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196화 (196/284)
  • 제8권 21화

    196

    “여제가 왜 저러는지 알 것 같으니까요.”

    입가로 흐르는 핏물이 유시아의 참담한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녀 또한 이 말도 안 되는 싸움에 난입하고 싶다.

    당장 그만두라고 소리치며 이정기를 감싸 안고 싶은 것이 그녀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여제.’

    진실로 유시아는 여제, 최명희가 왜 저러는 것인지를 알 것 같았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위해 최명희의 목숨을 노렸던 유시아.

    여제라는 최고의 사냥감을 위해 수개월을 넘게 바쳤고, 그 기간 내내 쉼 없이 여제를 연구하고 관찰하는 것이 암살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렇기에.

    “크윽!”

    남들은 모르는 것까지도 유시아는 알 수 있었다.

    지금도 여제의 저 냉막한 표정이나 이정기를 향한 애정없는 눈동자.

    하지만 유시아는.

    ‘아니야.’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유를 알겠다고? 왜!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시험이라고 했잖아요.”

    “시험?”

    마동철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변했다.

    “겨우 그까짓 것 때문에 제 손자에게 큰 상처를 주겠다고!”

    “그까짓 것이….”

    인정하기 싫다.

    하지만.

    “아니에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최명희에게 이성이 무엇인지 알기에.

    ‘모든 것.’

    이성은 그야말로 최명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것.

    그녀가 이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걸어온 길, 그 수많은 피와 희생을 치르며 완성해낸 것.

    그렇기에.

    ‘그녀 자체이자, 그녀 혼자만이 아니다.’

    이성을 위해 희생된 모든 이들이 이성의 주인이라, 최명희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까짓 시험?

    시험 때문에 손자를 노리는 일?

    “그냥 시험이라면 그러지 않겠죠.”

    하지만 이 시험은 다르다.

    “할머니가 손자를 시험하는 일이 아니에요. 이성의 주인이….”

    콰앙!

    “새로운 후계자를 결정하는 일이죠.”

    자신의 참담한 심정? 마동철의 분노?

    ‘최명희는….’

    그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녀 개인으로서는 지금 이 상황이 그녀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다만 수많은 이의 피와 희생으로 만들어진 이성이기에, 그 주인을 그들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최명희의 집착이었다.

    또한.

    “다른 이유도….”

    그녀에게 다른 이유가 있음도 분명해 보였다.

    “젠장! 그래서 가만히 보기만 해야 한다는 거냐? 무슨 이유가 있든 그래야 한다고? 그게….”

    “정기가.”

    유시아가 다시 한 번 입술을 짓씹었다.

    더욱더 흐르는 핏줄기.

    자신의 심정이라고 다를까.

    그러나 자신은 결코 이 싸움을 말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긴 세월, 외로움과 싸워내며 자신을 찾아왔던 조카.

    자신은 그런 조카의 목숨을 노렸다.

    무엇이든 해주고 싶지만, 유시아는 정기에게 무엇도 해줄 수 없었다.

    ‘바라는 것이 없으니까.’

    그저 가족이라는 울타리, 조금의 외로움이라도 덜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는 것이 유시아가 할 수 있었던 모든 것.

    그렇기에 이 싸움은 막을 수 없다.

    “정기가 그랬어요.”

    “……?”

    “이성을 갖겠다고. 부모님의 유산이라곤 천 쪼가리조차 받지 못했으니, 아버지가 받아야 했던 이성을 가져야겠다고.”

    꽈악.

    “그러니 정기가 그것을 원한다면 내버려둘 수밖에 없어요. 저희가 나서선 안 돼요.”

    “젠장!”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얼굴, 하지만 마동철도 붉어진 눈으로 두 손을 내린채 최명희와 이정기를 바라볼 수밖에 없음을 스스로 깨달았다.

    콰앙!

    그 순간에도 두 조손은 서로의 목숨을 노리며 충돌하고 있었다.

    * * *

    쩌저적!

    사자갑주의 파괴가 가속화되고 있었다.

    이정기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력의 활용에 대해서는 자신보다 더 뛰어난 자를 본 적 없었던 이정기.

    그러나.

    스스슥!

    할머니의 마력 운용은 어떤 면에서 자신보다 더 뛰어나다 할 수 있었다.

    이정기의 자랑은 마력장을 이용한 여러 활용법, 그리고 세밀하진 않아도 막대한 마력을 바탕으로 마력의 성질마저 바꿔버리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최명희는 달랐다.

    구웅!

    세밀함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는 것 같았다.

    중력을 이용하는 그녀의 능력에 한계가 어디인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듯.

    쩌적!

    먼저 최명희는 사자갑주에 중력을 스며들게 만들어 파괴시키고 있었다.

    사자갑주가 파괴되면 파괴될수록 마력에 대한 저항이 떨어진다.

    부숴진 사자갑주 사이로.

    쿵!

    마치 망치로 때리는 듯한 충격이 이정기에게 전해져 오고 있었다.

    쿵! 쿵! 쿵!

    사자갑주를 신경 쓰면, 그 속을 파고드는 중력에 충격을 받았고.

    쩌저적!

    충격을 몰아내고자 하면 사자갑주가 파괴되었으며.

    구우웅! 콰앙!

    그 두 가지를 모두 신경 쓰면 중력은 이정기 그 자체를 노려왔다.

    중력에 이끌려 바닥에 처박힌 이정기.

    시뿌연 흙먼지 속에서.

    우우웅. 프샤앗!

    거대한 파동이 흙먼지를 한 번에 뒤엎고선 최명희를 향해 쏘아져 왔다.

    나선으로 돌고 있는 거대한 마력의 파장.

    와류.

    ‘볼텍스.’

    최명희를 상대하겠다 마음먹었건만, 그 강대한 파괴력 때문에 쉬이 쓸 수 없던 볼텍스를 마침내 사용한 것이었다.

    타이탄마저 한 번에 갈라버리는 힘, 지형을 뒤바꾸고 하늘을 가르는 힘.

    최명희라면 적중당해도 죽지는 않을 것이라, 그렇게 생각하며 쏘아냈을진대.

    파슷!

    최명희를 향해가던 볼텍스가 그대로 흩어져버렸다.

    “……!”

    단언컨대 처음 있는 일.

    “개 잡종의 기술이구나.”

    최명희가 이정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그 인간의 기술을 파훼할 방법조차 생각해내지 못했을 것 같더냐?”

    이정기의 눈이 떨리고 있었다.

    ‘가능한 일이었어?’

    볼텍스에 서린 강대한 힘.

    최명희가 한 것은 그 거대한 와류가 일으키는 힘의 중심 부분을 중력으로 흩어버린 것이었다.

    그 무엇보다 빠르게 회전하는 와류의 중심을 파고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가능할지라도 그 정확한 타이밍과 와류를 파고들 힘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

    최명희는.

    “그 개 잡종의 기술은 수도 없이 연구했다.”

    평생을 바쳐 이건을 연구했다.

    그러나 태생적인 한계에 부딪혀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마력.’

    최명희 또한 손꼽힐만한 천재적인 헌터로 각성했으나 이건 만큼은 아니었다.

    끝을 모르는 바다와 같은 마력을 가진 이건, 그에 반해 최명희의 마력량은 천재적인 능력에 비해 평범하다 할 수 있었다.

    최명희는 마력을 다루는 재능으로 그것을 극복하고자 했지만, 결국 넘어설 수 없는 벽이었다.

    이론을 짜고, 그와 비슷한 힘에 대응해 성공한다 해도.

    ‘멀었다.’

    이건은 언제나 그런 최명희를 비웃듯, 그 이상을 보여줬다.

    마치 조롱하듯.

    결국, 끝까지 최명희는 이건을 넘지 못했다.

    이건을 상대할 수백 가지 이상의 방법을 연구하고 만들었으나, 마력의 한계에 부딪혀 결국 한 번도 넘어설 수 없었다.

    그랬던 약점이.

    “그 인간의 기술이라면 통하지 않는다.”

    극복되었다.

    쿠쿠쿠쿵!

    마력을 갖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이성이 가지고 있는 마력 던전도 그 결과물 중 하나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갖을 수 없던 마력.

    쿵!

    지금 최명희는 마침내 원하던 소원을 이룬 것이나 다름없었다.

    막대한 마력, 그보다 더 효율적이고 거대한 힘인 넥타.

    “나를 이기고 싶다면….”

    꽈아아아악!

    “그 인간의 것이 아닌 것을 사용해야 할 거다.”

    이론으로만 가능했던 모든 일이 지금의 최명희에겐 가능하다.

    “못 믿겠느냐?”

    이정기를 바라보는 최명희, 그녀가 한 손을 내뻗어 손바닥을 뒤집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 손을 쥐기 시작했다.

    “보여주마.”

    구우웅!

    모든 중력과 마력이 최명희에게 모여드는 것과 같은 느낌.

    저항하려 해도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힘.

    그 속에서.

    “그래비티 볼텍스.”

    중력이 와류가 되어 회전하고 있었다.

    * * *

    솔직히 말해 납득하지 못했다.

    ‘회장님은….’

    할머니, 최명희를 향한 수많은 찬사들.

    헌터들 중에 손에 꼽힌다며 최강 중의 한 명이라는 말.

    그중에서도 가장 납득되지 않던 말은.

    ‘한때 그분과의 전투에서도 동등한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비교되었다는 것은 특히나 납득되지 않았다.

    평생을 함께 살았던 할아버지, 이정기의 생각 속에서 할아버지는 최강이었고 할아버지의 고향인 세상도 그렇게 인정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강하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 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그뿐이었다.

    할아버지와 같은 압도적인 힘도, 결코 넘어설 수 없을 것만 같은 벽도 느껴지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비견될 수는 있겠다.

    다만.

    ‘올림포스.’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말이다.

    지구에서 삶을 살아온 할머니, 그에 반해 할아버지가 보낸 시간은 최악이자 지옥과 같은 곳에서 보낸 전쟁 같은 것이었다.

    그 차이는 너무나 커 결코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래비티 볼텍스.”

    할머니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쟁과도 같은 시간, 그것이 비록 몬스터나 타이탄을 상대해야 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녀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적을 상대로 그 수십 년을 지내온 것이었다.

    ‘이건.’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 그리고 할아버지를 결코 꺾어내겠다는 의지.

    이 힘은 그 감정과 생각, 경험이 온전히 느껴지는 것이었다.

    감탄스러웠다, 또한 존경스러웠다.

    아직 자신은 할머니를 완전히 모른다, 인정해야 했다.

    ‘벽.’

    이정기는 생에 두 번째 벽을 느꼈다.

    하나는 할아버지.

    또 하나는 할머니.

    할머니 또한.

    ‘최강.’

    그 이름을 받기에 손색없는 분이셨던 것이었다.

    할머니의 손에 뭉친 중력의 와류.

    이정기는 그 힘을 보고서도 피할 수 없었다.

    우우웅.

    땅에 몸이 박힌 듯 움직이지 않는다.

    피하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저 힘에 담겨있었다.

    도망치지 마라!

    정면으로 부딪쳐라!

    저 힘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쿵!

    그렇기에 이정기는 발을 땅 깊숙이 박아넣었다.

    ‘피하지 않겠습니다.’

    우우우웅!

    이정기의 오른손에 뭉쳐 드는 마력과 넥타의 와류.

    그리도.

    우우우웅!

    왼손에도 모여드는 넥타의 와류.

    ‘할아버지의 것으로 이길 수 없다고?’

    아니!

    이정기는 인정할 수 없었다.

    벼락의 힘은 넣어둔다.

    만일 상대가 무조건 죽여야만 하는 적이라면 벼락마저 꺼내 들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할머니에 대한 배신감도 느껴지고 복잡한 감정이 느껴지지만, 그만큼 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보여주겠다.

    할아버지의 힘도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걸.

    “그 고집스러운 부분도 그 인간을 똑 닮았구나.”

    전달되어 들려오는 할머니의 목소리.

    이정기는 이것이 마지막으로 듣는 것인지 모를 할머니의 목소리라 생각했다.

    할머니의 손에 뭉쳐있는 저 힘에 서린 또 다른 뜻.

    ‘널 죽이겠다.’

    자신을 진정으로 죽이겠다는 각오.

    그에 화답하듯.

    “더블….”

    이정기 또한 그런 의지를 양손에 담았다.

    “볼텍스.”

    우웅.

    작은 공명.

    하지만.

    쿠콰아아아아아아아앙!

    두 개의 힘이 만들어낸 폭발은 지형을 뒤바꾸고, 하늘을 조각내버렸다.

    몇 분이나 지속된 폭발의 여파가 끝나고, 그 파장이 걷혔을 때.

    “커억!”

    이정기가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쩍!

    마침내 사자갑주가 완전히 부숴진 채, 이정기는 그대로 양 무릎을 꿇었다.

    그 반대편.

    “말했지 않았느냐.”

    똑바로 선 최명희가 말했다.

    “그 인간의 기술로는 날 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벽, 그것은 거대한 장벽이자 행성 그 자체였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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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 위 책은 (주)타임비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이므로 발행자와 저자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로든 이 전자책과 내용을 이용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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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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