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198화 (198/284)
  • 제8권 23화

    198

    ‘완패.’

    이정기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가지 단어였다.

    솔직히 왕의 힘을 각성한 이후 올림포스의 힘을 되찾고 성장한 자신이기에 더 이상의 패배는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있다면 오직 하나, 할아버지뿐이라고.

    그랬을진대.

    ‘할머니.’

    또다시 자신에게 벽을 보여준 것은 할머니였다.

    넥타를 새로이 얻은 지 몇 달도 되지 않았을 할머니는 어떤 면에서 자신보다 더 넥타를 잘 다루고 있었다.

    그에 반해 자신은 어떠한가.

    ‘내가 사용했던 힘마저 제대로 다룰 수 없었다.’

    장비의 파괴?

    변명일 뿐이다.

    할아버지에게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장비에 의존하지 말아라.’

    장비는 그저 도구일 뿐이지 장비에 의존해선 안 된다고.

    하지만 이정기는 사자갑주가 파괴되자 볼텍스와 벼락의 힘을 동시에 유지할 수 없었다.

    그건 더 할 말조차 없는 완패임이 분명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자신의 상태는 자신이 더 정확히 안다.

    두 개의 힘의 충돌로 완전히 파괴되어버린 내부.

    특히나.

    우우웅.

    넥타와 마력의 근원이 흔들려버렸다.

    떠오르는 것은 한 가지 단어뿐이었다.

    ‘죽음.’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지던 단어, 언제든 자신을 찾아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단어.

    그러나.

    ‘싫어.’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단어였다.

    올림포스의 삶은 언제나 죽음과 밀접해 있었기에 언제고 죽음을 각오한다 생각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죽고 싶지 않다.

    ‘왜?’

    누군가 물어오는 것 같았다.

    -네게 무슨 이유가 있어 살아야 하는 거지?

    이유…?

    -누가 너를 바라나? 이성의 성혈과 최명희에게 너는 훼방꾼이자 위험요소다.

    아니야.

    -이건의 고향인 지구의 인간들은 어떠했지? 너를 경계하며 죽이려 했다.

    아니야, 김대정 협회장은 티탄의 농간에 놀아난 것뿐이다.

    -과연 그럴까? 너도 알잖아.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

    -네가 위험요소라 판단한 것은 사실임을, 정훈 또한 네게 그리 말했잖나.

    이정기는 부정할 수 없었다.

    -이모라는 유시아? 너를 죽이려 했다. 백두? 그들이 너를 어떻게 보았지? 주안나? 결국, 힘에 굴복했던 것 아닌가?

    우우웅.

    머릿속이 울린다.

    -그 누가 과연 너를 필요로 하지?

    아니야. 아니야.

    이정기는 홀로 되뇌지만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있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만큼은 자신을 필요로 하리라, 그리고 그것만큼은 진심일 것이라고.

    -과연… 그럴까?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이건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오히려 짐은 아니고? 지금 네 할아버지가 어디 있지?

    티탄을 사냥하기 위해 전면에 나서지 못한 채 아직도 지난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네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할아버지는.

    -그래도 네가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나?

    오히려 행동에 제약없이 원하는 것을 하셨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그런 분이니까.

    지금은 그저 자신의 성장을 위해, 자신의 적응을 위해 그러한 일들을 하고 계신 것이라고 이정기는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쿵!

    세상이 반전되었다.

    그제야 이정기는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내면세계.

    스스로의 깊은 곳.

    그곳에.

    “정기야.”

    이건 할아버지가 서 계셨다.

    * * *

    최명희의 눈이 사납게 헤르메스를 향해 있었다.

    “만일 정기가 잘못되면 너희는 전부 내게 죽는다.”

    서늘한 경고에 헤르메스의 눈이 떨리고 있었다.

    마치.

    “뭘, 뭘 알고 있는 거예요?”

    최명희가 이렇게까지 이정기를 몰아붙인 것이 바로 헤르메스 그리고 그들이라 말할 수 있는 가디언들 때문이라는 것처럼.

    “어떻게….”

    헤르메스는 확실히 당황한 듯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를 줄 알았나?”

    최명희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이어졌다.

    “올림포스가 열리고 그곳에 가지 못했어도 모든 이목을 그곳에 집중했다. 모든 준비를 마쳤을 때 한국팀을 제외한 시엘들이 나왔고, 그들과 곧장 접촉했었지.”

    생각해보면 그랬다.

    티탄에게 몸을 빼앗긴 시엘들, 그들은 처음부터 조짐이 있었을 것이다.

    특히나 그들과 깊은 관계였던 최명희라면 더더욱 그들의 변화를 알아차리기 쉬웠을 것이다.

    “티탄에 대해 알아내었다. 안 그래도 티를 못내 환장하더군. 혼돈의 힘이 어쩌구 하는 예언들? 무엇이 되었건….”

    최명희는 확신했다.

    “아직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 그러다 찾아내었다.”

    헤르메스는 이제 흥분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레이첼.”

    “레이첼이라면….”

    영미권에서 흔한 이름, 하지만 유시아는 곧장 떠오르는 자가 있었다.

    올림포스 원정대에 속해 있던 영국팀의 한 헌터.

    그리고 영웅의 대접을 받으면서도 모습을 숨긴 채 사라졌던 비밀스러운 여자.

    “이렇게 말해야 알겠나?”

    하지만 최명희는 정확히 헤르메스만을 보며 말하고 있었다.

    “아트로포스.”

    “미래, 티탄들의 예언자.”

    “그래.”

    티탄들의 예언자.

    아폴론에 의해 잠들기 전, 최명희는 그녀와 접촉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많은 정보를 얻었지.”

    “티탄들의 예언자가 당신에게 예언을 건넸단 말입니까?”

    “그 년이 원래 그랬듯 알 수 없는 말만을 지껄이더군. 나에게는 말할 수 있다면서 말이야.”

    “…….”

    “그때 이미 알았다.”

    최명희, 그녀는 협회의 김대정과 정훈이 이정기를 데려왔을 때 크게 의심하지 않고 이정기를 받아들였다.

    평소의 최명희라면 결코 생각할 수 없는 일.

    그러나 만일.

    ‘이미 알고 있었다면?’

    최명희가 사실 이정기가 언젠가 자신을 찾아올 것이며 그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다면?

    그리고.

    “다 알고 계셨군요.”

    “아니. 이것에 대해서는 이번에 알게 되었지.”

    그 이후의 예언마저도 들었다면?

    “이상하게 생각했다. 티탄들이 왜 정기를 제거하려 들지 않는 것인지.”

    시엘 회의에서 최명희가 쉬이 돌아오지 않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티탄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이미 최명희는 알고 있었다.

    쉬이 그들을 건드려서 안 되며, 지금의 자신으로는 상대하기 힘든 존재라는 것도.

    그리고 녀석들이 이정기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이정기는 올림포스의 왕이 될 자였다.

    티탄들에게 있어 최대의 적이자, 언젠가는 쓰러트려 죽여야 하는 적.

    그럼에도 티탄들은 마치 간을 보듯 이정기를 건드리며 오히려 회유하려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정기의 죽음마저 상정하고 있었지만.

    “마치 제거보다는 회유를 원하는 듯했지.”

    올림포스의 왕이 가지는 가치를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만, 전쟁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달랐다.

    적국의 왕은 죽어야만 한다.

    그것이 휴전 따위라곤 할 수 없는 죽고 죽어야 하는 전쟁이라면.

    그런데 왜?

    “세뇌시키며 말해주더군.”

    시엘 회의에서 마침내 최명희는 그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정기가….”

    정기를 회유하려는 이유.

    그리고 이정기가 가디언에게도, 티탄에게도 그렇게 중요한 이유.

    “티탄의 왕이 될 수도 있단 이야기를.”

    “……!”

    유시아의 눈이 커졌고, 헤르메스는 마치 들켰단 표정으로 암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기의 안에 있는 그것. 그것에 따라 정기가 어찌 변할지 모른다는 것까지도.”

    “…….”

    “그 인간은 알고 있나?”

    헤르메스는 한참 대답을 하지 못했다.

    꽈악.

    목에 중력이 옭아매지고, 얼굴에 시뻘겋게 핏줄이 돋아나면서도 헤르메스는 입을 다물었다.

    “때가 올 때까지 내버려 둘 생각이었나? 그저 운에 맡길 생각이었나?”

    “그건….”

    “개소리.”

    최명희는 말했다.

    “정기의 운명은 정기가 결정하게 내버려 둘 것이다.”

    쿠웅.

    이정기에게서 파장이 일었다.

    무언가 커다란 변화가 이정기에게 일어나고 있음이 분명했다.

    부웅.

    허공으로 부유하는 이정기의 몸.

    그 속이 시꺼먼 어둠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끝이 파멸일지라도.”

    * * *

    “정기야….”

    “할아버지?”

    눈앞에 나타난 이건 할아버지.

    정기는 다시금 깨달았다.

    ‘이곳은 내 내면세계.’

    훈련을 통해 몇 번이나 드나들었던 곳이다.

    저것은 할아버지이지만 진짜가 아닌 자신의 정신이 만들어낸 존재였다.

    “네가 정말 내게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느냐?”

    “……!”

    그런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물었다.

    문제는 이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안다는 것이었다.

    ‘내가 가졌던 의문.’

    할아버지에게 내가 필요한 존재일까?

    스르륵.

    할아버지의 외형이 변했다.

    그곳에 나타난 것은 또 다른 할아버지 쥬피터였다.

    “정기야.”

    또….

    “너는 내게 필요한 존재다.”

    “할아버지…!”

    “가디언의 운명을 이끌고 올림포스의 재건을 위해, 그리고 거기까지다.”

    “……!”

    “너는 우리와 뒤섞일 수 없는 존재야.”

    이 또한, 자신이 가졌던 의문이었다.

    스르륵.

    또다시 변하는 외형.

    그곳엔 할머니가 서 있었다.

    “너는 내 자식을 집어삼킨 괴물이다. 헌데 이성마저 넘볼 생각이냐?”

    “할머니….”

    또다시.

    이번에 변한 것은.

    꽈악.

    이정기는 눈을 감았다.

    이것만큼은 결코 듣고 싶지 않았건만.

    “정기야. 너 때문이야. 네가 아니었다면 나도 그이도 죽지 않았을 거란다.”

    어머니의 목소리.

    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의문.

    그리고 결코 답하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았던 의문이었다.

    더 이상 질문이 들려오지 않았다.

    눈을 뜬 이정기의 앞에 선 것은.

    “최인해…. 권신우…. 이진석…. 김대정….”

    많게 적게 자신과 관계를 나눈 인간들.

    “너는 우리의 파멸을 불러올 존재야. 너를 봐. 이질적이잖아. 네가 우리와 같은 인간일까?”

    “너는….”

    “괴물이야.”

    괴물이야…. 괴물이야…. 괴물이야….

    자신도 안다.

    노력해봤지만 그들과 뒤섞이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을.

    자신에게 정을 주면서도 느껴지던 거리감과 두려움을 이정기는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아니야!”

    이정기가 소리친 그 순간.

    파스슷!

    모든 신형들이 사라졌다.

    “…….”

    듣고 싶지 않았고 답하고 싶지 않았던 질문들.

    동시에 분노가 치솟았다.

    이곳은 자신의 내면세계, 쥬피터 할아버지와의 훈련을 통해 이곳을 완전히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즉,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의식적으로 이정기가 이런 것을 원한 것도 아니었다.

    말했듯 결코 듣고 싶지도 답하고 싶지도 않던 질문들이었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간단했다.

    “또….”

    전에 한 번 보았던 존재.

    자신의 내면세계에 있었던 끔찍했던 그것.

    “너구나.”

    “그래.”

    바로.

    “나야.”

    이정기, 또 하나의 이정기가 그곳에 서 있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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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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