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206화 (206/284)

제9권 6화

206

“쉬겠습니다.”

드디어 주어진 첫 휴식이었다.

분명 이정기는 누군가의 입에서 포기라는 단어가 나와야만 휴식을 취한다고 했으나 아직 포기한 자는 없었다.

“커헉!”

“우웨에에엑!”

그럼에도 이정기가 훈련을 멈춘 까닭은 더 이상 훈련을 진행할만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휴식이 주어지자마자 토악질을 해대며 토혈을 하는 자들.

풀썩.

그제야 긴장을 풀고 기절하고.

주륵.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 나온다.

“…….”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들은 수많은 전투 속에서 성장하며 육체의 한계를 경험했을 테지만, 죽음에 이를 정도의 한계까지 경험한 적은 극히 드물었을 것이다.

이들이 지금 하게 된 경험은 그런 것이었다.

‘죽음.’

이정기는 결코 아무도 봐주지 않았다.

찰박.

바닥에 흥건한 피가.

우지끈.

SS급 보스 몬스터가 난동을 피우는 것을 설계하고 만든 훈련장의 파편이 그 증거나 다름없었다.

이정기는 갖가지 무기로 모두를 압박했다.

검, 창, 활, 태도, 건틀렛 혹은 맨몸으로.

또한, 필요하다면 몬스터의 습성과 능력을 이용해 마치 몬스터처럼 그들을 몰아붙였다.

이것이 그 결과였다.

“커…, 커허헉.”

휴식이라기엔 너무나 처절하게 쓰러진 헌터들.

그럼에도.

‘포기.’

그들의 입에서 포기란 단어는 절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것이 이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임하고 있는지, 이들의 각오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촤아악.

샤워하다시피 뿌려대는 포션들.

“……!”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그들이 아니었다.

“회복력이… 빨라졌어?”

아무리 최상급 포션이라지만 이렇게 빠른 속도로 회복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텐데, 회복력이 상상 그 이상이었다.

겨우 이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럴진대.

“사람은 생각보다 더 깊숙한 곳에 한계가 존재해요.”

할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며 이정기가 말했다.

“죽음에 이르는 고통과 경험만이 그 한계를 진정으로 끄집어내 줄 수 있죠.”

“그래도….”

“지금 여러분이 몇 번이나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이정기의 말에 아무도 쉬이 답할 수 없었다.

‘한 번? 두 번?’

결코, 한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음은 분명했다.

“한 명 당 최소 열두 번 이상.”

그것이 그들이 죽음에 이르는 경험을 한 횟수였다.

“여지껏 헌터가 되어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겪었습니까?”

“…….”

그 또한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자신 있게 수 번이나 죽음의 위협을 겪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들이지만 결코 오늘 정도는 아니었다.

진짜 죽음의 위협이란 이런 것이었다.

“거기다 이미 여러분은 저와 지내며 넥타에 대한 친화력이 높아졌어요.”

그들의 특별함.

“이런 변화는 지극히 당연한 겁니다.”

겨우 첫 단계다.

그들이 가디언이 되기 위한 첫 단계.

벌써부터 놀라선 안 된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났을 때 이정기가 원하는 것은.

‘티탄.’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티탄과 동등하게 싸울 수 있는 전사였다.

아마조네의 허리띠가 쥬피터 할아버지의 벼락이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숨어져 있는 능력이 쥬피터 할아버지조차 쉬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해내게 해주리라.

잠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회복된 헌터들.

“다시 시작할까요?”

이정기의 질문에 그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음에도.

끄덕.

고개는 천천히 위아래로 끄덕여지고 있었다.

* * *

실전? 아니 죽음을 경험하는 훈련이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아직 그 누구의 입에서도 포기란 단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커헉….”

“허억…. 허억….”

“하….”

그들은 사람의 언어를 잊은 지 오래였고.

바들바들.

두 다리로 서 있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포션은 상처를 회복시킨다.

하지만 포션으로 회복되지 못하는 것이 있었는데.

‘정신력.’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 그들에게 주어진 휴식은 겨우 서너 시간을 채 넘기지 못했다.

그 사이 그들은 자지도, 먹지도 못하며 극한의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만일 헌터가 아니었다면 진즉 죽었을 터, 어지간한 헌터라도 이미 시체가 되어 실려 갔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들은 악으로 깡으로 버텨내고 있었다.

“저 또한….”

하나 아직 안 지친 한 명.

“똑같은 경험을 수없이 했습니다.”

이정기였다.

똑바로 선 채, 잠시 휴식을 주고 있는 그의 모습은 처음과 크게 바뀐 것이 없어 보였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동시에 박탈감도 들었다.

‘넌….’

극한에 치닫자 그들의 깊은 내면 속에 잠들어 있던 불만과 불평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타고 난 거잖아….”

최인해.

“넌! 타고 난 거잖아!”

이건이라는 할아버지, 이강과 유영아라는 영웅의 자식으로 태어난 이정기.

거기다 가디언의 왕이 또 다른 조부가 되어 이정기를 훈련시켰다고 했다.

그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 이정기.

그런 이정기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말했잖습니까. 저 또한 이런 경험을 수없이 했다고.”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야.”

이정기의 목소리가 전과 달리 단호했다.

“집이 부서지면 한 달을 자지 못하고 돌아다녀야 했던 적도 있어. 타이탄과 수많은 최상위 몬스터가 돌에 채일 듯 깔려 있는 올림포스에서.”

“…….”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아무것도 먹지도 자지 못한 채 두 달을 전투만 치러야 했던 적도 있었어.”

못 들은 이야기였다.

언제나.

‘타고 난 것,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 또한 지금의 힘을 얻기 위해 수많은 훈련과 죽음을 경험해야만 했어.”

이정기의 눈은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았다.

우웅.

작은 공명.

“너희는 더 큰 힘을 얻기 위해서였겠지만, 나는….”

지칠 대로 지친 헌터들의 머릿속.

이미 이정기와 수많은 경험을 함께하여 익숙해진 친화력.

군단으로서 이정기에게 속해있던 경험과 지금 수없이 부딪힌 그 경험 속에서.

-살기 위해 해내야만 했어.

머릿속에 선명한 그림들이 그려지고 있었다.

어린 꼬마 아이.

지구에서는 부모의 품에서 학교에 다니며 어리광을 부릴 법한 어린아이였다.

허나 그 아이의 손에는 검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할아버지…!’

아이는 부릅뜬 눈으로 할아버지를 부르면서, 손에 쥔 검을 떨고 있었다.

그 앞에는 얼마 전이라면 자신조차 상대하고 싶지 않았던 극악한 난이도의 몬스터들이 깔려 있었다.

-해낼 수 있다.

선포와 같은 말.

-내가 널 지켜줄 것이야. 하지만 내가 지키지 못할 때 어찌해야겠느냐.

‘스스로…, 스스로 해내야 해요.’

놀이와 같던 것이 훈련이라 느껴지고 처음 했던 경험.

죽음에 대한 공포, 고통에 대한 공포.

그것을 처음 느낀 날이었다.

-해내야 한다.

이정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말….”

최인해, 그녀의 눈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정말이었구나.”

그런 것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린 이정기였다.

그렇다고 이건을 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버텨야 했던 생존의 시간들.

포식자가 되어 올림포스를 제 집처럼 삼기 위해 견뎌내야만 했던 그 모든 훈련들.

이정기 또한.

“나도 겪었던 것들이야.”

그 어린아이가 견뎌냈던 것들이다.

“더 할 수 있겠어?”

이정기의 물음.

“……후욱, 후욱….”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정비한 헌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캉!

다시 시작된 전투.

이 끝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사실 이정기는 꽤나 지쳐있는 상황이었다.

그 또한 마찬가지, 체력이 아닌 정신력의 문제였다.

자신에게 특별해진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것,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이제는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보였던 그 표정들이 무엇이었는지,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만두고 싶었다.

이들에게 이런 고통을 주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저.

‘나 홀로 짊어지면 되지 않을까?’

굳이 이들이 힘을 얻을 필요가 있을까?

또 얻을 수 있을까?

할머니와의 전투에서 깨어난 감정들은 이따금씩 떠올라 이정기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래.’

포기하자.

이들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이렇게 급히 힘을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려던 찰나였다.

화르르륵!

불에 덴 듯한 열기가 어디선가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명 저 멀리, 자신의 사정권 밖에 있던 이진석이.

캉!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 검을 들이밀고 있었다.

타오르는 눈동자와 머리칼.

상위 헌터들이 사용하는 오러아머와 비슷한 능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정기는 그것과 다른 힘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온 몸을 불사르며.

꾸구구궁.

자신의 내면 깊숙이 꾹꾹 눌러두었던 넥타를 건드리는 이 힘.

“……!”

권능이었다.

하얗게 변한 눈, 이성과 이지를 잃은 채 본능으로만 움직이고 있는 이진석이 마침내 가디언이 된 순간이었다.

* * *

“길드장님을 뵙습니다.”

중세 기사들이나 할 법한 예를 차리는 헌터들.

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이 상황이 너무나 익숙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 있는 남자는 중세의 영주나 다름없는 자, 아니 왕이나 다름없는 자였다.

‘이성.’

이성이라는 왕국, 어쩌면 제국이라도 부를 수 있는 곳의 차기 후계자가 인사를 받는 이의 정체였으니까.

특히나 이들은 그 후계자에게 점찍혀 어릴 적부터 기사로 키워진 이들이었다.

이날을 위해, 왕의 군단에서 선봉에 서기 위해 계획되어 만들어진 자들.

“좋아.”

주형태가 흡족한 미소로 그들을 맞이했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자신이 이성의 진짜 주인이 되기 위한 마지막 시련.

“계획을 말해주지.”

그 계획의 실현이 눈 앞에 펼쳐진 것이었다.

천천히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는 주형태.

“……!”

별다른 일로는 놀라지 않는 주형태의 기사들, 공략대원들의 눈이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길드장님 이 계획은….”

주형태의 계획.

그 결과가 어떨지는 몰라도 그 과정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왕이 탄생하는 일이야. 희생은 당연히 따를 수밖에 없지.”

끔찍하고도 잔인한 계획이었다.

간단하고도 명쾌한 계획.

‘전면 대결.’

그 희생자가 될 이들은 백두와 이성이 분명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주 소 | 경기도 하남시 조정대로 35 하우스DL타워 F915-1(9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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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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