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195화 (195/284)

제8권 20화

195

처음으로 최명희의 입이 열리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성을 갖고 싶다지?”

오랜만에 듣는 최명희의 목소리는 세뇌의 흔적이라곤 하나도 없는 또렷한 목소리였다.

“소식은 전부 들었다.”

백두, 그리고 이성과의 충돌까지.

주안나과 길드전을 치렀고, 주안나와 이성의 제1 공격대가 증발해버린 것마저도 최명희는 전부 알고 있는 듯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그녀는 언제나 모든 소식에 귀를 기울이며, 그녀에게 사소한 소식 하나마저도 놓치지 않게 해줄 이들이 수도 없이 많았으니까.

“진심이냐?”

할머니의 물음.

이정기는.

“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갖고 싶습니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는 듯했었다.

아니 말하지 않았어도 할머니는 이미 눈치채고 있을 듯싶었다.

“아버지의 것이었습니다.”

이성의 본 후계자로 확정되어 있었으며, 이성의 주인으로 할머니만큼이나 자격이 있다고 평가받던 것이 바로 이정기의 아버지 이강이었다.

만일 이강이 올림포스 원정대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이성은 완전히 이강의 것이 되어 있을 터였다.

할머니도.

“할머님도 그걸 원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버지가 이성을 잇기를 원하셨다.

이강을 후계자로 확정한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할머니였으니까.

“저는 아버지의 것은 단 하나도 갖지 못했습니다.”

태어나던 날 타이탄에게 죽임당한 아버지와 어머니.

이정기가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곤 단 하나도 없었다.

추억마저도.

‘그래.’

이것이었다.

할머니를 위한다고, 할머니가 원하는 가족을 만들기 위해 이성을 갖고 싶다고 했던 것도.

‘전부 다 핑계였어.’

이것이 본심이었다.

단 한 개도 갖지 못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산.

“그래서 이성을 가져야겠습니다.”

그것이 이정기에게는 이성으로 느껴졌다.

“…….”

처음으로 할머니의 얼굴에 표정이 드러났다.

어딘가 안쓰러우면서도, 고집 있는 그런 표정.

하지만 동시에.

씨익.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최명희의 입가에 드러난 미소.

“그래. 이제야 솔직해졌구나.”

이정기도 모르던 이정기의 마음을, 최명희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모를 수가.’

그 눈과 그 기세, 그 입매마저도.

“아느냐?”

최명희가 말했다.

“너는 강이를 닮지 않았다.”

생김새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선남선녀라며 세상이 떠들썩했던 이강과 유영아의 결혼이 증명하듯, 이정기의 생김새는 그 둘을 꼭 빼닮아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이 닮아 있었다.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고 했느냐?”

그래.

“사실이다.”

이정기는 부모에게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그 흔한 천 쪼가리, 추억마저도.

그렇기에.

“너는 그 둘의 무엇도 받지 못했어.”

이정기는 이강과 유영아를 이을 수 없었다.

하지만 똑 닮아 있는 것.

“네 할애비를 닮았지.”

이정기는 이건과 같다.

눈매, 입매, 기세와 몸짓, 행동 그리고 그 사고방식까지.

“내가 그 증오스러운 인간과 닮아있는 네게 이성을 줄 수 있을 것 같으냐.”

이 또한 처음이었다.

최명희의 앞에서.

와락.

이정기의 얼굴이 일그러진 것은.

“그래. 그렇게 솔직해지는 거다. 정기야.”

“할머님.”

정말로 할머니는 세뇌당하지 않은 것일까?

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쥬노!

모모스의 절규와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뭘 하고 있는 거야! 당장-! 당장 죽….

하지만 모모스의 목소리는 이어질 수 없었다.

가슴팍에 났던 커다랬던 구멍, 재생이 되고 있던 그 구멍이.

쩌저저적!

삽시간에 갈라지고 있었다.

회복력이 따라가지 못하는 속도.

-뭣…!

당황한 모모스의 마지막 외침은 그것뿐이었다.

쩌어억-!

이정기가 뚫어놓았던 가슴을 중심으로 모모스는 두 갈래로 갈라져 스러지고 있었다.

“시끄럽다.”

누가 한 일인지 깊게 고민해볼 필요도 없었다.

할머니의 손이 향하고 있는 곳이 모모스였으니까.

세뇌당했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

“이성을 갖고 싶다 했느냐?”

다시금 할머니가 물었다.

“어디 증명해 보이거라. 이게….”

모모스를 향했던 그 고운 손이.

콰악!

“마지막 시험이다.”

이정기를 향했다.

* * *

팟!

이정기는 급히 몸을 움직여 중력장을 벗어났다.

“진심….”

방금 전의 공격으로 알 수 있었다.

할머니가 진심이라는 것을.

“내가 너를 상대로 힘 조절을 할 것 같았더냐?”

그리고 그 공격이 정말 자신의 숨통을 노려왔다는 것도.

“…….”

자세를 바로 고친 이정기가 입술을 짓씹었다.

“어영부영 상대해주길 바라는 것이냐? 그게 네 마음이야?”

마지막 시험.

‘시험, 시험….’

시험!

이정기의 속 안에서 불이 끓는 것 같았다.

할머니를 다시 만나고 할머니의 마음에 들고자 노력했다.

매번 시험과 같은 형태로 할머니가 자신을 평가하는 것에 만족시켜드리고자 노력하고자 했다.

하지만.

“제 목숨을 노리면서까지… 시험하셔야 하는 겁니까?”

이게 맞는 것일까?

시험이라면 익숙하다.

할머니가 아니더라도.

‘정기야. 해보거라.’

이건 할아버지.

‘할 수 있을 거다.’

쥬피터 할아버지.

올림포스의 삶 자체도 그 모든 것이 시험의 연속이었으니까.

그러니 담담했다.

하지만 두 할아버지의 시험 어디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경우는 없었다.

목숨이 위험한 시험에 밀어 넣을지언정, 두 할아버지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경우는 없었다.

‘정말….’

최명희가 세뇌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들었던 생각.

“할머니도 똑같은 겁니까?”

최명희도 다른 성혈들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

사소하고 작은 생각일 수 있지만 이정기에게 느껴지는 바는 컸다.

할머니는 다르기에 다른 성혈들을 바꾸고자 했다.

하지만 할머니 또한 마찬가지라면.

‘내가 그럴 이유가 있을까?’

안 그래도 번거롭고 짜증나던 상황.

굳이 자신이 더욱 노력을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니 잊으려 했던 고민이 떠올랐다.

‘왜.’

왜 성혈들이 그렇게 된 것일까.

그들의 성격이.

‘너는 할머니를 몰라.’

그들이 말하는 할머니가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 다르다는 것을.

성혈들이 그리된 원인이 할머니라는 것을.

꽈악!

다시 한 번 중력이 이정기의 목을 옥죄어왔다.

팟!

넥타를 쏘아내어 풀어낸 순간.

“……!”

마치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땅 밑에서 느껴지는 중력이 이정기를 잡아챘다.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몸.

당연하게도 목을 노려오던 중력은.

콱!

목적했던 바대로 이정기의 목을 옥죌 수 있었다.

“생각이 많구나.”

최명희가 천천히 다가오며 말했다.

“전투에 임할 때 깊은 생각은 독이라는 것을 그 인간에게 배우지 못한 것이냐?”

“크읍!”

“겨우 그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성을 갖고 싶다고? 지금의 네게 어울리는 것 같더냐?”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이정기는 최명희를 바라봤다.

‘그래.’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시간이었다.

너무나 그리워하고 갖고 싶던 가족이기에 할머니에게 했던 집착.

그 집착을 내려놓아야 할 것 같았다.

‘할머니는….’

내가 그리워했던, 갖고 싶던 가족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

또 다시 저 목소리다.

“그렇게 솔직해지는 거다.”

쿠쿠쿠쿠쿠쿠쿠쿠!

이정기에게서 막대한 마력이 뿜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정기의 목을 옥죄고 있던 중력도.

콰앙!

이정기를 땅 밑으로 잡아끌던 중력도.

콰앙!

그 모든 것이 터져나가며 폭연이 눈 앞을 가렸다.

연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정기.

쩌저적!

모모스가 갈라졌던 것처럼 이정기의 사자갑주 또한 당장 부서질 것처럼 금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다르다.

쿠쿠쿠쿠쿠!

완전한 전투태세.

설령 지금의 전투로 사자 갑주가 부서진다 해도 상관없다는 마음가짐.

설령 지금의 전투로.

“그래.”

자신이 부서져 버려도 상관없다는 마음가짐.

이것이.

“그것이다.”

이정기가 배운 삶이었다.

타앗!

가볍게 밀어낸 땅.

쿠콰아아앙!

그 뒤로 충격파가 일며 순식간에 이정기의 모습이 사라졌다.

사라진 이정기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최명희 등 뒤.

이정기의 주먹이 넥타를 머금고 최명희를 노려가던 순간.

“하지만 부족해.”

쾅!

이정기의 신형이 다시금 땅에 쳐박혔다.

* * *

“제기랄! 이게 무슨 미친 상황이야!”

마동철은 격분하며 소리쳤다.

“그 인간을 싫어하는 건 알았지만…!”

그의 분노가 향하고 있는 곳은 최명희.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고!”

이정기와 최명희의 대화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들렸다.

‘이성을 갖고 싶다지?’

‘아버지의 것이었습니다.’

‘네게 줄 것 같으냐? 너는 네 강이를 닮지 않았어. 네가 닮은 것은….’

왜!

‘이건이다.’

왜 저렇게까지 하는 것이냐.

이정기와 그리 긴 시간을 보내지 못한 마동철이었지만, 대장질이라는 것이 그렇다.

사용했던 무구를 수리하는 것이나 사람을 위해 무구를 제작하는 것이기에 그 사람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마동철이 느끼기에 이정기는 미치도록 외로운 인간이었다.

다 큰 어른인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지만.

‘그 속은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이정기는 그저 사랑받고 싶은 어린아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럴진대.

“그토록… 여제 그대를 따랐을진대!”

최명희는 이정기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콰앙!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충돌과 폭발.

둘의 표정만 보아도 가슴이 미어진다.

예전에도 수없이 보았던 무표정한 얼굴의 최명희.

그리고.

-으아아아악!

마치 절규하듯 최명희에게 달려드는 이정기의 얼굴.

왜 저 어린아이에게 꼭 상처를 주어야만 하는 것이냐는 것이다.

마동철은 당장이라도 나서 둘 사이에 서고 싶었다.

그만두라고, 제 한 몸을 바칠 각오도 했다.

헤르메스 또한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지 부상입은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나서지 마세요….”

유시아가 그들을 말렸다.

“왜! 너는 저 꼴이 보이지도 않는 거냐! 저 어린 애가 저토록 상처받는 것을 보고만 있을 것이냐고!”

네가 이모라며!

어린 조카의 절규를 그대로 보고만 있겠다는.

“그런 게 아니에요.”

유시아가 입술을 짓씹으며 말했다.

입가로 흐르는 피, 그것이 유시아 또한 얼마나 참담한 심정인지 표현해주는 듯했다.

“저는….”

유시아, 그녀가 작게 말했다.

“여제가 왜 저러는지 알 것 같으니까요.”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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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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