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권 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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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 그룹을 경영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
하지만 실질적인 주인의 자리는 절대로 노리지 않겠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작은아버지가 있는 곳을 알려주겠다.”
주병훈의 목젖이 떨리며 움직였다.
지금 그는 모든 것을 건 도박을 하고 있음을 스스로도 깨닫고 있는 것이었다.
누구의 편에 서느냐.
그 선택이야말로 앞으로 남은 생이, 지금껏 누려온 혜택이 다 걸려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한다면 전면전을 피할 수 있다.”
주병훈은 거래에 힘을 싣듯 말했다.
“지금 작은아버지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진 않겠지. 이성의 헌터들을 모으고 있다. 그래도 성혈이고, 오랫동안 이성의 길드장이셨던 분이다.”
이야기를 진행하면 할수록.
“작은아버지를 따르는 헌터들은 수없이 많아. 한국의 헌터들 또한 너보다는 작은아버지의 편을 들어줄 거다. 공략대원들에 대한 간략한 정보는 있겠지? 지금껏 왜 그들이 이성에 붙어있지 않았는 줄 아나?”
주병훈에겐 여유가 생기고 있었다.
“헌터들을 모으기 위해서, 헌터들에게 빚을 지우기 위해서. 공략대원들의 이름으로 모여드는 헌터의 수가 천에 가깝다.”
그 또한 사실이었다.
“그 모두를 상대로 전면전을 펼친다 해도….”
이제 퍼져나가는 완연한 미소.
“네가 승리할 가능성을 높게 점칠 수 있겠지.”
이것이 주병훈이 이정기를 찾아온 이유였다.
‘괴물.’
이정기는 알면 알수록 괴물 같은 인간이었다.
가히 인간의 탈을 쓴 괴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해도 살아 돌아오고 그 누구도 이정기를 견제하는 것조차 실패했다.
시엘들?
‘머저리들.’
그들이 이정기와 부딪혀 패배했음을 안다.
거기다 이정기가 혼자냐, 그것도 아니었다.
백두, 다른 성혈들, 거기다 죽은 줄 알았던 주안나가 돌아온 것을 보면 주안나와 이성의 제1 공격대의 안인회도 이정기의 편에 설 것이었다.
그것뿐이라면 다행이건만.
‘할머니.’
할머니가 녀석의 손을 들어주었다.
주형태가 아무리 오랜 세월 입지를 다지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를 보았다 한들.
‘할머니의 한마디에 흔들린다.’
한국에서의 입지는 할머니의 한 마디에 좌우된다.
거기다.
‘진짜 괴물.’
이정기의 뒤에는 가히 상상조차 하기 싫은 무시무시한 괴물이 있지 않은가.
과거에도, 지금에도 그 이름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존재.
‘이건.’
그렇기에 주병훈은 거의 무조건 이정기의 승리를 점쳤다.
승자가 확실한 싸움, 그렇다면 당연히 고개를 조아리고 이정기의 아량을 빌어야겠지만 주병훈이 선택한 것은 거래였다.
왜?
“승리에도 종류가 있다.”
주병훈은 완전히 여유를 되찾았다.
“완벽한 승리, 상처뿐인 승리.”
“…….”
“전면전을 펼친다면 분명 너의 승리일 거다. 네가 전쟁을 시작하면 부족한 머릿수는 이탈리아의 헌터들까지도 국내에 들어와 전쟁에 참여한다는 조사가 있었으니까.”
부족함이 없는 싸움.
그러나.
“그 전쟁에서 죽어 나갈 헌터들의 수를 생각해보았나?”
그것이 상처뿐인 승리로 향하는 길이라면?
“네가 갖고 싶은 이성은 헌터들이 죽어 나자빠지고, 네가 죽인 헌터들의 위에 서는 승리냐?”
많이들 착각하는 것이 있었다.
이성이 제국이라고 왕국이라고.
맞는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왕국도 아니었다.
전쟁을 통해 굴복시키고, 정복해야 하는 국가가 아니었다.
전쟁을 통한 승리, 그리고 헌터들을 무릎 꿇려봐야.
“할머니가 이루어낸 이성은 산산조각이 날 거다.”
이성이란 이름은 그저 하나의 이름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릴 것이다.
헌터들의 충성과 믿음이 어디에서 오는지, 왜 이성이 최고의 길드 중 하나인지 그것을 모른다면 그 또한 자격이 없는 것이었다.
그랬다면.
‘할머니가 이정기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겠지.’
그러니 주병훈은 확신했다.
전쟁의 승리는 이정기의 것이라고, 그러니 그 전에 있을 소소한 전투에서는 자신이 승리를 취할 것이라고.
또한 그 대가는 어쩌면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이라고.
주병훈은 다시 말했다.
“작은아버지의 위치를 알려주겠다. 전면전은 필요 없어. 위치를 알게 되면 네 그 잘난 힘으로 무릎 꿇리든, 죽이든, 아니면 이건을 부르던 네 맘대로 해라. 그러면 너는….”
씨익.
“완전한 이성을 손에 쥘 것이다.”
테이블에 적막이 감돌았다.
지금 이 자리에 선택권을 가진 사람은 오직 하나 이정기뿐이었다.
김윤태도 주안나도 조용히 이정기를 쳐다보았다.
지금 무슨 말을 해보아야 이정기의 선택을 방해하는 일.
그리고.
“싫어.”
대답이 나왔다.
* * *
주병훈의 얼굴은 아직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싫다고?”
할머니가 선택한 이정기가 그럴 리 없다.
“지금은 객기를 부릴 때가 아니야. 만일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누가 승리하건 제대로 된 이성을 가질 수 없어.”
이정기에게 선택지가 하나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널 학살자라 손가락질할 거다. 그런 자를 이성의 주인으로 모시라고? 아무리 할머니의 말이라도 이사회와 주주들은 너를 인정하지 않을 거다. 헌터들 또한 마찬가지지.”
모르지 않을 거다.
“협회가 네 편이라고? 아니. 네가 전쟁에서 승리하는 순간 너는 협회의 적이 된다. 수없이 많은 자국의 헌터를 죽게 만든 장본인을 협회가 감쌀 수 있을 것 같나?”
바보가 아니라면.
“정치권은 널 물어뜯기 위해 안간힘을 쓰겠지. 차기 유력 대통령 후보인 윤문산 대표가 네 편이라고?”
바보가 아니라면.
“가장 먼저 널 버릴 거다. 널 품었다간 대통령 후보는 고사하고 정치 생명이 끝날 테니까. 그에 반해 널 배제하고 몰아붙이는 쪽은 수많은 표를 얻게 될 거다.”
바보가 아니라면 알 거다.
그저 세상을 부수는 게 목표가 아니라면 세상과 타협해야 한다.
녀석이 태어나고 자란 올림포스는 그런 세상이 아닐지라도 지구는 그런 곳이다.
힘?
홀로 서 살아갈 것이라면 그거 하나면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왕에게 힘 하나로는 무엇도 되지 않는다.
“그래. 한국을 버리고 이탈리아로 가면 되겠지. 거긴 널 따르는 헌터들이 있다 했으니까. 그렇다면….”
씨익.
“이성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이정기에게 방법은 없다.
‘받아들여라.’
네게 주어진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하지만.
“싫다고 했을 텐데.”
“……무슨.”
이정기의 대답은 확고했다.
“너 대체 얼마나 바보 같은 거냐! 이런 너에게 할머니가 자격을 주었다고?”
이제야 여유를 지우고 소리치는 주병훈.
“주안나는 제 꿈을 버리고 공정한 대결을 했다.”
“무슨 소리를….”
“김윤태는 제 과오를 뉘우치고 평생을 내게 바치기로 했다.”
“그니깐…!”
“너…, 아니 형이라는 당신은?”
이정기의 눈이 차갑게 주병훈을 바라봤다.
“겨우 작은아버지의 위치 하나를 알려주는 대가로 이성 그룹의 경영권을 달라는 건가?”
“겨우? 겨우가 아닐 텐데!”
“내가 잘못 알았군.”
이정기가 말했다.
“당신이 이성을 중요시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당신만큼은 이성의 가치를 알아본다고 생각했지.”
“그래! 나뿐이다. 오직 나만이….”
“아니.”
이정기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그런 작자가 이성의 수많은 목숨을 가지고 날 협박하지 않겠지.”
“협박이 아니라 거래….”
“협박이다.”
이정기의 말에 주병훈은 입을 다물었다.
이정기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아까와 달랐다.
“그래도 조금은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어. 거래는 없다. 이성의 헌터들의 목숨으로 협박하는 자에게….”
쿵.
자리에서 일어서는 소리에 주병훈이 화들짝 놀랐다.
“어떤 자리도 약속해줄 생각은 없어.”
드르륵.
뒤이어 주안나와 김윤태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이 일생일대의 기회였을 텐데.”
김윤태.
“오빠답지 않게 많이 다급했네? 하지만….”
주안나의 눈이 주병훈을 싸늘하게 쳐다봤다.
“정기 말이 맞아. 오빠한테는 일도 자격이 없어. 그따위 쓰레기 같은 말을 지껄이다니.”
“주안나…!”
“그룹에 너무 오래 있었구나? 헌터들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거든.”
“…….”
이미 이정기와 김윤태는 더 이상 이야기할 것이 없다는 듯 식당에서 나갔다.
부르르.
언제 자신이 이런 꼴을 당했던가.
언제나 자신이 주도하고, 자신에게 조심스러웠던 녀석들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싸늘하게 쳐다보고 먼저 자리를 떠나야 하는 것은 이정기가 아닌.
탁!
자신이었다.
‘이렇게 된 거….’
그래 몰아붙여 주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잘 생각해봐.”
아직 떠나지 않은 주안나가 주병훈을 향해 말했다.
“아직 기회는 있을 수 있어.”
“……?”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떠나려던 주병훈을 향한 목소리였다.
“어찌 됐건 정기는 우리를 제거하려 들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능력만 있다면 오빠가 원하는 자리를 가질 수도 있겠지.”
“…….”
“거래를 하고 싶다면, 잘 생각해봐. 그래도 한때나마 잘 따랐던 사촌 오빠에 대한 마지막 배려니까.”
또각. 또각.
구두 소리와 함께 주안나가 사라지고.
“…….”
한참을 생각하던 주병훈은 핸드폰을 들었다.
띠리리링.
들려오는 벨소리.
“네 아버지는….”
기회는 짧을 것이고, 대가는 작을 것이다.
하지만 선택만큼은 빨랐다.
* * *
“많이 다급했던 모양이야. 호텔 지분도 큰아버지가 전부 채가기 시작했다고 들었거든.”
주안나의 목소리였다.
“그래도 나름 영특했었는데 다급함이 목을 옥죈 거겠지.”
주병훈에 대해서는 그래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에 주안나는 말했다.
오늘 있었던 주병훈의 일은 정말 실망스럽기 그지없었지만, 그것이….
“걱정이었던 건 분명해.”
진심이었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가 이성 그룹을 그렇게나 가지고 싶어 하는 까닭도 이성에 만든 제 사람들이 주인이 바뀌면 모두 제거될 것을 알기에.
“지키려는 것뿐일 거야.”
그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피식.
웃기는 소리.
‘강민혁.’
주병훈이 이미 헌신짝처럼 내다 버린 강민혁이 이정기에게 있는데 그런 소리를 믿을 리가 없었다.
그에 대한 처우를 결정하는 것은 나중 일이다.
지금은.
“그래서?”
이정기의 말에 주안나가 핸드폰을 흔들며 말했다.
“전부 불었어.”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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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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