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202화 (202/284)

제9권 2화

202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군.”

마동철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지금껏 들었던 마동철의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장난스럽고 앳되었던 마동철의 목소리 대신 걸쭉하고 진득한 어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헤파이스토스!”

헤르메스가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마동철을 향해 소리쳤다.

“헤르메스인가? 아르테미스….”

일행을 훑는 시선.

그 시선은 최명희에서 한 번.

“쥬노….”

그리고 이정기에서 또 한 번.

“당신은….”

잠시 머무른 후 지나쳐갔다.

“헤파이스토스 이럴 시간이 없어! 네 공간이 무너지고 있다! 당장 손을 쓰지 않는다면 차원의 틈에 갇히게 될 거야!”

헤르메스가 다급히 헤파이스토스를 재촉했다.

“이미 알고 있다. 헤르메스. 그러지 않아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잠시 인상을 쓰는 그.

“육체의 주인이 계속해서 소리치고 있으니까.”

쿠쿵!

헤파이스토스가 마동철에게 깃들고, 그가 헤르메스와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이곳은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쿠쿠쿵!

이제는 마력으로 감지하는 것이 아닌 눈에 보이는 곳마저 무너져내리고 있는 상황.

시간은 기껏해야 채 오 분도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그러나 마동철의 몸에 깃든 헤파이스토스는 여유롭다는 듯 양손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켜더니.

“걱정하지 마라.”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꺾어가며 몸을 풀고 있었다.

“올림포스도, 타르타로스도, 이곳도 내가 건설했다. 만들었다면 책임져야 하는 것.”

우웅.

작은 공명음.

“수리가 불가능한 것은 우연의 산물로 탄생한 것밖에는 없다.”

뜻 모를 말과 함께 마동철의 손에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던 마동철의 손.

우웅.

그곳에 빛나는 망치가 생겨났다.

제작을 할 때 사용되는 망치가 아닌 공성병기처럼 보이는 워해머.

하지만.

“……!”

이정기는 그것을 본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신기.’

저것이 헤르메스가 말한 신기라고.

헌터들이 사용하는 가장 높은 등급의 아이템인 레전드 등급의 아이템을 상회하는 기운과 특별함,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아.”

무구 그 자체가 살아 숨쉬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특별한 느낌을 받은 것도 잠시.

“시간이 없으니….”

헤파이스토스가 팔을 크게 들었다.

“서두르지.”

뒤이어 망치가 땅에 내려치진 순간.

쿠쾅!

폭발음이 들려왔다.

“붕괴가….”

아주 작은 일련의 행위.

“멈췄어!”

그러나 그 결과만큼은 확실했다.

* * *

“좀 어떻습니까?”

이정기의 조심스러움이 느껴지는 질문에.

벅벅.

마동철은 제 머리를 긁으며 인상을 썼다.

“생각보다 짜증 나.”

헤파이스토스의 것이 아닌 마동철의 목소리였다.

“이 인간, 아니… 신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가디언?”

“편하실 대로 부르셔도 상관없어요.”

“말이 너무 많아!”

빼엑하고 마동철이 소리쳤다.

이정기와 마동철, 나머지 일행들은 타르타로스의 붕괴 속에서 무사히 빠져나와 지구로 복귀할 수 있었다.

헤파이스토스와 합일한 마동철의 덕택으로 붕괴는 멈추었고, 헤르메스는 권능을 사용하기까지 회복할 시간을 벌었다.

그 이후는 당연히 포탈을 열어 복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지구로 돌아온 그들.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헤르메스는 이건을 만나야 한다며 급히 떠났고.

‘아폴론을 만나야 할 것 같아.’

유시아는 깨어난 아르테미스의 영혼이 무엇을 말하는지 아폴론을 찾아가 봐야 한다고 떠났다.

‘일들을 해결해야겠다.’

최명희는 바쁘게 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었다.

시엘이 된 그녀였고, 티탄들에게 쥬노의 힘을 받은 그녀였다.

헌데 모모스는 죽고, 헤파이스토스의 넥타는 이정기에게 넘어갔다.

‘잘 결정해야겠구나.’

선택지는 두 가지.

티탄들을 속여 넘기거나, 혹은 세뇌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며 그들과 적대하는 것.

모든 것은 최명희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었다.

허나 이정기는 확신할 수 있었다.

‘티탄을 속이지는 않을 거야.’

할머니에게 그런 것은 치욕이다.

이번 한 번, 티탄들에게 세뇌당한 척 연기했지만 그것만으로 할머니가 할 수 있는 한도치의 일을 해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티탄들은 할머니가 세뇌당하지 않았을뿐더러.

‘나와 아폴론.’

그들의 제어 아래 있다고 생각한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었다.

그 이후의 일은.

“이래라. 저래라. 틀렸다. 잘했다. 내가 이 나이에, 이 경력에 이런 잔소리를 들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그렇게 심해요?”

“말도 마. 망치질 하나부터, 서는 법, 자는 법까지도 잔소리를 해댄다.”

풉.

정말 끔찍하다는 마동철의 표정에 이정기는 잠시 웃음 지었다.

“어떻게….”

고민 끝에 이정기가 말했다.

“분리해드릴까요?”

처음부터 약속했던 일이었다.

마동철이 원하지 않는다면 헤파이스토스를 분리하겠다고.

그의 영혼을, 혹은 그 힘마저도 분리시키겠다고.

원래는 먼저 이야기를 나누고 헤파이스토스의 영혼을 합일시키는 것이 순서였으나 다급한 상황 탓에 어쩔 수 없이 먼저 영혼을 합치시켰다.

이제는 선택해야 할 시간.

“됐다.”

마동철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싫다고 했냐. 그냥 잔소리가 심하다 했지. 그래도… 대단한 신, 아니 가디언이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어.”

마동철의 얼굴이 변했다.

짜증스럽다는 표정 대신 존경심이, 귀찮다는 얼굴 대신 호승심이 서려 있었다.

“사소한 망치질에도 이유가 있다. 누가 한 말인지 아느냐?”

“헤파이스토스?”

“예끼. 나다. 내가 한 말이야. 다 버티지는 못했지만 거뒀던 제자들에게 내가 했던 소리였지.”

마동철의 얼굴이 그리움으로 가득찼다.

“이 가디언은 그 뜻을 정확히 알고 있어. 오히려 나보다 더하다. 이렇게까지 잘 맞는 장인은 처음이야. 말이 많은게 함정이지만… 더 이상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내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만족감.

“그러니….”

스윽.

마동철의 얼굴이 또 한 번, 그의 기세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대의 무구를 제작해야겠지.”

헤파이스토스.

“먼저….”

그가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쪽 무릎을 꿇고,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다.

“그대가 우리의 왕이 되기에 충분한 자질을 가졌음을 인정한다. 예언이나, 그대가 가진 힘 때문이 아니다.”

“…….”

“마동철이라는 인간이 보았던 그대의 모습. 그리고….”

내리깔아졌던 그의 시선이 대장간 한쪽 구석을 향했다.

그곳에 있는 것은 모모스와의 전투 때 조각나버렸던 네메아와 히드라의 파편들.

“무구들이 그대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헤파이토스의 눈이 이정기를 향했다.

“나 불카누스, 가디언의 새로운 왕께 충성을 맹세한다.”

우우우웅.

공명음이 헤파이스토스와 이정기에게 동시에 울렸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넥타 레벨 7을 달성하셨습니다.]

메티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잠시 후 몸을 일으킨 헤파이스토스.

“왕의 무구는 다른 가디언의 것과 달리 더욱 특별합니다.”

어조를 바꾼 헤파이스토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먼저….”

* * *

헤파이스토스가 말하길 새로운 자신의 무구를 제작하는 과정은 까다롭기 그지없다고 했다.

‘신기라는 것이 원래 그렇습니다.’

신기란 무구와는 또 다른 것.

‘넥타를 이용해 만들어지는 물건입니다.’

지금껏 세상에 존재하던 그 어떤 아이템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레전드 등급처럼 단 하나만이 존재하지만.

‘그 소유자는 오직 한 명.’

신기의 제작에 쓰여진 넥타의 주인뿐이라고 했다.

오직 한 명의 주인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무구.

그 무구의 성능은 장인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주인에 따라 결정된다.

또한.

‘살아 숨쉰다.’

이정기가 헤파이스토스의 망치를 보았듯 어찌 보면 살아있는 하나의 존재.

당연하게도 그만한 노력과 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 이정기가 신기를 갖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신체를 사용할 수 있는 것.

이번 할머니와의 전투에서 이정기는 신체를 사용했으나, 그것은 자의가 아닌 폭주로 인한 일이었다.

신기를 만들기 위해선 신체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헤파이스토스의 만남을 생각하고 있을 때.

끼익.

문이 열렸다.

“들어오라고 하시는구나.”

무거운 얼굴의 박윤태가 목소리를 내었다.

할머니를 가장 오랫동안 보필해온 존재.

당연하게도.

스윽.

그가 들어오라고 하는 곳은 이성 저택의 서재.

할머니의 방이었다.

이정기가 헤파이스토스와 만남을 가지고, 백두의 일을 처리하는 동안 할머니 또한 제 일을 해결했다.

어떤 방식일지, 어떤 결론일지는 모른다.

이정기의 세계가 이곳이라 하지만, 아직 그 위의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의 만남으로 모든 것을 알게 될 것.

“고생했다.”

방으로 들어가는 이정기의 등으로 박윤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을 알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이정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슥, 스스슥.

방에 들어서자 귓가를 울리는 펜 소리.

안경을 낀 할머니가 그득한 서류들을 살피며 서명을 하고 있었다.

“앉거라.”

“예.”

할머니의 목소리에 이정기가 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에 들어오는 서재.

하지만 전과는 그 느낌이 달랐다.

“……..”

어색함.

그날 이후 할머니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모모스와의 전투 끝에 이어진 할머니의 마지막 시험.

이정기는 그때 스스로의 욕망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고,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할머니.’

할머니에게 느꼈던 서운함과 분노 등이 아직 잔재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그것.

‘나도….’

자신도 별다를 것 없는 인간이라는 것.

감정을 느끼고, 희노애락을 느끼는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에게도 부정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 날이었다.

“어찌 되었을 것 같으냐.”

서류에 서명을 하던 할머니가 물었다.

하지만.

“아니다.”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안경을 벗으셨다.

“이제 더 이상 시험은 없다. 내가 너를 시험하던 이유는, 네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능력을 갖추길 원함이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올림포스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 제한된 관계 속에서만 지내왔을 네게 생각하는 법과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작은 웃음.

“네게 더 이상 그런 훈련은 필요하지 않겠구나.”

그건….

“…….”

확실한 인정이었다.

알 수 없는 차오름에 이정기는 입술을 짓씹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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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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