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194화 (194/284)

제8권 19화

194

휘이잉.

몰아치는 바람.

그 속에서 헤르메스는 눈을 떴다.

수적으로 우세한 데다, 그 힘마저 막강한 티탄과의 전쟁에서 가디언은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전쟁의 승자는 가디언이었으며, 티탄들은 그 대가로 타르타로스라는 감옥에 처박혔다.

‘어떻게?’

어떻게 가디언이 승리할 수 있었을까.

단 한 가지의 차이.

하지만 전쟁의 승패를 가를 정도로 중요한 차이.

‘오직 한 가지의 권능만을 가지고 있는 티탄.’

강력한 육체와 힘을 가지고 있는 티탄이기에 그들의 권능은 단 한 가지로 제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가디언은 달랐다.

바람을 다루는 권능, 포탈을 열 수 있는 권능.

그리고 또 한 가지, 헤르메스에게 주어진 권능.

“오랜만이네. 이 느낌은.”

영혼의 길잡이.

이 권능이 있기에 헤르메스는 오직 자신만이 최명희의 세뇌를 풀어낼 수 있다고 자신했던 것이었다.

상대의 영혼에 접촉해 영혼의 심연을 내다볼 수 있는 권능.

또한, 그 영혼의 길을 안내하여 영혼이 바라는 길 혹은, 헤르메스가 원하는 길로 안내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능력, 사용에 따라.

‘그 누구도 세뇌할 수 있고, 세뇌를 풀 수 있는 능력.’

하지만 당연하게도 대가 없는 힘은 없었다.

영혼의 길잡이의 권능은 헤르메스가 가진 권능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 중 한 가지.

완벽한 상태에서도 준비가 없다면 그 반동이 극심한 권능일진대.

욱신.

아직 완벽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 힘을 사용하는 반동이 고통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던 이유.

헤르메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5분.’

그 사이 최명희의 세뇌를 풀지 못한다면 헤르메스는 영혼의 세계의 길잡이가 아닌 방랑자가 될 것이 분명했다.

“후.”

숨을 몰아쉬며 격통을 참아낸 헤르메스가 주변을 살폈다.

서둘러 최명희를 찾아야만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스르르.

영혼의 모래시계는 떨어지고 있었다.

바람을 통해 최명희를 찾으려던 헤르메스.

우뚝.

그가 멈춰 섰다.

급히 찾을 필요가 없었다.

콰앙!

저 멀리 거대한 충돌과 함께, 환한 빛무리가 비추고 있었다.

영혼의 세계는 상대의 영혼 그 자체를 투영하는 곳.

저런 빛무리가 나타난다면 당연히 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스륵.

헤르메스가 바람을 타고 빛무리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그 사이에도 계속해서 일어나는 폭발.

“단순한 빛무리가 아니야.”

저건.

“전투…?”

강렬한 충돌로 인한 빛무리였다.

대체 누가? 최명희는 이 세계에서 누구와 싸우고 있는 것일까?

짐작 가는 바는 있었다.

‘다행이다.’

세뇌.

그 자체와 최명희가 싸우고 있다는 것.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영혼이 굳건한 자가 영혼의 침입자를 막아내려는 것은 당연한 본능이나 다름없으니까.

다만 인간이 티탄의 세뇌를 상대로 이만치나 버티고 있다는 것이 더 놀라운 이야기였다.

다행이었다.

만일 최명희가 아직 싸우고 있다면 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최명희를 도와 티탄의 세뇌를 따돌리고 제대로 길을 안내하기만 한다면.

우뚝.

목적했던 곳에 도착한 헤르메스가 그대로 석상처럼 굳었다.

당연히 티탄의 세뇌와 싸우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많이 늘었어.”

완전히 틀렸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해. 언제 나를 뛰어넘을 거냐. 명희야.”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젊음과 패기가 느껴지는 두 개의 얼굴.

“아직이다. 아직이야.”

하나는 최명희가 분명해 보였고, 또 다른 하나는 헤르메스에게 더욱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 입을 꿰매주마. 망할 인간.”

이건.

최명희가 싸우고 있는 대상은 티탄의 세뇌가 아닌 최명희가 만들어낸 이건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

더욱 놀라운 것을 깨달은 순간.

“훼방꾼이 있구나.”

“저것부터 치우지.”

두 개의 얼굴이 동시에 헤르메스를 향했다.

가디언의 시절 턱 아래로 내려보았던 인간에 불과할 두 개의 얼굴.

하지만 그 순간.

“맙소사.”

헤르메스는 공포를 느꼈다.

* * *

“컥!”

헤르메스가 격통과 함께 피를 토해냈다.

이런 경험이 대체 얼마 만인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일.

덜덜덜.

충격에 온몸이 파르르 떨려오고 있었다.

최명희의 세뇌를 풀기 위해 최명희의 영혼 세계로 들어갔던 헤르메스는.

콰앙!

최명희의 영혼 세계에서 추방당해버렸다.

영혼 세계에서 티탄의 세뇌도 아닌 인간의 영혼, 그리고.

‘영혼의 심상.’

영혼이 만들어낸 존재에게 추방당하다니.

그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자칫하면 헤르메스의 영혼마저 타격을 입었을 정도였다.

오랜 시간을 끌지 않아 권능으로 인한 자기파괴는 없었지만.

꽈아악!

결국, 실패한 것은 다름없었다.

헤르메스의 온몸을 옥죄어 오는 중력.

“……!”

저 눈이다.

자신에게 공포를 선사했던 눈.

“대체…!”

최명희, 그녀가 허공에 손을 뻗은 채 헤르메스를 압축시켜 터트리려는 듯 힘을 가해오고 있었다.

전해지는 압박을 떨쳐내고 싶었지만.

“큭!”

반동으로 인한 충격에, 권능 발현이 힘들어진 지금.

꽈아아악!

최명희의 중력은 마침내 헤르메스를 찌부하려는 듯했다.

쿵!

곧이어 충격음이 들렸다.

“허억! 허억…!”

가쁜 숨을 몰아쉬는 헤르메스.

허공에 붙잡혀 있던 조금 전과 달리 그는 바닥에 엎드린 채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몸을 압박하던 중력은 사라졌다.

그 대신.

“왕…!”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남자.

쩌저적!

지금도 갈라지고 있는 방어구를 입은 채, 등만 보아도 지친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존재.

이정기가 그곳에 서 있었다.

휘청.

비틀거리면서도 꼿꼿이 선 그.

“실패했습니까?”

이정기의 물음에 헤르메스는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이지 않아도 이정기는 알았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무엇을 알았다는 것인지, 이정기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헤르메스는 다시금 고개를 치켜들었다.

헤르메스가 더욱 당황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이유가 있었다.

쉽게 꺼낼 수 없는 말.

이정기의 역린을 건드리는 것이 될 수도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투캉!

최명희의 앞에서 전투 준비를 마친 이정기.

헤르메스는 결국 고민 끝에 마른 입술을 떼었다.

“세….”

애매하다.

자신이 본 심상이 이미 티탄의 세뇌에 완벽히 장악당한 최명희가 보여준 환상일 수 있다.

하지만.

“세뇌….”

아니다.

자신이 누구던가.

가디언 중에서도 몇 없는 영혼 계열 권능을 지녔으며 세뇌와 영혼 세계 침입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자신이었다.

그런 헤르메스가 느낀 것은.

“세뇌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최명희가 세뇌당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영혼의 길잡이의 권능을 사용까지 했던 자신.

그런 자신을 영혼 세계에서 추방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티탄의 세뇌마저 떨어버렸으리라.

최명희는 처음부터 세뇌당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

대답 없는 이정기.

마침내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러서세요.”

쿠쿠쿠쿠쿵.

이정기와 최명희, 그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충돌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다.

* * *

“…….”

“…….”

최명희와 이정기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뿐이었지만.

쿠쿠쿠쿠쿵.

그 속에서 작은 충돌이 계속해서 일어나며 서로의 힘을 겨루고 있었다.

두 조손.

할아버지만큼 오랫동안 보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정기는 할머니라는 존재를 처음 만났을 때.

“…….”

그리 어색한 느낌도, 멀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했고 또 익숙했다.

그렇기에 쉬이 할머니를 받아들일 수 있었으며, 할머니께 도움이 되고자 했고, 이성이라는 울타리에 들어가고 싶어 했었다.

왜 그런 느낌을 받았을까?

이정기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애초부터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같다.’

처음 할머니를 보았을 때의 눈빛.

그건 할아버지와 같은 포식자의 눈빛이었다.

할머니의 입매는 투기와 투지를 담고 있었고.

‘기운.’

마력에서 느껴지는 파장.

이정기가 올림포스에서 살아남기 위해 배웠던 그 감각은 감정마저 전달해주건만.

‘긴장.’

할머니의 마력은 언제 어느 순간에도 긴장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전투가 벌어진다면 당장이라도 뛰어들어 적의 숨통을 끊어놓을 수 있는 상태.

이진석, 이성의 성혈들, 김대정이나 정훈.

헌터들에게서 느낄 수 있던 어느 정도의 안정감이나 안도 따위.

‘하나도 느낄 수 없었어.’

할머니에게선 그런 것이 한 번도 느껴진 적이 없었다.

그러니 편할 수밖에 없었다.

이름이 달라지고, 성별이 달라지고, 외모가 달라지고 그 모든 게 달라진다 해도.

‘본질.’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본질은 같았다.

그러니 지내는 곳이 달라진다 한들 이정기에게 둘은 같은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사냥꾼.’

헌터라는 이름이 무엇인지.

‘포식자.’

강자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힘의 격차는 있을지언정.

‘최강.’

그 둘은 이정기에게는 최고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할머니는 올림포스 원정으로 게이트가 사라졌다 한들 아직 긴장을 놓치지 않았다.

마치 아직도 싸움이 남아있다는 듯.

‘할머니는 어땠을까.’

손자라며 자신을 보았을 때, 그리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까닭이.

‘내게서 아버지를 본 걸까.’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본 것일까.

혹은.

‘할아버지를 본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나 자신.’

자신을 보고 믿어준 것일까?

무엇이든 지금 이정기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였다.

“할머님.”

최명희가 이정기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

헤르메스가 세뇌를 풀겠다며 최명희와 부딪힐 때 이정기는 그를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오히려 헤르메스보다 최명희를 더 이해하고 있는 이정기이기에 최명희가 나타난 순간부터 진실을 알고 있었다.

‘세뇌?’

그따위 것을.

피식.

자신이 최강이라 생각하는 존재가 당할 리 없지 않은가.

그러니 아폴론을 믿었고, 할머니가 시엘 회의에 참석했을 때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할머니는 세뇌당하지 않았다.

“이 또한….”

이정기가 입을 열었다.

“시험입니까?”

그리고.

“이성을 갖고 싶다지?”

열리지 않을 것 같다던 최명희의 입이 열렸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주 소 | 경기도 하남시 조정대로 35 하우스DL타워 F915-1(9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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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 스 | 02-6442-7919

홈페이지 | www.osmedia.kr

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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