.
“우리가….”
일렁.
일렁이는 포탈에 몸을 반쯤 집어넣은 이정기가 말했다.
“이길 겁니다.”
* * *
쒜에에에에엑-!
귀가를 찢어발길 듯한 바람이 온몸을 덮쳤다.
지금 이정기와 파티원들은.
“꺄아아아악-!”
높디높은 상공에서 추락하고 있었다.
‘함정?’
혹은 헤르메스가 무언가를 했을까?
헤르메스의 충성은 믿을 만했다.
또 함정의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변화가 생긴 거야.’
이정기는 추락하며 주변을 바라봤다.
소리치는 최인해를 제외하고 어느 정도 상황을 인지한 얼굴들.
파앗!
이정기가 발바닥으로 마력을 한껏 뿜어냈다.
다른 이들에겐 불가능할 테지만, 자신은 비행.
“……!”
볼텍스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땅이 자신의 몸을 잡아끌 듯 볼텍스의 비행을 방해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급히 밑을 바라보는 이정기.
보이는 것은 널따란 푸른 바다.
‘이대로면….’
추락을 면치 못한다.
자신이야 충격을 이겨낼 수 있어도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었으며.
꿀렁.
저 바다는 그저 자신들을 받아주는 게 아닌 먹어치울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쒜에에에엑!
바다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무런 말 없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파티원들.
“충격에 대비하세요.”
이정기가 그들을 향해 말했다.
“뭘 하시려는 겁니까!”
심상치 않은 느낌에 이진석이 묻자.
“바다를….”
이정기가 양 주먹을 내뻗으며 말했다.
전이라면 조금은 힘겨웠겠지만.
구우웅.
지금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가를 겁니다.”
바다를 가르고 대기를 가른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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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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