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권 7화
207
“끝….”
이정기의 입이 열리며 작은 숨을 토해냈다.
“끝났습니다. 훈련은 여기까지입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털썩, 털썩!
그대로 주저앉는 헌터들.
이정기가 말했듯 헌터들을 가디언으로 만들고자 하는 훈련이 끝이 났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하아…. 하아….”
이진석.
그는 결국 전에 받았던 넥타 덕분인지 가디언의 힘을 깨우치는 데 성공했다.
가디언이 되었다는 것은 권능을 일깨웠다는 것이었으며, 인간의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것.
겨우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시간일 뿐이었지만 이진석에게서는 큰 변화가 느껴지고 있었다.
고오오.
모두가 지쳐 쓰러졌건만 아직 서 있는 그.
그의 육체는 마치 바위처럼 단단해졌으며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마력의 한계치도 수배나 증가했다.
무엇보다.
스으으.
자연스레 퍼져나가는 넥타의 힘.
지금의 이진석은 단언컨대 제로 라인.
아니.
‘텐.’
제로 라인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텐의 실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었다.
아직 완성은 아니지만 그만한 효과를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또 한 명.
“으아아아악!”
쓰러졌지만 겨우 앉아 고함을 내지르는 이가 있었다.
“죽겠어!”
최인해.
“그래도….”
씨익.
그녀가 웃어 보이며 말했다.
“나도 성공이네.”
놀랍게도 이진석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권능을 일깨운 것은 최인해였다.
이정기가 훈련을 시작하며 심어준 넥타의 씨앗을 완전히 발아시켜 새롭게 태어난 그녀.
이진석에 비교해 부족한 부분은 많았지만, 그녀는 결국 권능을 일깨워내었다.
‘둘.’
훈련의 성과를 본 것은 둘 뿐이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나머지 헌터들도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모두가 한 단계, 아니 몇 단계 이상을 성장했다.
비록 권능을 일깨우는 데까지 도착하진 못했다고 하나 그에 못지않은 실력 성장을 이루었다.
저들은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 목표했던 바를 이룰 수 있을 터였다.
“고생했습니다.”
이정기의 말에 정말 끝이 났음을 실감하는 이들.
동시에.
꽈악.
분한 듯 주먹을 쥐는 안태민까지.
하지만 두 명만으로도 이정기는 충분히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어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레기온.’
자신에게 깃든 권능이 정말로 가디언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
넥타를 보유한 헌터가 아닌 헌터, 아니 인간을 뛰어넘는 존재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것.
물론 그에 따른 대가도 필요했다.
‘내가 만들 수 있는 가디언의 수는 한정되어 있어.’
가디언을 만들자 느껴지는 과부하가 가슴 깊숙이 있었다.
저들의 존재로 자신의 힘도 상승하겠지만 그 한계가 명확히 규정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열하나.’
그것이 쥬피터 할아버지와 함께한 가디언의 수라고 했다.
자신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그런 고민을 할 때였다.
우지끈!
건물 한 축에 커다란 진동이 울려퍼졌다.
핵전쟁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으리라, 최상위 몬스터의 난동을 상정하고 만든 훈련장이….
“일단 나가죠.”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 * *
전쟁을 준비하는 한 달에 가까운 시간.
과연 세계는 대한민국에 모든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이성.’
이성이라는 왕국, 아니 제국의 새로운 주인을 결정지을 전쟁이 시작되고 있음을 전 세계인들이 모를 리 없었다.
게이트가 사라지고 던전의 시대가 도래한 지금 헌터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은 과거에 비해 퇴색되었다 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도 헌터는 일반인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였다.
더욱이 이성이라면.
그리고 이성의 후계자 중 하나가.
-이건의 손자.
이건의 손자이자 최명희의 손자, 이강과 유영아의 아들이라면.
-과연 이성을 차지할 것인가.
한 달이 아닌 일 년이라도 세계를 진동시키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정기는 무얼 하고 있을까.
달그락.
최인해가 추천해준 식당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고기를 썰고 있었다.
두툼한 고기가 야무지게 익어 접시에 담겨져 있었고, 옆에는 메인 디쉬 못지않은 음식들이 가득 테이블을 메우고 있었다.
‘맛있어.’
이거였다.
이정기가 처음 지구에 와서 관심을 보였고 처음으로 행복을 느꼈던 것.
달그락.
음식.
아무리 갖가지 방법을 사용해 최대한 조리한 올림포스의 몬스터 고기라 할지라도 결코 이런 맛은 나오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파는 즉석 도시락부터, 이렇게 식당의 조리된 요리까지.
이정기에게 이것만큼은 확실한 행복이자 기쁨이라 할 수 있었다.
달그락.
이정기는 마치 자신의 입이 진공청소기라도 되는 것처럼 테이블의 음식들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수북이 쌓여 있던 음식들은 빠르게 사라져갔고, 이정기의 손놀림은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다.
‘좋다.’
맛있는 음식은 언제나 좋다.
“할아버지도 같이 계셨다면 좋았을 텐데.”
이번 일이 끝나면.
‘만날 수 있을 거야.’
오랜만에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서둘러 끝을 내야 한다.
탁.
식사를 마친 이정기가 식기를 내려놓았다.
혼자 열 명은 먹을 수 있을 양을 해치운 이정기였지만 더부룩함 따위는 크게 보이지 않았다.
원한다면 그 이상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손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이쪽으로 안내해드리면 될까요?”
오늘은 식사가 주 내용이 아니었다.
끄덕.
이정기가 고개를 끄덕이고 테이블 가득했던 접시를 종업원들이 순식간에 치웠다.
“…….”
적막이 커다란 식당 전체를 감싸 안았다.
오늘 이정기가 식당 전체를 빌렸기 때문이었다.
따박, 따박.
작게 들려오는 발소리.
저벅, 저벅.
그것보다는 크게 들려오는 발소리.
쿵.
거친 발소리까지.
마침내.
“손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지배인의 안내와 함께 꽤나 익숙한 얼굴 하나와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얼굴 하나, 그리고 남과 다를 바 없는 얼굴 하나가 동시에 들어왔다.
“앉아.”
이정기가 그들을 보며 말했다.
김윤태, 주안나, 그리고 주병훈이었다.
* * *
한국 최고의 레스토랑 중 하나이자, 세계가 인정하는 가이드 선정 별 다섯 개의 레스토랑 띠르베.
최인해가 추천해준 이곳은 사실 최명희가 단골인 레스토랑이자 이성 호텔 안에 있는 식당이었다.
그곳에 주안나, 주병훈, 김윤태.
이성의 3세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원탁 형태의 테이블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것은 이정기.
“…….”
그가 조용히 모두를 쳐다보았다.
주안나는 아마조네에 모습을 감추고 있었지만, 며칠 전 조용히 아마조네를 빠져나와 있었고 다이오에서 사츠키와 함께 공략을 하던 김윤태도 엊그제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또 한 명.
“…….”
주병훈은 불편함을 감추지 못한 채 이정기를 보고 있었다.
이 자리를 만든 것은 다른 이도 아닌 주병훈이었다.
-이야기를 좀 하지.
이정기가 이진석 등을 이끌고 훈련하는 사이 몰래 왔던 연락.
그 연락에 이정기가 응하며 다른 성혈 3세들도 모두 불러들인 것이었다.
“…….”
처음 지구에 와 이성 저택에 있었던 식사를 제외하고 이렇게 모인 것은 처음.
숨 막힐 듯한 어색함에 침묵이 감돌았지만, 침묵의 이유는 어색함만이 아니었다.
“이제 편이 완전히 갈렸군.”
주병훈의 말마따나 편이 갈렸다.
3세 중 주병훈을 제외한 둘이 이정기에게 붙었다.
과거 주병훈이 3세의 모임을 이끌어갔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상황은 주병훈에게 너무나 초라한 것이었다.
“갈릴 수밖에 없지. 형이 날 죽이려고 했잖아?”
김윤태의 날 선 목소리.
김윤태를 이용해 이정기를 처리하고, 김윤태마저 제거하려던 것이 주병훈이었다.
“크흠.”
“내가 오빠 편이었던 적은 없었을 텐데?”
주안나 또한 마찬가지로 날이 선 목소리였다.
주병훈은 이정기를 바라봤다.
지구에 와 이성 저택의 응접실에서 보았던 이정기와 지금의 이정기는 완전히 다르다.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이정기가 진짜 중의 진짜라는 것을.
막으려고 해야 막을 수 없는 괴물.
‘그때 만일….’
이정기를 품으려 했다면 무언가 바뀌었을까?
주병훈은 고개를 저었다.
‘운명.’
주병훈은 그 누구보다 더 운명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성혈로 태어난 것이 운명이며, 그 후계가 되지 못하는 것 또한 운명이라고.
이정기는 그러한 운명으로 태어난 것뿐이었다.
마치 할머니가 그랬듯.
‘그 남자.’
이건이 그랬듯.
황제로서 제왕으로서 태어난 운명인 것이다.
인정을 하니 속이 후련했다.
“내가 바라는 건….”
급작스레 입을 연 주병훈.
“이성 그룹이다.”
“형!”
“뭐?”
주병훈의 말에 소리치는 김윤태와 주안나.
“이성 길드는 바라지 않는다. 이성 그룹, 아니 이성 그룹의 주인이 아닌 경영자. 그게 내가 바라는 전부다.”
오랫동안 고민했다.
상황을 역전시킬 방법이 있을까, 적이 많은 이정기가 자신의 손이 아니더라도 처리되지 않을까.
하지만 말했지 않은가.
‘운명.’
주병훈은 운명이란 것을 믿는다.
“왜.”
이정기였다.
“왜 갑자기 포기를 하는 겁니까?”
레이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주형태와 이정기.
그리고 주인배, 주병훈과의 싸움이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헌데 왜 갑자기 주병훈이 기권을 표한 걸까.
“내가 바라는 것은 온전한 이성이었다.”
“…….”
“이성에서 태어났고, 이성에 의해 자라났다. 나의 삶은 이성이고 나의 가족 또한 이성이다.”
주병훈이 이성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음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김윤태와 이정기를 제거하려던 것 또한.
‘이성.’
이성에 누가 되는 존재를 제거하려는 것일 거라고, 강민혁은 그렇게 말했었다.
성혈 중에서 그래도 순수하게 이성을 바라보는 사람.
“하지만 작은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더군.”
“……?”
“작은아버지는 전면 대결을 준비하고 있다.”
“…….”
이정기는 놀라지 않았다.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던바.
“그로 인한 희생은 이성의 존재를 흔들거다.”
“억측이야.”
주안나였다.
“수많은 목숨이 희생되겠지만, 이성은 굳건할 거야. 이성에 들어올 헌터는 수도 없이 많고 이성은 그만한 저력이 있어.”
하지만 주병훈은 고개를 저었다.
주안나 또한 제왕학을 배웠지만 주병훈 만큼은 아니기에 생긴 차이점.
“그것은 더 이상 이성이 아니다. 그리고….”
주병훈이 말했다.
“승계 다툼 때문에 수많은 헌터를 희생시키는 이성에 누가 오고 싶어할까.”
“……그건.”
고개를 저을 수 없는 말이었다.
“말했듯 내가 바라는 건 이성 그룹의 경영권이다. 어차피 너는 경영에는 큰 관심이 없지 않느냐.”
주병훈이 말을 이었다.
“만일 그 자리를 약속해준다면….”
성혈 3세들을 이 자리에 모은 까닭.
“작은아버지가 있는 곳을 알려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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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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